무신도 막내손자는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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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11.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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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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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7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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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지로

DUMMY

어느 순간부터 신중한 녀석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미끼를 바로 물지 않고 계속 주위만 두리번거린다.


[뭐가 문제일 것 같냐?]


혹시 저번 전투 때 약간 반항했던 방계 녀석이 꺾은 나뭇가지를 민감하게 본 건가?


[아니야.]


그럼 달리 뭐가 있지?


[냄새.]


아......


[이틀째다. 아무리 숨죽이고 살더라도 그리 움직였으면 땀 냄새가 나는 법이지. 게다가 빵만 무식하게 처먹었으니 그 냄새가 오죽하겠냐?]


그렇구나.

냄새가 조금 남아 있는데, 물은 그대로니 함정이라고 의심할 법하네.


[그리고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 저놈은 아직 온기까진 파악하지 못했지만, 밖에서 숙련된 추적자들을 만난다면 넌 냄새와 온기가 발각당해서 바로 죽어.]


검귀의 가르침은 엄격했다.

지금까지 30명 정도 처리하면서 계속 흔적 지우는 방식을 배워나갔는데도, 다른 단점이 함께 부각 돼서 쉽지 않다.


[저러다 도망칠 것 같은데 어쩌겠느냐?]


할 수 없네.


“이곳은 그만 써먹어야지.”


검귀가 알려준 암살 방식을 이용해 녀석의 등 뒤로 접근했다. 그러자 신중한 녀석은 기감 마저 예민했는지 바로 등 뒤에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휘두른 도끼에 제대로 된 힘이 실릴리 만무하다.

까앙!

녀석은 뒤늦게 몸을 함께 돌리곤, 자기보다 몸이 작은 내가 밤하늘로 막아서자 놀란 눈이 되었다.


“뭐야, 이 힘은.....”


어제 누구였더라.

아무튼, 한 놈 때려눕히고 영약을 바로 먹었다.

그때부터 내 힘이 남달라졌다.

보통이라면 내가 튕겨야 정상인데, 영약을 섭취한 지금은 오히려 이 신중한 녀석을 앞선다.

쾅!


“....헉!”


녀석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허공에 살짝 뜬 순간, 나는 밤하늘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쾅!


“이 개.....!”


쾅쾅!

중심이 흔들려 넘어진 순간 승부는 끝났다.

녀석이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막아내건 말건, 나는 무식하게 밤하늘을 휘둘렀다.

초식은 필요치 않다.

이미 제압된 사냥감을 단호하게 다지는 의지만 필요할 뿐.

콰콰콰콰콰쾅!

어차피 이곳을 버릴 예정이라 소리가 들리건 말건 있는 힘껏 후려쳤다.


“끄어억.....”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 몽둥이질을 멈췄다.

녀석이 게거품을 물고 대자로 뻗어 있었다.

소지품을 바로 뒤져보는데....쓰읍.


[제법 눈치가 있어 보여서 뭔가 가졌나 싶었더니, 먹을 것 하나 없군.]


그나마 도끼가 전부인가.

녀석의 애병을 회수하기 무섭게 구체가 열리며 나린이 튀어나왔다.

가볍게 목례를 취하며 돌아서려고 하자 웬일인지 나린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내가 담당하는 녀석들 뿐이지?”


그랬나?


“전 여기 걸려든 멍청한 놈들만 팼습니다.”

“......”

“수고하세요.”


그리고 휘파람을 불며 돌아서는데.....응?

등이 조금 따가운데?


“......?”


돌아선 곳에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는 나린이 보였다.


“할 말 있으신가요?”

“아니. 그 도끼도 가져.....”


나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할 일 해라.”

“예.”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도끼를 은신처에 집어넣었다.


***


푹 쉬고 은신처에 앉아 빵을 뜯어 먹으며 고민했다.

이제부터 남은 녀석들은 어제 휘둘러 팬 놈보다 더 신중하고 강할텐데, 나 혼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냥 죽치고 앉아있던가?]

“그건 좀 아쉬운데?”


은신처에 쌓인 시험자들의 애병을 볼 때마다 욕심이 생긴다.

지금 내 상태에서 조금 영리하게 움직인다면 더 많은 보물을 긁어모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함정 하나 파두고 숨어 지낼 수도 없지 않나?]


얼마나 사람들이 남아서 내 함정에 올지 모르니까.

어쩌면 한세월 기다리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설령 오더라도 신중하게 탐색부터 하다가 나를 발견할 가능성도 높았다.


“함정.......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동굴을 벗어나 개울가로 향했다.

물을 담으러 온 게 아니다.

이곳의 물은 진흙 범벅이라 마시지도 못한다.

나는 개울가 근처 바위에 피어난 흙색 풀을 보았다.


[그건 왜?]

“영감이 이거 보자마자 했던 말이 떠올라서.”

[응?]

“남은 놈들은 단체 행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나 혼자서 단체를 이기려면 모든 수단을 싹 동원해야 하잖아.”

[설마....]


내가 한입 베어 문 빵의 속살을 파냈다.

그리고 흙색 풀을 돌에 빻아 나온 즙을 빵 속에 듬뿍 바르고, 다시 속살을 채워 넣었다.

2개를 제외한 나머지 빵에 모두 같은 작업을 진행했다.


“내가 직접 찾아가려고.”


씨익 웃으며 빵을 한가득 허리에 실었다.


***


직계 7번째의 막내 아들.

올해 15살이자 익시드 6급인 마르코가 또 한 명의 동료를 얻었다.


“나와 함께 다니면 죽지 않아.”


마르코는 이곳에 떨어진 순간부터 자신의 직계 신분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아왔다. 거부하는 녀석들은 단체로 몰아붙이고, 충성하는 놈들에겐 손을 내밀어서 무혼식 이후의 미래를 약속했다.


‘가주님은 우리의 리더쉽을 측정하는 거야.’


낯선 곳에 식량을 던져주고 끝까지 살아남으라는 시험.

척박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을 모아 끝까지 버티는 건 어떨까.


‘해답은 협력이다.’


살아라.

오직 그 말만 남겼다.

바꿔 말하면 살기 위한 모든 과정이 허락된다는 것이고, 이렇듯 단체를 이뤄 버티는 일 또한 블레이크가 예상한 범주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역경 속에서 군림하는 자가 진정한 군주다.’


이곳엔 직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계와 아그네스의 협력 가문들이 포진해 있다.

무혼만 놓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시험이 끝난 뒤에 얻을 인적 자원까지 함께 염두하고, 알맹이들만 모아 거대한 단체를 구성해야 한다.


‘아버지처럼 사람 위에 서는 사람이 되겠어.’


협력하거나 중간에 배신한 자를 포함해 최종적으로 자신을 따른 건, 결국 5명 뿐이다.

하지만 아직 시간은 여유롭다.

이곳의 어떤 적을 만나든 5명과 함께라면 쉽게 굴복시키거나 탈락시킬 수 있다.


“대장! 저곳에서 물소리가 들려!”

“이번에도 흙탕물인가?”

“아니, 소리가 꽤 맑아. 그리고 누가 있는데?”


방계 서열 21위이자 소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음공의 자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코가 검을 뽑아 들었고, 나머지 아이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 대형을 잡았다.

아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의 질서가 잡혀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언덕을 올라 물가에 선 마르코는 난잡한 지형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셋...아니 넷인가?’


곳곳에 다양한 무기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모두 탈락당한 듯 무기만 남겨져 있었다.


‘운이 좋군.’


바보들끼리 다투다가 자멸했나.

피식 웃으며 검을 집어넣으려 할 때, 수풀이 흔들렸다.

기어 나오려던 소년이 깜짝 놀라 먹던 빵을 떨어뜨렸다.


“헉!”


웬놈인가 싶어 살펴보는데, 아그네스 직계의 문장이 옷에 새겨진 게 아닌가.

못 보던 얼굴에 직계.....


“너 이번에 들어왔다는 여섯째의 아들이냐?”

“누...누구...?”

“겁먹지 마. 나도 직계다. 너보다 세 살 많은 형이지. 네 이름이....루인? 루인 아그네스 맞지?”

“그, 그런데?”

“흠....”


잘 쳐줘야 익시드 8급.

직계인 걸 고려해도 메리트가 없다.

여기서 놓아줘도 어딘가에서 탈락할 운명이다.


“....가진 식량 내놓고 다른 곳으로 꺼져.”


루인이 빵을 끌어안고 필사적으로 외쳤다.


“아, 안돼! 이게 전부야! 아끼면서 여기까지 버텼어! 이거 없으면 나 굶어 죽어!”

“그럼 내 칼에 맞아서 죽던가.”

“아아아악!”


마르코가 검을 올리자 루인이 비명을 지르며 먹던 빵을 내려놓았다. 남은 빵들도 모조리 내려놓고 루인이 도망쳤다.

마르코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휴. 한심하긴. 저딴 것도 직계라고.”

“밖에서 왔다더니 역시나 허약하네요, 마르코님.”

“그래도 탈락시키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마르코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형으로서 아량을 베풀어줘야지. 어차피 내가 아니더라도 저 모습으론 얼마 못 가서 탈락할 거야.”

“하긴, 겁쟁이의 피를 마르코님의 고귀한 검에 묻힐 순 없겠죠.”

“출출한데, 좀 먹고 움직이자.”

“예!”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루인의 빵을 가져왔다.

그리고 마르코와 서로 나눠 먹으며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그들의 식량은 되도록 손대지 않는다.

먼저, 타인의 것을 빼앗은 뒤에 부족하면 자신들의 식량을 먹는 방식으로 움직여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루인이 입을 댄 부분만 제거하고 빵을 씹어먹었다.

개울가의 물까지 떠서 마시자 기분이 상쾌해졌다.


“마르코님, 이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차라리 여기서 진을 치고 다른 놈들 올 때 덮쳐버리죠?”


마르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정도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무엇보다....”


게빈.

자신과 동갑임에도 현 후손들 중 최고의 재능을 자랑한다는 괴물이 남아 있다. 그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도 힘을 보존시켜둬야 한다.


“......걸리적거리는 놈이 있으니까.”

“히히, 마르코님이라면 끝까지 살아남으실 겁니다!”

“나 혼자가 아니야. 우리 함께 살아남는 거야.”

“물론이죠!”


아이들이 서로 마주보며 환하게 웃을 때였다.

꾸르륵!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배에서 요상한 소리가 들렸다.


“윽!”


삽시간에 아랫배에서 강한 통증이 올라왔다.


“으음!”

“큼....”

“아오, 배 아파.”


신호가 점점 강렬해졌다.

뿌우웅!


“죄, 죄송합니다!”


방귀를 뀐 아이가 수풀 속에 들어갔다.


“왜 이러지.”

“뭐 잘못 먹었나.”


다른 아이들도 연달아 수풀에 몸을 감췄다.


“너희들 갑자기 왜....?”


마르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뿌우우우웅!

괄약근에 힘이 풀리며 시원한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마르코가 얼굴을 붉히기 무섭게 아랫배에 강렬한 신호가 찾아왔다.

체면이 있지 아이들과 나란히 볼 일을 처리할 순 없었다.

마르코는 황급히 아이들과 반대 방향에서 통증을 해소하려 했다.

퍼퍽!

경쾌한 소리가 수풀에서 연달아 터져나왔다.

아이들이 바지를 내린 자세 그대로 쓰러졌다.


‘인기척?’


배가 아파서 뒤늦게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가 수풀에서 나왔을 때, 마르코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

“효과 좋네.”


루인이었다.

녀석이 아이들의 무기를 앞에 내려놓고 씨익 웃었다.


“네가 왜.....크흑!”

“배가 많이 아픈가봐? 엉덩이 찢어질 것처럼 방귀나 뀌고 말이야?”

“너....설마...!”


문득, 머릿속에 루인이 버린 빵이 떠오르자 마르코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뭔 수작을 부린거야!”


바로 기를 모아 출수하려 하지만.

뿌우우우웅!


“어흑!”


다리를 베베 꼬며 이내 주저앉았다.

루인이 피식 웃었다.


“우리 집에 감시를 붙인 놈이 딱 셋이었어.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일곱째, 네 아버지다.”

“뭐, 뭐?”

“처음엔 별 감정 없었어. 그냥 할 일만 빠르게 끝내려고 했지. 그런데 너 이 새끼. 우리 아버지한테 뭐? 여섯째?”


루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섯째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이 개새끼가!”


마르코의 주먹엔 힘이 실리지 못했다.

배를 끌어안고 휘두른 팔이 얼마나 나아갔겠는가.

루인이 가볍게 옆으로 피하며 마르코의 배를 톡 건드렸다.


“크어억!”


마르코가 그대로 주저 앉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뱃속의 내용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비, 비겁한....”

“단체로 한 명을 협박한 건 정의롭고?”


루인이 창백해진 마르코를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직계니까 좋은 걸 가졌겠지?”

“어디다 손을.....끄윽...배...배가...!”

“오, 상처약 좋은 거 있네. 상급품인가. 잘 쓸게. 똥쟁아.”

“이...쌰앙....!”


루인이 마르코의 뒤통수를 똥무더기에 내리찍었다.


***


화면을 지켜보던 가르시오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똥무더기에 파묻힌 마르코와 아이들이 탈락 되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저런 추태를 보이며 탈락한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흐흐흥.]


루인이 콧바람을 불며 탈락자들의 귀중품을 쓸어갔다.

12 무객들은 루인의 행동이 익숙해졌다.

오히려 허무하게 탈락한 직계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뭐야? 왜 갑자기 똥을 지리고 지랄이야. 직계란 새끼가!”


가르시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빵 보존식 아니야? 설마 상한거야?”

“빵은 상하지 않았다. 내용물에 장난질을 친 거지.”


쇳소리를 향해 가르시오가 고개를 돌렸다.

녹발의 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배란초를 쓴 것 같군.”

“배란초? 처음 듣는데?”

“극소량만 사용해 원기를 북돋는 약초다.”

“약초라면서 왜 고통을 유발하는 거야?”

“어떤 약초도 과하게 쓰면 독이 되는 법. 배란초의 용량을 늘리는 순간, 배변을 자극하는 배설초로 변하게 되지.”

“거기서 과하게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데?”

“오장육부가 비틀어진다.”

“죽는다고?”

“그래. 그러니 대단하지 않느냐.”


12무객의 일인이자 독마라고 칭해지는 페르난도.

평소 음흉하고 껄끄럽다는 독의 대가는 솔직한 마음을 담아 루인에게 박수를 보냈다.


“어지간한 치료사도 배란초를 모른다. 그런데 저 어린 것은 어떻게 배란초를 알고, 저 지역에서 채취했으며, 그 용량을 딱 설사에 이르는 수준까지 조절해서 만들었을꼬.....”


12무객들은 놀랐다.

평소 인재에 깐깐한 페르난도가 진심으로 감명받은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쌈박질 밖에 모르는 아그네스의 무식한 직계들과 달리 아주 섬세한 아이다. 독을 다루는 지식과 조예가 남달라!”

“지금 감동할 때야? 마르코가 탈락하면서 영감이 담당한 모든 아이가 끝났다고.”

“남이 준 음식을 덥석 먹지 말라는 가르침도 잊어버린 직계의 잘못이다. 남들 위에 설 생각밖에 못하는 아둔한 놈한테 좋은 경험이 됐거늘, 뭐가 그리 놀랍더냐.”


가르시오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페르난도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루인...루인 아그네스! 약자로서 살아남는 방법을 아주 잘 깨우친 아이다. 특히 약초와 독초를 구분하는 눈썰미가 참으로 마음에 들어!”

“뭐 하자는 겁니까. 페르난도.”


나린이 싸늘한 눈을 보내자, 페르난도는 어깨를 으쓱했다.


“본심을 털어놨을 뿐인데, 그것도 문제가 되나?”

“간별식은 아직 시작 안 했습니다.”

“알고 있네. 무혼식이 끝나고 우리가 마음에 드는 아이들을 찜하자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이런 화면도 가주님께서 만들어주셨지, 끌끌끌.”


웃고 있지만 눈가에 서슬퍼런 기색이 감돈다.

나린도 한층 무거운 얼굴이었다.


“무혼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미래를 논하는 건 싸우자는 얘기로 들립니다. 페르난도?”

“왜 이렇게 발끈해. 설마, 자네도 저 아이에 눈독을 들였나? 싸움의 명분을 따지는 답답한 자네가 말이야?”

“규칙을 준수하자는 얘깁니다.”

“클클클, 이 고리타분한 녀석. 12 무객의 규칙은 본디 대련으로.....”


페르난도와 나린의 기세가 부딪칠 것처럼 흘러나오던 순간이었다.


“조용.”


싸늘한 음성이 달아오른 열기를 식혔다.

나린과 페르난도가 서로를 노려보다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남은 12무객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12무객의 수장이라고 불리는 칠흑검 베인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방금 마르코가 탈락하면서 생존자는 총 100명이 되었다.”


베인이 화면을 응시했다.


“예정보다 이르지만 가주님께선 격렬한 흐름을 원하신다.”


블레이크의 이름이 나오자 12무객들은 진지해졌다.


“시작하지.”


베인이 화면을 바라보며 기세를 일으켰다.


“백인쟁투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기세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마르코 일행의 소지품을 샅샅이 뒤져서 추가로 내상약 하나를 확보했다. 그리고 무기를 긁어모아 한쪽에 쌓고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응?”


웬일로 감독관이 오지 않아 느긋하던 차에 묘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물이 흘러내리는 돌벽이었다.

온갖 선들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었는데, 꽤 연식이 되어 보인다.


[농후하군.]


짐승의 흔적과도 같은 것을 살피던 검귀가 드물게 눈을 빛냈다.


[검이다. 창도 섞였다. 활촉도 보이는구나.]


이 흔적들만 가지고 다양한 무기를 떠올리는 검귀.

난 아무리 봐도 그냥 짐승이 할퀸 흔적처럼 보였다.


[족히 수십 년은 되겠군. 한데, 세월이 흘렀음에도 오히려 흔적은 선명해지고 있어.]


이곳에 누가 들어와 이런 흔적을......아!


“혹시, 가주님 아닐까?”

[아마도 그렇겠지.]


무신의 다른 별명은 만병지신이다.

모든 무기가 극에 달했다고 알려진 만큼, 무신지로에서 어릴 적 수행했던 흔적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쑤셔 넣어.]

“이걸?”

[네 권법에 도움이 될 게다.]


의아하여 고개를 갸웃하자 검귀가 씨익 웃었다.


[각자 다른 무기와 무학을 섞었음에도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이고 있거든. 그렇게만 알아둬.]


검귀의 조언은 결코 허튼 소리가 없다.

고개를 끄덕이며 무신의 흔적을 머리에 새기던 순간이다.


[음?]

“......?!”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서늘한 무언가가 허리에서 피어올랐다.

다급히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내 가죽띠, 가르시오의 표식이 새까만 무언가에 침식되고 있었다.


작가의말

이제부터 뜨거워지는 챕터 준비해보려는데.

독자분들께서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다음주에 최대한 크게 만들어서 가져오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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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깨달음 +11 23.11.22 11,023 246 14쪽
13 백인쟁투 +9 23.11.21 11,015 232 15쪽
12 백인쟁투 +5 23.11.20 11,125 201 16쪽
» 무신지로 +13 23.11.17 11,181 223 17쪽
10 무신지로 +10 23.11.16 11,329 231 15쪽
9 무신지로 +6 23.11.15 11,658 2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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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밤하늘 +6 23.11.13 11,681 238 13쪽
6 자격 +11 23.11.10 11,841 247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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