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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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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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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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06화

DUMMY

나는 도저히 편해지지 않는 마음에 의식적으로 아린이의 뒤통수만 보며 걸었다.

이런 순간엔 대체 어떤 말, 어떤 행동을 해야할까.

만약 최고의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인생 스승님으로 삼고 싶었다.


괜찮을 거야?

본인이 안 괜찮다는 게 그걸 왜 내가 마음대로 정해.

다 잘 될 거야?

이미 다 망해서 더 망할 것도 없는데 대체 뭐가?

너무 신경 쓰지 마?

자신이 가장 잘하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영영 못 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아악, 대체 무슨 말을 해 줘야 하는 거지?

그냥 이대로 입 다물고 반이나 가는 게 최선인 건가?


“⋯할 말 있으면 시원하게 하지 그래? 혼자 뭘 그렇게 움찔거려?”


혼자 열심히 고민하고 있는데 내 뒤를 따르던 하은이 대뜸 그렇게 말했고 어깨를 움찔거리며 놀람을 숨기지 못한 나는 이대로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실례일 것 같아 일단 떠오르는 대로 아무 말이나 뱉었다.


“아니, 그⋯ 마력은 얼마나 남았나 해서.”

“겨우 그걸 못 물어봐서 한참 끙끙대고 있던 거야? 뭐, 앞으로 얼마나, 어떤 적을 더 상대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슬아슬해. 어쩌면⋯ 여기서 나가기 전에 다 떨어질지도.”

“석상한테⋯ 그렇게 많이 빼앗긴 거야?” “꼭 석상 때문은 아니야, 이미 말라가던 샘에서 석상이 몇 바가지 더 퍼갔을 뿐이지.”

“⋯웬만하면 최대한 마력 쓸 일 없게 해줄게.”

“마법사가 마법을 못 쓰면 그게 무슨 쓸모야, 필요한 일 있으면 써야지.”


하은은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그 웃음은 그다지 달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저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다 포기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




- 지지지지직!


나는 앞에서 나타난 몬스터 무리를 향해 동공에 압축한 점화를, 히트 비전을 발사해 한 번 쭉 그었다.


“우와~ 그거 대체 무슨 스킬이야? 새로 배웠어?”


그러자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은 누나가 탐난다는 듯 감탄하며 물었다.


“새로 배운 건 아니고 저 온몸에서 불 나오는 아이템 있잖아요, 그걸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됐어요.”

“온몸에서 치솟던 불꽃을 한 점에 압축해서 레이저처럼 쏘는 거구나?”


소은 누나는 그냥 적당히 한마디 툭 던지면 알아서 전부 알아듣고 이해해서 대화하기 참 편했다.


- 지지지지직!


“하하! 뭔진 몰라도 대단하구만! 우리가 할 일이 없잖아!”


히트 비전을 한 번 더 사용하자 석혁 형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대단하다는 석혁 형님의 말엔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히트 비전의 위력은 석상에게 사용할 때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감지하고는 있었지만 다수의 일반 몬스터에게 사용하니 그 위력이 더욱더 돋보였다.


히트 비전은 초고압과 초고열이라는 두 가지 특성으로 인해 가공할 절단력과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S급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D, C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일반 몬스터에게 사용하니 지잉 하고 짧게 발사해 고개를 슥 돌리는 것만으로도 부채꼴 선상의 몬스터 수십, 수백 마리의 몸이 절단돼 바닥을 나뒹구니 전투라기보다 학살에 가까운 느낌이라 뭔지 모를 죄책감과 자신의 힘에 대한 경각심이 들 정도였다.


“그거 사용하는데 제한은 없니?”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없어요.”

“우와⋯ 그건 진짜 탐나는데? 내가 배우고 만든 불 마법은 다 뭐였는지 현타도 좀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저, 저는 그냥 꼼수 쓰는 거고 대단하기로 치면 누나가 더 대단하죠.”

“말이라도 고마워.”


돈 자랑 했으면 돈을 써야 욕 안 먹고 힘 자랑 했으면 힘을 써야 욕을 안 먹는 법.

대량의 하급 몬스터를 상대하기 최고의 기술을 가진 나는 앞장서 길을 텄고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후방을 추격해오는 비교적 적은 수의 몬스터만 해치우면 돼 편안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참을 히트 비전으로 혼자 길을 뚫으며 나아가고 있으니 문뜩 특성의 힘을 개화하면 S급 헌터들 만큼이나 활약할 수 있을 거라는 담당자의 말이 떠올랐다.

뭐, 이런 몬스터들을 상대로 길을 뚫는 것 정도야 다른 S급 헌터들도 나만큼은, 높은 확률로 나보다 더 잘하겠지만 그래도 고작 F급 헌터인 내게 전투적인 면에서 이거 하나는 S급 헌터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 분야가 하나 생겼다.

역시 담당자의 말은 들어서 손해볼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




탑에 진입하고 초반은 대략적인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벌써 몇 번이고 밥을 먹고 잠을 잔 지금은 이제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지 정확히 며칠이 됐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완전히 감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린아.”

“응?” “우리 지금 몇 층이지?”

“46층? 47층? 그 정도 되지 않았나?”

“이거⋯ 몇 층까지 있을까, 높이로 보면 몇천 층까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글쎄, 그래도 꼭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오지 않아도 평소에 걷는 길이 미묘하게 오르막이니까 생각보다 높이 올라와 있지 않을까?”


나는 탑 안에서 있던 일들을 하나하나 역추적해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았다.

대충 9일에서 11일, 대충 그 사이 언저리인 것 같았다.

우린 그 시간 동안 최소한의 휴식만 취하며 바쁘게 걸음을 재촉해 탑을 올랐고 뭐, 그다지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물론 중간중간 요상한 기믹의 던전이나 강력한 몬스터가 나오긴 했지만 2층에서 만큼의 위기는 아직까지 없었다.


“누나, 저⋯.”

“안 돼.”

“아직 말 안 했는데요.”

“적어도 12시간은 더 지나야 써줄 거야. 너무 자주 받으면 효과도 떨어지는 데다 의존증이 생기기 시작해. 지금 너처럼.”


다만 문제가 있다면 너무 넓고 높아 강력한 각성자라고 한들 인간이라는 존재의 왜소함과 나약함을 통감하게 만드는 탑의 크기였다.

고작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는 것도 몇 시간, 며칠이고 계속 맞으면 고문이 되듯이 별것도 아닌 대량의 몬스터를 해치우는 일도 분명 간단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아주 진절머리가 나 미쳐버릴 것 같았다.

거기다 항상 압박과 긴장을 유지하고 있으니 쉬어도 쉰 것 같지 않고 그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만성피로가 생긴 나는 정신이 맑아지는 마법을 받기 위해 소은 누나를 찾았지만 소은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50층.”

“네?”

“50층까지만 가서 한 번 제대로 쉬었다 가자.”

“여, 역시 그러는 게 좋겠죠?”


하지만 역시 소은 누나는 매몰차기만 하진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한시라도 탑을 공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조금 무리한 감이 있었다.

척 보기에도 탑은 아주 긴 마라톤인데 초장부터 전력질주 하다가는 채 반도 가지 못해 제풀에 나가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이제부터라도 페이스 조절은 필수였다.


- 지지지직!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게 이런 건가.

방금까지만 해도 당장 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을 느꼈는데 앞으로 몇 층만 더 올라가면 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힘이 팍 솟아올랐다.

나는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 몰려드는 몬스터를 히트 비전으로 지졌고 그렇게 약 10시간 뒤.


“드, 드디어⋯!”


50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후우⋯.”

“하아⋯.”


계단이 나오자 기뻐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모두도 드디어 좀 제대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고 우린 제대로 된 캠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응?”

“⋯⋯⋯?”


하지만 캠프를 차린다는 기쁨도 잠시, 무언가를 느낀 모두의 손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서연아⋯ 너도 이거 느껴져?” “응. 이거 혹시 위에서?”


무언가를 느낀 우린 계단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함께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불길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준호야, 일단 우리만 위에 확인하고 와볼래?”

“그럴까?”


탑 안에선 느낄 수 없는 아주 좋은 기운이었다.

50층에서 불어오는 신선하고 포근한 바람은 지친 우리를 끌어당겼고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나와 아린이는 모두를 대표해 슬쩍 50층에 올라가 보았다.


“와아⋯.”

“우와⋯.”


그리고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

그 광경에 우린 잠시 넋을 잃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탑의 50층은 던전이 아니었다.

50층은 풀이, 들이, 산이, 바람이, 개울이, 하늘이 있는 아름답고 푸르른 자연을 간직하고 있었고 주변이 꽉 막힌 던전에만 있다가 이렇게 탁 트인 장소로 나오자 아주 가슴이 뻥 뚫렸다.

거기다 때마침 해가 주황빛으로 빛나며 노을이 지고 있어 포근하면서도 어딘가 아련한 감성이 극대화됐다.


“저, 저기! 다들 올라와 보세요! 쉬어도 50층에서 쉬죠!”


50층의 풍경을 본 나는 후다닥 밑으로 내려가 모두에게 올라올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50층으로 올라온 모두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되는 50층의 풍경에 넋을 잃고 한참 햇빛을, 바람을 느끼며 서 있었다.


“⋯기왕 쉴 거면 여기서 쉬는 게 맞겠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지쳤다고 해도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야. 여기선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 일단 흩어져서 주변을 정찰하자.”

“네.”


나는 당장 이 푹신한 풀밭에 누워 뒹굴다 자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이를 아득바득 갈며 그렇게 말했다.

소은 누나라고 당장 다 팽개치고 그냥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 만은 어쩌면 이런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 자체가 우리가 방심하고 무방비하게 쉬는 때를 노리기 위한 함정이고 노림수일 수가 있다.

이 층 전체는 아니더라도 주변의 안전은 확실히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우린 마지막 정신력과 인내심을 쥐어짜 조를 편성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지만 특별한 위협은 없었다.

50층은 평화롭기 그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또 담당자의 말이 생각났다.

담당자는 분명 탑 중간중간에 쉬어가는 곳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분명 이곳이 그 쉬어가는 층인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을 몰랐으면 끝까지 불안했을 테지만 담당자의 말이다.

이곳이 코스트 때문에 마련한 휴식을 위한 층이라는 확신을 가진 나는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수색을 적당히 마치고 집합 장소로 돌아갔다.


“⋯응?”


그런데 집합 장소가 묘하게 시끄러웠다.

다들 무기를 들고 고함을 치고 있는 게 아무래도 몬스터가 나타난 모양이다.

뭐지⋯ 여기 쉬어가는 층이 아닌 건가⋯.

나는 큰 실망감을 품은 채 소동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달려가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확인한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엇⋯ 엇⋯ 엇?!?!?! 저, 저기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기억하시죠?!”


소동의 정체는 몬스터가 맞았다.

몬스터가 맞긴 맞는데⋯ 웃긴 것은 그 몬스터가 나를 발견하더니 화들짝 놀라더니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한국말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네, 네가 대체 왜 여기에⋯.”


그 몬스터의 정체는 다름 아닌 내 메이스의 원래 주인, A급 악마 몬스터인 그라고스였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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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194화 +1 24.07.29 251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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