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해서 당구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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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행
작품등록일 :
2023.12.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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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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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동인천 작대기들

DUMMY

쏴아아......

겨울비가 축축이 내리는 밤늦은 시간.

동인천역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어귀로 한 사내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허무함과 짙은 고독감이 연신 흘러나왔다.

걸음걸이마저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어딘가 어색한 여운이 서려 있었다.


허름한 선술집 앞에서 멈춰 선 그는, 무심한 눈으로 간판을 한번 바라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탁자 4개가 전부인 이곳.

가장자리에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 둘이, 술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는 이를 보자 가볍게 손을 들었다.


잠시 후 머리숱이 얼마 남지 않은 태민이 소주병을 들며 말했다.


“상철아! 애썼다. 한잔하자.”


이후 말없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세 사람.

스포츠머리에 허연 수염이 텁수룩한 상철이 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두 분 형님.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이번 큰일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엔 진구가 먼저 상철의 말을 받았다.


“별소리를 다한다. 상철이 네가 예전에 내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나에게 해 준 것을 생각하면 그건 약과지!”


상철을 지긋이 바라보던 태민이 그의 빈 잔을 채워주며 물었다.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당구장 매니저 일은 계속할 거야?”


상철의 힘없는 눈동자가 천천히 태민를 향했다.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요?”

“이젠 네가 그토록 소망하던 것 하고 살아야지. PBA(프로당구) 등록은?”

“글쎄요. 이 나이에, 그리고 형님도 알다시피 지금 제 여건도 좀 그렇고요.”


태민은 긴 한숨을 내쉬고는 상철을 바라보았다.


“휴우, 내가 널 모르겠냐? 근 30년 가까이 옆에서 지켜봤는데.”


이때 진구도 한마디 거들었다.


“다른 직업 마다하고 당구장 매니저 생활만 20년 이상 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야.”

“일도 일 나름이겠지만 당구에 미련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맞아요. 쟤는 아마 죽으면 몸에서 사리 대신 당구 공 3개가 나올겁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로 시선을 돌린 상철.

그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꿈을 포기하고 살아온 그동안은 참 모진 세월이었어요.”

“후유, 녀석도...!”

“꿈 대신 가족, 나중엔 어머니 때문이라는 핑계를 위안 삼으며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머니마저 떠나고 나니...!”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진구가 상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직 늦지 않았어. 네 꿈을 포기하지 마!”

"얼마나 당구에 한이 맺혔으면...!"


상철은 진구를 한번 쳐다보더니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제 당구에 대한 미련은 던져버려야죠.”

“그게 그리 쉽게 되겠냐?”

“그저 바라만 보려고요. 실패한 야구선수가 아무 생각 없이 TV 속 야구 경기를 보듯이요.”


태민의 안타까운 눈빛이 상철을 향했다.


“솔직히 나도 여건만 된다면 지금이라도 당구선수 다시 하고 싶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마친 진구는 태민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옛날에 당구선수라면 완전 놈팡이 취급받았죠.”

“지금 보단 상황이 훨씬 안 좋았지.”

“네. 오죽했으면 인사드리러 처갓집에 갈 때 광태 엄마가 장인어른 앞에서는 절대 당구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신신당부했었죠.”

“그래도 진구는 제수씨 잘 만났지. 제수씨 아니었으면 너도 경호나 성진이 꼴 났을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장인어른이 어떻게 아셨는지, 다시 절 불러서는 다시는 당구 안 한다고 각서 쓰면 광태 엄마랑 교재 허락해 준다고 해서 그때 접었습니다. 당구!”

“그런데 요즘은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달라졌더구나.”

“격세지감이란 말이 실감 날 정도죠.”

“공만 잘 쳐도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고...!”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 세상이 참 많이 변했어.”


진구는 상철의 빈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상철아, 옛날 너 시합 때 입을 와이셔츠랑 나비넥타이 사야 한다고 마음이 들떠서 이야기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더니 정작 시합에는 참석도 못 해보고.”

“추억이라기보다는 씁쓸한 기억이죠.”

“너 불참 소식에 좋아하는 인간 같지도 않은 개새끼들도 몇 있었다.”


상철은 아련한 옛 추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자신의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때 그냥 시합장에 들어갔었더라면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물음이 오랫동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두 사람은 상철을 바라보며 다시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진구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래도 그렇지, 시합장 입구까지 가서 되돌아갔다고?”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요. 아니 항상 후회하고 살았습니다!”


태민이 안타까운 심정으로 상철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너도 참!”


다소 무거운 분위기의 술자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일어나자마자 숙취와 두통에 휘감긴 상철은 이불 속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은 멍했으며 배고픔보다는 속 쓰림이 우선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니 4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거의 비워져 가는 김치통 하나와 소주 반 병이 전부였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마치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네.’

‘이럴 땐 바쁜 게 최고지! 당구장에나 나가봐야겠다.’


상철이 일하고 있는 당구장은 작은 어항이 보이는 월곳에 있었다.

5개월 전 친한 후배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곳에 야간 매니저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매니저라고 해봐야 당구장 관리하고, 끝나면 청소하고, 가끔 손님들이 당구에 대해 물어보면 한 수 지도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입구에 도착하니 먼 바닷가에서 부터 어둠이 서서히 깔려왔다.

킹크랩, 횟집, 조개 구이집들의 간판에 서서히 불이 들어오며, 거리가 요란한 불빛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곳은 따뜻한 봄날이나 여름에는 많은 인파로 인해 제법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아직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 보였다.

상철은 주차하고 4층 당구장으로 올라갔다.


들어서는 상철을 보고 영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 당구장 사장이자 후배였다.


“어, 상철 형님. 형님이 어쩐 일로 벌써...?”

“집에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할 일도 없고 해서.”

“그래도 좀 더 쉬시지.”


고개를 가로 저은 상철이 영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번 큰일에 와줘서 고맙다.”

“당연히 가야죠. 일은 잘 치르시고요.”

“그래 덕분에 어머니 편안한 데로 잘 모셨어.”

“형님. 얼굴을 보니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그냥 예정대로 모레까지 쉬세요.”

“그럴 필요 없어. 이왕 나왔으니 오늘부터 일하지 뭐. 그런데 알바는 아직도냐?”

“알바는 내일부터 출근하기로 했어요. 형님 저녁은요?”

“저녁?”

“예. 여기서 배달시켜서 같이 먹을까요?”

“아니. 휴게실에 괜히 냄새 풍기는 것도 좀 그렇고, 나 먼저 먹고 올게."


말을 마친 상철은 당구장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에 도착하여 ‘뭘 먹을까?’ 고민하며 식당이 즐비한 인도를 향해 걸었다.

그때 어항 산책로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람 살려! 도와주세요!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패딩을 입은 어떤 여자가 안절부절못한 모습으로 인도 쪽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에 차들만 오갈 뿐, 인도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상철은 쏜살같이 달려서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벌벌 떨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저저 어 언니랑 오 오빠가...!!”

“이봐요! 정신 차리고 천천히 얘기해 보세요!”

“물에 빠졌어요. 어 언니가 물에 빠져서 오빠가 구하러 들어갔는데......”


상철은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 어항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급히 다가갔다.


어항에는 두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제방 가까운 곳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또한 사람은 반대쪽으로 계속 멀어지고 있었다.


상철은 여자를 향해 급히 소리쳤다.


“빨리 119에 신고하세요! 그리고 이쪽으로 와요!”


그때 제방 가까이에서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를 본 상철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상철은 물속으로 가라앉은 지점을 대략 유추한 다음, 머리를 힘껏 물속으로 처박았다.


어둠이 시작되는 시점에다 탁한 바닷물로 인해 물속은 분간도 되지 않았다.

손을 여기저기 휘저으며 찾고 있을 때, 뭔가 옷자락으로 여겨지는 것이 손에 잡혔다.

순간 상철의 뇌리에는 가라앉은 사람일 것이라는 예감이 스쳤다.


‘사람이다’


상철은 순식간에 옷자락을 움켜쥐고 힘껏 끄집어 올렸다.

그런 다음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건졌어요! 빨리 잡아줘요! 정신을 잃었어요!”


다행히 제방과는 가까워서 순식간에 건진 사람을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물가에 서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다.


“여기 손을 잡고 끌어올려요. 자 어서!”

“잡았어요!”

“정신을 잃었고 호흡이 없을 거예요. 빨리 인공호흡을 해야 살 수 있어요. 할 수 있죠?”


대답을 들을 여력도 없이 상철은 나머지 한 사람을 향해 있는 힘껏 헤엄쳤다.

허우적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니 곧 가라앉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남자였다.

상철은 가라앉으려는 남자의 머리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밖으로 끌어올리며 소리쳤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이때 정신이 들었는지 남자는 갑자기 상철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순간 둘은 다시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짠 바닷물을 한 모금 들이켠 상철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잡지 말아요! 그럼 들다 죽어요!”

“헉, 우 욱!”

“잠시만, 잠시만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있어요!”


상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몸에 힘을 뺀 남자는 천천히 가라앉았다.

상철은 팔을 휘둘러 남자의 목을 감고 얼굴이 하늘로 향하게 했다.

그런 다음 천천히 뭍으로 헤엄쳤다.


상철은 찬 바닷물로 인한 체온 저하와 체력이 한계를 다한 듯, 정신이 자꾸만 흐려지고 있었다.


‘안돼.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둘 다 죽어!’


순간 그는 자신의 혀를 세차게 깨물었다.

비릿한 혈향이 전해져옴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헤엄쳤다.

하지만 육지로 다가갈수록 눈꺼풀이 무거워지면서 자꾸만 눈이 감겼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내 눈앞이 깜깜해지며 정신 줄을 놓아버렸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119대원 넷이 먼저 달려왔다.

제방 계단에서 패딩을 입고 있는 남자를 물 밖으로 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대원들이 다가가 남자를 건져 올린 다음, 바로 응급조치하기 시작했다.

그중 한 대원이 여자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사람이 물에 빠졌다는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여자는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언니랑 오빠가 물에 빠져서 이 사람이 구해주었는데......”

“그 사람은 어딨습니까?”

“아 아악! 없어요! 그 사람이 안 보여요!”


대원이 다급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 밖으로 나온 것은 확인한 겁니까?”

“네? 아니 저 저......”


순간 구조 대원은 구급차에서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대원을 향해 급히 소리쳤다.


“야! 형근아! 여기 물속에 사람이 가라앉은 것 같아! 시간 없으니까 간단한 수중 수색 장비만 챙겨서 빨리 이쪽으로 와!”


구조 대원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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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친구를 대신한 피의 응징 (2) +4 23.12.18 204 7 13쪽
21 친구를 대신한 피의 응징 (1) +3 23.12.16 22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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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5) +3 23.12.15 224 7 13쪽
18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4) +2 23.12.14 217 7 13쪽
17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3) +3 23.12.14 233 7 13쪽
16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2) +2 23.12.13 236 7 12쪽
15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1) +2 23.12.12 243 8 13쪽
14 꿈을 향한 날갯짓 (4) +2 23.12.12 252 7 13쪽
13 꿈을 향한 날갯짓 (3) +2 23.12.11 281 7 13쪽
12 꿈을 향한 날갯짓 (2) +3 23.12.11 292 7 13쪽
11 꿈을 향한 날갯짓 (1) +4 23.12.09 318 9 12쪽
10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5) +2 23.12.08 337 10 15쪽
9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4) +2 23.12.08 344 8 17쪽
8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3) +3 23.12.07 359 8 13쪽
7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2) +3 23.12.07 366 10 13쪽
6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1) +3 23.12.06 404 10 13쪽
5 새로운 세상을 향해 (2) +2 23.12.05 396 9 12쪽
4 새로운 세상을 향해 (1) +3 23.12.05 417 7 13쪽
3 비련의 야구선수 +3 23.12.04 475 8 13쪽
» 꿈을 잃은 동인천 작대기들 +4 23.12.04 532 10 12쪽
1 프롤로그 +3 23.12.03 610 1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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