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해서 당구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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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행
작품등록일 :
2023.12.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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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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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로운 세상을 향해 (2)

DUMMY

작은 도로를 따라서 조금 더 들어가니 드디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대문. 다 낡아서 벽에 금이 쩍쩍 가 있는 낡은 집 한 채.


-그래 그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랑 누나랑 저기서 살았었지.

-참 힘든 시절이었어.


영묵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는 파란 대문 앞에 있는 전봇대 옆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흥분된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모퉁이를 돌아서니 텅 빈 놀이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정겨운 포장마차가 보였다.

이제 막 하루 장사를 준비하려는 듯, 한 아낙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심 후하고 참 정이 많았던 옥이 이모.


상철은 텅 빈 놀이터 그네에 홀로 앉아 옛일들을 머릿속에 다시 옮겨 적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엔 포장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가갈수록 익숙한 얼굴이 상철의 시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국수 하나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럼요. 이야! 첫 손님이 훤칠하니 인물도 좋고, 오늘 장사 잘되겠네요. 후딱 말아 드릴게요. 호호호”

“사장님 주실 때 후추 좀 듬뿍 쳐서 주세요.”


순간 옥이 이모는 놀란 표정으로 영묵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영묵이 계면쩍은 표정을 짓자, 얼른 다시 국수를 말며 옥이 이모가 말했다.


“후추 듬뿍 뿌려달라는 사람이 또 있구나 싶어서요.”

“이 동네에서도 국수에 후추 뿌려 먹는 사람이 있나 봐요?”


옥이 이모는 상철에게 국수를 건네주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예전에 있었어요. 얼마 전까지는요.”

“얼마 전까지 있었다면 지금은 없다는 말이네요.”

“죽었어요. 세상에 그런 효자가 없었는데...!”

“네?”

“보기보다 인정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참 아까운 사람이 죽었어요.”


상철은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옥이 이모의 말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날 내가 정녕 죽은 것이구나


하지만 아직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상철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태연하게 옥이 이모에게 말했다.


“사장님. 이 동네 당구 잘 치는 사람 있죠? 당구선수라고 하던데, 저기 놀이터 근처에 산다고...?”


상철의 말에 눈이 동그래진 옥이 이모가 말을 더듬었다.


“초 총각? 호 혹시 사 상철이 삼촌 찾아왔어요?”

“맞아요. 한상철. 제 당구 사부님이시죠.”

“세상에 어쩌나! 상철이 삼촌 얼마 전에 죽었어요.”

“죽어요?”

“아까 얘기한 사람이 상철이 삼촌이에요.”

“네? 돌아가셨다고요? 7개월 전에 만났었는데, 집이 저기 보이는 놀이터 근방이라고.”

“에휴, 죽기 바로 전에 만났었던 모양이네. 맞아요. 저기 보이는 놀이터에서 모퉁이 돌면 파란 대문 집.”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랑 단둘이 산다고 들었는데...?”

“상철이 삼촌이 근 20년 이상을 몸이 안 좋은 홀어머니 모시고 살았어요.”

“효자였나 봐요?”

“네, 정성도 그런 지극 정성이 없었어요. 어휴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럼 형님 어머니는요?”

“상철이 삼촌 죽고 나서 두 달 후에 누나가 와서 캐나다로 모셔갔어요. 듣기로 누나가 캐나다에서 엄청나게 잘 산대요.”


반쯤 먹던 국수에 손을 뗀 상철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누나가 모셔갔구나.

-누나도 그리 여유로운 형편은 아닐 텐데...!


잠시 상념에 잠긴 상철을 바라보며 옥이 이모가 말했다.


“총각, 안 좋은 소식 듣더니 갑자기 입맛이 가신 모양이네.”

“네? 죄송합니다. 그럼 상철이 형님은 어디에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렸데요. 그날 저녁에 삼촌 어머니가 월곶 항구 어딘가에 가서 밤새도록 통곡했데요. 제발 살아서 돌아오라고...!”


옥이 이모의 말을 듣고 있는 내내 상철은 가슴이 저려 왔다.

종이컵에 든 물을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지갑에서 5만 원권, 한 장을 빼내서 옥이 이모에게 건네며 말했다.


“국수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잔돈은 됐습니다.”

“네? 저 저...?”


당황해하는 옥이 이모를 뒤로하고 파란 대문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참을 서 있던 상철은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다음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의 두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어머니.......

-끝까지 보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그날 상철은 파란 집과 가장 가까운 여관에서 잤다.

그의 곁에는 오직 소주병 2개만 굴러다니고 있었다.


다음 날 정오 무렵, 여관을 나섰다.

인근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다음 바로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출발했다.

한참을 달려 해수욕장을 조금 지나니 저 멀리 갯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소주를 꺼낸 다음 종이컵이 넘치도록 따랐다.


‘아버지 상철이 왔어요.’

‘죄송합니다. 어머니를 끝까지 모시지 못하고...!’


그는 오랫동안 갯바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는 먼바다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버지. 이젠 못 올지도 몰라요.’

‘편히 쉬세요.’


다시 동인천으로 돌아온 상철은 스타 당구장이란 간판이 달린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이때쯤 태민 형님이 왕 당구장 인수해서 스타 당구장으로 이름을 바꿨지.’


당구장으로 들어서자 40대 초반의 사내가 반갑게 맞이했다.

상철도 옛 태민 형님의 모습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어서 오세요. 혼자 오셨어요?”

“네.”

“저, 몇 치시죠?”

“그냥 시간 올리고 혼자 연습 좀 하면 안 될까요?”

“당연히 되죠. 하하, 저기 5번 테이블로, 음료는 뭘로 드릴까요?”


5번 테이블로 간 상철은 타이머를 누른 다음, 큐를 하나 빼 들고 당구장 전체를 천천히 훑어봤다.

예전의 보습을 다시 볼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30분 정도 공을 굴리다가 큐를 접고 카운터로 갔다.


“여기 한태민 사장님이 어떤 분이시죠?”

“제가 한태민인데 무슨 일로?”

“아, 안녕하세요. 바로 인사드렸어야 했는데 상철이 형님 후배 강영묵입니다.”

“상철이, 한상철이를 말하는 겁니까?”

“네. 모처럼 인천 왔다가 상철 형님 소식 듣고 수소문해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긴 한숨을 내쉰 태민이 가장자리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후유, 우선 저쪽으로 좀 앉으실까요?”

“사장님. 마침 저녁때도 되고 했는데 괜찮으시다면 제가 식사 자리 마련해도 괜찮을까요?”

“상철이 동생이면 밥은 제가 사야죠. 가시죠.”


잠시 후.

근처 삼겹살집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태민이었다.


“미안해요. 상철이 이야기를 하자면 술이 고플 것 같아서 이리로 오자고 했어요.”

“여기도 좋은데요.”

“그런데, 낯이 굉장히 익은데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요?”

“아뇨. 사장님은 오늘 처음 뵙습니다.”

“상철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상철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나서 우리도 멘붕이 와서 한동안 술만 마시며 지냈어요.”

“네...!”

“참 괜찮고 아까운 놈이었는데!”


상철은 태민의 말에 가슴이 찡해짐을 느꼈다.


‘고맙습니다. 태민 형님.’


술과 고기가 나오자 태민이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하여간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자 먼저 한잔 받아요.”

“죄송합니다. 얼마 전에 제가 큰 사고를 당해 회복 중이라 아직 술은 못합니다. 다만 그냥 받아만 놓겠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해요. 그나저나 상철이랑은?”

“네. 상철 형님께 당구를 배웠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요. 제 당구 스승님이시죠.”

“묘한 인연이네요. 상철이도 제게 당구를 배웠거든요. 사실 상철이는 제게 친동생이나 다름없었어요.”

“형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인천에 자주 왔었다면 뵐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저도 운동하느라......”

“멋진 몸을 보는 순간, 운동선수일 거라고 짐작했어요. 그래 어떤 운동 했어요?”

“야구 했었습니다. 이젠 못하겠지만요.”


듣고 있던 태민은 영묵의 이름을 읊조리더니 갑자기 탁자를 세게 치며 말했다.


“영묵, 영묵, 아 맞다! 강영묵!”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청룡기 3관왕의 그 강영묵!”


상철은 태민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영묵의 입장에서 적당히 둘러댔다.

분위기는 무거웠지만 둘의 대화는 꽤 즐거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둘은 매우 친숙한 사이 같아 보였다.


“영묵아? 상철이 보낼 땐 참 슬펐는데, 오늘 멋진 동생을 만날 수 있어서 이 형은 참 기쁘다.”

“저도 모처럼 인천에 와서 상철 형님 소식 듣고 우울했었는데 형님을 만나고 나서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당연히 자주 와야지. 와서 당구도 좀 배우고...!”

“네.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요.”

“네가 원한다면 말만 해. 인천연맹에 가입하도록 힘써 줄 테니까.”


이때에는 당구연맹 가입이 쉽지 않았다.

실력은 기본이고 당구연맹에 속한 임원이나 선수의 추천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두 사람은 마치 백 년 지기를 만난 것처럼 오랫동안 둘만의 대화를 즐겼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속삭일 무렵 두 사람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이후 상철이 도착한 곳은 자신이 죽어 간 그곳, 바로 월곶 어항이었다.


‘내가 죽어 간 이곳에 내가 다시 오다니......’


까만 밤바다를 바라보다가 제방 계단 끝으로 내려갔다.

무릎을 굽히고 손을 바닷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무런 감촉도 없었다. 그러기를 몇 번.

다시 제방으로 돌아와 엉덩이를 바닥에 붙였다.

그리고 독백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 행복하세요.’

‘다음에 다음 세상에서 만나면 꼭 엎드려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앞으로 한상철이 아닌 강영묵으로 살겠습니다.’


잠시 후.

일어서서 까만 밤바다를 다시 한번 바라본 상철은 차에 올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앞만 보고 무작정 달렸다.


‘그래, 과거는 이렇게 다 날려버린다.’


그러기를 한참.

저 멀리 ’HOTEL‘이란 네온사인 불빛이 흘러나오는 큰 건물이 보였다.

핸들을 돌려 호텔로 향했다.

차에서 내려 보스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걸었다.

호텔 입구에 도착한 상철은 뒤를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상철아! 난 이제 강영묵으로 다시 태어날 거야!’

‘한상철! 너도 이제 안녕1’


방을 잡고 바로 사우나탕으로 내려갔다.

그동안 몸과 마음에 쌓인 묵은 때를 벗겨내자 심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전신이 비치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영묵의 모습은 마치 유명한 조각가가 만들어 놓은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다.


‘키 186cm, 몸무게 82kg의 균형 잡힌 몸매.’

‘투수여서 그런지 우락부락한 몸이 아니라 섬세한 근육에다 신체가 무척이나 부드러워!’

‘캬아! 이렇게 멋진 몸이라니!’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펜과 메모지를 앞에 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강영묵으로 살기로 결심한 이상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해.’


저 깊은 기억 속에 잠자고 있는 과거의 사실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당구만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후유, 그 많은 로또 당첨 번호 하나 기억나질 않네.’


영묵은 하는 수 없이 과거에 일어났던 큰 사건이나 뉴스에 방영되었던 내용들을 유추하며 메모해나갔다.

그리고 사건들의 내용 옆에는 해당 연도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 넣었다.


‘이것을 토대로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첨부하면 될 거야.’


다시 미래로 돌아간 영묵의 엑스 파일 작업은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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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친구를 대신한 피의 응징 (1) +3 23.12.16 22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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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5) +3 23.12.15 224 7 13쪽
18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4) +2 23.12.14 217 7 13쪽
17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3) +3 23.12.14 233 7 13쪽
16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2) +2 23.12.13 236 7 12쪽
15 당구황제를 위한 시드 머니 (1) +2 23.12.12 243 8 13쪽
14 꿈을 향한 날갯짓 (4) +2 23.12.12 252 7 13쪽
13 꿈을 향한 날갯짓 (3) +2 23.12.11 281 7 13쪽
12 꿈을 향한 날갯짓 (2) +3 23.12.11 292 7 13쪽
11 꿈을 향한 날갯짓 (1) +4 23.12.09 318 9 12쪽
10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5) +2 23.12.08 337 10 15쪽
9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4) +2 23.12.08 344 8 17쪽
8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3) +3 23.12.07 359 8 13쪽
7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2) +3 23.12.07 366 10 13쪽
6 다시 걷기 시작하는 당구의 길 (1) +3 23.12.06 404 10 13쪽
» 새로운 세상을 향해 (2) +2 23.12.05 396 9 12쪽
4 새로운 세상을 향해 (1) +3 23.12.05 417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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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꿈을 잃은 동인천 작대기들 +4 23.12.04 53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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