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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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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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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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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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한강 다리

DUMMY

***


어두운 밤 초라한 가로등 아래, 인영이 골목길을 걸었다.

왼손에는 케이크 상자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휴대전화를 귓가에 대고서.


“언니.”


아마 아는 지인 중 한 명인 모양이다.


-응, 갑자기 또 왜 전화를 걸었어?

“케이크 감사드린다고요. 크리스마스 다가와서 예약도 많을 텐데.”

-에이, 받아 갈 때도 말해놓고서. 그리고 깎아준 거 하나 없는데 이럴 필요 없어.

“그래도요.”


목소리에는 진심이 뚝뚝 묻어 있었다.

정말 귀한 걸 받기라도 한 얼굴이다.

케이크 하나가 혹시 이모와의 관계를 확 바꿔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 맛있게 먹어.

“네, 그럼 학교에서 봬요.”

-응, 이따 봐.


통화를 끝내고 집을 향해 나아간다.

기울어진 골목을 부지런히 걸으면서.

그런데 다, 타다다, 타타··· 불규칙한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중이다.


“뭐야?”


인영이 몸을 돌렸다.

불안한 시선이 어두운 골목으로 향했다.

그러다 흐릿한 빛 아래에 한 사람이 비틀대며 다가오고 있었다.

혹여 무슨 일이 있진 않았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하으아···, 하아···.”

“이모?”


뒤를 돌아본 인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라면 진작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있을 서주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져, 언뜻 깨진 것처럼 보이는 얼굴로.


“왜? 누가 따라오기라도 했어?”


인영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다가섰다.

이런 골목길을 달려야 하는 이유라면 보통 그뿐이니까.


“하아···, 하아아···.”

“이모?”


서주는 거의 울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통곡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이모, 누구 때문에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던 거야? 혹시 목사가···”

“너 때문이야···.”


한 마디를 중얼거린다.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인영 역시도 이해 가지 않는 얼굴만 해 보였다.


“너 때문이라고···.”


하지만 두 번째는 좀 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내가 뭘 하려는 족족 가로막는 거야. 도대체 왜···.”


서주가 고개를 들었다.

시꺼멓기만 했던 눈동자에는 서서히 분노가 스미고 있었다.


“난 이모를 위해서···”

“닥쳐! 그런 애가 나한테서 목사님을 훔쳐 가?!”

“그런 게···.”

“어제 술 마셨잖아! 그전에도 몰래 찾아갔잖아! 나 속이고서, 두 사람만 있었잖아···!”


난생 처음 보는 분노일까?

인영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지금 들려오는 말은 문장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사실이기도 했다.

맥락을 따진다면 죄다 오해겠지만,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말할 시간은 없었다.


“이제 속이 시원해? 날 시궁창에 처박아놓으니까 만족하냐고!”

“그 사람은···, 사이비···”


짜악!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소리가 울렸다.

서주는 손을 떨면서 앞을 노려보고 있다.

인영은 고개를 홱 돌린 채 있다가 손으로 제 뺨을 더듬는다.

발갛게 달아올라서 쓰라릴 피부를.


“뭐···.”


느릿하게 정면으로 돌아오는 시선.

떨리는 눈동자는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꽉 쥔 케이크 상자만이 바스락 불안을 내비칠 뿐이었다.


“정말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이모, 나는···”

“언니랑 형부 대신에 네가 죽었어야 했어. 너만 죽었어야 했어.”


그리고 케이크 상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인영은 멍하니 멈춰버렸다.

마치 건전지가 떨어진 시계처럼.


서주는 그 모습을 노려보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보란 듯이 바로 옆으로 지나 집으로.

첫 발걸음에는 와작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려 퍼졌다.


“아···.”


홀로 남은 인영은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두 눈에서는 물줄기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짓밟힌 상자에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케이크처럼.



***


한 여자가 술에 취한 채 한강 다리 위를 거닐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 탁하디탁한 물결.

위와 아래는 구별할 수도 없을 만큼 시꺼멓다.

마치 검은 도화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아아···.”


하나 남은 가족에게 버려졌다.

차라리 죽어버렸어야 했다고, 부모님 대신 죽었어야 했다고 폭언을 들었다.

인영은 화해하고 싶다고 케이크까지 준비했는데 말이다.


이제 갈 곳은 없었다.

서주가 있는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이 몰골로 갑자기 누굴 찾아갈 수 없었다.

더 이상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죽자.”


결론은 단순했다.

더는 버틸 재간이 없다.

서주가 목사에게 매달렸듯, 인영은 서주에게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소중함을 잊고 잠깐 함부로 대하기도 했지만, 진심마저 변하진 않았다.


한강 다리에는 여전히 차가 지나갔다.

인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무심히.

트럭이 줄지어서 오는 통에 인영의 모습이 잠깐 가려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찰나가 지나자 난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늦은 밤.

녹호가 방에서 성경을 뒤적댔다.

예배할 때 필요한 말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녹호 씨, 할 말이 있습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유송이다.


“뭐야? 퇴근한 거 아니었어?”

“선배님께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뭘 들었는데?”

“인영 씨한테 못 할 짓을 하지 않았습니까.”


서주에게 뺨을 맞은 일.

한강 다리에서 터뜨린 울음.

그 뒤에서 모든 상황을 유도했던 예현.

유송은 두오에게 그 모든 전말을 듣고 말았다.


“그게 왜? 직접 손은 안 댔잖아? 내기 내용대로 말이야.”

“그래도 이건!”

“공범 주제에 너무 당당한 거 아냐? 너도 합의한 내용이잖아?”


내기가 걸린 조건 그대로.

녹호는 직접 인영에게 위해를 가한 적 없었다.

경제적인 방법으로 압박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손쉽게 누군가를 망가뜨릴 수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이런 일이, 재밌기라도 한 겁니까?”


그래서일까?

유송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이 일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응. 재밌어.”

“···뭐라고요?”

“재밌다고.”


정작 녹호는 태연하기만 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여전히 성경을 읽고 있다.


“어떻게 그런···.”

“왜? 재밌으면 안 돼?”

“당연하죠···. 어떻게 그런 게 재밌을 수 있어요? 이게 어떻게 재밌을 수 있어요?”

“재밌다는 감정이 꼭 웃음과 관련된 건 아니니까.”


분노한 유송에 비해, 대답은 담담하게 이어졌다.


“공포영화가 재밌다고 할 때, 그게 웃기다는 뜻은 아니잖아? 흥미롭다는 말이지.”

“사람 괴롭히는 게 흥미롭다고요? 말이 되나요?”

“다들 그러잖아. 액션 영화를 보고, 만화나 소설을 읽고.”

“그건 현실이 아니니까···”

“아니지. 즐기는 사람이 나니까 괜찮은 거지.”


그러다 성경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돌려 마주 본다.

여전히 동요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자기 취미가 아니면 다들 쉽게 경멸하잖아? 게임이나 술자리, 온갖 사교 모임이라든가.”


무표정.

평소에 사납기만 하던 사람이기에 더욱 꺼림칙한 반응이었다.

가식 따윈 전혀 없는 것만 같아서.


“반면에, 흥미만 있으면 얼마나 비윤리적이든 상관없지. 현실에서도 나쁜 놈한테 참교육하길 바라잖아? 사적제재가 금지된 나라에서 말이야.”

“그건 정의감에 그런 거니까요!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지 않아서!”

“정말 정의감에 불탔으면 피해자한테 집중해야지. 세상이 힘들수록 약자는 더 괴로운 법이니까. 그런데 정작 복지 문제는 함부로 말하지 않아. 세금 더 내기 싫고 욕먹기 싫거든.”

“두 가지는 달라요! 피해가 올 수 있어서 선행은 꺼리더라도, 다들 악행은 미워하니까요!”

“글쎄? 예를 들어볼까?”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예시는 바로 그 입에서 나왔다.


“항상 학교마다 왕따 한두 명쯤은 있던 것 같던데. 그럼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가해자 아니면 방관자였다는 뜻 아냐? 12년 내내 왕따를 당하진 않았을 테니까.”

“모든 일은 정도라는 게 있어요. 가해자는 방관자랑 달라요.”

“하, 그 허용할 수 있는 정도가 왜 방관자까지일까? 답은 간단하지. 자기가 방관자니까. 사람은 자기 자신한테 너그러운 법이니까.”

“그건 억지···”

“그리고 피해자는 방관자를 더 싫어했을 수도 있지. 죄도 집단 폭력이 더 무거운 법이잖아?”


유송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요, 비약이에요.”

“글쎄, 적이 있는 것보다 아군이 없는 게 더 무서울 텐데? 세상에 지켜주는 사람 없이 나 혼자 있다는 거, 상당히 엿 같거든.”

“당신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아니, 그 이전에 모든 건 가해자 탓이고···. 또···.”

“그렇게 확신하는 걸 보면, 연락하고 지내나 봐?”


무관심한 두 눈에 그나마 작은 빛이 담겼다.

아마 호기심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겠지.


“정말 원망 하는지 안 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구나. 하긴, 그럼 할 말 없지.”

“그건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몰라? 그런데도 지금 다들 떳떳하게 학폭 가해자 조지고 다니는 거야? 악마네, 뭐네 하면서?”

“······.”

“그럼 그냥 취미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학창 시절에 보기만 해서 아쉬운 거지. 못다 한 학교폭력을 졸업한 다음에야 해볼 정도로 말이야.”


유송은 생각했겠지.

유명인의 일탈을 공론화하는 건, 십여 년이 지나고서 이뤄지는 정의 구현이라고.

선의이고 선행이라고.


그렇기에 녹호가 하는 말은 낯설디낯선 관점이었다.

너무 뜻밖이었고, 그래서 아무 말도 나오지 못했다.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지 않아서.


“솔직히 되게 역겨워 보이거든. 내가 즐겼던 취미가 아니라서 그런가.”


그래, 녹호는 괴물이었다.

세상 모두와 타인이기에 죄의식 없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

어차피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

그 안에 남아있는 보물이란, 세상을 향한 증오심뿐일 테니까.


하지만 타인이기에 느끼는 것도 있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듯 멀찍이 바라보는 창밖.

그곳엔 연극을 관람하는 또 다른 관객이 존재했다.

배우에게 화를 내고 손가락질하는, 그리고 등장인물이 죽어버리면 새로운 적임자를 세우고야 마는.

그렇기에 그 눈에는 가해자나 방관자나 똑같은 가담자였다.


“···그러면 안 됩니다.”


유송이 풀어졌던 말투를 다잡았다.

더는 분노에 휩쓸린 채, 감정을 토해내지 않았다.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해선 안 될 일입니다. 여기에 타인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관계없습니다.”


결국, 정론을 내밀었다.

너무나 순진한 소리지만, 그렇기에 옳을 수밖에 없는 말이다.


“글쎄? 세상의 정의는 사람이 정하는 거지. 다들 떳떳하게 죽여대면서 살잖아?”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은 녹호 씨가 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재밌어 보이더라. 나중에 나도 해볼까 하는 중이야.”

“녹호 씨!”


유송이 소리를 질렀다.


“왜? 지금 져주고 있잖아? 네가 옳다고.”


무심한 얼굴에 냉소가 어렸다.


“학폭 가해자, 참 역겹네. 지금이라도 징벌해야지.”

“갑자기 무슨···.”

“마음대로 재판하고 처리해. 그나마 죄가 약한 방관자들께서 나시라고.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갑작스럽게 지금껏 낸 의견을 완전히 역행한다.

더 큰 악을 잡기 위해, 사소한 악행은 묻어도 괜찮다니.


“그렇게 되면 내가 왕인 건가?”


역시 저 입에서 모순이 나온다면, 다 이유가 있었다.


“학교를 못 갔으니 죄가 없잖아? 누구보다 무결하니까 무슨 짓이든 해도 되는 거지.”

“그게 무슨···!”

“닥쳐, 비겁한 년아.”


사나운 표현과 달리, 말투는 느긋하기만 했다.


“정의랍시고 시작했으면, 자기 차례가 와도 받아들여야지. 감히 내 말에 토를 달진 말아야 할 거 아냐.”


녹호는 다시 성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계속 공부를 이어갔다.


작가의말

'20만 자를 넘게 썼는데 선호작 10이면, 이 작가 접는 거 아냐?'

'곧 연중이겠네.'


이런 류의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써야 해서 쓰는 글이라, 계속 연재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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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달란트 24.03.02 33 0 12쪽
64 64화. 탈출 +1 24.03.02 31 0 12쪽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26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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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장천선 24.02.25 27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4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6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6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6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1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31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3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31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3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40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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