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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동자
작품등록일 :
2023.12.26 23:13
최근연재일 :
2024.09.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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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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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0. 착각

DUMMY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채워진 두 사람과 함께 조용해진 차가 이동하던 중이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진석이었다.


“소미씨. 오늘 금요일인데, 혹시 업무 끝나고 다른 일정 있어?”


“아뇨. 바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혹시 뭐 다른 필요한 일 있으셔서 그러세요?”


입술을 몇 번 곱씹은 끝에 그가 넌지시 소미에게 일정을 물었다.


제법 자연스러웠단 속내를 잘 갈무리하며.


“그냥. 같이 강연 끝나고 밥이나 먹고 들어가자고.”


‘할 얘기도 있고.’라는 말을 뒤로 이었지만, 작아진 목소리는 차량 소음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사실 태연하게 질문하고 있지만, 진석 나름대로는 이 작은 식사 약속조차 제법 큰마음을 먹고 제안하는 중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온 신경은 소미 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날 진석과의 키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던 소미는 그저 신이 난다는 듯 명쾌하게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해요. 저희 밖에까지 나왔는데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요. 법카 써주세요, 팀장님!”


“그러자. 소미씨 고기 좋아한다고 그랬지? 오늘 수고도 하는데, 법카 말고 내가 대접하지.”


“저야 어떤 고기든 너무 좋죠!”


소미의 밝은 에너지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진석의 입가에도 호선이 그려졌다.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마시며 신나서 어깨를 들썩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저렇게 신날까.


그녀의 모습을 보자, 바짝 쪼그라들었던 그의 가슴 어딘가도 다행이라며 마음을 놓았다.


‘그래, 오늘은 꼭 말해야지. 이 정도면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했어.’


***


학교에서 한다던 강연은 생각보다는 제법 규모가 있는 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진석을 도와 필요한 준비를 같이 마친 뒤,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은 소미는 위로 올려다 보이는 그의 모습이 제법 멋이 있었다.


전문성을 내보이며 집중하는 모습은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을 섹시해 보이게 만들었다.


오늘따라 슈트까지 잘 차려입은 정장 차림은 그의 매력을 한층 더 배가시켰다.


게다가 수많은 학생을 앉혀놓고 앞에서 강연하고 있는 진석의 모습은 꽤 프로페셔널해 보였기에, 소미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크으···. 내가 면접 날도 저 검은 셔츠에 반했었는데. 사내 연애 안 하는 건 안 하는 거고, 잘생긴 남자를 보는건 또 별개지. 그나저나 우리 하진석 팀장님···. 진짜 멋있다.’


남자로서보다 ‘내가 저런 사람과 함께 한 팀에서 배우고 일하고 있다’라는 뿌듯함과 선망 같은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런 소미를 강단 위에서 내려다보던 진석은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하고 치솟았다.


그녀는 정말이지 저 작은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스란히 얼굴로 드러나 보였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소미씨가 나를 생각보다 더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네.’


진석은 여럿 여자 울리게 생겼을 것 같은 외모와는 다르게 의외로 제법 순진한 면이 있었다.


아니, 여자와 연애에 관하여는 그런 면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면이 그랬다.


그가 해본 연애라고는 풋풋한 꼬맹이 시절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배우와의 상상 로맨스 정도였다.


한 마디로 그냥 없다는 얘기다.


이후는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지나오며 그냥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 지내왔을 뿐이었다.


그날 소미와의 키스에 대해서도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아직도 그것을 마음에 품어두고 있었다.


매우 소중히.


진석은 남자로서, 또 그녀보다 더 어른으로서 자신이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에는 어떤 것이 과연 책임지는 것일까 고지식하다 할 정도로 고민했다.


그가 이전까지 일에만 빠져 사느라 연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더 그러했다.


과연 책임감만으로 연애해도 괜찮은 것인가에 대한 고심도 적지 않았다.


이런 중요한 일은 순간의 충동적인 감정으로 결정할 수 없었다.


덕분에 소미에 대해서도 이성으로서 눈여겨봤던 적은 없었다.


귀엽고 싹싹한 게 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넘친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지만.


곰곰이 돌이켜보면 진석이 이미 의식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었는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은 그날 소미와의 키스가 불러온 파문이자 생겨버린 인식의 변화였다.


사내 연애가 절대 싫다던 소미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 같은 것이랄까.


정확히 그날부터 진석은 소미에 대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와 연애란 걸 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실체를 잡고 진중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진중하게 고민을 하는 것이 소미에 대한 예의하고 생각했다.


소미가 알았다면, 헛소리가 어디 있냐고 ‘만나봐야 알지!’하며 어이없어했을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이는 남녀관계의 가치관이 지극히도 다른 두 사람의 차이가 만들어낸 ‘시작’이었다.


두 사람의 완벽한 동상이몽이었으나, 진석도 그를 알 리는 없었다.


만약 진석의 생각을 진작 알았다면, 소미는 그의 생각의 흐름을 끊으려 진작부터 애쓰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날 일을 자신의 실수였다고,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처음부터 사과하고 빌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양아치 같다고 비난받더라도 어쩌겠는가.


평소 그를 사귀고 싶다며 흠모해 온 것도 아니고.


물론 그를 보며 눈 호강을 하기도 했고, 또 준수한 외모에 따른 매너와 능력도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또 뭐···.


그 정도의 생각을 해왔을 뿐이었다.


생각과 몸은 따로 놀았을지언정, 술에 취해서 제 취향 외모의 남자와 고작 실수 한 번 한 것으로 연애를 해보기에는 소미에게 사내 연애가 주는 리스크가 더 컷으니까.


‘뭐, 잔 것도 아니고 키스 한 번 한 거로 뭐 책임까지 져야 하나. 애도 아니고, 그거 좀 할 수도 있지.’


그녀의 생각을 진석이 들었다면, 울컥한 그가 양아치라고 소리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진석과는 다르게 소미는 제법 자유롭고 개방적인 연애관의 소유자였다.


진지한 연애는 오래 못 해봤을지언정, 스스로는 자칭 연애 고수라고 칭했다.


그러다 어떤 덜떨어진 놈한테 발목 잡혀서 인생 바닥으로 처박힐 뻔했었지만.


한편, 진석은 강단 위에서 내려다보니 아까부터 소미의 옷차림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차에서만 해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소미가 그저 어른스럽고 예쁘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소미씨 몸매가 저렇게 몸매가 좋았었나.’


소미가 자리에 앉자 꼭 맞는 스커트가 그녀의 허벅지에서 힙라인에 이르기까지 쫙 밀착되며 주름져 그녀의 몸매를 부각해주고 있었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정장 차림의 모습이었겠지만, 그의 눈에는 괜스레 신경이 쓰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중하자. 지금 일하는데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일하는 것에 있어서는 언제나 철두철미했던 그였는데, 그날 이후 소미만 연관되면 이상할 노릇이었다.


더욱이 황당하면서도 우스운 건 진석 자신도 그 이상한 마음이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1부 강연을 마치고,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진석이 화장실을 손을 씻고 있는데, 밖에서 웬 날티가 나는 남학생들이 모여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봤냐? 어때?”


“예쁘던데.”


나와서 보니 몇 학생들이 모여서 마음에 드는 여자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진석이 한창때라 생각하며 그들을 뒤로하고 강연장으로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그 강사랑 같이 온 거 같던데.”


“나이도 우리랑 비슷해 보이던데? 이따 번호나 따볼까.”


“맞을걸. 번호 내기할래. 아까 앉아 있는데 다리 봤냐?”


“봤지. 죽이더라. 야, 위에도 무슨 가슴이···! 존나 크더라.”


학생들의 사담을 나누고 있는 주체는 소미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얘기의 수위가 음담패설로 수위가 꽤 질척거리게 올라가고 있었다.


꾸욱.


불쾌함에 발끈한 진석의 주먹이 꽉 그러쥐며 학생들을 향해 돌아섰다.


“이봐. 너네······!”


울컥하는 마음에 저 상스러운 주둥이들을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리고 싶은 마음을 담으며 다가갔다.


“팀장님! 고생하셨어요.”


소미가 시원한 생수 두 개를 들고 진석이 있는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여기요. 물 좀 드시고 하세요.”


“아! 어, 고마워. 마침 목이 좀 탔는데.”


“이렇게 커다란 곳에서 사람들 앞에서 강연이라니. 팀장님 진짜 대단하고 너무 멋있어요.”


소미가 저를 가리키며 너무 멋있다고 눈을 빛내며 말하자 진석은 어깨가 저 천장 높이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결국 그도 마음을 누그러트리며 그러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그래봐야 대학교 내에 있는 소강당 규모의 강연장이었을 뿐인데.


“대단하긴 뭘···.”


겸연쩍게 답하긴 했지만, 그의 입꼬리는 의지에 반해 씰룩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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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입이 방정 24.09.18 5 0 9쪽
12 12. 하찮은 인간 24.09.16 4 0 9쪽
11 11. 거울 효과 24.09.15 7 0 9쪽
» 10. 착각 24.01.09 18 0 9쪽
9 09. 가시방석 24.01.08 15 0 9쪽
8 08. 동상이몽 24.01.05 12 0 9쪽
7 07. 어린애 24.01.04 13 0 9쪽
6 06. 제 발 저리는 도둑 24.01.03 18 0 9쪽
5 05. 짐승같은 여자 23.12.30 21 0 9쪽
4 04. 진상이라면 이 정도는 23.12.28 14 0 9쪽
3 03. 오늘의 진상 23.12.27 14 0 9쪽
2 02. 안전 귀가 23.12.27 13 0 9쪽
1 01. 어쩐지 기분 좋은 날 23.12.26 2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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