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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동자
작품등록일 :
2023.12.2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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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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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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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거울 효과

DUMMY


여기서 저 망나니 같은 학생들을 질책하는 것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괜히 아무것도 모르던 소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해 일부러 불쾌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가뜩이나 순진한 소미씨한테 일부로 들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괘씸하긴 하지만, 저 팔랑거리는 기분이 식어버리는 꼴이 더 보기 싫었다.


‘그런 놈들은 지원해도 절대 뽑지 말아야지. 서류부터 그런 인성은 탈락이야.’


아까 한 대 치고 오지 못한 그들의 주둥이를 떠올리며 그답지 않은 유치한 생각을 했다.


그녀와 함께 강연장으로 돌아온 진석은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들었다.


그리곤 다시 자리에 앉으려는 소미에게 건네며 잠시간 맡아달라는 핑계를 대며 부탁했다.


사실 진석의 ‘가뜩이나 순진한 소미씨’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재킷을 벗는 진석을 보는 그 작은 머리 안엔 음험한 생각이 들어차 있었다.


‘하, 미친···. 벗으니까 더 섹시하네. 검은 셔츠는 못 참는데!!’


그녀는 상상 속에서 흘리지도 않은 침을 닦고 있을 기세였다.


“그냥 두면 잘 구겨지는 옷이라 부탁할게. 여기, 소미씨 무릎에 덮어두면 되겠네. 쫙쫙 펴지게.”


덮어두기를 강조하듯 말한 진석은 소미가 건네받은 재킷으로 무릎을 가리는 것까지 보고 난 뒤에야 안심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결국 강연이 끝날 때까지 소미가 추가로 한 일이라곤 간단한 진석의 보조 일과 구김이 잘 가는 그의 소중한 재킷을 지켜주는 일들이 전부였다.


‘이럴 거면 혼자 오셔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왜 같이 오자고 했지?’


강연이 소미에게 많이 유익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일하러 온 건데, 재미만 보고 가는 것 같아서 문득 궁금함이 밀려왔다.


“팀장님. 저는 도와드린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덤으로 따라와서 강연만 잘 듣고 가는 기분인데요?”


“무슨 소리야. 서포트 잘 해줘서 덕분에 편했는데. 그리고 잘 듣고 배웠으면 소미씨 역할은 다한 거야. 내 강의 제법 인기 많아. 소미씨는 아직 신입이고. 무슨 말인지 알지?”


무슨 소리냐며 훈계조로 들리는 진석의 말에 오히려 다소 안심이 되었다.


오랜만에 학생들의 분위기도 느껴보고, 진석의 강연도 유익했고 소미 자신도 재미있었으니 뭐.


‘하긴, 저 얼굴로 뭔 말을 어떻게 해야 재미가 없겠어.’


역시나 어디서든 기, 승, 전, 얼굴이 최고라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순진한 소미씨’는 생각했다.


“여, 하진석. 역시 대단한데? 강연이 아주 훌륭했어. 우리 학생들 반응도 아주 좋다고.”


자리를 마무리하고 돌아가려던 그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친숙한 듯 편하게 진석의 이름을 부르며 접근한 남자는 진석보다는 너댓살 정도 나이가 더 있어 보였다.


진석에게 오늘 강연을 부탁했던 교수였다.


“네, 신 교수님도 수고했습니다.”


“교수님은 무슨, 우리끼리.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잔해야지. 이렇게 본 것도 오랜만인데. 강연에 대해서도 좀 더 얘기도 나누고.”


똑!


그는 손가락으로 소주잔을 들고 혀를 튕기며 공갈로 술 마시는 모양새를 흉내 냈다.


말이 좋아 권유였지, 그는 두 사람이 곤란할 정도로 들러붙어서 고집을 부렸다.


“거기는 소미씨라고 했던가? 어때 같이 가야지?”


교수는 소미의 어깨를 툭툭 건들며 그녀에게도 재촉했다.


“하하, 네. 팀장님께 일정 한 번 여쭤보고요.”


아침에 진석과 식사 약속을 미리 잡아둔 것이 생각난 소미는 그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물음이 담긴 시선을 던졌다.


‘뭐야 저 사람은. 나랑 언제 봤다고 반말에 친한 척이야. 지가 내 상사야? 뭣도 아니면서, 어깨는 또 왜 이렇게 쳐대.’


소미는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예민하게 구는 것 같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소 난감해지려던 찰나, 진석이 그녀의 어깨를 치는 그 손을 잡아서 내렸다.


“말로 하세요, 신 교수님. 여성분한테 이렇게 건드리시면 실례입니다.”


“뭐? 뭘 또 실례까지야. 그냥 얘기 한 거지 언제 또 건드렸다고.”


신 교수가 무안함에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진석이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성분이 아니라고 해도요.”


“그래그래, 알았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요, 소미씨.”


그렇게 포기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신 교수의 고집으로 결국 세 사람은 술집으로 향하는 대신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와중에 소미가 좋아하는 고깃집으로.


소미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진석은 아쉬웠지만, 이곳까지 왔는데 거절하는 것 역시 그림이 이상하기에 어쩔 수 없던 선택이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룸 안에서 세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 저기 소미씨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


“올해 26살이에요.”


“아유 26살이면 딱 좋을 때다.”


신 교수가 소미의 잔에 소주 한 잔을 따르며 물었다.


“네? 아 저는 술 안 마실게요.”


‘뭐가 딱 좋다는 거야? 팀장님 지인이라더니. 하는 짓은 완전 꼰대 스타일이야.’


“그냥 받아만 둬. 혼자 마시면 그림이 좀 그렇잖아. 뭐, 그러다 내키면 나랑 같이 달리던가.”


진석이 차가 있으니 술 대신 식사나 하러 가자고 해서 이쪽으로 온 건데.


결국 저 술도 밥집이랍시고 와서 자신만 먹을 거라며 신 교수가 빡빡 우겨대며 시킨 것이었다.


“그럼, 애인은 있고?”


“신 교수님. 저희 직원에게 개인적인 질문은 삼가시죠. 실례입니다.”


소미가 불편해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자 진석이 그를 제지했다.


“거사람 무안하게. 뭘 실례까지······. 쯧.”


신 교수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얼굴을 굳히긴 했지만, 더 집요하게 묻진 않았다.


사실 진석은 이 자리가 시작되고부터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반가울 법도 했지만, 상대의 질척한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였다.


뭔지 모를 불쾌감이 진석의 속을 차고 올라왔다.


아까 전부터 신 교수는 계속해서 은근슬쩍 소미에게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눈깔이 발가락 사이에 달리지 않은 이상 모를 수가 없다.


그것도 깨끗하게나 표하면 더 말도 안 했다.


밥이나 먹으면서 오늘 있던 강연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더니, 정작 그에 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저 도둑놈 새끼가 감히. 양심도 없나.’


심지어 신 교수는 진석보다도 나이가 7살이나 많은 선배였다.


그러니까, 소미와는 정확히 띠동갑의 차이가 날 것이었다.


자신은 5살 차이로도 ‘어린애 데리고 뭘 한 거지?’ 싶은 죄책감이 들었었는데.


감히, 진석에게는 너무 괘씸한 일이었다.


한 사람은 어색해서, 한 사람은 불쾌해서 자리의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앞쪽 두 사람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도 모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어떻든 신경 쓰지도 않는 건지.


괘씸한 신 교수는 주절거리며 혼자서도 잘만 퍼 마셔대고 있었다.


식사와 함께 그만 술이 점점 더 들어가고, 신 교수는 점점 소미에 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해대기 시작했다.


최대한 좋고 곱상하게 표현해서 관심일 뿐이었다.


진석이 옆자리에 앉은 소미에게 건너편 자리에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을 전했다.


“소미씨 불편하지? 먼저 들어가 봐. 바래다 줄려 미안해. 택시 타고 회사에 청구하고.”


“아니에요. 아직 괜찮아요.”


소미가 입꼬리를 올려 살포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 뭐야. 왜 나만 빼놓고 속닥거리고 있어? 둘이 무슨 얘기야.”


신 교수가 들고 있던 잔을 앞으로 들어 휘저으며 냉큼 둘 사이를 갈랐다.


찰박거리며 잔 안에 들어있던 술이 넘쳐 뚝뚝 떨어져 그의 손을 적셨다.


“이거 알고 보면 둘이 몰래 사내 연애 같은 것 하는 거 아니야? 둘이 사귀어?”


“네? 아니 교수님! 저희가 그럴 리가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소미는 식겁하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 내가 술 취해서 날뛰었을 때 팀장님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술에 취해 방방 날뛰는 사람을 맨정신으로 감당하고 있는 건 참 아찔한 일이었다.


이런 걸 거울 효과라고 하던가.


신 교수를 반면교사 삼으며 소미는 ‘자기는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후, 저 인간 내일 깨고 나면 얼마나 이불킥을 해대시려고. 곱게나 취할 것이지···’


소미는 속으로 혀끝을 차가며 진석을 쳐다봤다.


“······팀장님?!”


이번에야말로 화낼 것 같았던 그냥 말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딱히 별다른 부정 같은 것도 없이 말 그대로 일자로 입술을 앙다물고 침묵하는 중이었다.


‘팀장님이 이번에는 못 들었나?’


그저 안온한 얼굴로 조용히 앞에 놓인 집게를 들어 남은 고기들을 마저 굽고 있었다.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얼굴은 불판의 열기 탓인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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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갈증은 한잔으로 NEW 7시간 전 2 0 9쪽
14 14. 입이 방정2 24.09.20 3 0 9쪽
13 13. 입이 방정 24.09.18 4 0 9쪽
12 12. 하찮은 인간 24.09.16 4 0 9쪽
» 11. 거울 효과 24.09.15 7 0 9쪽
10 10. 착각 24.01.09 17 0 9쪽
9 09. 가시방석 24.01.08 15 0 9쪽
8 08. 동상이몽 24.01.05 12 0 9쪽
7 07. 어린애 24.01.04 13 0 9쪽
6 06. 제 발 저리는 도둑 24.01.03 18 0 9쪽
5 05. 짐승같은 여자 23.12.30 21 0 9쪽
4 04. 진상이라면 이 정도는 23.12.28 14 0 9쪽
3 03. 오늘의 진상 23.12.27 13 0 9쪽
2 02. 안전 귀가 23.12.27 12 0 9쪽
1 01. 어쩐지 기분 좋은 날 23.12.26 2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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