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새글

복숭아동자
작품등록일 :
2023.12.26 23:13
최근연재일 :
2024.09.23 01: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77
추천수 :
0
글자수 :
60,786

작성
24.09.18 00:10
조회
4
추천
0
글자
9쪽

13. 입이 방정

DUMMY

진석은 낮에 보았던, 소미를 갖고 질 낮은 농담이나 짓거리던 껄렁한 학생 놈들까지 떠올랐다.

기억이 중첩되는 바람에 불쾌함이 더 쌓여갔다.

‘역시 그때부터 뒤집었어야 했나,’

뒤늦게 후회를 곱씹었다.

괜히 제 딴에는 그녀를 배려한다고 한 것이, 어쩌면 쓸데없이 참아버린 바람에 소미에게 이 꼴을 보게 했다 싶었다.

“더 할 필요도 없고, 소미씨한테 사과 같은 것도 할 필요도 없어. 그냥 입 닥치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 앞으로 사적으로 연락도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꺼져.”

진석은 나중에 소미한테 사과하겠다는 핑계를 대가며 접근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그를 원천 차단해버렸다.

“하 이거? 이게 진짜 단단히 돌았네. 야! 내가 말했지. 네 회사 사장한테!”

“하아······. 이보세요. 신 교수님. 왜 이렇게 질척일까. 사장한테 뭐? 우리 회사 직원 건드려서 사달 난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려고요? 그보다 내가, 방금 생각이 났는데 말이야.”

이죽거리며 존대를 섞을 그의 말에 신교수의 얼굴이 분노와 긴장이 뒤섞여 더 울긋불긋해졌다.

그러나 진석은 흉흉했던 기세를 내려놓고 차분하고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신 교수는 딴에는 쌘 척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분위기를 잡나 싶어 불안함에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진석은 턱을 치켜들고 더러운 것은 본다는 듯 시선만 내리깔아 보았다.

“그쪽. 결혼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예비 형수님 될 사람은 당신 이러고 다니는 거 아나?”

“너, 너······!”

그제야 입으로 쓰레기를 뱉어내던 그의 입이 꾹 다물리며 조용해졌다.

“하, 이제 예비 형수도 아니겠지. 당신 같은 사람하고 더 엮일 일 없으니까. 개인사는 이쯤 해두지. 아무래도 인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진석은 문득 오늘 낮에 그가 결혼할 예정이라던 얘기를 들은 것이 기억났다.

다음에 만나면 청첩장을 준다고 했던가.

“더러운 인간.”

저런 놈의 신부가 될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부디 이 자식의 본질을 알아차리길.

지석은 소미의 팔을 잡으려다, 잠시 망설이고는 그녀의 어깨를 손끝으로 가볍게 한 번 툭 치고는 먼저 나섰다.

‘등신.’

소미는 뒤따라 나서면서 고개를 돌려 신교수를 향해 입꼬리를 쓱 올리며 조용히 비웃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아직도 바닥에서 엉거주춤한 자세 그대로 있는 신 교수를 홀로 남겨두고 룸을 나섰다.

정신없던 상황이 마무리되자 소미는 더 이상 한숨을 내쉴 어이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방금 까지만 해도 불쾌감에 이성을 잃을 뻔했는데.

진석이 자기를 대신해 나서준 덕분에 분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입 모양으로 욕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고.

‘미친놈. 심지어 예비 유부남이었다니. 쓰레기. 변태 자식.’

진석이 예비 형수님이라 말한, 누군지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제발 조상신의 도움이 닫기를’ 하고 맘속으로 빌었다.

신교수의 행패에 질려 술은 한 입도 마시지 않았던 덕에 대리기사 없이 두 사람이 차에 올랐다.

나란히 앉은 차 안에서는 장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실랑이가 이후부터 쭉, 진석의 기분은 좋지 않아 보였다.

‘원래 알던 사이라고 하더니.’

마음이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까.

질러 놓기는 했어도 역시 저 때문에 커져 버린 회사 일이 걸리는 것일까.

소미는 말없이 운전만 하는 진석이 걱정되었다.

‘왜 나한테는 계속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는데, 어두운 마음이 짓눌려오기 시작했다.

“저, 팀장님. 혹시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결국 소미는 정적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후우······.”

진석은 운전 중이라 그런 것인지 소미에게 눈길은 주지 않고 한숨만 쉬었다.

굳게 앙다문 입술에 씁쓸함이 베여 있었다.

“아까 일 때문에 계속 기분이 안 좋으신 거예요? 말도 없으시고.”

소미가 이에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말을 건네자, 진석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소미씨.”

그가 피곤한 듯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진석의 기분을 대변하는 듯했다.

“아까는 왜 참고 있었어? 불쾌했을 텐데···.”

어떤 일을 말하는 건가 잠깐 생각하던 소미는 이내 눈치를 채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회사랑 관련이 있기도 하고. 팀장님이랑 지인이라고 하기도 하니까.”

“나···. 때문이었다고?”

진석의 미간이 움찔하며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괜한 짓을 했군. 욕심에 같이 오자고 해서 그런 부담감을 안겨 줬군..”

왠지 진석의 얼굴 위로 보이지 않는 귀가 달려서 시무룩하게 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귀여워!’

소미는 하마터면 분위기파악 목하고, 주책맞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을 뻔했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같이 나와서 저도 엄청 유익하고 좋은 시간 보냈어요.”

소미가 손사래를 치며 진석의 말을 부정했다.

“그리고 저도 그 변태 새끼! 아니, 그 사람이 조금 더 막돼먹게 나왔다면 더 참지 않고 화냈을 거예요.”

“애초에 내가 신경 썼으면. 그럼 소미씨가 참아야 하거나, 화를 낼 일도 만들지 않을 수 있었지.”

늘 자신감 넘치던 그는 전에 없이 기가 죽어 있었다.

운전 중이라 고개를 숙일 순 없으니, 어깨가 한없이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아, 팀장님이 일에 있어 완벽주의긴 하지. 그래서 기분이 계속 안 좋았던 거구나. 쩝.’

소미는 진석이 망쳐버린 제 일 때문에 그러고 있다고 조금 다르게 이해했다.

제 일에 철저하고, 또래보다 유능한 사람이 되려면 당연히 그래왔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미의 생각과는 다르게 정작 진석은 회사 일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기의 욕심과 미숙함 때문에 소미가 이런 불쾌한 일을 겪어버린 것만 같았다.

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냥 돌아갔어야지. 거절이 뭐 어렵다고. 저 순진한 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깊게 생각할수록 죄책감에 빠져들었다.

“에이, 그래도 저를 위해서 팀장님이 나서주셨잖아요.”

“소미씨 생각은 묻지도 않고 나섰겠지. 내 멋대로 사과는 필요 없다고 해버리기도 했고. 미안해. 그냥 그런 인간하고 소미씨를 더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어.”

“아.”

한없이 땅굴을 파는 진석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본 적 없는 허술한 그의 모습과 말에 소미는 괜스레 마음이 찡해졌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꿍얼거리며 읊조리는 그를 보며 소미는 뭐라도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에이. 저 이래 봬도 부당에 참는 바보 아니에요. 사실 팀장님이 아니었으면 학교 측에 정식 항의라도 넣었을 거예요,”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도 않아.”

“그럼, 일도 엄청나게 복잡해졌을 거고, 맞다 아니다 복잡하게 돌아갈 거고, 어디나 다 그렇듯···. 저만 이상한 여자가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갈 일도 없겠지만, 맞다 아니다 나올 일이 뭐가 있어? 소미씨 옆자리에 멀쩡히 나도 있었는데.”

“맞아요. 근데 그런 거. 후우······.”

소미는 잠시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잘 안 해주잖아요? 다들 자기들 입장들 생각하느라.”

별일 아니란 듯 내뱉는 소미의 목소리가 다소 씁쓸하게 느껴졌다.

진석은 어쩐지 그 목소리가 신경 쓰여 잠시 차가 멈춘 사이에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미소를 짓고 있긴 하지만, 어딘가 복잡해 보이는 얼굴에 소미의 독백에 가까운 말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런데, 제가 나서서 뭐 할 일도 없이 팀장님이 먼저 나서서 편들어 줬잖아요. 그 변태놈 넘어져서 버둥거리는 게 어찌나 통쾌하고 웃기던지.”

이전 회사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억울하고 끝났던 일들이 허다했는데.

억울했던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석은 제 탓이라며 잔뜩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소미는 오늘 자기를 감싸고 막아준 진석에게 감동하고 있었다.

“팀장님 오늘 완전 멋있었어요! 소미씨도 침 챙겨!”

소미가 미간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내려 깔고는 진석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진석은 뜬금없는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야, 소미씨. 지금 나 따라 한 거야?”

“어? 팀장님 이제야 좀 웃네요? 하지만 진짜 멋있었다고요. 아, 얼른!”

그의 표정과 목소리를 과장해서 한 번 더 따라 한 소미는 이내 깔깔거리며 웃음이 터졌다.

잔망스러운 그녀의 장난에 차 안의 분위기는 아까 전보다 한결 풀어졌다.

진석의 표정을 확인한 소미는 좀 전의 상황을 떠올려보곤 괜스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좌석 뒤로 몸을 기대며 다시 회상하듯 눈을 감았다.

“당연한 걸 두고 멋있기는. 감히 누구 앞에서 내 팀원을 건드려.”

“에이, 팀원이라?! 나 때문이라서 아니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한 번만 넘어가 주세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15. 갈증은 한잔으로 NEW 7시간 전 2 0 9쪽
14 14. 입이 방정2 24.09.20 3 0 9쪽
» 13. 입이 방정 24.09.18 5 0 9쪽
12 12. 하찮은 인간 24.09.16 4 0 9쪽
11 11. 거울 효과 24.09.15 7 0 9쪽
10 10. 착각 24.01.09 17 0 9쪽
9 09. 가시방석 24.01.08 15 0 9쪽
8 08. 동상이몽 24.01.05 12 0 9쪽
7 07. 어린애 24.01.04 13 0 9쪽
6 06. 제 발 저리는 도둑 24.01.03 18 0 9쪽
5 05. 짐승같은 여자 23.12.30 21 0 9쪽
4 04. 진상이라면 이 정도는 23.12.28 14 0 9쪽
3 03. 오늘의 진상 23.12.27 14 0 9쪽
2 02. 안전 귀가 23.12.27 12 0 9쪽
1 01. 어쩐지 기분 좋은 날 23.12.26 21 0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