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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동자
작품등록일 :
2023.12.26 23:13
최근연재일 :
2024.09.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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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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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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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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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4. 입이 방정2

DUMMY

“뭐······?”


갑작스럽게 들이대는 소미의 말에 놀란 진석은 하마터면 급정거할 뻔했다.


소미는 순간적으로 방심했던 자신의 말실수를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미쳤어? 정신 차려, 윤소미. 어디서 끼를 부리고 난리야. 긴장해! 뭐, 소개팅 나왔어? 옆에 팀장님이야.’


한껏 좋아진 분위기와 함께 풀려버린 긴장에 힘없이 몸을 축 늘어트릴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이내 안면 가득 미소를 띤 채 고개를 가로저으며 콧노래까지 불렀고.


그러다 그녀는 한동안 잊고 지내던 지난 회식 때까지 떠올라버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결국 소미의 입이 방정을 떨어버리고 말았다.


앙다문 입술을 안쪽으로 말아 넣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려야겠다.’


그녀는 제 떨리는 눈알을 숨기기 위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하. 근데 팀장님 운동하셨어요? 아까 보니까 팔뚝에 근육이 장난 아니던데요?!”


‘아냐! 이게 더 이상해. 어디서 팀장님 몸을 평가하고 있어.’


진석의 표정은 아직도 당황한 듯 경직되어 있었다.


소미는 세상에서 단절되고 싶다는 기원을 가득 담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 가끔.”


“아, 그렇구나. 하하. 음, 그런데 오늘 막상 제가 할 일은 많지 않았던 거 같아요. 집에 가면 팀장님 강연 내용이라도 다시 복기해봐야겠어요.”


침묵의 상황이 올 것만 같아서 당황한 소미의 말이 횡설수설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건 아까 이미 한 얘기잖아.’


어딘가 데자뷔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허둥지둥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던 그때였다.


꼬르르륵.


“······?”


“······!”


소미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소미가 황급하게 양팔로 제 배를 감싸면서 몸을 앞으로 웅크렸다.


그리고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있었다.


꼬르르륵. 꼬륵. 꼬륵.


그러나 그 가녀린 팔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스타카토로 강조하며 뱃속을 새어 나오는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좀 얌전히 나기나 하던가.’


심지어 점점 요란해져 가는 소리에 소미는 양 뺨이 좀 전보다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어, 소미씨? 음···. 계속 그런 자세로 있으면 위험해.”


포기하고 양 뺨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고개를 든 소미의 눈가가 왠지 촉촉한 것 같기도 했다.


“괜찮아?”


“그럼요. 아, 아까 분명 먹었는데. 분위기상 얼마 못 먹었나 봐요.”


그녀는 머쓱한지 턱을 살짝 내리고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나도 마침 배고팠는데 잘됐다. 어차피 소미씨 데려다주고 있는 길이니까, 근처 식당에서 먹고 들어가자.”


진석은 소미가 무안하지 않도록 비식비식 새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가며 자신도 배고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팀장님. 지금 입꼬리 씰룩거리고 있는 것 다 보이거든요? 저는 집에서 적당히 먹으면 되니까 괜찮아요.”


소미가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고 진석을 살짝 흘겨봤다.


“크흡. 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도 할 말이 있었는데 차라리 잘됐어.”


“아, 팀장님! 웃지 마시라니까요.”


결국 진석은 소미의 모습에 빵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마치 해바라기 씨앗을 빼앗긴 햄스터 같은 표정 같다고 생각했다.


소미는 저를 보며 놀리는 진석의 모습에 발끈했지만, 진석은 그런 소미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를 것 같았다.


“큭큭. 미안, 미안해 소미씨. 알았어. 안 웃을게. 진짜야. 그러니까 나랑 먹고 가자. 나 배고파.”


두 사람은 소미의 집에 차를 대고 주변에 마땅한 식당을 찾아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이 안 되는 날은 뭘 해도 안 되는, 그런 날이 있다.


금요일 밤에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내가 아니라서 그런지 식당들은 죄다 문이 닫혀 있었다.


“동네라 그런지 가게들이 생각보다 일찍 닫았나 본데?”


“아···. 죄송해요. 이렇게 일찍 닫는 곳들이 아닌데. 이상하네요.”


자주 가는 동네 맛 집이라며 자신 있게 진석을 안내했던 소미는 다소 무안해졌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소미씨는 배고플 텐데 어서 집에 들어가자.”


“팀장님은 괜찮으세요? 아까 배고프다면서.”


“이제 괜찮은 거 같아. 나는 식사 생각이 없어졌······.”


꼬르르륵.


때마침 진석의 말을 방해하며 누군가의 뱃속에서 한 번 더 배고픔을 알리는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저 아니에요!”


“······.”


진석이 말을 하다 말고 입술을 일자로 앙다물고 있었다.


곧게 벋어있는 콧대 위 미간이 주름져 움푹 들어가 있었다.


“아, 그렇지. 제가 아니면 팀장님이겠네요. 아하하.”


“아무튼! 괜찮으니까 먼저 들어가.”


제가 비웃은 전적이 있던 터라 무안해진 진석이 소미의 등을 떠밀었다.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보내야지 싶었다.


하지만 소미는 왠지 혼자서 쏠랑 집에 들어가려니 여러모로 마음이 쓰였다.


자기는 바로 집에 들어가서 라면이라도 먹으면 된다지만, 진석은 다시 집까지 가려면 또 시간이 걸릴 텐데 싶었다.


팀장님을 운전기사로 쓰고 보내버리는 망나니 직원 같은 기분이었다.


“저, 팀장님.”


“난 진짜 괜찮다니까 소미씨.”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럼 우리 집에서 라면이라도 같이 먹고 가실래요? 가는 동안 배고프잖아요.”


“뭐. 집에서······?”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냐는 듯 진석이 얼빠진 표정을 해 보였다.


“아, 라면 같은 것 안 좋아하시는구나. 하긴···. 관리하시죠.”


진석의 몸은 딱 봐도 식단부터 관리한 몸인데 나트륨에 탄수화물 폭발한 라면 같은 걸 이 시간에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네? 그럼······. 아?!”


입을 가리고 얼굴을 붉히는 진석의 얼굴에, 소미는 그제야 한때 유행처럼 돌았던 예능 프로의 농담이 생각났다.


코미디언들이 자고 가라는 의미로 영화를 패러디해서 야한 의미를 담아 저런 농담을 했었다.


“아니! 그러니까요. 라면이 싫으면 다른 것도 있어요. 뭐냐, 회사 앞 맛집에서 사 온 빵도 있고, 또 뭐였지. 아무튼 같이 먹고 가면 좋으니까요. 시간도 늦었고 또······.”


‘미친, 나 오늘 뭐라는 거니 계속. 언젯적 라면 드립이야.’


사실 티비를 즐겨보지 않는 진석은 라면 유행어 같은 건 애초에 알지도 못했다.


그냥 소미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엄한생각을 해버리는 바람에 변명해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바빴을 뿐이다.


그녀가 걱정해야할 포인트는 정작 따로 있었다.


“괜찮아. 나도 좋아해. 어, 라면은. 그보다 소미씨 집에 내가 들어가도 괜찮은 거야?”


진석의 말이 다소 어색하게 뚝뚝 끊겼다.


“아! 괜찮아요. 다른 가족들은 없이 저 혼자만 사는 집이라 불편해할 거 없어요.”


“어? 그러니까.”


“네?”


“응?”


“헉! 아니요. 오해 마세요. 제가 팀장님을 뭘 어떻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없어요. 없는데······. 혼자라니. 그게 아니잖아. 더 이상해.’


소미는 자신의 생각 없는 주둥이를 탓했다.


이런 아무 말 막장 대잔치가 따로 없었다.


‘술 한 방울 들어가지 않아도 난 짐승이었던 거냐?’


내면에 깊은 현타가 몰려들었다.


진석과 소미는 서로 각자의 이유로 ‘혼자’라는 단어에 꽂혀버린 채 어색하게 움직이며 서로의 발끝만 쳐다보았다.


“그래, 나도 뭐 별생각은 없었어. 먹자. 그, 라면.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나도 라면 좋아해.”


진석은 속으로 꽤 당황하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고 있었다.


‘멍청하긴. 다음에 먹자고, 집에 간다고 했어야하는데.’


진석도 그답지 않은 쿨한 척을 하기 위해 직진으로 대답을 한다는 것이, 그만 생각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 어색한 분위기를 말려줄 진석마저도 소미의 집으로 들어가자 라는 말을 승낙 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둘은 서로 어색, 뻘쭘한 분위기 속에서 소미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하하. 들어오세요. 집이 넓지는 않아요. 식사는 저기 식탁에서, 는 못하겠네요. 식탁이 좀 어지럽죠? 하하.”


소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역시나 생각 없이 진석을 집에 들인 것을 후회해버렸다.


나름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해놓고 진석을 식탁으로 안내하려던 소미는 아차 싶었다.


가뜩이나 작은 그녀의 식탁 위에는 이런저런 자잘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바람에 식사할 공간이 마땅히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 좀 치워두기라도 할걸.’


그래도 나름대로 핑계는 있었다.


집, 회사 오가면서 바쁜 생활을 하며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치울 시간도 없었던가.


“음, 확실히. 먹을 자리가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소미는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이미 그녀의 손님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온 뒤였다.


그를 계속 세워둘 수는 없기에 할 수 없이 테이블이 놓여 있는 소파에 그를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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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갈증은 한잔으로 NEW 7시간 전 2 0 9쪽
» 14. 입이 방정2 24.09.20 4 0 9쪽
13 13. 입이 방정 24.09.18 5 0 9쪽
12 12. 하찮은 인간 24.09.16 4 0 9쪽
11 11. 거울 효과 24.09.15 7 0 9쪽
10 10. 착각 24.01.09 18 0 9쪽
9 09. 가시방석 24.01.08 15 0 9쪽
8 08. 동상이몽 24.01.05 13 0 9쪽
7 07. 어린애 24.01.04 13 0 9쪽
6 06. 제 발 저리는 도둑 24.01.03 18 0 9쪽
5 05. 짐승같은 여자 23.12.30 21 0 9쪽
4 04. 진상이라면 이 정도는 23.12.28 14 0 9쪽
3 03. 오늘의 진상 23.12.27 14 0 9쪽
2 02. 안전 귀가 23.12.27 13 0 9쪽
1 01. 어쩐지 기분 좋은 날 23.12.26 2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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