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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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2,038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5.23 08:30
조회
432
추천
10
글자
12쪽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DUMMY

선장, 이홍섭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래도 자신을 믿고 따라와 준 어린 선원들이 있지 않은가.


심중에 거친 파도가 일면서 불안해질 때마다 올망졸망한 눈망울로 운동장에 발을 내디딘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 아. 또 하루가 밝아 버렸네요.”

“하······, 주옥같은 세상.”


“허허허, 그래! 오늘도 달려보즈아!!”


하나, 그랬던 이홍섭도 막상 경기장에 발을 디디니 생각만큼 불안이 떨쳐지지 않았다.


부원을 데리고 정식으로 출전하는 게 얼마만인가하는 감회도 잠시, 이홍섭은 진짜 불안의 원인을 자문하여 찾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홍섭, 자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고작 두 명’이니까.


자기 부원에 대한 명확한 신뢰의 부재가 아니라, ‘가진 총알’이 두 개뿐이라는 말이었다. 만일, 예선에서 이 두 명이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면, 이곳에서 계속 자릴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보는 것도 연습과 훈련이랍시고, 다른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 정도가 다였다.


심지어 지금 오승탁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한길만 자기 뒤를 쪼르르 따라온다.


한길이 경기장 이곳저곳을 차분히 둘러본다.


마땅한 어른이며 수십 년을 이곳에서 뛰어 봤던 자기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이 아이는 얼마나 떨릴까.


그래, 내 에너지라도 듬뿍 넣어 주자-

라고 주억인 이홍섭이었다.


“녀석. 길아, 긴장되지?”


“에, 아뇨?”


“짜식, 말은 그렇게 해도 다 알아~”


“진짜 아닌데요?”


“흐응, 나한텐 솔직해도 되는데.”


“오히려 코치님이 더······”


교감에게 호언장담했다는 점도 있긴 했지만, 아이들에게도 뭔가 확실한 경험을 심어 주면 좋겠다는 게 지도자로서 이홍섭이 바라고 바라던 점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경험이 제법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아픈 희망도 품었다.



* * *



경기장 관중석 계단을 하나씩 오르면서, 이홍섭의 시선은 바쁘게 돌아갔다.


“이번 대회는 애들이 더 많다더니, 참.”


도합 다섯도 안 되는 자기 팀과는 달리 십수 명의 아이들을 대동한 채 이 경기장을 방문한 학교들이 수두룩하다.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그 수가 수십인 학교도 보인다.


개중에는 특히.


‘저 미친 학교는 대체······.’


그 학교에서 얼마나 사정사정하며 아이들을 긁어모았는지, 대략 스무 명이 우습게 넘어가는 학교도 보인다.


인해전술.

어떻게든 자격 조건에 부합하는 아이들을 구슬리며 고작 몇 번 훈련시키고 종목마다 한둘씩이라도 끼워 놓은 모양새다. 제법 규모가 되는 학교니까 가능했던 일일 터.


트랙 경기 말고도, 필드 경기까지 합하면 꽤 가짓수가 되니까.


높이뛰기,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투포환, 투창.


각기 다른 길이의 트랙과 필드 경기까지 모조리 아이들을 쑤셔 박으면 간혹 운이 좋아 3, 4위라도 거머쥘 수도 있다.

이런 유소년들의 경기에선 전략과 머리싸움 같은 건 크게 의미가 없었다. 피지컬이 압도적으로 좋거나, 발육이 선제적으로 받쳐 주는 아이들이 가져가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런 아이들을 입학과 동시에 눈여겨보다가 대회에 대한 혜택과 경험을 앞세워 저렇게 출전시키면 출전 명단에는 학교 이름을 여러 번 노출시킬 수 있고, 자연스레 스포츠인 육성을 선도한다는 교위선양도 거머쥘 수 있는 셈.


절대 비열한 술수는 아닐 거다.


이미 어느 한 국가도 수십 년 동안 올림픽에 출전하며 물량빨로 밀어붙여 획득한 동메달 수가 100단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건 공식적인 국제 기록으로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남겨진다.


게다가 ‘전체 순위’는 ‘세심’하게도 메달 수를 집계하니 우위를 점할 수도 있는 거고.


다시 말해, 이건 아주 실제적이면서도 증명된 방법이다.


다만, ‘이홍섭 호’에겐 닫힌 경우의 수였다.


‘흐음.’


이홍섭은 뒤를 돌아봤다.


한길이 홀로 미묘한 표정을 띠며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


한데, 그 바로 옆엔-

십수 명의 아이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먹으며 설레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


단전부터 차오르는 헛헛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하나, 선장은 굳세어야 한다.

어찌 느끼는 감정 하나하나를 모두 내보이며 항해에 대한 불안을 전파할까.


한길에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길아! 힘내, 짜식아! 우리 할 수 있어!”


“당연하죠, 코치님.”


“움, 응?”


“저 오늘 진심 모드에요.”


“그, 그래······. 그럼 나 이제 코치석 좀 다녀올게.”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트랙경기 코치석.


이홍섭은 한길과 오승탁을 보낸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고글 클론들이 그늘에 모여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2열로 늘어진 좌석 대신 유일하게 햇볕이 내리쬐는, 텅 빈 바깥 간이 좌석에 몸을 맡겼다.


목덜미를 따갑게 비추는 햇살 빼곤 이홍섭이 보기에 가장 명당이라 여겼다.


한길과 오승탁이 준비 자세를 잡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또렷이 지켜볼 수 있는 자리였으며, 뒷줄에서 담소를 나누는 다른 코치들의 말까지 모두 들을 수 있는 위치였다.


“푸하하핫.”


“왜 웃으십니까?”


“조금 전까진 중등부 경기를 보다가 육상 막내들을 보니 사이즈가 너무 작아져서요. 너무 귀엽지 않습니까?”


역시 여유로운 담소가 오간다.


코치, 윤태식은 건네받은 경기 시간표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글을 신경질적으로 벗었다.


“뭐, 이번엔 초등부 4학년 축제네 이거. 왜 이렇게 많은 건데, 총 몇 조야 대체?”


“12조까지 있네요, 허허.”


“그래봤자 전부 학교 운동회처럼 나풀나풀 달릴 거면서 왜 이리 많이들 온 거냐고, 참나. 괜히 결승 경기만 늦어지잖아 이러면-”


“하긴 예선전이 좀 길어지겠네요.”


“아, 저것들이 제대로 달릴 줄이나 알겠냐고, 초등부는 6학년만 해도 되는걸, 굳이.”


다들 제각각 보고 있는 풍경을 다르게 곱씹었다.


이홍섭은 듣다가 슬며시 자리에 일어섰다. 그리고 그들과 좀 떨어진 채 팔짱을 끼고 트랙만 주시했다.


불평을 늘어놓던 윤태식 또한 심드렁하게 주변을 살피다 이홍섭을 발견했고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이홍섭에게 안부를 빙자한 핀잔을 던졌다.


“아이고, 유능하신 이홍섭 코치님을 여기서 다 뵙네요?!”


“음?”


“후배 인사 좀 받아 주시죠.”


“뭔 후배입니까. 지금은 다 동료죠, 하하.”


기대하던 반응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윤태식은 더욱 난잡하게 나가기로 했다.


“듣자 하니, 그쪽 학교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면서요?”


“만반?”


이홍섭도 윤태식의 의중을 모를 리는 없었다. 이 대우가 오늘만 있는 특별한 순간은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윤태식.

바로 옆 초등학교 육상부 코치다.

바로 옆 학교란 뜻은, 교감 전인범의 동기인 김선응이 교감으로 부임한 곳이란 뜻이었으며 윤태식 코치가 바로 김선응의 입꼬리를 올린 장본인이라는 것이었다.


선수 시절 역량으로는 이홍섭에게 역부족이라는 걸 윤태식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육상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윤태식이 우위다.

학교를 빛낼 수상 실적은 윤태식 쪽이 몇 십 배나 더 많았다.


하여, 이홍섭은 예의상 싱긋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거, 몸은 좀 어떻습니까? 건너건너 들으니 좀 호전됐다고는 하던데, 지금 이렇게 대회도 다시 나오실 정도면 말끔하게 나으신 거 같기도 하고?”


이홍섭은 가볍게 무시했다.


너무도 간단히 자신의 말을 흘리는 이홍섭에 무안함을 느끼길 잠시.

윤태식은 또 입이 간지러워짐을 느꼈다.


“차라리 다시 뛰시지요? 트랙에서 나가실 때 어찌나 맴이 아프던지~”


“관심부터 걱정까지 과분하네요~”


“참 이번에 아주 선택과 집중을 했다던데~? 4학년 두 놈 데리고 왔다면서요? 아니, 그래서 이렇게 4학년 경기가 많아졌지 않습니까~”


“집중은 했는데 선택은 못 했습니다, 딱히.”


그제야 몇몇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윤태식의 허벅지를 툭툭 쳤고, 다른 몇몇은 왠지 모를 조소를 머금으며 이홍섭의 반응을 지켜봤다.


이홍섭은 마른침만 삼켰다. 당장에 놔줄 리가 없는 자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누군가가 부상할 때 우러러보는 자들 중에선, 서로 다른 양가감정을 느낀다.


부러움과 시기심.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에 적합한 감정의 형태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트랙경기 코치석에서 다리를 꾄 채 웃음을 짓는 윤태식은 후자가 만들어 낸 결정체였다.


한때였지만, 이홍섭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시기심이 역겨운 화살이 되어 다시 꽂혔다.


“그나저나 그 4학년 놈은 몇 조입니까?”


이홍섭은 멋쩍게 웃으면서 다시 뒤돌았다.


“근데 말투가 참 여전하십니다. 엄연히 어린애들이고 학생들인데 아직도 놈놈 거리네요. 시대가 어느 땐데. 설마 훈련 때도 그러시는 거 아니죠?”


“하하, 평소에 강하게 해야 애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겁니다. 너무 부드러우면 쫘르륵 흘러서 빠져 버린다니까요? 그쪽 육상부 탈퇴처럼?”


에둘러 돌려 까는 말들이 공방전처럼 난무하던 그때.


1조의 질주를 독려하는 총성이 울렸다.


“하하, 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세엔 기세로 응한 뒤, 이홍섭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나, 윤태식은 정도란 걸 모르는 인간이었고 다시 한번 이홍섭을 건드렸다.


“몇 조냐니까요? 저도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습니다, 하하.”


이홍섭도 그저 만만치는 않았다.


뒤를 향해 오른손으로 중지를 들어 올렸다.

윤태식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걸 확인한 이홍섭이 뒤늦게 검지와 약지를 순서대로 올렸다.


“어이쿠야 3조입니다, 3조.”


동시에.

탕-!


2조의 질주를 응원하는 총성이 울렸다.



* * *



늘 ‘지도자’란 말은 참 애매했다.


남을 가르쳐 이끄는 사람이라기엔, 부단한 날갯짓을 가르쳐 광활한 창공에 날려 보낸 새가 딱히 없었다.


끝까지 이끌지 못했기에, 과연 자신은 ‘지도자인가’ 아니면 그나마 그럴듯한 직업이라도 부여잡은 ‘전직 육상선수인가’에 대한 자문에 답을 내리기 힘들었다.


이홍섭은 그래서 지금도 예전 성격대로 윤태식에게 폭언에 가까운 시원한 말 한마디를 내놓지 못했다.


“아, 명단 보니까 이름도 특이하네요, 한길? 우리 길이가 을마나 잘 달리는지 내가 함 봐야겠습니다.”


뭐라 맞받아치고 싶지만, 이홍섭은 한길의 위치와 경험을 먼저 떠올렸다.


한길이 빠르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 공식 대회 경험은 전무했다.


하여, 데이터가 없었다.


다시 한번 자존심을 부렸다가 한길이 하위권으로 들어선다면 붉어질 건 자기 체면뿐이란 점을 인지했다.


하나, 그전에.

괜히 어른들의 쓸데없는 공방전의 희생양으로 처음 뛰는 한길을 들먹일 순 없는 노릇이라 판단했다.


자신을 믿고 육상부에 들어온 뒤.

누구보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어린아이였는데 코치들의 말도 안 되는 핀잔이 자칫 한길에게까지 꽂힐까 그것이 두려웠고, 염려되었다.


자기처럼 ‘달리기를 무서워할까봐.’


달리기는 좋아하는데 트랙을 떠날까 입술만 으깨 씹었다.


이홍섭은 더는 대답할 생각일랑 접고, 스타팅 블록 쪽을 바라봤다.


“이제 남초부 4학년, 3조 경기입니다.”


3레인, 한길.


무척이나 능숙하게 스타팅 블록을 자기 다리 길이대로 맞추고 있었다.


저쪽 레인에 선 아이들 중엔 이곳 코치들이 담당하는 아이도 있었는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홍섭은 계속 한길만 주시했다.


‘제발 다치지만 말아라, 기회는 많으니까.’


그렇게.

서로의 체면이 중요한 세 번째 총성이 울렸다.


탕-!


이윽고 이홍섭이 목도한 광경은, 자기가 괜한 걱정을 했단 생각과 더불어.


강렬한 감상 하나가 그의 머릿속을 강렬히 메웠다.


‘······내가 괴물을 데려왔구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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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1 24.06.12 312 8 14쪽
38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1 24.06.11 318 7 14쪽
37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10 334 11 18쪽
36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09 367 12 18쪽
35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08 360 10 16쪽
34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07 335 11 12쪽
33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06 328 10 12쪽
32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05 353 8 15쪽
31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4.06.04 355 9 14쪽
30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24.06.03 337 8 14쪽
29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24.06.02 343 10 17쪽
28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24.06.01 352 11 19쪽
27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1 24.05.31 394 8 15쪽
26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1 24.05.30 392 11 13쪽
25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1 24.05.29 418 11 16쪽
24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24.05.28 456 14 12쪽
23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1 24.05.27 439 13 17쪽
22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6 423 14 13쪽
21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5 434 10 13쪽
20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4 422 11 15쪽
» EP3. 꿈나무들아, 미안하다. 24.05.23 433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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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P2. 떡잎부터 다르다. 24.05.20 457 1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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