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적성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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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JaeK
작품등록일 :
2024.05.08 14:15
최근연재일 :
2024.09.13 06:00
연재수 :
10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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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854

작성
24.05.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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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이력서(2)

DUMMY

오랜만에 방문한 서점은 특유의 책내음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대학생때 만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서점에서 많이 했던 그 시절, 사방에 가득 찬 책들을 보면서 천천히 서가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색에 잠겨들었다.

' 그리운 냄새, 그때와 바뀌지 않은 장소.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네... '

그 당시 몹시도 사랑했던,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했던 그녀를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베어물었다. 그렇기에 그 사고가 더욱 가슴에 사무쳤다.

그녀는 한순간에 나의 곁을 떠나갔다. 그렇게 사고를 당한 그녀의 죽음은 아픔과 원망이 되었고 체념으로 바뀌어 갔었다.

아직도 그날, 그곳에서 서서 자신을 보며 함박 웃음을 지은채 양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면서 자신을 반기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때 나 역시 비슷한 웃음을 짓고 있었겠지.

여전히 내 머리속에는 그날의 공기와 바람의 향기, 흩날리는 낙엽의 형태 하나하나가 기억에 선명하다.

현태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렇게 그녀의 죽음 이후 난 동굴속에 들어가 한동안 꿈을 꾸었었다.

친하게 지내던 중,고,대학 동기들도, 웃고떠들던 선후배들도 멀리했다. 그렇게 자신의 대학 생활은 끝났다.

그렇게 정신을 놓고 군대를 다녀와 지인의 소개받은 최악의 회사를 입사한 이유 역시 그런 맥락이었다. 너무나 힘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추억이 선연하게 남아있는 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지금에서야 흉터가 된 상처처럼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그 당시는 주변을 돌아볼 수 없는 폐인처럼 살았다.

어느새 찾던 책들이 모여있는 서가에 도착을 했다. 인문사회분야가 모여있는 곳.

천천히 눈을 돌려 책의 표지를 훌어봤다. 가끔씩 호기심이 가는 책을 뽑아 작가이름과 소개글, 추천사, 목록등을 보면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서점 직원이 돌아다니며 정리를 하고 있었고 무심결에 스쳐지나간 한 여직원에게서 [북 큐레이터]라는 적성을 읽었다.

' 저 사람은 자신의 적성을 잘 찾아가고 있구나. '

그런 생각과 함께 죽은 여자친구의 적성, [작가]를 기억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점에서 데이트 하는 시간이 많았다.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하는 여자였으니까.

그녀는 책을 많이 좋아했다. 그래서 덩달아 자신도 책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었다.

" 이거, 너무 궁상맞은데··· "

현태는 그런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너무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네? 손님, 찾으시는 책이 있으신가요? "

우연히 근처에서 책을 정리하던 북 큐레이터, 여직원이 현태의 말을 듣고 반응했다.

살짝 부끄러웠지만 고개를 살짝 숙인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

"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

" 네, 찾으시는 책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

알겠노라 대답한 나는 빠르게 자신이 찾는 책을 담아 계산대로 향했다.

헤드헌터와 관련된 전문서적과 이력서를 쓰는 방법이 적힌 자기개발서등이었다.

이제부터 이력서가 하나둘 도착을 할 것이다. 그것에 대비를 위해 좀 더 세심하게 알아두어야 했기에 서점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책을 사들고 서점을 빠져나온 나는 고개를 올려 어느새 해가 저문 하늘을 바라봤다.

" 하아, 맥주라도 사서 가야겠다. "

이런 날, 술을 먹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현태는 그렇게 털레털레 책이 담긴 봉다리를 들고 노을이 지는 거리를 쓸쓸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해 봄, 유난히도 해가 짧은 날의 하루였다.


다음날, 전날 홀로 맥주와 안주를 먹고 푸욱 쉰 덕분에 말끔한 얼굴로 하루를 시작하는 현태였다.

" 예전엔 몇일씩 야식을 먹어도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었나. 휴우. "

이제 겨우 이십대후반이었지만 이십대초반에 비해 몸상태가 달라짐을 느낀 나는 한동안 화장실 거울을 보며 붓기를 빼보겠다고 여기저기를 눌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덕에 출근 시간이 늘어지고 있었다.

" 아, 그냥 살찐거네... 나한테 신경쓰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냥 출근하자. "

그렇게 다짐한 현태는 대충 씻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전날 사놓은 책을 가져가 회사내 자신의 책상에 진열해 놓을 생각으로 그것 역시 챙겼다.

전철을 타는 짧은 시간에 독서를 해도 좋았고 말이다. 물론 지옥철에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몇번의 지옥철을 경험하니 자가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근을 나갈때마다 회사차를 끌고 나가기에도 눈치가 보였고.

돈이야 전 회사에 다니면서 좀 벌어놓았으니 중고차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부모님 댁에 놀고 있는 자동차가 있었나라고 되짚어 봤지만 없었다.

' 그러고보니 부모님에게 합격 연락이후 연락을 안드린지 꽤 됐네. '

회사에 출근하면 연락을 한번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지옥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특유의 냄새와 화장품, 향수, 섬유유연제등의 향기가 뒤섞여 표한 냄새가 지하철을 가득채우는 출근길이었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 현태는 익숙하게 회사로 통하는 통로로 빠져나와 걸어갔다.

" 어휴, 내일부터는 조금 천천히 출발해야 겠어. "

어짜피 출퇴근이 자유로운 프리랜서의 장점이 그런 것들이니까.

나는 일부러 출근길이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고개를 들지 않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스쳐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적성이 눈에 들어와 나를 어지럽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걷고 있을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뒤돌아보니 김지원이었다.

회사 앞에서 자신을 아는채 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그중 한명이 김지원이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 벌써 출근? 빠르네? "

" 뭘요, 오빠도 이렇게 출근하는데. 근데 자가용 있지 않아요? "

언뜻 본 그녀는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온 방향은 회사 지하주차장 방향이 아니었다.

김지원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 네, 오늘부터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려고요. 아침저녁 출근길이 너무 막혀서 대중교통으로 이십분 거리를 자가용으로는 한시간이 넘게 걸리는 아이러니가··· "

그녀의 말대로 현재 회사 앞 8차선도로가 꽉꽉 막혀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옥철만 그런줄 알았더니 일반도로도 그리 상황이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 그럼 출근도장 찍고 콜? "

김지연은 자연스럽게 하늘정원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들었고 그런 모습이 우습기도 하면서 귀여워 현태는 웃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어제 추천한 인물에 대해서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두눈을 반짝이는 김지원은 먼저 성급하게 후보자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자신이 말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

확실히 그녀는 남다른 사회경험이나 눈치가 있었다. 나이를 생각하면 눈치에 가깝겠지만.

언제나처럼 출근을 마친 둘은 하늘정원에 자리했다. 달라진 점은 김지원의 두손에 아메리카노가 하나씩 들려 있다는 점이었다.

" 여기요. "

" 뇌물? 이거로는 안되는데··· "

현태의 너스레에 입술을 삐죽내민 김지원이 눈을 흘겼다.

" 당연하죠. 이건 일종의 에피타이저구요. 컨펌되면 제가 저녁 거하게 사드릴께요. "

" 하하, 오케이. 거래 성립. 근데 그 후보자가 이력서를 보낼지는 확실하지 않아서 큰 기대는 하지마. "

어제 김채동의 모습을 떠올리며 현태가 슬며시 발을 뺐다. 너무 큰 기대를 주면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었으니까.

" 에이, 알죠. 어짜피 제가 후보자로 찾은 인물들부터 올릴 생각이에요. 너무 부담갖지 마세요. "

" 그래도 한번 노력은 해볼께. "

" 네, 고마워요. 현태오빠. 근데 아까 그 책들은... "

그렇게 둘이 장난치며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김채동은 회사에 출근해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그가 다니고 있는 곳은 대한정밀㈜로 제법 큰 공장을 가진 정밀가공업을 주업을 하는 회사였다.

어제 정기적으로 납품하는 2차밴드업체에서 자신의 회사가 제외되었다는 소식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일년 매출의 20%나 차지하는 거래처가 하루아침에 끊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이 중간 관리자인 자신에게 주어졌다.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게 사회의 부조리, 비정함이었다.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김채동은 항상 자신이 쉬는 자리에 가서 담배 한개비를 꼬나물었다.

" 휴우, 시벌. 몇년동안 이곳에서 뼈빠지게 근무한 댓가가 이건가? 망할 새끼들. "

회사에서 짤리지는 않았지만 징계를 받은 상황, 김채동의 기분은 어느때보다 더러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십년이 넘는 시간을 충성했다. 틈틈히 자기개발을 위해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그런데 단지 고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학교 나와 사무직을 맏은 인간들보다 낮은 대우를 받으며 보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정밀기기의 가격만 해도 수십억에 달하고 자신의 기술로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공장 곳곳에 자신의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었다.

처음 입사할때 조그만 정밀공장에 지나지 않았고 회사 사장도 직접 정밀기기를 만지면 함께 일하면서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면서 사장은 공장의 기름칠보다 남들이 따라주는 알콜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그는 영업이란 핑계하에 점점 공장에 발을 디딛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경력직이라고 어디 대기업 산하의 공장에 근무하던 남자를 스카웃해 공장장이 취임하면서 자신은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온갖 견제를 받으면서 공장에서 기름때만 문지르던 김채동은 결국 사소한 트집을 잡혀 현재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 진짜 드러운 상황이네. 휴우, 그만둘 수도 없고··· 아! "

그때 김채동의 뇌리에 카페에서 만났던 남자, 장현태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나 해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지만 연락이 온 것은 없었다. 지금같은 상황이면 그 남자의 제의를 거절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에 공장의 담벼락에 기대 하늘을 보며 담배연기를 내뿜던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였다. 어제 만난 그 사내, 헤드헌터라고 소개했던 그 장현태의 문자였다.

내심 반가우면서도 기막힌 타이밍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 (주)솔라(Solar)발전 채용정보 ]

그렇게 시작하는 문자는 MMS로 엄청나게 긴 문자였다.

김채동은 담배를 손에 쥔 채 그가 보내온 문자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끝까지 읽은 그는 이제 필터만 남은 담배를 털어내며 자신의 철없던 젊은 시절을 함께한 공장 건물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마치 영원하자던 애인에게 이별을 고하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 큭,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늦지 않다, 늦은건 당신의 마음뿐이라는 그 누군가의 말이 맞나보네. 후우... "

그렇게 중얼거린 김채동은 제출할 이력서에 필요한 서류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윗층에서 총무계 직원이 자신에게 도착한 우편물을 가져왔다.

설래는 마음으로 우편물을 개봉하는 현태는 설래는 얼굴이었다.

처음으로 도착한 이력서이기에 더욱 그랬다.

" 아, 마효준씨 이력서구나. "

적성이 일식 요리사였던 그였다.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후보자 중 한명이었기에 소중한 이력서였다.

이력서(履歷書). 일명 입사지원서라 불리는 그것은 양식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양식은 존재했다.

당연히 각 회사별로 조금씩 달랐지만 큰 줄기는 비슷했기에 한번쯤 이력서를 써본 사람들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마효준이 보내온 이력서는 현태가 보기에도 형편없었다.

" 도대체 그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거야? "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성의가 없었다. 들쭉날쭉한 글자크기부터 손으로 썼다고 하지만 억지로 봐야 알아볼 수 있는 악필까지.

거기에 가장 큰 감점요인은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최소한 그 회사에 왜 들어가고 싶은지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그런 내용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냥 단순히 자신의 기본정보와 자랑 몇가지, 거짓말처럼 보이는 무용담을 뻔뻔하게 적어놓았던 것이다.

받은 이력서는 이 이력서가 처음이지만 결코 이것은 피엠에게도 통과하지 못할 게 뻔했다.

아니 자신이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솔직히 살짝 손봐주려 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마효준의 이력서를 들고 끙끙대고 있을 무렵, 자신의 사수 이미자가 자리에 착석을 했다. 그리곤 현태를 보며 인사를 했다.

" 현태씨, 열심히네. 벌써 후보자 이력서도 받고 말야. "

그제야 이미자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슬그머니 이력서를 내려놓았다.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 아, 네. 미자님. 아하하··· "

그녀를 미자님이라 부르는 현태는 오글거리는 느낌을 참기 힘들었다. 엄마뻘 되는 여성의 이름에 님을 붙여 부르는게 어색해 죽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다른 헤드헌터들은 선배라고 호칭을 부르길 원했다.

이미자는 그런 호칭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서 이력서에 관심을 보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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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3 흑전사
    작성일
    24.06.20 13:20
    No. 1

    이력서 잘 작성하는 건 참 중요하죠. 저도 이렷서 쓰기 싫어서 전 직장에서 36년 근무했는데, 정년 후 새 직장찾으면서 이력서를 많이 썼네요. 어떤 때는 다운, 어떤 때는 업으로요.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내내 직장생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새도우
    작성일
    24.08.10 08:22
    No. 2

    아는채 는 아는 체 로
    알콜을 은 알코올 로
    건필하기를.......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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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발로 뛰어라(2) +2 24.05.10 484 15 17쪽
6 발로 뛰어라(1) +1 24.05.09 507 16 13쪽
5 취업준비(5) +2 24.05.08 516 17 13쪽
4 취업준비(4) +3 24.05.08 532 19 13쪽
3 취업준비(3) +2 24.05.08 544 18 12쪽
2 취업준비(2) +1 24.05.08 583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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