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적성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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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JaeK
작품등록일 :
2024.05.08 14:15
최근연재일 :
2024.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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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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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천생연분(9)

DUMMY

그 전화기를 타고 높은 데시벨의 여성 목소리가 나에게 들려왔고 나연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 응. 오빠 사무실이야. 난 이제 오빠 없이는 안돼. "

뭔가 오해를 살만한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꾹 참고 끝까지 통화가 끝나길 기다렸다.

" 아니야. 응, 유학 안가. 결혼 허락할 때까지 여기서 살꺼야. 응, 도움은 없어도 돼. 응? 바꿔달라고? 아,아니.. "

그 말에 성큼 나선 내가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채 받았다.

" 네, 전화 바꿨습니다. "

- ··· 후우, 도대체 어쩔 생각이에요? 네?

충분히 이해하 수 있는 반응이었다. 만약 내 조카가 나연이처럼 행동을 했다면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서 깽판을 쳤을 것이니까.

" 죄송합니다. 나연이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제가 먼저 찾아뵙고 허락을 받았어야 했는데.. "

- 그래서요? 그건 이후에 결정하시고 일단은 나연이를 설득해서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 남는 방에 재우고 내일 아침 일찍 같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어떤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안된다는 것은 그쪽이 더 잘 알텐데요. 그 아이는···

" 네, 지금 마스크를 벗고 있어요. 어머님. 절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 후우, 그게 가능할 것 같나요?

" 네, 믿어주십시오. "

- 어쩔 수 없네요. 믿을께요. 하지만 내일 꼭 데려다 주세요. 아마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할꺼에요.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이쁜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조금 공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어떻게든 설득을 시켜야 할텐데. '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휴대폰을 건내주자 그녀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 그런 나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도 돼요? "

" 응, 그럼. 배는 안고파? "

" 배 고파워, 근데 나 외박하는거 처음이에요. 헤헤. "

너무 순진한 얼굴의 그녀를 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순진한 아이와 결혼을 결심한 스스로가 말이다.

시간을 보니 저녁시간이 끝난 시간대였다. 직원 복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세끼를 회사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그 시간만큼은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 뭐라도 시켜 먹을까? "

" 아뇨. 혹시 집에 라면 있으면 제가 끓여드릴께요. "

라면이라. 정말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었다. 애초 여기 식당에서 말만 하면 라면을 끓여주긴 하지만 굳이 찾아서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문제는 라면을 먹으려면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집의 구조를 생각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 어, 흠.. "

나가서 먹는 것도 부담이었고 본인이 라면을 끓여준다고 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 빨리요. 여기 건물에서 살고 있다고 했잖아요. 가고 싶어요. "

어차피 공개해야 할 집이었다. 하지만 망할 박사장이 원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그,그래. 근데 놀라지 마. 내 사는 곳이 조금 특이해. "

" 히히. 괜찮아요. 빨리 가요. "

그렇게 나가니 이미 직원들은 모두 퇴근을 한 상태였다.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난 채팀장이 강제로 모두 퇴근을 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채팀장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내 방까지 내려온 나는 처음으로 외부인을 내 집안으로 들였다.

" 우와, 여기 뭐에요? 너무 이뻐요!? "

이게 이쁘다고? 벽이 없고 투명한 창으로 이뤄진 집이 뭐가 이쁘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다 그녀가 화장실로 쏙 들어가는 모습에 내가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외쳤다.

" 일단 손부터 씻을께요. 와 여기 진짜 좋아요. "

쏴아아. 물소리가 들리자 저절로 내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이건 본능이었다.

근데 내 눈에 보인 것은 불투명한 유리였다.

" 뭐지? 창이 왜 불투명하게 변해? "

" 이거 몰라요? 꽤 유명한 인테리어인데. 외국에는 투명한 화장실인데 들어가면 불투명하게 변하는 곳도 있데요. 여기 터치하면 투명과 불투명을 조정할 수 있어요. "

그렇게 말한 그녀가 무엇을 건드리자 다시 투명하게 변했다 불투명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게 재미있는지 몇번을 그렇게 조작하다 나와서 익숙하게 주방으로 간 그녀가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냄비와 그릇을 꺼내들고는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누군가 저 주방을 이용했고 그 대상이 나연이라는 생각에 뭔지 모를 만족감이 충만해졌다.

그러다 젊은 남녀가 아무도 없는 공간에 단 둘이 이 곳에 존재한다는 느낌에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 안돼. 나연이 어머니와 약속했어. 정신차려. '

문제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들이 그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옷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급히 눈을 돌려 휴대폰을 보면서 뉴스를 검색하고 있지만 온통 정신은 라면을 끓이고 있는 주방으로 향해 있었다.

" 오빠, 다 됐어요. 오세요. "

그녀가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고 나는 좀비처럼 주춤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라면을 끓인다더니 요리를 만들어 놓았다.

" 너 요리도 잘하는구나. "

" 엄마가 잘해서요. 보고 배운거죠. "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여성이었다. 사기라 할 수 있는 그녀는 음식 앞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어서 먹어보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그렇게 첫 젓가락질을 했다.

보기에만 좋은게 아니라 맛도 좋았다. 정신없이 라면을 흡입한 나는 엄지손가락을 들며 외쳤다.

" 맛있다. 너랑 결혼을 꼭 해야겠다. 무조건. "

" 저도요. "

배시시 웃는 그녀를 보는 순간 이성을 잃을뻔 했지만 간신히 부여잡은 내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 나 씻을께. "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벽에 붙어 있는 기기를 터치하니 불투명하게 변하는 욕실 벽을 보며 천천히 옷을 벗어 씻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로 씻어야 진정이 될 것 같아 얼음장같은 물로 샤워를 마친 나는 아차했다.

' 아, 속옷.. 잠옷.. '

아무 생각없이 혼자 살때처럼 옷을 훌렁 벗고 습관처럼 그대로 샤워를 한 것이다.

잠시지간 머리속이 하얗게 변한 내 앞에 욕실 입구에 가지런히 속옷과 잠옷이 놓여져 있었다.

애초 이 집 자체가 잠굴 수 있는 문이 없었기에 혼자가 아니라면 움직일때 조심을 해야 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입고 나가니 거실에 혼자 나연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 아, 그 책 읽을만해? "

" 네, 제가 좋아하는 작가에요.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벌써 구하셨네요. "

" 나도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 작가가 쓴 에세이도 읽어봐, 내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된 책이었어. 그리고··· "

책을 좋아한다더니 나와 취향이 비슷했다. 그녀가 가진 적성과 적합도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즐겁게 대화를 하다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

" 그 인연을 보는 것 말이야. 나는 어떻게 보여? "

" ··· 반짝반짝 빛나요. 오빠의 모든 부분이··· 그리고 그 빛은 정확하게 나를 향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

그녀는 나와는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비접촉 방식으로 상대를 등록하고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간에 인연이 느껴지면 운명의 실이 뻗어나와 인연이 있는 상대방과 연결되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 운명의 실을 만지면 그 서로에 대한 정보가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 근데 오빠에겐 너무 큰 운명의 실이 보여요. 마치 거대한 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운명의 실이요. 그 중 가장 큰 줄기가 나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오빠만 보면 눈이 부셔요. 너무 찬란하게 빛나고 있어서.. "

그 말을 다 듣고나서 나연은 자신의 능력을 전부다 파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 느끼고 분석한 사실을 토대로 그런 정보를 얻은 모양이었다.

" 흠, 일단 나랑 같이 그 능력에 대해 천천히 알아보자. 아마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야. "

" 히히. 그럼요. 좋아요. "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녀를 내 집무실 원룸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그녀는 일어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 나연아. 내일 일찍 너희 집에 가야하니까··· "

" ··· 그냥 여기서 같이 자면 안돼요? "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간절한 얼굴은 폭력적인 수준이었다.

남자라면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그런 절대적인 힘을 지닌 존재처럼 보였다.

" 알았어. 그럼 네가 침대에서 자. 내가 여기서 잘께. "

" ··· 힝. 알았어요. 그럼 잠깐 안아줘요. "

이건 너무 위험했다. 밖에서 옷을 다 갖춰 입은 상태에서 포옹은 이성의 끈을 유지할 수 있지만 지금은 거의 맨살이나 다름없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였기에 남자의 본능을 억누르기가 너무 힘든 상태였다.

" 그건 안돼. 지금 내가 힘들어. 알지? 남자로써 말야. 여기서 더 나가면 나도 참지 못할꺼 같아. "

" 왜 참아요? 나도 23살이라고요. 알건 다 알아요. "

" 안돼! 지금 콘돔도 없단 말야. "

" 나 안전한 날인데.. "

여기서 참으면 고자였다. 무려 8년간의 욕망을 절제하는 스님생활의 끝을 고했다.

그녀의 모든 것이 슬프도록 아름다웠고 그녀가 내뿜는 교성은 현악기처럼 집안 곳곳을 울렸다.

그녀의 적성대로 우리는 너무 잘 맞았다. 아니 단순히 맞는다는 수준을 뛰어넘어 극도의 쾌락에 새벽까지 몸부림쳐야 했다. 이건 단순히 욕망에 의한 섹스가 아니라 영혼과 영혼의 교합이었다.


전날밤을 온몸을 불태운 덕분에 두세시간 자고 일어나야 했던 나는 퀭한 두눈을 비비며 옆자리를 바라보았다.

하얀 나신이 이불사이로 삐죽 나와 있는 모습에 다시 불끈했지만 억지로 자제를 한 나는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실로 향했다.

간밤의 전투흔적이 쇼파부터 침대까지 널부러져 있었지만 치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간단하게 씻고 냉장고를 열어 시리얼을 준비한 나는 침실로 걸어가 고요하게 잠든 나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번이고 봐도 질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옛말에 얼굴 뜯어먹고 살면 얼마 못간다는 말이 있지만 그녀는 평생을 뜯어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미모를 자랑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과 핑크빛 유두, 매끈하게 이어지는 하얀 피부를 따라 유려한 곡선을 이루는 몸매는 정말 모든 남자들의 워너비 몸매임에는 틀림없었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는 165정도 임에도 170이 넘어 보이는 것은 비율때문이었다.

그렇게 미소를 띄으며 곤히 자는 그녀에게 뽀뽀를 하자 살짝 눈을 뜬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 잘 잤어요? 오빠? "

" 응, 일어나 씻고 밥 먹자. 그리고 본가에 가서 인사부터 드리자. "

" 네. 저 일어나게 잠깐 나가 있어요. "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내가 자리를 비켜주자 인기척이 들린 이후 그녀가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 꺼냈는지 내 목욕가운을 걸친 그녀가 도도한 걸음으로 나에게 눈웃음을 보이곤 그대로 욕실로 사라졌다.

과거 어릴적 발레를 했다고 하더니 자세부터 걸음걸이까지 너무 정확하고 발랐다.

나는 침실로 가서 침대시트를 거둬들였다. 밤새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트를 세탁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 그녀가 흘린 핏자국도 너무 선명해서 그녀가 씻는 동안 치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널려 있는 옷가지까지 치우자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 그냥 내가 치워도 되는데. "

" 괜찮아. 일단 밥먹고 출발하자. 부모님이 기다리시겠다. "

" 응. 알았어요. "

묘하게 어제보다 성숙해진 그녀는 차분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 오빠, 욕실에 내꺼 칫솔 놔뒀어. "

" 그래, 그게 왜? "

" 그렇다고. 오빠는 이제 내꺼라는 표식이라는 말이야. 히히. "

" 큭, 알았어. 놔둬. "

뭔가 목적을 달성했다는 표정의 그녀는 나를 따라 지하 주차장에 들어갔다.

" 여기는 나중에 구경시켜 줄께. 재미있는 시설이 많아. "

" 네. 기다릴께요. "

나는 내가 처음으로 산 내 국산 중형 자동차에 몸을 실고 나연이를 옆좌석에 태운 이후 곧바로 그녀의 본가를 향해 달렸다.

" 어, 근데 네 캐리어가.. "

" 그거 오빠 집무실 방안에 놔뒀는데? "

" 흠, 일단 그건 나중에 챙기자. "

" 응, 나 오빠랑 결혼하기전에 동거부터 할꺼야. "

갑자기 너무 급발진 하는거 아닌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넘어가 버렸다. 이건 인간을 홀리는 세이렌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그녀의 부모님부터 설득을 할 생각이었다.

본래는 교제 허락이었지만 어느새 동거 허락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 미치지 않고선 천금같은 딸을 다른 남자와 같이 살게 허락을 한다고?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 보자. '

방법이 없었다. 나도 이젠 나연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녀의 본가는 성북동에 위치한 2층짜리 전원주택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 중 하나인 성북동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재력을 옅볼 수 있었다.

나는 주변에 차를 세워두고 나연과 함께 대문으로 다가가 비번을 누르고 안으로 들어섰다.

" 나연아, 일단 왔다고 알려야 하지 않을까? 무작정 이렇게 비번치고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

" 헤헤. 괜찮아, 오빠. 어제 이미 연락을 했잖아. 아마 엄마랑 아빠도 출근안하고 날 기다리고 있을껄. "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묵직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 크음, 늦었다. "

" 나연아, 이리 와서 앉아봐. 어휴.. 마스크는 왜 안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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