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2,554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5.22 03:07
조회
394
추천
11
글자
12쪽

15화

DUMMY




대한민국 네티즌 놈들은 역시나 징글징글 맞은 놈들이었다.

인터넷 강국과 빨리빨리 문화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채팅창은 순식간에 이천식의 차기 지역구 후보를 간파해내기 시작했다.



- 딱 봐도 분당이네

- 그러게. 아버지 병원이 거기 있으니.

- 더 결정적인 건 고등학교 때 잠깐 분당에 살았음.

- 우리 옆 동네에 살았었네. 특목고 출신이라 살았던 거 나는 미처 몰랐다네.

- 난 경상도 사투리도 좀 있고 출생지가 대구 출신이라고 프로필에 나와서 고등학교도 대구에서 나왔는 줄.



‘‘자! 채팅창 보니까 대충 그림이 나오는데, 어때요, 이기자, 분당이 맞습니까?’’


한소라의 질문에 이현호가 여전히 의미심장한 미소과 함께 짧게 대답했다.


‘‘노코멘트. 거기까지.’’


저 개씹새끼, 여전히 정말 재수 없었다.


‘‘자! 그러면 또 다음 주제로 넘어가 ......’’

‘‘어이! 최씨!’’


내가 느닷없이 최웅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 고견도 좀 들어봐야지 않겠나?’’


본능적으로 나를 무시하는 이현호 저 새끼랑은 애초 말을 섞기 싫었다.


‘‘그래. 요즘 좀 떴다고 하도 비싼 척 하고 있기에 그냥 넘어가려고 했지. 어디 한 번 또 입 털어 보시게.’’

‘‘음, 내 생각에는 모두들 틀렸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현호는 바로 실소를 내뱉었다.


‘‘누가 틀렸다는 거예요, 강소장님? 설마 나까지?’’


나는 이현호를 애써 외면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천식이는 엄청난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는 친구죠. 나이가 아직 30대에 불과한 데다 벌써 이 정도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겠고요. 이천식이는 또한 엄청나게 치밀한 친구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번 총선도 훗날 대권으로 가기 위해 최대한 활용할 생각이죠. 그래서 몇 달간 가족회의도 수시로 하면서 엄청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푸훗! 식이 형이 저한테 가족회의 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안 하던데요?’’

‘‘그 결과, 험지에 출마해 살신성인한다는 이미지도 챙기고, 다른 후보들 지원 유세에 적극 나서면서 자기 계파 형성도 도모하고, 또 지난번과는 달리 당선 되어 국회도 입성하고 싶고, 또 미래 대선 주자를 위한 상징성도 가지고 싶고 등등, 그렇게 다목적 포석을 위한 지역구 하나를 결정하기에 이르죠.’’

‘‘푸하하하!’’


이번에는 이현호 입에서 실소를 넘어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대체 그렇게 명분과 실리 모든 걸 다 얻어낼 수 있는 그런 만능 지역구가 어디 있죠? 정치라는 게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내 주는 게 기본이라는 걸 설마 모르시는 건 아니겠죠, 강대구. 아니 걍됐구 시사평론가님? 푸하하하.’’


이현호 이 새끼는 항상 이런 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지보다 서너 살은 더 많은데 항상 이렇게 조롱하면서 가르치려 든다.


진짜 언제 스튜디오 밖에서 저 새끼랑 한 판 뜰까 하는 생각한 적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은근히 와이셔츠 사이로 엿보이는 그의 쇠 근육과 총 합해서 15단이라는 그의 무술 스펙이 나로 하여금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게 만들어 왔다.


‘‘그런 지역구가 한 곳 있죠. 명분과 실리 모든 걸 다 얻어낼 수 있는 그런 만능 지역구.’’

‘‘그게 어딘데요?’’


이현호가 턱까지 내밀며 물었다.


‘‘종로구요.’’

‘‘종로구?’’

‘‘예. 요즘에는 약간 이미지가 퇴색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 전통적 정치 1번지 종로구. 지금껏 다수의 대선 주자 후보 급이 출마하고 당선되었던 종로구요.’’


뒤늦게 스튜디오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천식이 종로구에 출마한다고 한 번 상상해보세요. 우선 종로가 최근에는 진보세가 강한 곳이라 절대 쉬운 지역구는 아니니 험지 출마에 살신성인 명분이 서겠죠? 둘째로 서울 한 가운데 종로구에서 출마하면서 수도권 중요 격전지에 지원 유세하기도 편하겠죠? 셋째, 만약 종로에 출마해서 당선되게 되면 차기 대선주자 급으로 정치적 입지가 급상승 할 수 있겠죠? 넷째, 설령 진다고 해도 종로라고 하면 상대 후보가 보나마나 엄청나게 중량감 있는 인물일 테니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천식 입장에서는 잃을 게 없겠죠? 결론적으로 이천식 입장에서는 종로 출마가 완전 꽃놀이패라는 이야기죠.’’


짝짝짝.


최웅이 박수를 쳐 주었다.

최웅을 따라 한소라도 박수를 쳐 주었다.

이현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그러니까, 꽃놀이 패고 뭐고 간에, 내가 천식이형한테 들은 지역구는 종로구가 아니었다니까요.’’

‘‘그럼, 이현호 기자. 이천식 최고위원한테 직접 들은 이야기 이제 발설해 보시지.’’


최웅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이현호를 긁어댔다.


‘‘아이, 천식이 형이 아직은 이거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


이현호가 평소 보기 힘든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 좋아요, 정 그러면 ...... 천식이 형 말로는 분당 출마 준비한다고 했어요. 분당 갑이 사고당협이라 다 다음 주 조직강화특위에서 새로운 당협위원장 임명될 예정인데 거기에 지원할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마 전에 간만에 모교에도 찾아가 인사 드렸다고 하더라고요.’’

‘‘아! 분당 맞나요? 역시나 우리 시사팩폭쇼 시청자들 검색 능력 짱이네요, 호호호.’’


한소라가 자기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을 향해 엄지 척을 내밀며 말했다.


‘‘이렇게 직접 당사자한테 들은 사람이 있는데, 무슨 난 데 없는 종로 이야기가 나오는지, 쯧쯧.’’


이현호가 나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킥킥. 야! 걍됐구! 운빨로 요즘 좀 맞추고 있다고 선은 넘지 마라. 실력은 영원하지만, 운빨은 한계가 있는 법이잖아.’’


최웅이 이현호와 나를 더욱 싸움 붙이려 일부러 키득거리며 말했다.


‘‘쯧쯧.’’


나도 이현호를 향해 앙갚음하듯 혀를 찼다.


‘‘그 쯧쯧의 의미는?’’


이현호가 반말 가까운 기분 나쁜 어조로 내게 되물었다.


‘‘이기자! 이천식 선배님이 당신을 이용해 먹으려는 생각으로 정보 흘렸다는 생각은 정녕 안 드시나?’’

‘‘뭐, 뭐라고요?’’

‘‘이현호 기자 유행어 있잖아’’

‘‘내 유행어? 그런 게 있어?’’


이현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응. 아까도 시전하시던데.’’

‘‘대체 무슨 유행어?’’

‘‘이거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쩌고 저쩌고.’’

‘‘뭐, 뭐야?’’

‘‘가만 보면 매번 그러면서 다 이야기 하더만. 아까도 천식이 형이 아직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면서 다 했잖아요.’’

‘‘하, 참나.’’


이현호가 당황해 말문 막힌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앞에서 처음 보이는 그의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머리 좋은 이천식이 그걸 노린 거죠. 이기자한테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꼭 어디 가서 말한다는 거. 그래서 이렇게 분당 쪽에 출마하는 척 거짓 정보를 흘려서 사람들 시선을 돌려놓은 후 실상은 비밀리에 종로 지역구 작업 치려는 거. 원래 종로는 정치 1번지 상징성 때문에 유력 정치인들이 입맛을 다시는 곳인데, 너무 일찍 소문나면 견제가 들어오는 등 역효과가 있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아니까.’’

‘‘푸하하하.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칩시다. 내 주장은 그래도 천식이 형이 직접 귀뜸해 준 걸 바탕으로 하는 건데, 강소장님은 뭐 있어요? 천식이 형과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천식이 형 측근과 연 닿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럼, 혼자만의 추측이에요? 대체 뭘 믿고 그 따위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요? 예?’’


이현호가 잔뜩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정보원은 밝힐 수 없습니다.’’

‘‘정보원은 무슨 놈의 정보원, 쯧쯧.’‘

‘‘하지만 제 주장을 뒷받침 할 증거는 말해드릴 수 있죠.’’

‘‘증거? 어디 한 번 말해보슈. 대체 증거가 뭔데?’’

‘‘이천식 대신 이천식 부모님이 지난주부터 종종로 쪽에 집을 보러 다니신다는.’’

‘‘뭐, 뭐라고?’’

‘‘이천식 뿐 아니라 집 전체가 종로 쪽으로 이사하려고 집 보러 다니고 있어요. 거기 종로 쪽에 유명한 K 아파트 단지 있잖아요. 아마 거기로 조만간 계약하지 않을까 싶다는.’’


와아!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원지는 최웅이었다.


‘‘야아! 이 정도 구체적인 내용이면 농담 아닌 것 같은데. 강소장, 오늘도 또 한 건 하는 거야? 대체 요즘 진짜 뭔 일이래? 뭐 접신이라도 된 건가?’’


이현호 얼굴이 아예 붉으락푸르락 변해 있었다.


‘‘마, 만약 지금 이 말 다, 당신을 책임 질 수 있어요?’’


얼마나 멘탈이 나가고 만 건지 이현호가 말을 더듬고 비문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반면 나는 무감정 부동심 1그램의 평정심도 잃지 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제 말의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뭐, 뭐야? 아니 .....’’

‘‘대신 ......’’

‘‘대신, 뭐?’’

‘‘...... 제 말이 저의 존재를 책임질 뿐이지요.’‘’


스튜디오에서 탄성, 박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이현호가 그로기 상태니 눈과 다리가 풀렸다느니, 아니 아예 케이오를 당했다느니.

나도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



나와 이현호 방송을 본 이천식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당사에서 마주친 기자들의 종로 출마 준비설에 대해 질문하자, 아무 대답 없이 씩 웃고만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눈치 빠른 이현호라면 충분히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천식이 지를 배신하고 역정보용으로 이용해 먹으려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강소장님! 초면에 실례하지만 말씀 좀 해 주세요.’’

‘‘......’’

‘‘예? 아니면 저희랑 좀 따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

‘‘아니, 저희는 이천식 공천 건 물어보려고 만나자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냥 강소장님 본인 취재를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요즘 워낙 핫하시잖아요, 호호.’’

‘‘.....’’


이천식이 그러했듯이 나도 아무 대답 없이 씩 웃어 보이기만 했다.

물론 전화 통화라 내 살인미소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었지만.


오늘 하루만 아홉 번째 기자 취재 요청이었다.

다른 기자 취재 요청은 그냥 쌩 까거나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지금 이 뉴스 종합 채널 WTN 뉴스의 인터뷰 요청은 무작정 거절하기 좀 뭐 했다.


연락을 해 온 이가 다름 아닌 미스코리아 출신 기자로 유명한 송주나 기자였으니까.

약 15년 전 미스코리아에 출전한 그녀를 브라운관을 통해 보자마자 나의 이상형이라 생각한 바 있었다.


미국 명문 대학 출신인 그녀는 이후 언론고시라 할 수 있는 WTN 기자 시험에 합격하면서 미모뿐 아니라 지성까지 뽐낸 바 있었다.

그녀가 잘 나가는 벤처 사업가와 결혼했다는 뉴스에 잠시 실망도 했지만, 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는 희소식에 조촐히 혼자 샴페인을 터뜨린 기억도 아직 선명하다.


그런 그녀로부터 직접 인터뷰 요청을 받게 되다니.

정말 꿈같은 신분 상승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지상파 시사 코미디 프로와 라디오 시사 프로 두 곳에서 미팅을 가지자는 연락도 왔다.


하지만 우선은 완곡하게 다 거절했다.

아직 구체적인 섭외 요청이 아니었기도 하지만, 딱히 토론 프로 중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중구난방보다 메리트가 없어 보였으니까.


우선 다음 주부터 녹화가 시작될 중구난방에 연착륙을 성공하는 게 급선무였다.

거기서 존재감을 과시할 경우, 혹시나 공중파 방송국 앵커나 4대 일간지 논설위원 자리에?


으흐흐흐흐, 으흐흐흐흐.

이 놈의 귀여운 세상, 진짜 확 깨물어줄까 보다.

으흐흐흐흐, 으흐흐흐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24화 24.05.31 323 6 12쪽
24 23화 24.05.30 332 8 13쪽
23 22화 +1 24.05.29 341 5 11쪽
22 21화 +1 24.05.28 351 11 12쪽
21 20화 24.05.27 366 7 12쪽
20 19화 +1 24.05.26 377 6 12쪽
19 18화 24.05.25 372 6 13쪽
18 17화 24.05.24 374 8 11쪽
17 16화 +1 24.05.23 386 10 12쪽
» 15화 24.05.22 395 11 12쪽
15 14화 24.05.21 399 7 13쪽
14 13화 24.05.20 395 9 13쪽
13 12화 24.05.19 409 9 13쪽
12 11화 24.05.18 422 7 12쪽
11 10화 24.05.17 435 11 13쪽
10 9화 +1 24.05.16 447 12 12쪽
9 8화 +2 24.05.15 481 8 12쪽
8 7화 24.05.14 472 12 12쪽
7 6화 +2 24.05.13 471 12 12쪽
6 5화 24.05.12 501 9 12쪽
5 4화 24.05.11 525 10 13쪽
4 3화 24.05.10 545 11 13쪽
3 2화 +2 24.05.09 580 11 13쪽
2 1화 +3 24.05.08 624 11 13쪽
1 프롤로그 24.05.08 642 1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