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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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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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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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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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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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화

DUMMY




중구난방 녹화를 뜬 이틀 후.

편집 작업을 마친 프로그램이 예정된 시각에 방영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실시간 시청하기 좀 겁이 났다.

워낙 불만족스럽게 녹화를 마친 터라.


그래도 제작진으로부터 다음 녹화부터 나올 필요 없다는 언질은 아직 못 받았기에, 내 첫 공중파 출연작에 관한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TV 앞에 정갈한 자세로 앉았다.

하지만 우려는 곧바로 현실이 되어버린다.

방영 5분 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오는 감평 글들이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러댔다.



- 저 듣보잡은 저기 왜 앉아 있는 거야?

- 그러게. 오늘 처음 듣는 이름인데 대체 뭐가 핫 피플이라는 거야.

- 솔직히 저 사람 요즘 너튜브에서는 좀 핫하긴 해.

- 핫하긴 ㅅㅂ. 저 색히 아무리 봐도 주작질 하거나 얻어 걸리는 것 같던데. 그러지 않고서는 무슨 무당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다 맞혀.

- 다 떠나서 검색해 보니까 완전 급 떨어지는 애인데? 대학도 지잡대 출신, 지금까지 출연한 방송들도 하나같이 쌈마이 방송들인데.

- 진짜 어떻게 저런 게 중구난방에 나올 수 있지? 격 떨어지게.

- 우리 원택이 형님 성질 많이 죽으셨네 ㅠㅠ 저런 거랑 겸상도 다 해 주고.

- 어째 중간에 테이블 엎고 나가시지 않을까 걱정된다 ㅋㅋ

- 우리 아버지가 늘상 하는 말씀이 있지. 사람도 원산지가 중요하다고. 저런 근본 없는 애는 금방 바닥 드러나.

- 초장부터 예상대로 완전 꿔다 놓은 보릿자루네. 시작한 지 10분 동안 인사말 외에는 고개만 끄덕이고 있네. 저렇게 마네킹 질 하려면 대체 왜 출연한 거야? ㅉㅉ

- 저 새끼 아무리 봐도 낙하산 같지 않냐. 사장 친척인가?

- ㅋㅋㅋ 정원택이랑 김여중이랑 5분 째 한 마디도 말 안 시키는 중

- 너 같으면 저런 급 떨어지는 애랑 말 섞고 싶겠냐

- 간만에 입 여나 했건만 저 정도 이야기는 울 초딩 조카도 한다

- 아이 오늘 졸라 재미없네.

- 진짜 역대급 최악 방송이다.

- 급이 안 되면 애초 섭외가 들어왔어도 나오지 말았어야지. 프로그램 전체에 민폐나 끼치고 있고 ㅉㅉ

- 으잉? 방금 저 색히 뭔 소리 하는 거야?

- 나도 이해가 안 가. 그러니까 장성동이랑 안청래랑 축구 포지션 자리다툼 때문에 감정이 상해서 국회 활동 중에도 싸우고 있다고? 저게 말이야 방구야?

- 확실히 이 바닥은 스펙 떨어지는 애 금세 티가 남 ㅉㅉ

- 피디 색히야! 저 색히 다시는 부르지 마라. 시청 거부 운동하기 전에 ㅉㅉ

- 중구난방 요즘 시청률 떨어지고 있다고 해서 구원 투수로 쟤 수혈한 거 같은데. 오히려 쟤 땜에 호흡기 떼일 것 같다. ㅠㅠ

- 걍 그만 폐지해!



방영 시간 내내 이어지는 악플 향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인터넷 방송에서 악플 받을 때와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솔직히 인터넷 방송에서 악플은 내가 일부러 유도한 측면이 많았다.

인터넷 방송 속성상 악플이 많아야 오히려 조회수도 높게 나오고 이야기 거리도 많아지니까.

또 그렇게 사서 욕먹는 게 내가 추구하는 캐릭터의 일부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중구난방 실시간 채팅창에서 받는 악플은 내가 원하는 바가 전혀 아니었다.

설상가상 당장 나를 빼라느니, 아예 프로그램 폐지를 하라느니 이런 치명적인 댓글들은.

만약 제작진이 읽고 행여 결단을 내리는 사태까지 이르게 된다면?


에이 시발, 더 비참해지기 전에 그만 보련다.

야동이나 한 판 때리고 한숨 자련다.



+++



중구난방 방영이 끝나고 2시간여쯤 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렇다고 실시간 채팅창을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방송 후기 게시판을 클릭했다.

그나마 실시간 채팅창보다는 조금은 정제된 표현이 있을 터이니까.

인신공격이나 패드립 같은 악플 비난은 피하더라도 논리적이고 예의가 깃든 비판은 미래 다른 방송을 위해서라도 수용해야 하니까.


그, 그런데 가장 많은 추천수를 받고 있는 댓글이 ......

그것도 가장 빠르게 추천수가 오르고 있는 댓글이 ......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사람입니다. 역사 쪽 공부를 하면서 인터넷 매체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근데 오늘 처음 출연한 강대구 소장 저 분 정보력 후덜덜하네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냐면요, 제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 참의원으로 계신 분이 바로 작년 한일 국회의원 축구 대회 일본팀 단장이셨거든요. 얼마 전 지역 신문에 저 분 인터뷰가 떴는데, 한일 국회의원 축구 대회에 대한 부분이 좀 나와요. 그분이 한일 국회의원 축구 대회가 얼마나 중요한 행사인지 설명해주셨는데, 그 와중에 오늘 방송에서 강대구 소장이 했던 말이 그대로 나와요. 작년 한국 팀의 경우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국회의원 두 사람이 싸웠는데, 전해 듣기로는 그것 때문에 서로 자존심이 엄청 상해서 지금도 수시로 의사당에서 티격태격 정책 다툼 핑계 삼아 싸우고 있다 들었다고. 그만큼 한일 국회의원 축구 대회가 한국이나 일본 의원들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비중 있는 친교 행사라고. 여기서 인맥 잘 쌓아놓으면 글로벌 인맥이나 재계 인맥으로 발전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고. 근데 강소장 저 분이 정말 대단한 게, 제가 한국 사이트 어디를 검색해 봐도 이건 안 나오는 이야기이고 일본 사이트에서도 그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가 전부인데, 이걸 강소장 저 분 어떻게 아신 걸까요? 일본 지역 신문까지 다 볼 정도로 자료 공부하시며 방송하시는 분인가요? 어쨌든 ㅎㄷㄷ 하네요.]


- 이 글 실화임?

- 원글자 프로필 클릭하니까 거짓말 할 분은 아닌 듯한데. 실지 일본 거주에 통신원 맞음.

- 사실이면 이 분 말대로 강소장이라는 분 정보력 예사롭지 않은데요.

- 나 강소장님 팬인데, 오늘 좀 너무 조신하다 했는데 결국 이렇게 또 한 방 터뜨리고 가셨네.

- 저도 요즘 강대구 눈 여겨 지켜보고 있는데 오늘은 대선배님들 앞이라고 예의 차리느라고 그런 거고 방송 적응하면 아마 장난 아닐 거라고 확신합니다.

- 개동감. 요즘 강대구 완전 약 빤 기세인데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 넘 많더라.

- ㅇㅇ 오늘 강대구에게 실망한 건 정원택 김여중 네임밸류에 짓눌리고 공중파 방송이라는 부담감 때문에 인터넷에서만큼 재기 넘치는 드립을 못해서지, 저 양반 정보력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레벨에 도달했죠.

- 우리 중구난방 제작진이 괜히 섭외했겠음? 난 강소장 저 분 잘 모르지만 첨 보자마자 뭔가 있다고 눈치 깠었지.

- 방송을 위해 일본 지역 신문 기사까지 공부할 정도면 진짜 노력 많이 하는 분인가 봐요.

- 적응기 거치면 훨훨 날아다닐 듯. 좀 기다려 봐야지.



태세전환이란 네티즌들의 디폴트 값인 법.

또한 그 명제는 나 강대구에게도 적용된다.


‘‘어이! 신변!’’

‘‘어머머머머머!’’

‘‘응. 왜 그래?’’

‘‘아니, 며칠 째 계속 연락해도 연락이 안 되어서요.’’

‘‘으응? 무슨 일 때문에?’’


시치미를 뚝 뗀 채 신선혜와 전화 통화를 이어간다.


‘‘어머머머! 무슨 일 때문이라뇨? 중구난방 출연 잘 하셨나, 해서 계속 연락드린 거죠. 참! 오빠, 혹시 중구난방 방송 게시판 보고 계세요? 오빠 칭찬하는 글이 베플이 되었어요.’’

‘‘으응? 아이, 난 그런 거 통 안 봐.’’

‘‘어머! 왜요?’’

‘‘왜긴. 이제 곧 불혹의 나이인데 그런 거에 흔들릴 때인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지, 하하하.’’

‘‘그러지 말고 지금 바로 게시판 꼭 보세요. 사실 방송 때 오빠 반응 좀 안 좋았었거든요. 너무 소극적이다 뭐 그러면서. 근데 지금 대반전이 일어났어요. 오빠보고 방송 준비를 위해 공부 되게 열심히 하는 시사평론가다 어쩐다 막 이러면서 칭송글들이 ......’’

‘‘아이, 참. 무슨 방송 준비를 위해 공부를 한다고 그래? 공부란 그저 죽을 때까지 무의식적인 일상 행위여야 하는 법이지, 하하하.’‘’


신선혜는 나 자신보다 더 했던 것 같다.

중구난방 채팅창을 다 훑고 지나가더니, 방송이 끝난 후에는 게시판까지 섭렵한 듯하다.

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신 님이시여, 하하하.


‘‘여보세요.’’

‘‘야! 쯧쯧.’’


신선혜와 통화를 마친 후 친동생 주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중구난방 녹화를 마치고 나왔을 때 가장 궁금해 하며 문자를 보내왔던 2인이 신선혜 와 주화였으니까.


‘‘야! 뭐 하냐? 밥 먹었냐?’’

‘‘으이그, 집안 망신이다, 집안 망신.’’

‘‘밑도 끝도 없이 뭐가 인마?’’

‘‘야! 넌 니 방송 출연한 거 모니터링도 안 하냐?’’

‘‘무슨 방송?’’

‘‘무슨 방송은. 드디어 공중파 입성한다고 어쩐다 그렇게 난리법석 호들갑 떨더니. 며칠 동안 내 문자도 읽씹하고.’’

‘‘바빴으니까 그렇지. 니년 오빠가 요즘 좀 바쁘냐.’’

‘‘바쁘긴 지랄. 앞으로 바쁠 일 없게 됐다, 인간아!’’

‘‘뭔 개소리야.’’

‘‘뭔 개소리는. 아직도 눈치 못 깠냐. 중구난방인지 뭔지 나온다고 해서 좀 전에 잠깐 봤는데 반응 장난 아니야. 바로 짜르라고 시청자들 난리도 아니더라, 쯧쯧.’’


누가 그랬던가.

가장 힘들 때 의지할 곳이라는 결국 가족 밖에 없다고.

그거 다 개소리다.

최소한 우리 가족은.


‘‘야!’’

‘‘왜?’’

‘‘조금 이따가 계좌나 확인해 봐.’’

‘‘뭔 계좌?’’

‘‘뭔 계좌는. 니 남편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 내가 니들 원조 좀 해주기로 약속했었잖아.’’

‘‘뭐, 뭐라고?’’

‘‘너희 요즘 좀 힘들다며. 매제 차 사고도 나고 그래서.’’

‘‘저, 정말?’’

‘‘왜? 싫어, 이년아?’’

‘‘울 오빠 최고! 강대구 만세! 사랑해! 나 다시 태어나도 오빠 여동생. 울 오빠한테 악플 단 새끼들 내 지금 당장 대댓글로 역습 가할겨, 호호호, 호호호호.’’


태세전환은 네티즌들 디폴트 값이자 동시에 우리 집안 유전자였다.


‘‘여보세요.’’

‘‘예, 강소장님. 접니다.’’


오늘 마지막 통화 상대는 중구난방 김피디였다.

이번에는 내가 건 게 아니라 그쪽에서 걸어왔다.


‘‘혹시 주무시고 계신 건 아니시죠, 강소장님? ......’’


시각은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각.


‘‘ ....... 제가 너무 밤늦게 건 거 아닌가요?’

‘‘아이고. 별 말씀을요. 오히려 너무 일찍 거신 거죠. 0시 조금 넘었으니까요, 하하하.’’

‘‘아이고, 다행이네요, 소장님. 사실 저 모임이 있어서 술집에서 술 마시는데 정원택 선생님한테 문자가 와서요.’’

‘‘예? 저, 정선생님께서요?’’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예. 원래 이렇게 늦은 시각에 문자 잘 안 보내시는 분인데 ......’’

‘‘뭐, 뭐라고요?’’

‘‘정선생님 또 평소에 남 칭찬도 많이 안 하시는 분인데 ......’’

‘‘그, 그런데요?’’

‘‘웬일인지 오늘 같이 첫 방송한 강소장님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늙다리들 배려도 해주면서 ......’’

‘‘예? 예, 그리고요 ......’’

‘‘젊은 친구가 방송준비도 아주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저보고 게시판 베플 글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아!’’


세상아! 이제 하다하다 너 나한테 교태까지 부리느냐?

푸하하하하하.


‘‘강소장님!’’

‘‘예.’’

‘‘아까 방송 끝나고 죄송했어요.’’

‘‘예? 뭐가요?’’

‘‘첫 방송인데 좀 더 덕담도 해드리고 용기도 북돋아드리고 그랬어야 하는데. 제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


태세전환은 네티즌 티폴트 값도 우리 집안 유전자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전 인류의 본성인 것 같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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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1 24.06.20 228 5 12쪽
44 43화 24.06.19 229 4 12쪽
43 42화 24.06.18 239 6 13쪽
42 41화 +2 24.06.17 235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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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화 24.06.12 23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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