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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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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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5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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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인기 토론 프로그램 중구난방 전격 출연!

내게 있어서는 입신양명을 위한 동아줄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지 않은가.

동아줄만 잡고 있는다고 알아서 내 신분이 상승될 리 만무하다.


동아줄 내려 준 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졸라게 알랑방귀도 뀌어야 하고 열나게 자기 노력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중구난방 제작진이 원하는 대로 얼른 캐릭터도 구축하고 집에서 공부도 열심히 해가지고 와야 하고 녹화장에서는 재기 넘치게 입도 털어야 한다.

그래야 동아줄을 내려 준 김피디를 위시로 한 중구난방 제작진이 나를 뜨게 해 주는데 보다 힘을 써 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또 간단치가 않다.

왜냐하면 동아줄이라는 걸 지금 나 혼자만 붙잡고 있는 상황이 아니니.


이미 오래 전 동아줄을 잡고 저 만치 올라가 있는 선배들이 있다.

정원택과 김여중.


다시 말해 나 혼자 잘 하려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나 혼자 너무 급히 올라가려들다 보면 역효과만 일어날 수 있다.

정원택과 김여중의 질투와 시기를 사 그들이 저 높이에서 일찌감치 동아줄 끈을 싹둑 잘라 나를 추락시키려 들지도 모를 일이니까.


‘‘예에?’’


나는 정원택과 김여중을 번갈아 쳐다봤다.

둘의 눈빛은 여전히 백팔십도 달랐다.

정원택은 위압적인 눈빛이었고, 김여중은 부드럽지만 눈동자 뒤에 뭔가 다른 세계가 감춰져 있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출연을 했으면 출연료 값을 해야 하지 않겠어? 강소장 의견은 어떠냐고?’’

‘‘아! 그러니까 질문이 ......’

‘‘으잉? 뭐라고?’’


정원택이 순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곧바로 김여중이 나를 보듬어주는 척 해주었다.


‘‘하하하. 아무리 녹화 방송이지만 토론 방송 중에 멍 때리는 건 강소장님이 최초인 것 같은데요. 벌써부터 캐릭터 잘 잡았네요, 하하하.’’

‘‘아! 예. 죄송합니다.’’


내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다시 정원택이 카리스마 넘치는 어조로 말을 걸어왔다.


‘‘질문이 뭐긴. 장성동과 안청래 상임위 설전 장면에서 강소장 보기에 누구 잘못이 더 큰 것 같냐고?’’

‘‘아참! 질문이 그거셨죠.’’


정원택과 김여중 시선이 내 입술 쪽으로 모여졌다.

둘 뿐만이 아니었다.

세트장 밖 김피디를 위시로 한 제작진들 시선 역시 모두 그러했다.


‘‘저는 장성동과 안청래 두 의원 다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정원택과 김여중이 씨익 하며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반면 세트장 밖 제작진들은 대부분 굳은 표정이거나 찌푸린 얼굴들이었다.


‘‘양비론인가?’’

‘‘예, 그렇습니다.’’


정원택과 김여중은 속으로 니 까짓게 그럼 그렇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보였다.

반면 제작진은 인터넷 방송에서와 달리 히마리도 없고 일반론적 이야기에 그치고 있는 나의 애티튜드에 적잖이 실망한 기색들이었다.


‘‘근데 말이에요, 김선생.’’

‘‘예, 정선생님.’’

‘‘둘이 자꾸 저러는 거, 그거지?’’

‘‘예, 딱 봐도 그거죠.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부터 정원택, 김여중 두 사람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지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장성동이나 안청래 둘 다 워낙 콘텐츠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죠. 다른 무기가 없는 양반들이죠.’’

‘‘참! 정치인들 이런 거 진짜 지양해야지.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맞습니다, 정선생님. 정치라는 영역이 원래 백조처럼 물 위와 물 아래 모습이 백팔십도 다르다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 선을 넘는 거잖아요.’’

‘‘에이, 차라리 백조는 물 위에 고고하고 우아한 모습이라도 보여주지. 그 두 인간은 물 위에서도 추한 모습만 보이니 비유도 안 맞지.’’

‘‘그러고 보니 그것도 또 그러네요, 하하하.’’

‘‘그 양반들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연기자들이야, 연기자들. 그것도 막장 드라마 연기자들.’’


둘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한 마디로 정의해 보면 이거다.

장성동과 안청래가 ‘적대적 공생’을 하기 위해 일부러 상임위에서 최대한 날 선 설전을 벌이고 있다는 거다.


‘‘근데 사실 이 바닥에서 저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나요, 정선생님?’’

‘‘그건 그렇지. 근자에 제일 대표적인 게 제주 도지사 한지사랑 여당 원내대표 주의원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틈만 나면 SNS에서 치고받으시죠.’’

‘‘중앙무대에서 밀려나 있는 한지사는 차기 대권을 위해서 어떻게든 기사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일부러 주의원 가지고 드잡이 질을 시도하는 거고, 주의원은 주의원대로 이제 원내대표까지 되었으니 기존 대권급인 한지사랑 맞다이로 붙으면서 자기 체급을 더욱 더 불리려는 거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정선생님?’’

‘‘으응. 뭐요?’’

‘‘항간에 소문에 의하면, 한지사랑 주의원이 서로 SNS에 디스전 하기 전에 문자로 오늘 내가 이런 내용 올릴 거야 사전 예고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다시 말해 둘이 대중들 앞에서는 원수처럼 싸우지만 실지로는 꽤 막역한 사이라는 설이요.’’

‘‘아하!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 참! 둘이 안 지 꽤 되지 않았나요?’’

‘‘그렇죠. 잠깐 당도 같이 한 적 있었잖아요 ......’’

‘‘아하! 맞아! 그랬었지? 혁신미래당 할 때 같이 당 지도부로 손발 맞춘 적도 있었지.’’


정치권에서 적대적 공생의 사례들.

나도 이 바닥 짬밥이 얼마인데 그 정도는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택과 김여중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한참 그렇게 지들끼리만 썰을 풀어댔다.


‘‘참! 김선생, 그럼 혹시 장성동과 안청래도 뒤로는 히히덕거리며 거래하고 그러는 사이 아닐까? 혹시 그 양반들 동선 겹치는 거 있지 않나.’’

‘‘에이, 그 양반들은 동선 겹치고 그러고 자시고를 떠나서 진짜 사이 안 좋아서 그러는 걸걸요.’’

‘‘그런가?’’

‘‘예. 둘 다 애초 물과 기름처럼 스타일이 안 맞잖아요. 그냥 둘 다 차기 총선에서 공천 따내야 하는데, 장성동이나 안청래라고 하면 상대당 입장에서는 밉상 중에 밉상이니까 서로 희생양 삼아 이용해 먹고 있는 거죠.’’

‘‘푸하하하. 그런가? 하긴, 두 양반 다 상대진영 입장에서는 극혐 대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위인들이니 역설적으로 적대적 공생하기 딱 안성맞춤이지, 하하하 ......’’


정원택과 김여중이 키득거리느라 잠시 틈새가 생겨났다.

순간 내가 그것을 비집고 들어갔다.


‘‘예, 근데 두 분이 동선이 겹치는 부분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요.’’

‘‘으잉? 뭐라고?’’


한동안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던 정원택, 김여중 두 사람이 동시에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장성동과 안청래 두 분이 과거 동선 겹치는 부분이 있긴 있어 보입니다.’’

‘‘음, 그래? 두 사람 같은 학교 출신도 아니고, 같은 당 한 적도 없고, 같은 상임위도 이번이 처음인 걸로 알고 있는데. 딱히 이전에 둘이 친분 쌓을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예, 친분 생길 동선은 없었지만 대신 감정 쌓인 동선이 있었죠.’’

‘‘으잉?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나의 밑도 끝도 없는 드립에 정원택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내게 여전히 울렁증을 불러왔다.


‘‘아! 그, 그게 말이죠. 그, 그러니까 매년 한국 일본 국회의원끼리 친선 축구대회를 하지 않습니까?’’

‘‘근데?’’

‘‘작년에도 했었는데, 작년 대표팀에 두 의원이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근데 둘 다 축구를 좀 하는 의원들이라서요. 군대에서도 그렇지만 보통 공을 좀 차면 다들 스트라이커를 하기를 원하잖아요. 그래서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두 의원이 감정싸움을 했었어요. 그 앙금이 지금 상임위에서 대놓고 두 의원이 으르렁거리는 발단이 되고 있는 거고요.’’

‘‘......’’

‘‘......’’


갑분싸.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갑분싸가 되어버렸다.


정원택과 김여중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세트장 밖 제작진들 표정도 별 반 다를 바가 없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논리도 빈약하고 근거도 전무하고 분위기에도 안 맞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기 바빴다.


생방송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소장님도.’’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테이지에 올라온 김피디가 정원택, 김여중에 이어 나에게도 인사를 건네 왔다.


‘‘......’’

‘‘왜요?’’


내가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 없이 고개만 슬쩍 끄덕이자 그가 물었다.


‘‘음 ...... 정말 죄송합니다, 피디님.’’


정원택과 김여중이 스테이지 밖으로 나가자마자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김피디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뭐가요, 강소장님?’’

‘‘뭐긴요. 오늘 활약이 너무 저조해서 그렇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

‘‘에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괜찮아요. 오늘은 그냥 탐색전 했다 생각하면 돼죠.’’


김피디의 말은 솔직히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 나의 부진을 재확인하는 듯한 말이라서 뼈만 아파왔다.


‘‘사실 제 딴에는 공부도 해 오고 연구도 해 오고 그랬었는데요. 이게 참, 뭐랄까, 저 혼자만 하는 방송이거나 같이 나오는 패널이 좀 만만한 분들이고 그러면 좀 저도 하고 싶은 대로 좀 막 하고 그랬을 텐데. 아무래도 워낙 상대가 내공들이 대단하신 분들인지라, 사실 오늘은 그냥 두 선생님과 케미라도 맞춰보는 데 주력해 보려고 했는데, 냉정히 그것도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무래도 두 분에 비해 지식도 짧고 말빨도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급이 안 맞다 보니.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제가 프로그램을 망칠 줄은 ......’’

‘‘아! 잠시만요, 강소장님. 국장님 문자라서요.’’


잠시 처연한 어조로 주절대고 있는데,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 김피디가 등을 돌렸다.


제기랄, 김피디 너 마저도.


최소한 내 어깨 두드려 주면서 다음 회차 출연은 확실히 보장은 해 주고 국장 전화를 받든지 말든지 하지.

설마 오늘이 나 고별방송?


‘‘강소장님?’’


국장과 통화를 하는 사이 새끼 작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예.’’

‘‘차담회 오실 건가요?’’


중구난방 녹화가 끝나면 제작진과 출연자 간의 간단한 차담회가 정례적으로 있다고 했다.

거기에서 녹화 후일담도 나누고 평가도 하고 편집할 부분에 대해 미리 의견도 교환한다고 했다.


‘‘김선생님은 선약이 있어서 먼저 가셨고요. 정선생님은 남으신다고 했는데. 강소장님도 오실 거죠?’’

‘‘음 ...... 죄송하지만, 저도 ......’’

‘‘선약이 있으세요?’’

‘‘예? 아! 예. 인터넷 방송.’’


인터넷 방송 스케줄은 없었다.

하지만 찰라 고민하다가 구라를 쳤다.

김여중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울렁증이 느껴지는 정원택이 참석하는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라면, 혹시나 제작진 앞에서 오늘 나의 방송 태도를 안주 삼아 한참 씹으며 공개망신을 줄지도 모를 것 같았다.



[오빵! 녹화 아직도 안 끝났음? 끝났으면 문자 콜? 오케이?]

[대구 오빠! 녹화 끝났어요? 끝나는 대로 연락 요망 ㅎㅎㅎ]


스튜디오를 홀로 나서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비슷한 내용의 문자 두 개가 도착해 있었다.

한 명은 친여동생 강주화, 또 다른 한 명은 썸녀 신선혜 변호사.


내가 오늘 중구난방 녹화를 뜨러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은 실상 몇 안 되었다.

괜히 여기저기 입 털었다가 자칫 통편집이라도 당하게 되면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

고, 딱히 나에 관한 보도 자료를 뿌리지 않고 있는 제작진에 대한 예우 차원도 있었

다.


그래도 평소 내 성정상 입이 간질간질 거려서 결국 몇 명한테 발설하고 말았으니 개

중에 친동생 주화 년과 신선혜 변호사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화 년은 내가 거액의 용돈을 주겠다는 말에 한창 설레어 있던 차였고

신선혜 변호사는 애초 중구난방 프로그램 광팬이었으니 호기심이 발딱 서서 문자를

보내왔던 것으로 사료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둘에게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우려한 대로 진짜 통편집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가 설령 편

집이 안 되었다 쳐도 녹화 내내 병풍 같았던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앞서고 있는 상황

이었다.

그래서 바쁜 척 답장 없이 이틀의 시간을 보냈다.


이틀 후, 내가 첫 출연한 중구난방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나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녹화 끝나자마자 동생 주화 년이나 신변한테 전화를 걸어 온갖 거드름을 떨 걸 그랬다는 후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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