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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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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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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늑대. (2)

DUMMY

동트는 아침.

잠에서 깬 우진은 평소처럼 헥터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문을 두어 차례 두들겨 노크한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다.

우진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헥터가 안 보인다. 아무래도 오늘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사냥을 나간 듯했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책상머리에 앉아 견문록을 펼쳐 들었다. 며칠 동안 독서만 하니 싫증이 났지만, 다행히 이 지긋한 짓거리도 슬슬 끝이 보인다.


얼추 두 시간 후.


‘······드디어 다 읽었다.’


독서를 마친 우진이 책을 덮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 선명한 미소. 한동안 애먹이던 일을 끝내니 속이 후련하다.


예상하던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진은 원래부터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인 데다가, 틈틈이 헥터의 일을 도와주느라 적잖은 시간을 빼앗긴 탓이었다.


‘헥터가 돌아오면 떠나야겠어.’


용무를 마쳤으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지만···

그래도 지난 열흘 동안 신세를 졌으니 작별 인사는 하고 떠나는 게 옳을 듯했다.


‘주변이라도 한 번 둘러볼까.’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니 좀이 쑤셨다. 산책이라도 해볼 겸 오두막 밖으로 나온 우진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갔다.


검은 숲속을 제집 안방처럼 누비는 우진. 그 발걸음이 멈춘 곳은, 푸르스레한 열매가 잔뜩 자라난 나무 앞이었다.


‘마경 자두.’


견문록에 적혀 있던 이름이다. 마경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열매 중 하나.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 되었다.

우진은 능숙하게 나무 위로 올라가서 자두 예닐곱 개를 땄다. 직후 지상으로 내려온 우진은 큼지막한 자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마경 자두의 맛은 쓰고 떫다. 하지만 그걸 참고 곱씹다 보면 감질나는 단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적포도주가 이런 맛이려나.’


포도를 껍질째 갈아 만든 적포도주는 탄닌 함량이 높아 떫은맛이 난다고 들었다.

실제로 먹어본 적은 없어서 그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떫은 자두를 씹으며 포도주의 맛을 상상해볼 뿐.


‘······왜 나는 포도주를 먹어본 적이 없을까.’


우진은 문득 의문에 잠겼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죽기 전에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너무 많았다.


양고기, 복어, 포도주···

특출나게 비싼 음식도 아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인데, 그런 작은 사치조차 누릴 생각을 못 해본 것 같다.


‘이번에는 좀 다채롭게 살아봐야겠어.’


남 부럽지 않게 먹고 즐기는 삶. 그걸 손에 쥐기 위해선 장벽 너머로 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수월히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우진은 자두를 씹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뭔가를 이루려면 계획이 필요하고, 계획을 마련하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했다.


지난 열흘의 시간 동안 읽었던 책과, 헥터와 틈틈이 나누었던 대화. 그 속에 담긴 정보들을 추려내어 계획에 뼈와 살을 덧대던 중···


‘······뭔가 어수선한데.’


우진이 문득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까 전부터 들려오는 소란 소리가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어디선가 싸움이 일어난 모양.


‘헥터가 사냥 중인 건가?’


소리만 들어서는 분간이 가질 않았다. 우진은 소란이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마침 달리 할 일이 없고,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듯했으니.


바쁘게 걸음을 옮겨가는 우진. 그가 소란의 중심을 향해 전진했다.


······동시에 소란 또한 이쪽으로 다가왔다.


‘온다.’


인기척을 느낀 우진이 주변의 나무 뒤로 모습을 숨겼다. 곧 정면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리더니, 가시덤불 사이를 헤집고 나온 헥터가 있는 힘껏 달음박질쳤다.


뒤이어 덤불을 뚫고 늑대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놈들의 송곳니가 노리는 건 헥터의 숨통.


사냥꾼과 사냥감의 관계가 뒤집혔다. 아무래도 뭔가 일이 꼬인 모양이었다.


‘좀 거들어야겠군.’


우진은 허리 벨트에 걸린 단검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늑대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다, 그 동선을 예측하여 단검들을 연이어 내던졌다.

손끝에서 뻗어나간 두 줄기의 은색 빛살.


퍼벅!


선두에서 달리던 늑대 두 마리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놈들은 목덜미에 단검이 꽂힌 채로 발작하듯 몸을 뒤틀었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한 마리.

저놈은 손수 처리하자. 그리 마음먹은 우진이 마체테를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도망쳐!!”


헥터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직후 순식간에 이쪽으로 다가온 헥터가 우진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우악스러운 손길. 우진은 엉겁결에 그 손아귀에 붙들린 채로 함께 내달렸다.


‘아니··· 단검을 회수하지도 못했는데.’


오래 사용해 온 물건들이라 챙겨오고 싶었건만, 헥터의 태도가 워낙 조급하여 돌아가자는 말도 못 꺼내겠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걸까?

······그 의아함은 금세 해소되었다.


워우우우—!


늑대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왠지 불길한 느낌. 슬쩍 뒤를 돌아보자, 수십 마리의 늑대들이 물밀듯 이쪽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와우.”


도대체 무슨 짓을 해야 이 지랄이 나는 걸까. 우진은 쫓아오는 늑대들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모습을 본 헥터가 재촉했다.


“구경할 시간에 더 빨리 뛰게! 자칫 잘못하면 휘말릴 수도 있어.”

“아직 거리가 꽤 여유롭지 않습니까?”

“늑대들을 말한 게 아니네.”


그럼 뭐에 휘말린다는 거지?


우진이 재차 질문하려던 순간, 굉음과 함께 저 뒤쪽부터 지면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돌연 생겨난 구덩이 속으로 늑대들이 굴러떨어졌다. 땅 아래에 파묻혀 있던 뾰족한 나무 작살들이 늑대의 몸을 난도질했다.


특정 무게가 넘어가면 무너지도록 설계된 함정.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폭이 10m는 족히 넘어갈 듯했다.


하지만 폭에 비해 깊이는 그리 깊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늑대들이 하나둘씩 구덩이 위로 기어 올라왔다.


‘시간 끌기에 초점을 둔 함정이로군.’


이럴 때 거리를 벌려놔야 한다.

우진은 앞서가는 헥터를 쫓아 부지런히 달렸다. 그런데 지름길로 우회하여 돌아온 건지, 돌연 앞쪽에서 튀어나온 늑대 두 마리가 길을 가로막았다.


길을 뚫어야겠다.

우진이 다시 마체테를 뽑아 든 찰나, 자리에 멈춰 선 헥터가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핑, 피잉!


화살이 연이어 쏘아졌다. 제대로 조준하고 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헥터는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난사하듯 화살을 갈겼다.

그런데 그 화살이 귀신같이 늑대들의 급소만 골라 때렸다. 금세 피떡이 된 늑대들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


“가세!”


헥터가 다시 재촉하며 내달렸다.

할 일이 사라진 우진은 마체테를 칼집 속에 밀어 넣는다. 이런 일을 두어 번 정도 반복하고 나자, 두 사람은 오두막에 돌아올 수 있었다.


“컥, 콜록!”


바닥에 주저앉은 헥터가 연거푸 마른기침을 해대었다. 줄곧 쉼 없이 달려서 숨이 차는 모양. 우진은 늙은 사냥꾼의 호흡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후 질문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곧 놈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텐데요.”

“······싸워야지.”


헥터는 담담하게 대꾸하며 책상 위의 책, 마경 견문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우진에게 건넸다.


“내가 여기서 시간을 끌 테니 책을 갖고 떠나게. 자네 솜씨라면 충분히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 있을 것 같군.”

“양도할 수 없는 물건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


헥터는 떠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살펴 가게 진. 만나서 반가웠네.”

“······.”


우진은 대답하는 대신, 마주 선 사내의 행색을 물끄러미 살폈다.


몸 곳곳에 새겨진 발톱과 이빨 자국.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상처들이다. 흘러내리는 핏물이 옷을 온통 붉게 물들여갔다.

안색이 창백했다. 안 그래도 지병을 앓고 있던 노인이었는데, 늑대와 대적하던 중 적잖은 부상까지 입었다.


‘이대로면 곧 죽겠군.’


어떻게 해야 할까.

우진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버텨보십시오. 금방 다녀올 테니.”

“······뭘 하려는 겐가?”


굳이 대꾸하지 않고 밖으로 나섰다.

오두막을 둘러싼 늑대 무리. 놈들의 머릿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하지 못한 듯했다.


늙은 사냥꾼이 손수 설치해둔 덫은 은밀하고 교활했다. 오두막 주변에 진법처럼 설치된 덫들. 우진 또한 집중하지 않으면 그 존재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눈으로 대강 늑대들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얼추 서른 마리 정도인가.’


아직도 수가 꽤 많이 남았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 늑대들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진은 늑대들을 향해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갔다.


문득 헥터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크고, 사납고,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야생의 개를 우린 늑대라 부르기로 했네.’


이곳 사람들은 이 짐승을 늑대라고 불렀다. 우진은 여전히 그 의견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우진과 눈이 마주친 늑대들이 불에 덴 듯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우진이 계속 걸어가고 있음에도 간격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후각이 뛰어난 늑대들은 마주한 인간에게서 불길한 노린내를 맡았다. 피와 죽음의 냄새. 이는 김우진이 지금껏 도살해온 마수들의 최후를 투영하는 체취였다.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 늑대들이 하룻강아지처럼 눈치를 보았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우진의 입장에선 마냥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놈들이 왜 늑대라 불리는 걸까.’


우진은 근처에 있던 늑대의 뒷목을 잡아 붙들었다. 그 우악스러운 손짓에 도망치려던 늑대가 속절없이 딸려 왔다.


‘암만 봐도 진돗개 같은데···’


우진은 늑대의 목을 밟아 누른 후 생김새를 관찰했다. 이것이 빈틈이라 여긴 것일까. 늑대 한 마리가 측면에서 달려들었다.


어딜 가던 눈치 없는 놈들이 꼭 한둘씩 있기 마련. 우진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로 마체테를 휘둘렀다. 윗턱이 날아간 늑대 시체가 흙바닥 위를 나뒹군다.


‘일단 하던 일부터 마저 끝내야겠어.’


그리 다짐한 우진이 힘껏 발을 굴렸다. 발 아래 밟혀 있던 늑대의 목이 뚝 분질러지고, 동시에 우진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방패를 앞세운 돌진.

우진은 눈이 먼 황소처럼 밀고 들어갔다. 이를 맞닥뜨린 늑대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얼타는 놈, 겁에 질린 놈, 덤비려는 놈···


앞뒤 가리지 않고 대책 없이 검을 휘둘러댔다. 투박하지만 매서운 힘이 담긴 칼부림. 그에 휩쓸린 늑대들의 몸뚱어리가 마구 잘리고 찢어졌다.


이런 개싸움은 기세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 머릿수는 늑대가 훨씬 많지만, 놈들은 심적으로 위축되어 진즉 꼬리를 내린 상황.


오래지 않아 늑대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크워어억——!!


돌연 숲속에서 흉포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늑대들이 얼어붙었다.


‘왔군.’


우진이 숲의 그늘을 응시했다. 기이한 생명체가 하나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두 발로 서 있는 털북숭이 괴물. 놈의 상반신은 늙은 학자처럼 구부정하여 머리가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그 머리의 형태가 늑대를 닮았다.


‘웨어울프.’


마경 견문록에 적힌 저 괴물의 이름이었다. 두 발로 걷는 늑대. 놈은 여러 마리의 늑대들을 부하처럼 거느린다.


놈의 왼쪽 눈에는 부러진 화살이 한 대 꽂혀 있었다. 보아하니 헥터의 작품인 듯했다.


‘제대로 약이 올랐네.’


눈알을 잃어버린 탓에 웨어울프는 한껏 격노한 상태. 놈은 도망치려는 부하들을 용서할 생각이 없다.


웨어울프가 늑대 한 마리를 붙잡고선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늑대가 발작하듯 몸부림쳤다.


뿌드득!


웨어울프가 힘으로 늑대를 잡아 찢는다. 둘로 쪼개진 살덩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와 창자. 그 잔혹한 본보기를 본 늑대들은 다시 우진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우진은 씩 웃으며 검을 고쳐 쥔다.


‘이래서 저놈들을 늑대라 부르기 싫단 말이지.’


길들여진 늑대를 우린 개라 부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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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늑대 무리. NEW +8 14시간 전 1,761 114 13쪽
29 귀물. +12 24.09.18 2,898 153 13쪽
28 영입 제안. +8 24.09.17 3,356 134 15쪽
27 잔업. +6 24.09.16 3,394 149 12쪽
26 부자가 되는 법. +14 24.09.13 3,960 167 12쪽
25 사냥꾼. +13 24.09.12 3,805 169 12쪽
24 유르기스. +4 24.09.11 3,792 161 12쪽
23 세 번째 눈. +7 24.09.10 3,882 157 12쪽
22 기이한 재주. +5 24.09.09 3,911 161 13쪽
21 형제. (3) +7 24.09.06 3,913 162 12쪽
20 형제. (2) +5 24.09.05 3,894 163 12쪽
19 형제. (1) +6 24.09.04 3,986 153 14쪽
18 기이한 죽음. +8 24.09.03 4,066 149 13쪽
17 카르마. +10 24.09.02 4,102 168 13쪽
16 은둔자들. +3 24.08.30 4,216 156 13쪽
15 별명. +8 24.08.29 4,296 162 12쪽
14 황금충 볼프. +12 24.08.28 4,479 169 12쪽
13 환영. +7 24.08.27 4,457 181 12쪽
12 난해한 조언. +4 24.08.26 4,543 161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8 24.08.23 4,586 181 12쪽
10 채석장의 마수. (1) +3 24.08.22 4,677 176 12쪽
9 이름. +10 24.08.21 4,758 193 12쪽
8 개척단. +6 24.08.20 4,890 187 12쪽
7 늑대. (3) +7 24.08.19 4,907 205 12쪽
» 늑대. (2) +6 24.08.17 4,961 181 12쪽
5 늑대. (1) +9 24.08.16 5,120 181 12쪽
4 다크판타지. +6 24.08.15 5,334 173 12쪽
3 조우. +8 24.08.14 5,661 180 12쪽
2 흉물. +10 24.08.13 6,790 19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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