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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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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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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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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름.

DUMMY

우진은 늑대에게 몇 번 더 말을 걸어봤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영 미적지근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뒷발로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늑대.


‘그냥 우연이었나?’


긴가민가하다.

우진은 늑대의 움직임을 한참 예의주시하다, 문득 의욕이 사라져서 들고 있던 육포를 그냥 던져줬다. 늑대가 날아온 육포를 입으로 받아먹었다.


짭짭—


늑대가 육포를 맛깔나게 씹었다. 녀석은 눈 깜짝할 사이 육포를 먹어 치운 후 다시 이쪽을 쳐다본다. 더 먹고 싶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는 늑대.


‘하나 더 줘볼까.’


그리 마음먹은 우진이 육포 주머니를 향해 손을 뻗으려던 찰나, 갑자기 늑대의 귀가 쫑긋 곤두섰다. 녀석이 머리를 높이 치켜든 채로 어딘가를 응시했다.


우진 또한 눈을 가늘게 떴다. 뒤쪽에서 번잡한 인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다.’


늑대도 그리 견적을 잡은 것일까. 녀석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근처에 있는 나무 덤불 속으로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이윽고 체격 좋은 사내 다섯이 건들거리며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의 얼굴이 익숙했다. 뒤로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와 뺨에 그어진 칼자국.


“제이콥. 여긴 어쩐 일이요?”


우진이 아는 체했다. 제이콥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자네와 거래를 하고 싶어서 왔다네. 설마 그새 웨어울프의 가죽을 잃어버리진 않았겠지?”

“보다시피.”


가죽은 여전히 짐가방에 잘 매어져 있다.

이를 확인한 제이콥은 더욱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뺨에 찍힌 칼자국이 더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 가죽을 이리 넘기게. 순순히 응한다면 내 친구들이 자네의 멱을 따지 못하도록 말려주지.”


얄팍한 협박. 우진은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했다.


“너, 처음부터 이럴 셈으로 헥터와 거래를 해온 거였군.”


헥터가 사냥에 성공하면 그 성과물을 빼앗는다. 이를 위해 제이콥은 긴 세월 동안 거래하며 헥터의 환심을 샀다.


우진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자, 뭔가 정정하고 싶다는 듯 제이콥이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난 투자를 했을 뿐이네. 헥터의 영역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물자를 운송하면 오히려 적자였어. 줄곧 쌓인 손해를 메꾸기 위해선 그 가죽을 받아야 해.”

“그래서 이게 정당한 짓이라는 건가?”

“그렇지. 내 친구들에게 좀 처맞고 나면 자네도 공감할 수 있게 될 거야.”


제이콥이 손짓했다. 사내들이 실실 웃으며 우진의 주변을 포위했다.

놈들 중 한 사람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남들보다 덩치가 큰 데다, 어째서인지 윗옷을 입지 않아 맨몸이기 때문이었다.


그 꼴을 본 우진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노출증 걸린 병신도 니 친구냐? 쟤는 왜 남들보다 차갑게 살고 있어?”


제이콥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허! 이제 자네를 살려주고 싶어도 어렵겠군. 설마 겁도 없이 바바리안을 모욕하다니···”

“바바리안? 저놈이?”

“그래. ‘쌍도끼의 렉스’라는 친구일세. 자네를 찢어 죽일 사내의 이름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겠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렉스라고 불린 사내가 손도끼 두 자루를 뽑아 들었다.

렉스의 얼굴이 잘 익은 문어처럼 시뻘겋다. 우진이 아까 한 조롱에 제대로 긁힌 듯했다. 양손에 도끼를 쥔 채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전사.


렉스가 나무 덤불을 스쳐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본 우진은 장난처럼 말했다.


“물어.”


덤불 속에서 붉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늑대가 렉스의 목을 콱 깨문다.


“컥, 꺼어억!!”


렉스가 마구 비명을 내지르며 흙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늑대가 머리를 힘껏 좌우로 털었다. 렉스의 목덜미가 길게 찢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우진은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그러니까 갑옷 같은 걸 입고 다녀야지. 실력도 같잖은 놈이···”


사실상 자연사라 봐도 무방하다.

어쨌거나 한 놈 처리했고, 이제 넷 남았다. 우진은 콧등을 긁적이며 제이콥과 똘마니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봤다.


뜻밖의 전개에 당황했는지 놈들은 병신처럼 어버버거리고 있었다. 우진은 마체테를 뽑아 들며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퍼억!


사내들이 제이콥을 밀어 넘어트리고 도망쳤다. 미리 약속이라도 해둔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억, 이 망할 새끼들아! 돌아와!!”


고용주를 제물 삼아 도망치는 용병들. 제이콥이 몇 번이고 소리쳤지만 놈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저놈들은 오래 살아남을 것 같다.


우진이 그리 생각하며 제이콥에게 다가갔다. 홀로 남은 장사치가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하하, 우리 대화를 좀 해보세.”

“대화 좋지.”


솔직히 좀 고민스러운 상황이긴 했다.


‘아직 사람은 죽여본 적 없는데.’


우진은 자기 손으로 살인해본 적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쪽 세계에서 사람을 볼 기회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으므로.


죽여야 할까, 살려둬야 할까.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어떻게 처신해야 옳은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섣불리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


우진이 고민하는 와중에도 제이콥은 혼자 뭘 주절주절 떠들고 있었다.


“내가 행상인 일을 하며 얻은 보물들이 꽤 많아. 나름 인맥도 넓고. 뭐든 해주겠네. 원한다면 지금 당장 계약서를 쓸 수도 있어. 어떤가? 날 보내주는 게 서로 좋지 않겠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기가 찼다.


“가진 돈이 그렇게 많아?”

“그렇다네! 못 믿겠다면 증명해주지. 잠시 기다려보게. 여기 어딘가에 지갑이···”


제이콥이 품을 뒤적거리다, 돌연 단검을 꺼내 찔렀다. 우진은 반사적으로 그의 팔목을 잡아챘다.


“······하, 하하.”


팔목을 붙들린 제이콥이 비굴하게 웃었다. 놈의 이마에 땀줄기가 여럿 흘러내렸다.


“······이봐 친구, 나 좀 살려주면 안 되냐?“

“참 병신같네.”

“한 번만 봐줘. 나 같은 병신을 죽이더라도 득 될 게 없잖아. 응? 안 그래?”

“너한테 한 말 아니야.”

“그럼···?”


우진은 피식 웃으며 단검을 빼앗았다.


“줄곧 고민했던 내가 병신 같아서.”


푸욱!


단검이 제이콥의 목을 관통했다. 지면에 왈칵 쏟아진 붉은 핏물. 기우뚱거리던 제이콥의 몸이 곧 뒤로 넘어갔다.


우진은 시체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완 좋은 상인답게 제이콥은 여러 값진 장신구를 갖고 있었지만, 그것에 손을 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가자.’


길을 나섰다.



* * *



어째서인지 늑대는 계속 우진의 곁에 머물렀다.


우진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 붉은 늑대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만큼 영특했지만, 암만 그래도 사람처럼 말하는 재주는 없었으니까.


보다 보니 나름대로 정이 갔기에, 우진도 결국 늑대를 일행으로 받아들였다.


‘이 녀석에게 이름을 지어줘야겠군.’


우진은 고민했다. 이름을 짓는 건 은근히 어려운 일이다. 예로부터 우진의 작명 솜씨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렉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렉스다.”


그렇기에 우진은 늑대에게 죽은 놈의 이름을 물려주려 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늑대가 으르렁대는 소리를 냈다.


“그럼 제이콥이라 부를까?”

“······.”


늑대는 렉스라 불리는 것을 받아들였다.


우진은 녀석의 기분을 달래줄 겸 육포를 하나 던져줬다. 식량 주머니가 한층 더 가벼워졌다.


‘슬슬 식량을 보충해야겠군.’


입이 둘로 늘어나서 식량도 그만큼 더 빨리 소진되었다. 이대로면 오래지 않아 식량이 고갈될 터. 마침 이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으니 그곳에서 식량을 구매해올 생각이었다.


우진과 렉스는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걸음을 옮겨갔다. 곧 그들의 시야에 큰 마을 하나가 들어왔다.


‘지난번의 마을보다 훨씬 더 크네.’


제5 개척 도시.

도시라고 하기엔 민망한 규모지만, 마을치곤 상당히 큰 편이었다. 숫자가 붙은 개척 도시는 개척단이 각별히 신경 쓰는 주요 거점이다.


······당연하게도 저런 장소에 늑대 마수를 데리고 갈 순 없었다.


“넌 여기서 좀 기다리고 있어라. 사람들이 오면 눈치껏 피해 다니고.”

“웍.”


알겠다는 듯 렉스가 울음소리를 냈다. 녀석을 뒤로 한 우진이 마을을 향해 걸었다.


목책 앞에 선 문지기들이 이쪽을 빤히 쳐다봤다. 통행세를 요구하려는 듯했다. 우진은 주머니를 뒤적여서 미리 준비해둔 은화 한 닢을 꺼내 건넨다.


“아,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지기들이 돈을 거절했다. 그 반응에 우진은 의아함을 느꼈다.


“요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 도시에선 마수 사냥꾼들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냥 들어가십시오.”


문지기들이 선뜻 옆으로 비켜서 길을 열어줬다. 아무래도 우진의 행색을 보고 직업을 짐작한 모양. 덕분에 우진은 동전 한 푼 쓰지 않고 마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낮이라 그런지 마을은 활력이 넘쳤다.

어떤 일거리가 있는지 분주하게 짐수레를 끄는 사람들. 줄지어 늘어선 가게에서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특히, 길거리 노점들이 판매하는 음식 냄새가 기막혔다. 우진은 홀린 듯이 한 노점 앞에 멈춰 섰다.


여자 노점상이 바쁘게 고기 조각을 꼬치에 꿰고 있었다. 장작불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 꼬치들. 이건 참기 어렵다.


“한 개에 얼마입니까?”

“개당 동화 여덟 닢이에요.”

“두 개만 주십시오.”


우진은 은화 반 닢을 지불하고 동화 네 닢을 거슬러 받았다. 은화 반 닢은 동화 스무 닢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으적.


우진은 막 구워져 뜨끈뜨끈한 고기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바싹하게 구워진 껍질과 쫄깃한 살코기, 간혹 씹히는 큼직한 소금 알갱이의 짠맛.


좀 당황스러울 만큼 맛이 좋았다.


“······무슨 고기길래 이렇게 맛있지?”


우진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에 꼬치를 굽던 여자가 웃으며 귀띔해 줬다.


“훈제된 칠면조예요. 육포보다 비싸고 보존 기간도 짧지만, 맛은 이만한 게 없죠.”

“장벽 안쪽에서 온 물건입니까?”

“네. 여기서 파는 음식들은 다 그렇죠. 마경에서 식재료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마경에서 도시 단위의 인구가 자급자족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수의 고기는 맛이 없고, 땅은 척박하여 동식물이 잘 자라나지 않으니까.


뛰어난 물자 운송력을 지닌 마수. 타라스크가 있기에 개척 도시가 유지될 수 있다.


“마수 사냥꾼이신가요?”


이번에는 여자가 질문했다. 우진은 입에 든 고기를 씹느라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이번 마수 토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던데, 좋은 성과를 거두셨으면 좋겠네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입의 음식을 삼킨 후 되물었다. 얘기를 꺼낸 여자가 살짝 당황했다.


“어··· 모르시는 건가요? 요즘 채석장의 마수 때문에 도시 전체가 난리잖아요.”

“처음 듣는군요. 애초에 이 지역에 처음 와봐서.”


호기심이 고개를 치든다.


“혹시 그 마수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오고 가며 이름만 얼핏 들었어요. 매드스톤··· 이라고 했었나? 뭔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매드스컬?”

“아, 네! 그거였던 것 같아요.”


매드스컬.

몇 번 맞닥뜨린 경험이 있는 놈이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머리뼈와, 미치광이 같은 공격성을 동시에 지닌 마수.


“그놈을 잡는 건 어려울 텐데.”

“아, 그래요? 현상금이 왜 그리 높게 걸렸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군요.”

“현상금이 얼마죠?”

“금화 칠십 닢이에요.”


······외면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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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늑대 무리. NEW +8 14시간 전 1,766 114 13쪽
29 귀물. +12 24.09.18 2,902 153 13쪽
28 영입 제안. +8 24.09.17 3,356 134 15쪽
27 잔업. +6 24.09.16 3,397 149 12쪽
26 부자가 되는 법. +14 24.09.13 3,960 167 12쪽
25 사냥꾼. +13 24.09.12 3,807 169 12쪽
24 유르기스. +4 24.09.11 3,794 161 12쪽
23 세 번째 눈. +8 24.09.10 3,884 157 12쪽
22 기이한 재주. +5 24.09.09 3,912 161 13쪽
21 형제. (3) +7 24.09.06 3,914 162 12쪽
20 형제. (2) +5 24.09.05 3,895 163 12쪽
19 형제. (1) +6 24.09.04 3,987 153 14쪽
18 기이한 죽음. +8 24.09.03 4,067 149 13쪽
17 카르마. +10 24.09.02 4,102 168 13쪽
16 은둔자들. +3 24.08.30 4,219 156 13쪽
15 별명. +8 24.08.29 4,298 162 12쪽
14 황금충 볼프. +12 24.08.28 4,480 169 12쪽
13 환영. +7 24.08.27 4,459 181 12쪽
12 난해한 조언. +4 24.08.26 4,548 162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8 24.08.23 4,586 182 12쪽
10 채석장의 마수. (1) +3 24.08.22 4,678 176 12쪽
» 이름. +10 24.08.21 4,764 193 12쪽
8 개척단. +6 24.08.20 4,893 187 12쪽
7 늑대. (3) +7 24.08.19 4,911 205 12쪽
6 늑대. (2) +6 24.08.17 4,968 181 12쪽
5 늑대. (1) +9 24.08.16 5,123 182 12쪽
4 다크판타지. +6 24.08.15 5,337 174 12쪽
3 조우. +8 24.08.14 5,666 180 12쪽
2 흉물. +10 24.08.13 6,795 19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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