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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낙타3
작품등록일 :
2024.05.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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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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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DUMMY

사흘을 꼬박 걸었다.

우진은 틈이 날 때마다 호흡을 연습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성과가 없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지금의 상황에 낙담하진 않았다. 마나를 느끼는 게 그리 쉬운 일이면 개나 소나 다 마법을 쓰고 다닐 테니까. 마나를 깨우치고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진전이 전혀 없으니 좀 답답한 건 사실이다. 우진뿐만 아니라, 클레어 또한 그리 생각하는 듯했다.


“더 직관적인 방법을 시도해야겠어요.”

“뭘 어떻게 하려고?”

“제가 직접 진의 몸속에 마나를 불어넣을 생각이에요. 그 흐름과 감각을 익히고 나면 마나를 더 수월히 느낄 수 있게 되겠죠.”


얼핏 들으면 좋아 보이는 말. 그러나 이 훈련을 지금껏 채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 묻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훈련을 여러 번 반복하게 되면, 오히려 마나에 입문하기 더 어려워져요. 남이 해주는 것에 익숙해지면 몸이 게을러지거든요.”

“그럼 아예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너무 소심하게 굴 필요 없어요. 한 번 정도는 해도 괜찮은 훈련이니··· 아, 찾았다.”


클레어가 짐가방 속을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냈다. 하늘 같은 푸른색의 물약.


“윗옷을 벗어 보시겠어요?”


우진이 선뜻 셔츠를 벗었다. 그의 몸은 표범처럼 날렵한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보는 게 실례라 생각했는지, 곁에 있던 클레어는 손으로 두 눈을 가린 상태.


······손 틈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큼, 어서 돌아앉으세요.”


사레가 들린 듯 헛기침하며 말하는 클레어. 그에 응하여 우진은 등이 보이도록 돌아앉자, 클레어는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푸른 물약 속에 푹 담갔다.


쓱, 스윽—


클레어가 손끝으로 우진의 등에 뭔가를 그려 넣는다. 푸른 물약을 잉크 삼아서 마법진 같은 걸 그리는 듯했다. 거울이 없기 때문에 그 생김새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볼 수 없었다.


곧 일을 끝마친 클레어가 우진의 등에 손을 짚었다. 마법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제가 가진 마나 중 절반 정도를 진의 몸속에 불어넣을 거예요. 마나를 붙잡으려 하진 말고, 흘러가게 내버려두면서 그 흐름과 감각이 어떤지를 잘 기억하세요.”

“노력해 볼게.”

“좋아요. 셋을 세고 나서 시작할게요. 하나, 둘, 셋!”


키이잉—!


마법진이 빛을 발한다. 우진은 집중하기 위해 두 눈을 감았다.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라 살짝 긴장되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으니···


‘······뭐지?’


어째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움에 사로잡힌 우진. 오래지 않아 클레어가 우진의 등에서 손을 떼었다. 우진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마주 봤다.


클레어는 반쯤 혼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런 건 처음 겪어보는 일인데.”


홀린 듯 중얼거리는 클레어.

생각할 시간을 좀 줘야 할 듯했지만, 우진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설명해 줄 수 있어?”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제가 마나를 불어넣는 순간, 그 마나가 모조리 진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그럼 주문이 성공한 것 아닌가?”


클레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려요. 비유하자면 흙을 빚어서 그릇을 만들어야 물을 담아낼 수 있는 건데, 제가 방금 한 건 그냥 흙 위에 물을 들이부은 것과 같단 말이죠. 대충 이해했나요?”

“얼추.”


우진은 아직 마나를 느끼지도 못하는 단계. 그러니 마나를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걸음마도 못 뗀 사람이 달리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우진은 이를 해냈다.


“······아니, 해냈다고 보긴 좀 애매한 것 같네요. 뭔가 이상했어요.”

“어떤 의미로?”

“제가 준 마나를 넘겨받았다. 라고 하기보단··· 뭐랄까, 이런 비이성적인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클레어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마치 잡아먹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마나를 불어넣던 순간, 클레어는 묘한 환영을 보았다. 식사 중인 사마귀. 놈의 잔인한 이빨이 푸른 나비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 나비는 한때 클레어의 일부였던 것이다. 왠지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근원 모를 두려움을 느낀 클레어가 주문을 멈추자, 푸른 나비가 간신히 사마귀의 앞발에서 몸을 빼냈다.


먹이를 놓친 사마귀가 이쪽을 보았다. 수십 개의 눈동자로 이루어진 겹눈. 그 소름 끼치는 시선이 담고 있는 건···


“······클레어. 얼굴이 좀 창백해 보이는데?”


문득 들려온 목소리가 클레어의 상념을 깨트렸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는 우진. 이를 마주한 클레어는 일부러 활기차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그냥 좀 피곤하네요. 아무튼! 방금 전의 훈련법은 당분간 다시 시도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워낙 흔치 않은 현상이라 따로 연구를 해봐야겠어요.”

“고마워. 나 때문에 수고가 많네.”

“저도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뭘. 마법을 가르치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요.”


그리 말한 클레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시간도 늦었으니 전 자러 갈게요.”

“그래. 내일 봐.”

“잘 자요~”


천막을 향해 걸음을 옮겨가는 클레어. 그녀가 문득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보는 눈이 없다.


그리 판단한 클레어가 조그맣게 주문을 읊조렸다. 직후 그녀의 손바닥에 일렁거리는 작은 불꽃. 이를 본 클레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이 약해졌어.’


기분 탓이 아니다.

사마귀가 나비를 갉아 먹은 이후, 클레어가 품고 있던 마력이 약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노력하여 길러온 힘을 잃어버린 상황.


클레어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아. 진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내가 가진 마법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아···’


자신을 달래기 위한 말이 아니라, 클레어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전 일어났던 상황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일종의 사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뒀으면 괜찮았을 텐데, 예고도 없이 뺨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킁.”


울상이 된 클레어가 연신 코를 먹으며 잠자리로 향했다.



* * *



혼자가 된 우진은 살짝 의아함을 느꼈다.

왠지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답지 않게 몸에 활력이 없는 듯한 느낌.


‘나도 그냥 잠이나 한숨 잘까?’


그리 하기도 애매한 게 잠이 오질 않았다. 몸은 노곤하지만, 카페인 음료라도 마신 것처럼 정신은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였다.


문득 클레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잠이 안 올 때마다, 심심풀이로 마법과 마나 감응법을 공부했다고 했지.’


지금이 딱 적기다.

눈을 감고선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채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으음?”


우진은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정수리 쪽이 살짝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 당황하여 눈을 뜨는 순간, 방금 느꼈던 감각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해보자.’


우진은 아까 했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 몇 번 숨을 고르고 나자, 아침햇살처럼 따뜻한 온기가 정수리를 통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수리로 호흡하라. 이게 클레어가 줄곧 언급했던 그 느낌인 건가···


‘······이게 왜 되는 거지?’


우진은 턱을 긁적거렸다. 바뀐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짓거리를 해도 안 되던 게 갑자기 된다.


아까 클레어가 써준 주문의 효과인 걸까?


마법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아서 섣불리 결론 내릴 순 없을 듯하다. 궁금한 건 내일 클레어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우진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호흡에 집중했다.


마나 유저가 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명상을 통해 자연의 마나를 느끼는 건 1단계. 마나를 받아들여 몸속에 축적해 놓는 것이 2단계. 축적한 마나를 자원 삼아 기술을 발현하는 것이 3단계다.


‘우선 호흡법에 적응해보자.’


현재의 우진은 정신을 바짝 집중해야 간신히 마나를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막 1단계에 첫 발을 들인 수준. 그래서인지 기껏 몸 안에 들어온 마나가 금세 밖으로 줄줄 새어 나갔다.


이 문제는 호흡법에 능숙해지면 자연히 해결된다 들었다. 호흡에 익숙해질수록 몸은 마나와 친숙한 체질이 되어가고,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마나가 체내에 머물게 된다.


이때 축적해 둘 수 있는 마나의 양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다. 클레어는 이를 폐활량에 빗대어 설명해줬다.


“숙련된 잠수부가 물속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건, 남들보다 더 많은 공기를 폐에 축적할 수 있도록 훈련을 했기 때문이겠죠.”


어떤 방면에서 남들보다 우월해지고 싶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한다.


‘좋아··· 다시 해볼까.’


눈을 감고선 호흡에 집중하는 우진. 그는 야영장 변두리에 앉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마나 감응 훈련을 이어갔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잠에서 깬 클레어가 천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부스스한 연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기는 클레어. 그녀가 팔자 좋게 하품했다.


‘아··· 잘 잤다.’


어젯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잠들어서 그런지, 요근래 맞이해본 아침 중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왠지 야생말처럼 지평선을 향해 무작정 달려보고 싶다고 해야 할까.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상쾌한 기분.


클레어 본인이 생각해도 좀 의아할 정도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법이 약해진 게 아쉬워서 눈물이 찔끔 나오려 할 만큼 우울했는데. 뭘까 이 온도 차···


‘······조울증인가?’


아무렴 어때.


클레어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그녀의 걸음이 향하는 곳은 우진의 천막.


“저기요. 안에 계시나요?”


한 번 불러봤는데 대답이 없다. 클레어는 천막을 살짝 들추어서 내부를 살폈다.


‘없으시네.’


어디로 간 걸까.

클레어는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어제와 같은 장소에 가만히 앉아 있는 우진을 발견했다.


클레어는 반갑게 우진을 부르려다, 그의 상태를 확인하곤 입을 다문다.


‘······와··· 집중력이 몰라볼 만큼 좋아졌잖아?’


어제와 같은 사람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호흡이 발전되었다. 축적된 마나의 양을 보아하니 이 자리에서 그대로 밤을 지새운 듯했다.


고작 하룻밤 만에 우진이 2단계에 진입했다. 이대로면 조만간 마법에 입문해도 될 속도. 두말할 것 없이 비상식적인 상황이었다.


‘내가 마력을 잃어버린 만큼, 진의 마나 감응력이 올라간 건가···?’


클레어는 어제 본 사마귀의 환영을 떠올렸다. 갉아 먹힌 푸른 나비와 자신을 응시하던 수십 개의 눈동자.

기분 탓인지 모르겠으나··· 사마귀는 왠지 호의적인 눈으로 클레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도대체 정체가 뭘까.


마법을 익혀가다 보면, 때때로 어떤 징조나 계시가 환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지만. 이런 사례는 아예 들어본 적조차 없다.


단서를 얻을 방법은 하나뿐.


‘어제 썼던 그 주문을 다시 시도하는 수밖에.’


마침 우진은 씻지도 않은 채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 그의 등에는 어제 그려둔 마법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문을 다시 쓴다면, 클레어가 지닌 마력을 또 우진에게 빼앗기게 될 테지만··· 까짓거. 잃어버린 힘은 다시 노력해서 되찾으면 된다. 그 정도는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좋아, 해보자.’


그리 마음먹은 클레어가 손을 뻗는 순간.


휘리릭—


갑자기 쇄도해온 촉수가 클레어의 팔목을 칭칭 휘감았다. 화들짝 놀란 클레어가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붉은 늑대가 있었다.


“그르릉.”


목을 떨며 울음소리를 흘리는 렉스. 녀석이 클레어의 눈을 응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마치 그 행동만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는 듯···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클레어가 손을 뒤로 빼내었다.


사마귀의 환영이 보인다.


······왠지 놈은 아쉬워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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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영입 제안. +8 24.09.17 3,356 134 15쪽
27 잔업. +6 24.09.16 3,394 149 12쪽
26 부자가 되는 법. +14 24.09.13 3,958 167 12쪽
25 사냥꾼. +13 24.09.12 3,805 169 12쪽
24 유르기스. +4 24.09.11 3,791 161 12쪽
23 세 번째 눈. +7 24.09.10 3,882 157 12쪽
22 기이한 재주. +5 24.09.09 3,911 161 13쪽
21 형제. (3) +7 24.09.06 3,911 162 12쪽
20 형제. (2) +5 24.09.05 3,894 163 12쪽
19 형제. (1) +6 24.09.04 3,986 153 14쪽
18 기이한 죽음. +8 24.09.03 4,066 149 13쪽
17 카르마. +10 24.09.02 4,102 168 13쪽
16 은둔자들. +3 24.08.30 4,216 156 13쪽
15 별명. +8 24.08.29 4,296 162 12쪽
14 황금충 볼프. +12 24.08.28 4,479 169 12쪽
» 환영. +7 24.08.27 4,455 181 12쪽
12 난해한 조언. +4 24.08.26 4,540 161 12쪽
11 채석장의 마수. (2) +8 24.08.23 4,581 181 12쪽
10 채석장의 마수. (1) +3 24.08.22 4,677 175 12쪽
9 이름. +10 24.08.21 4,757 193 12쪽
8 개척단. +6 24.08.20 4,890 187 12쪽
7 늑대. (3) +7 24.08.19 4,906 205 12쪽
6 늑대. (2) +6 24.08.17 4,958 181 12쪽
5 늑대. (1) +9 24.08.16 5,116 181 12쪽
4 다크판타지. +6 24.08.15 5,333 173 12쪽
3 조우. +8 24.08.14 5,660 180 12쪽
2 흉물. +10 24.08.13 6,789 19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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