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이 찾는 귀환자가 600억 들고 장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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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개
작품등록일 :
2024.06.05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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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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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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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DUMMY

수 세기를 드리우며 하늘을 검게 물들였던 안개가 걷혔다.

안개 속에 자취를 감췄던 태양이 서산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흑색의 바닥은 여명으로 가득해진다.

태양이 내리쬐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적장의 목을 움켜진 한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흑색의 피와 검붉은 색의 피가 한데 섞여 고약한 악취를 내뿜고, 검게 물든 들판 위를 고고히 밟고 서 있는 한 사내.

한 수로 하늘을 절단 내고, 또 한 수로는 바다를 가른다.

세상은 그를 절대 무신(絕對武神)이라 칭하였다.


데구르르 -


이 전쟁의 가장 큰 공로를 세웠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내가 쥐고 있던 적장의 머리를 내려놓았다.

둥근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 죽은 자들로 가득한 바닥 사이로 멈춘다.

정적이 내려앉은 전장.

사내가 피로 검게 물든 검을 높이 들면.


“우와아아아아아아!!!!!!!!!!!!”


침묵을 부수며 기사들의 함성이 터져나온다.

그렇게 장장 47년간의 전쟁이 끝났다.


“드디어...드디어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래.”


사내는 지극히도 무덤덤하고 무색한 반응을 뱉었다.


“기쁘지 않으십니까?”

“기쁘다.”

“헌데...”

“지쳤을 뿐이다.”


그러던 찰나.

전장을 가득 울리는 함성 사이로 여명이 드리우며 내리쬐는 섬광 속에서 백의를 입은 여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내의 입가가 비틀린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햇수로는 47년 만인가.”


이 세계를 수호하는 여신.

달리 말하자면 사내를 연고도 없는 이 세계에 맹목적으로 끌고 온 납치범.


“용사님. 드디어 혼탁한 세상을 정화하고 대륙을 통일하셨군요.”


이유도 모르고 이세계에 납치된 지 어언 47년 8개월 21일째.

사내가 평범한 모바일 게임인 줄 알았던 rpg게임에 빙의된 후 전쟁을 이길 때까지 걸린 기간이었다.

그저 갑자기 눈을 감았다 뜨니 초원이었고, 대뜸 나타난 저 여신이라는 녀석이 그에게 대륙을 통일시키고 전쟁을 멈추어 달라 말했다.

그리고 사라진 지 무려 47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 네가 원하던 대로 전쟁을 끝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대마법사, 오러마스터, 성직자. 이름만으로 위대한 존재들이 판을 치는 세계.

저 망할 여편네가 사내를 떨어뜨린 세계가 바로 그런 땅이었다.


*


또한 그 망할 세계에 떨어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크... 드디어 이 빌어먹을 세계에도 엔딩이 찾아오는 구나.”


최후방에 서서 조용히 전장을 관찰하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사내와 그를 내려다보는 여신.

저 여편네는 사내와 함께 무능력했던 나를 이 세계에 떨어뜨린 장본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 둘만 떨어진 건 아닐 것이다.

내가 알기론 몇 명 더 있다. 몇 명이 뭐야, 수백 명은 충분히 넘어갈 거다.

기준은 모른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전부 데려온 건지 무작위로 고른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조건이 있었던 건지.

확실한 건 클리어가 조건은 아니었다.

난 그 게임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엔딩을 본 적이 없었으니.

나는 게임에 소질이 없었다.

누구나 하나씩은 품에 가지고 있는다는 찬란한 무기도 얻지 못했고, 어떻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기연을 습득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저 나름의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즐겜러였을 뿐.

그 덕에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에도 그렇다 할 능력 없이 심심할 때마다 대륙을 습격하는 악마들에 맞서 열심히 숨어다녔다.

저 사내처럼 무인으로써의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면 지팡이를 들고 선 마법사들처럼 마나가 충분한 것도 아니다.

대신 내가 가진 능력은 특별할 정도로 기깔난 장사수완.

돈이 될만한 것들을 변별하고, 판매하는 능력이 심각히 뛰어났다.

남들이 미궁을 돌아다니며 숨겨진 아티팩트와 기연들을 습득할 때, 나는 암시장과 경매장을 돌아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비싼 물품들을 습득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되팔았고, 10골드를 100골드로, 또 1000골드, 불릴 수 있는 최대의 금액까지 불렸다.

물론 악마들이 판을 치고, 초인들이 그들을 때려잡는 세계에서 그 능력은 그리 위대하진 못했다만.

확실한 건 내 한 몸 하나는 잘 건사했다.

위대한 영웅들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수십, 수백이 죽었지만, 난 여태 잘 살아있지 않은가.

내 목숨이 바로 그 반증이다.

남들에 비해 능력이 떨어졌기에, 잡노동을 거치며 돈을 모았고, 그것으로 ‘신성 상단’을 꾸렸고, 끝내 우리 상단을 아데미온 대륙 최대의 상단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엔딩에 내가 기여한 것이 없다고 하면 그건 또 오산이다.

검을 잘 다루고, 마법을 부리는 녀석들이 무슨 수로 여태 잘 살아왔겠는가.

전부 나의 지원 덕이다.

같이 이 세계에 떨어진 입장이었으니, 나름의 동료애를 가지고, 무이자로 영웅들에게 많은 지원을 보냈다.

그 덕에 저 영웅들이 기깔나는 방어구와 무기를 품에 안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고.


“...따지고 보면 전쟁을 이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나 아닐까?”


그럼 뭐해.

알아주는 사람은 있나?


“아마 없겠지.”


이 세상은 스폰서를 영웅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적장의 목을 베어낸 사람이나 영웅으로 추앙하지.

그렇다고 불만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결국 나는 고생 없이 그저 구경만 하면서 이 세계의 엔딩을 본 거니까.


“쩝. 제시퍼한테 빌려준 돈 받아야 하는데.”

“상단주님.”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상단의 부상단주 길렌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 길렌.”

“...제가 듣기로 영웅들은 대륙을 통일하면 천계로 돌아간다 들었습니다.”

“그래, 이제 돌아갈 수 있겠지.”

“허면 상단주 님께서도...”


길렌은 차마 내 눈을 보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뭐 그럴 만도 하다.

내가 처음 이 세계에 떨어져 막노동을 하며 상단을 꾸릴 돈을 모을 당시, 채광 작업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여태 인연을 꾸려온 나의 최측근이었으니.


“상단주님이 없으면, 상단은 어찌합니까?”

“어찌하긴. 앞으로는 네가 책임져야지.”

“상단주님...!”

“야, 언제까지 그리 딱딱하게 부를래?”

“...”

“율 형님이라고 불러봐.”

“유...율 형님...”

“그래, 얼마나 보기 좋냐?”

“하지만...”


나는 웃음을 흘기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차피 나 돌아갈 생각 없어.”

“예...예?”

“야, 씨. 내가 47년을 뺑이 쳐서 겨우 대륙 최고 상단에까지 올랐는데, 어떻게 상단을 버리고 돌아가? 아까워서 못 돌아가.”


길렌이 잔뜩 놀란 얼굴로 입을 달싹였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살아온 세월이 밖에서 산 것보다 많아. 사실상 여기가 이제 내 고향이지. 안 그냐?”

“율 형님...!”

“그래, 인마. 이제는 좀 편하게 살 거야. 너한테 상단주 맡기고, 쓸 거 쓰고, 놀 거 놀면서. 남들 악마 때려잡을 때 혼자 뺑이 친다고 힘들었거든.”


화아 -


그 순간이었다.

맑게 개인 하늘에서 더욱 환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현현한 여신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하며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여명이 대륙을 비추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용사님들. 그대들의 헌신 덕에 대륙에 여명이 비추고 있습니다.”

“상단주님...!”

“안 가 인마. 난 여기 남을 거야.”


옆에서 애타게 나를 부르는 길렌의 눈초리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약속대로 용사님들을 본 세계에 돌려드리겠습니다. 본 세계에서도 그대들의 여명이 비추길...”


그녀의 말이 있고, 돌연 전장의 중심에 선 사내의 발밑으로 섬광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불처럼 타오르는 섬광은 점차 사내의 발을 타고 전신으로 번지며.


“감사합니다. 용사님들.”


사방 곳곳에서 섬광에 타오르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야, 저 여편네는 얼마나 많이 데려왔던 거야?”


보이는 숫자만 해도 수십이다.

전장이 아예 섬광으로 가득해 보일 정도.

그러다 문득 내 발 밑에서 역시 섬광이 차오르고 있음을 느꼈다.


“저기요!”


그래서 나는 손을 들어 여신을 불렀다.

무어라 열심히 씨부리고 있던 여신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부르셨습니까, 용사님.”

“전 여기 남고 싶습니다만.”


여신이 고개를 기울인다.


“여기서 47년이나 뺑이쳐서 겨우 대륙 최대의 상단을 만들었는데, 이대로 사라지라니. 그거 너무 양아치 심보 아닙니까? 난 그냥 여기 남아서 유유자적 살렵니다.”


나의 말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섬광에 야금야금 먹히던 이들이 하나 둘 손을 들기 시작한다.


“저도 여기 남고 싶습니다! 이곳엔 제 아내와 딸이 있습니다.”

“저도 차라리 이곳에 남겠습니다.”


47년 간의 긴 세월은 많은 이들을 변화시킨 모양이었다.

손을 든 이들 중엔 한때 같이 이 세계에 떨어져 굴렀던 이들도 보였다.

꼭 집에 갈 것이라 자부하던 녀석들이었건만.


“허나 용사님들이여.”

“뭐요.”


나의 삐딱한 대답에 여신이 흠칫 나를 본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엔 더 이상 용사님들의 자리가 없습니다.”

“여기 버젓이 잘 서 있는데?”

“용사님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대륙엔 또 다시 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아니, 사람 맘대로 불러다놓고, 이제 다 됐으니까 썩 꺼지라는 소립니까? 군대에서도 47년을 부려 먹고 꺼지라곤 하지 않아요. 양아치도 아니고 말이야.”

“...”


여신이 나를 주시하더니, 이내 내게 다가온다.

나는 갑작스런 여신의 접근에 흠칫 고개를 뒤로 뺐다.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내 47년을 어찌 보상합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신이 싱긋 미소를 흘기며 다시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그녀가 손을 펼치자, 발부터 야금야금 삼키던 섬광이 점차 빠르게 타오른다.


“저기요...! 난 갈 생각이...”


저 멀리 아내와 딸 아이를 두고 왔다는 사람이 섬광에 완전히 사라진다.


“...미친.”


또한 나 역시 섬광이 목까지 닿은 상태.


“상단주님...!!!”

“미안하다. 저 양아치 여편네를 이길 수가 없네.”

“그럼 그간 감사했습니다. 용사님들.”


섬광이 얼굴까지 치밀고.

나는 이제는 섬광 속에 사라진 손을 높이 들어, 여신에게 주먹 감자를 먹였다.


“킬렌. 상단을 부탁...”


그리고 시야가 암전되었다.


*


[용사님의 업적을 본 세계의 가치에 맞게 환산합니다.]

[...]


치지직.

치직.


[본 세계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수준의 업적입니다.]

[기존 보상 외에 추가 보상을 지급합니다.]

[본 세계로의 이동이 완료됩니다.]


*


부앙 -


귓바퀴를 간질이며 들려오는 낯선 배기음.

그리고 다시 눈을 뜨면, 하얀 천장에 먼저 눈에 들어온다.


“...”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익숙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방의 정경.

처음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이런 꿈을 많이 꾸었던 탓이었다.

망할 여편네에 의해 이세계로 끌려간 이후, 항상 그리던 평범한 일상. 그리고 일상의 시작이 되는 새하얀 천장.

천장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집 특유의 텁텁한 냄새를 맡으며 점차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냄새로 추억을 떠올린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다.


“...돌아왔구나.”


결국 그 양아치 여편네가 날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


뭐랄까.

너무 허전했다.

매번 들려오던 상단의 요란한 소리와 익숙한 상단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니, 정말 속에 텅 비워진 기분이다.

물론 처음엔 집을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그게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종국에는 47년에 닿으니.

사실 집이라는 개념을 상실했었다.

그냥 상단이 곧 내 집이고, 상인들이 내 가족이 된 것이다.

헌데 그것이 한순간 모조리 사라져버리니, 이 허탈함과 허전함을 가히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후우...”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내 방을 살폈다.


“...내 방이 원래 이렇게 먼지가 많았던가?”


47년 전 이세계로 납치되기 전과 그리 다르진 않았지만, 하나 다른 건 먼지가 사방에 가라앉아있다는 것이다.

마치 오래된 창고마냥 말이다.

그렇게 오랜만에 되찾은 방을 보며 감회에 젖어있던 차.


우웅.


상단에서 책상을 밀던 때나 나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고개를 돌리면, 익숙한 네모난 상자가 보인다.


“이야... 이거 스마트폰이네...”


수십 년만에 마주한 휴대폰이라는 현대의 문물.

중세와 엇비슷한 이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식 물문이었다.

나는 치미는 어색한 기분을 뒤로하며, 47년 전 으레 그랬듯 휴대폰을 들었다.

문자 메시지라는 것이 와 있었다.

밝은 액정 너머로 적힌 글자.


[감사의 의미로 용사님들의 업적에 걸맞는 보상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본 세계에서의 평화 또한 지켜주시실 간곡히 빌겠습니다.]


“뭐야, 이게?”


발신인에는 여신 프레이라고 적혀있다.

내가 아는 그 여편네의 이름 또한 프레이였으니, 그 망할 여편네가 보낸 문자가 맞는 모양이다.


“근데 무슨 이세계 여신이라는 양반이 문자를 보내?”


이세계에서는 상태창이라는 것을 주더니, 여기서는 문자로 답을 전하다니.


“휴대폰이 없으니까 상태창으로 말을 대신 했던건가?”


이세계의 생활상을 떠올려보면 뭐 달리 전할 방법이 없긴 했다.


“그나저나 업적에 맞는 보상은 또 뭐야?”


그렇게 메시지를 읽으며 보상에 대한 궁리를 하고 있으니.


우웅.


뒤이어 진동이 울리며 새로운 문자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입을 떡하고 벌렸다.

문자에 적힌 문구가 말하기를.


[XX뱅크 입금 내역 : 62,300,000,000원]


나의 통장에 무려 600억이 넘는 거금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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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신성이 24.06.09 221 7 13쪽
4 국수 24.06.08 238 6 13쪽
3 사무국 24.06.07 267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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