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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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작품등록일 :
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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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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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목교(眞目敎)

DUMMY

찰바닥거리는 소리가 그윽하게 번졌다. 물결을 겹치듯 퍼트리던 두 사람은 호수를 가로 건넜다. 집중하지 않으면 어렴풋한 음성이 잔잔히 울렸다.


“홍복(洪福)이로다. 첩정대에 오다니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군.”


첩정대주. 동향을 좀체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애당초 첩정대는 비밀스러워야 하는 정보 조직.


외부 세력에 신상 명세가 유출되지 않도록 각고의 주의를 기울인다. 설사 가문 내부라도 마찬가지다. 가문 구성원들조차 모르는 진정한 비밀 요원들도 꽤 많았다.


“단 한 명의 유능한 첩보원은 강호 정세를 뒤집어놓는 파급력을 가질 수 있지. 자네라면 가능해. 물론 이곳을 잠시 거쳐 가는 듯 보이지만···. 최대한 붙잡아놓고 싶군.”

“아직 한참 배울 게 많은 말학후배일 뿐입니다.”

“너무 겸양 떨지 말게나. 자네의 성격을 내가 모를 리 없지 않나. 뭐, 빈말이라도 좋긴 하군.”


첩정대주가 먼발치를 쳐다봤다. 이내 뒷짐을 진 채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수한 인재가 한식구이니 손수 가르침을 내려줘야겠지. 밤쥐와 들새. 첩보계 인물들이 왜 그런 금수(禽獸)로 비유되는지 아나.”

“정보에 밝고 은밀하면서 일상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동물 같은 감각으로 잽싸게 도망쳐야 하기 때문이지.”


첩정대주의 직위에 오를 정도라면 꽤나 발달한 기감을 지녔을 테다. 혹은 근방에 포진해 있는 첩정대 전음망으로 들었을 수도 있다.


쿠구구궁─!!


집단적인 발울림이 기척을 아스라이 드러냈다. 점차 가까워지는 속도가 급증했다.


“그럼 내 빈자리를 부탁하지, 부대주.”

“저기 있다. 빌어먹을 첩정대! 감히 우리가 한 눈판 사이에 신입을 빼돌려?”


첩정대주는 홀연히 사라졌다. 귀신 같은 움직이었다. 동시에 시끌벅적한 고함이 난폭하게 들이닥쳤다.


격렬한 전투를 벌였던 검극대주와 칠요대주다. 그들은 이미 한소백을 자기네 대원으로 정했는지, 호칭마저 막 불러댔다.


쿠구구궁!! 쿵, 쿵!


흉흉한 기운을 퍼트려대는 질주. 지축마저 떠들썩하게 흔들렸다. 달려오는 건 그들뿐만이 아니다.


“신참은 우리 검신대의 것이다.”

“망휘대 놈들보다 더 빨리 달려!”


다른 무력대부터 잡다한 조직의 무사들까지 벌 떼마냥 몰려오고 있었다.


“염병할 대주. 제 안위만 따지고 튀다니 비겁하구려.”


한소백의 숙부, 부대주가 욕을 뇌까렸다. 시종일관 근엄했던 모습이 무색할 정도의 반응이었다. 커다란 고함이 초조함을 더 부추겼다.


“첩정대로부터 신입을 빼내라! 지장을 찍기 전에 먼저 탈취해야 해!”


한소백의 빼어난 재능에 전부 눈이 돌아갔다. 저들의 분노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미끼가 되어야만 했다.


“그럼 부대주님, 잘 부탁드립니다.”


일제히 발치에 공력을 내리달렸다. 나머지 첩정대원들도 그렇게 경공 기동으로 도망쳤다.


‘불쌍한 숙부. 이인자의 고뇌로군요.’


한소백도 도주할 준비를 마칠 때, 누군가가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안녕, 신입. 내게 네 선임이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일단 날 따라서 도망치자고.”



* * *



후기지수의 연배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쾌활한 미남상을 지닌 그는 살갑게 외쳤다.


“반가워. 가명이긴 한데 청선(淸璿)이라고 부르면 돼. 난 첩정조장을 일임하고 있어. 첩정대는 여러 조로 나뉘어 활동하거든. 우리 조에서 요리도 겸해서 담당하고 있지.”


보드라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가 첩정대에 적응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뭐 귀찮게 설명할 필요가 있나. 마침 임무가 하나 있거든. 어때 체험해볼 겸 지금 갈래?”

“좋습니다. 줄곧 장원 안에 틀어박혀서 따분하던 참이었거든요.”

“별로 위험하진 않아. 진목교를 정탐하러 가거든.”


그 순간 한소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진목교(眞目敎).


악신의 눈을 신봉하는 사교(邪敎) 세력. 십이혼이라 불리는 천하 열두 사마외도 집단 중 하나다. 죽은 모친부터 납치와 멸문지화까지. 여러모로 한소백과 악연이 깊었다.


“저기가 바로 우리가 파악한 진목교의 지부야.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어디까지나 우리의 목적은 감시거든.”


청선과 한소백, 그리고 첩정대의 요원들은 한적한 산자락에 도착했다. 넓은 터에 자리 잡은 장원으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였다.


“감시만 하는 겁니까?”

“그래. 직접적인 전투는 언제나 다른 무력대의 역할이거든. 우리는 정보 수집에만 집중하면 돼.”


한소백은 손가락으로 웬 짐수레를 가리켰다. 적재물 위로 커다란 천이 덮여 있었는데, 틈새로 미세한 무언가가 보였다. 조금씩 움직이기까지 했다.


“포로가 잡힌 듯한데 구출은 없습니까.”

“어, 그렇네. 너 눈 되게 좋다. 근데 포로가 있다는 건 우리도 파악하고 있었어.”


아까부터의 대화도 그렇고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한소백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찡그렸다.


“당연히 구출은 없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한소백은 고개를 불만스럽게 기울였다.


“적들의 수도 그렇고, 능력은 될 것 같은데요. 따로 이유가 있습니까.”

“계속 말했지. 우리 임무는 진목교의 감시야. 괜한 소란을 일으키면 안 되지. 너도 첩정대에 들어왔으니 점차 적응해야 할 거야.”


꼿꼿한 태도였다. 정말로 청선은 포로를 구출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납득이 가는 이유였으나 가슴은 아주 잠시 들불처럼 타올랐다.


“그래도 구출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진목교는 무고한 양민을 자주 납치한다. 그리고 그들의 눈을 도려내고 자신들의 신을 위한 제물로 바친다.


교리가 그랬다. 중원 사람들의 눈은 불결하기에, 시선만으로 세상을 삿되게 오염시킨다.


오직 진목교의 안법을 단련한 눈만이 천하를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다. 그런 보잘것없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납치되고 죽어 나갔다. 그중에는 한소백도, 모친도 있었다.


그럼에도 청선은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아까와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랭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신참, 지금 하극상을 벌이려는 거냐.”

“그저 건의할 뿐입니다.”

“······으레 겪는 일이긴 하지. 네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다.”


하아.


한숨이 낮게 흘러나왔다. 머리를 짚은 청선은 차가운 눈동자로 신참을 바라봤다.


“대관절, 첩보원이란 무엇이냐.”


과장스러우면서도 차가운 억양이 입술에서 나왔다.


“우리가 얻는 정보는 가문의 실리(實利)로 직결된다. 하물며 이번 대상은 사도 십이혼의 대방파로 최중요 경계 대상이지. 여기서 보고 들으며 얻는 정보를 가문에 낱낱이 바쳐야 한다. 설사 인질을 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타 무력대의 소임일 뿐, 우리는 결코 관여하지 않는다.”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청선은 경고하듯 나직이 말했다.


“너는 첩정대 요원이다. 네 소임을 망각하지 마라. 괜한 독단을 벌이지 마라. 그저 부동의 마음으로 파란을 관조하라.”

“······.”

“명심할 건가. 아니, 그리해야 한다.”


냉혹한 얼굴이 한소백에게 쏘아졌다. 줄곧 살가웠던 태도와는 무척 상반되었다.


“조장님의 논리는 지당하십니다.”


한소백은 수긍하듯 말했다. 청선의 낯빛이 조금 밝아졌다. 그러다가 이어진 목소리에 조금 굳어졌다.


“하지만 제 행동이 최종적으로 이롭게 된다면 어떻습니까.”

“무슨 소리지?”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설득하듯 울려 퍼졌다.


“꼭 지켜만 봐야 하는 겁니까. 저희 임무는 진목교의 정보 수집. 헌데 지금 얻어낸 건 지부의 위치와 인원, 활동 반경, 인질의 존재···. 고작 그 정도뿐입니다. 그리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습니다.”

“그건 네가 판단할 게 아니다.”


단호하게 말해도 더 긴 설명으로 돌아왔다.


“저기 인질들을 구해주면 진목교도 필히 반응을 보일 겁니다. 그들의 동향을 통해 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언제부터 첩보원의 역할이 감시만 하는 것이었지요? 위험을 감수하며 직접 뛰고 정보를 얻는 것. 조장님의 재량으로는 안 됩니까.”

“흐음··· 이유가 아직 빈약한데.”


청선이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의 입꼬리가 연신 씰룩거렸다. 속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소백은 낭랑하게 조잘거렸다.


“저희가 얻어낼 정보는 쓰이는 날이 오기 전까지 상등의 것인지 하등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명분이 올곧은 목소리로 채워졌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평가하지 않아도 귀중합니다. 고작 정보 따위와 비교할 수 없지요.”


정명한 눈동자였다. 타인의 만류에도 흔들림은 없다. 꿋꿋이 신념을 관철하며,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모습을 누가 미워하겠는가.


짝, 짝.


“지당한 말이다. 어린놈이 강직하긴. 좋아, 네 독단에 어울려 주지.”


청선은 기쁘게 갈채하였다. 새파란 신참의 의견도 선뜻 받아주었다. 그렇게 구출 작전은 실행되었다.


복면을 쓴 인영들은 은밀하고도 신속한 움직임으로 진목교의 지부에 침투했다. 포로의 위치를 확보하자마자 잔혹한 징치가 이루어졌다.


“끄으악, 너희는 뭐냐!”

“습격이다! 모두 각개격파 당하기 전에 모여! 병장기를 챙기라고!”

“신이시여, 진정한 눈길의 빛으로 우리를 보호해주소서!”


고작해야 일개 지부였다. 변변찮은 병력만 모였기에 전부 속수무책으로 죽었다. 이후 인질들까지 구출되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대협들!”

“신원을 밝히지 않으셔도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하남 유가장을 찾아와 주세요.”


텅 빈 눈동자와 피칠갑이 된 방. 이미 늦은 자들도 종종 보였으나, 다행히 위중하지 않은 이들도 꽤 많았다.


그들의 감사 인사가 연신 이어졌다. 이내 첩정대 요원들이 차례차례 안전한 곳으로 옮기며, 기쁨에 찬 눈물과 목소리도 서서히 멎었다.


“넌 첩정대에 뼈를 묻을 것 같진 않네. 우리 같은 짐승들과 격이 달라. 협객의 기질이 보여. 네가 하루빨리 나가는 게 강호를 위해서라도 옳을 듯해.”


청선은 회의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막상 생존자들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한 듯했다.


한소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장님은 의로운 분이시군요.”

“뭐?”

“냉소적인 어투로 진심을 가리셨으나, 가슴 속에는 여전히 협의를 간직하셨어요.”

“입바른 소리 하기는.”


얼굴을 돌린 청선은 행랑을 어깨에 멨다. 진목교 지부에서 노획한 재물들이었다.


“빠져나갈 준비나 해라. 진목교도는 눈이 좋거든. 그걸 십분 활용해 견고한 소통망을 만들어. 연기나 불꽃처럼 무슨 신호나 표시를 남겼을 수 있지. 우린 알 수 없게.”

“예, 알겠습니다.”


하늘은 어느덧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낮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까지 걸린 작전. 그 후 맞이한 황혼의 빛깔은 제법 운치 있는 광경이었다.


퍽.


청선은 바닥에 쓰러진 진목교도 시체를 발로 살살 찼다. 부릅뜬 붉은 눈동자가 몹시 섬뜩했다.


“적색안(赤色眼)이야. 평교도가 익히는 안법은 기본적으로 부작용이 심해. 눈이 붉게 변하지.”


숲속으로 걷던 청선은 연거푸 재잘거렸다.


“눈 색이 붉게 진해질수록 정예 무인이라고 보면 돼. 진홍안(眞紅眼)이라고 불리지.”

“그 정도 수준이 되면 궁술을 익히게 되죠.”

“어, 잘 아네. 예습이라도 했-”


말이 돌연 그쳤다. 한소백이 덮치듯 손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청선은 몸을 휘청거렸다. 직후, 웬 물체가 대기를 직선으로 가쁘게 갈랐다.


푸콱─


화살이 청선의 어깨에 박혔다. 몹시 아찔한 차이였다. 본래라면 머리통이 적중되어야 했다. 한소백이 팔을 당기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즉사였다.


“목숨, 빚지셨습니다. 꼭 기억하세요.”


쌀쌀한 목소리가 위압감을 불렀다. 흠칫한 청선은 통증에 눈살을 찌푸려댔다. 그리고 나무줄기 뒤로 다급히 엄폐하며 말했다.


“궁술 무공이라니. 진홍안의 정예가 왔나.”


신참의 위화감은 뒷순위로 두고, 청선은 곤혹해 하며 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꺼낸 물체는 호각(號角)이었다.


“일단 신호를 보낼게. 여차하면 조원들을 집결시켜 대응하고.”


삐이이이─


낮으면서도 뚜렷한 소리가 멀리까지 뻗어나갔다. 긴박한 상황이 닥쳐올 때 첩정대에서 쓰는 신호다. 근방에 대기 중인 요원들을 부른 것이다.


“음···?”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본래라면 곧장 답신이 와야 했다. 인질 구출로 빠진 이들을 제외하고서라도 너무나 의아한 일.


그때 웬 울림이 길게 대기를 질주했다.


───휘이이익!


명적(鳴鏑), 소리 내는 화살이다. 첩정대는 활을 따로 들고 다니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저 도구를 사용할 이들은 몹시 자명했다.


사아아아─


일몰의 끝이 다가온다. 자줏빛으로 어둡게 물들어가는 하늘. 그 멋스러운 광경에 종지부를 찍듯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곧 불그스름한 점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수십 쌍의 눈동자가 두 사람을 집중적으로 응시했다.


“만약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살갗이 절로 오싹해지는 때, 시리고 엄숙한 음성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조장님께서는 어떻게 보은하실 겁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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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승단시험 +1 24.08.08 932 23 12쪽
9 협상 +1 24.08.07 907 23 13쪽
8 영약 +1 24.08.06 956 24 13쪽
7 비무 +1 24.08.05 990 20 13쪽
6 암투 +1 24.08.04 1,046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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