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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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작품등록일 :
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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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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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공녀

DUMMY

늦깎이 수료생은 몹시 바빴다.


현재 신분은 예비 평검주. 조만간 평검주 승단 시험이 있 예정이다. 교관의 인정을 받을 정도만 되어도 무리 없이 합격할 수 있다.


하잘것없는 시험보다는 여러 물밑 작업이 더 중요했다.


‘세작과 배신자를 추려내야 하고, 가문 바깥에도 내 추종 세력을 세워야 해. 습격에 가담한 자 중 홀로 행동하는 녀석들도 미리미리 제거하고···. 장기 외출을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는 힘이 필요했다. 최소한 한씨세가를 뒤엎어도 별 탈이 없을 정도의 힘. 지금도 나이를 월등히 상정하는 강함을 지녔지만, 한참이나 부족했다.


한소백은 거처에서 근신 중인 부친과 상담하였다.


“대총관 그 교활한 불여시가 네게 접촉했다니. 아무리 봐도 협박이다. 가문의 중책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짐작대로 그녀는 검신교와 연관됐을 거고. 무엇보다 가주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해서 소란이 커졌군···.”


한대명은 침음을 앓으며 말했다.


“여지껏 가주는 두문불출했다. 항시 폐관에 몰두하며 대소사는 대총관에게 일임했지. 그런데 느닷없이 회의에 나타났다? 참으로 공교로운 시기란 건-”

“상단전으로 얼핏 예지라도 한 모양이군요. 절세고수라면 그만큼 신통한 공능을 지니고 있을 테니.”

“아마 그렇겠지.”


제 아들을 쳐다보는 시선이 유난스러웠다. 특히나 정수리 백회혈 부근으로 꽂혔다.


“네 상단전도 이전 생의 영향 때문인지 벌써 비대해졌으니까. 공명 현상이 일어난 것이겠지. 참 번잡스러운 일이야. 가주의 관심을 얻은 걸 좋다고 해야 할지···.”

“힘이 부족하니 타인에게 자꾸 휘둘리네요. 어서 수복해야겠어요.”


실없는 소리에 한대명은 헛웃음을 흘렸다. 한때 최정점을 논했던 칼잡이의 기준은 범인이 따라잡기 버거웠다.


“검법만으로 나를 아이 대하듯 가지고 놀았는데도 약하단 말이냐. 참 경악스러운 따름이다.”


경외와 흐뭇함이 공존하였다. 한소백은 피식 웃으며 주절거렸다.


“무인의 경지는 순수하게 기예와 깨달음만으로 이룩하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도 아시겠지만, 어느 순간 노력으로 얻을 수 없는 질적 변화. 하늘이 선물처럼 내려주는 특별한 공능을 가지게 되잖아요.”


예컨대, 광범위하게 확장되는 초인의 감각.

벽을 깨부수듯 비약적으로 발달한 육체.

혹은 극도로 정밀해지는 신체 통제력.


그 외에도 잡다한 게 많다.

물론 이 중에서 무공으로 구현할 수 있는 분야가 꽤 많았으나, 그럼에도 경지의 영향력은 몹시 강대했다.


피로도의 문제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상시로 유지되는 상태. 기력과 심력 소모가 줄어든 만큼, 다른 쪽에다가 수를 더 할당할 수 있었다.


“과연, 무공은 적공(積功). 즉 시간의 싸움이다, 이건가. 정기신(精氣神)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신(神)만 비대하니. 그래서 이전 경지를 답파하는 데 오래 걸리는 건가··· 나도 정확한 상관관계는 모르겠군.”

“저도 회귀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한대명은 연신 턱을 매만졌다. 고단한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아무튼 한씨세가는 현재 소가주 경합으로 분위기가 치열한 상태다. 모두 너보다 연배가 높지. 고강한 건 물론이고 머리도 굳었어. 권모술수에 항상 주의하거라.”

“그래 봤자, 제 개입이 없으면 모두 삼 년짜리 시한부 인생들이지만요.”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선 혼자면 안 된다. 너만의 세력을 구축해야 해. 일단은 급한 대로 직계 중 하나를 뒷배로 두는 것도 좋지.”


집단의 힘. 한소백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이유기도 했다.


경지는 제외하더라도 체력과 내공이 부족한 지금, 장기결전과 다수전은 굉장히 불리했다.


‘상품의 영약을 얻으면 조금 안심이 될 텐데.’


처소에서 나오고 고민하며 걸을 때였다. 좌측에 지어진 연무장으로 향하는데, 하늘거리는 도복을 입은 노인이 길을 막았다.


“소협. 그대가 저번 회의에서 파란을 불렀던 소년이 맞나.”


인자한 눈웃음이 인상적이었다.


나들이 나온 듯 가볍게 진 뒷짐. 도가 특유의 영험한 선기(仙氣)가 느껴졌다. 언뜻 솔향이 은은하게 번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저런 현량한 성품을 지닌 자는 세가 내에서 몇 없었다.


“네, 맞습니다. 노선배님은 무당에서 오신 검사부, 명현(明賢) 진인이십니까.”

“진인은 무슨, 명현자로 족하다네.”


노도사는 손사래를 치며 겸양했다.


검신교를 배후로 둔 한씨세가다.

자연스럽게 검의 명가로 불렸다. 명문세가로서 역사가 짧을 뿐, 실력은 암암리에 알려져 호광 땅에서는 팔대세가의 일익으로 칭송받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강호의 고매한 검객을 초청하여, 세가 내 사부로 삼을 수 있었다.


일명 검사부(劍師傅)라는 직책이었다. 인근 대방파로서 교류하는 만큼, 무당파에서도 몇 달간 명현자를 특파했다.


‘어쩌면 감시의 목적일 수도. 뒤늦게 파악해서 책임을 묻지 않을 뿐, 한씨세가가 검신교라는 사실은 무당파에서도 알고 있을 테니.’


한소백이 은근히 견제할 때, 명현자가 선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풍문으로만 들었는데도 참 놀라운 기백을 느꼈네. 소협이 한 발언은 실로 대담했지. 그래서 늙은이의 주책일까, 조금 우려스러워 이리 찾아왔네.”

“제 소문이 꽤 널리 퍼졌나 보네요.”

“직계가 죽으면 방계가 적통이다. 우리 같은 도가 문파는 떠오르지 못할, 파격적이면서도 신선한 발상이라네. 세가와 달리 모든 제자가 문파의 미래이니.”


늙수그레한 음성이 나긋하게 퍼졌다.


“빈도가 지켜본 바로, 한씨세가는 세간의 평가 그 이상이었네. 칼에 긍지를 가질 만하지. 그 고강함은 놀랍지만, 동시에 성품을 너무 칼처럼 예리하게 갈지 않았나 걱정이 깊네.”

“결국 이권을 중시하는 무림세가인 만큼 음흉한 견제가 빗발치지요.”


명현자는 말없이 웃으며 동의를 보였다. 이윽고 관대한 제안이 본 목적인 양 흘러나왔다.


“검사부란 직책은 조만간이네. 달포 뒤쯤 복귀할 예정인데, 소협이 원한다면 무당으로 오는 건 어떤가. 질 나쁜 정치 싸움은 없다네. 겸사겸사 오연한 성정도 고칠 수 있고.”


파격적인 권유였다.


무당파는 올곧은 협객을 양성하기 때문에 제자 선별이 엄선했다. 특히나 명 자 배는 현재 장로로서 무당의 중책을 맡은바. 지금 한 말은 배분을 무시하고 바로 장로제자로 들인다는 투로 들렸다.


“제안은 제게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감사합니다.”

“거절하겠다는 건가.”

“예. 이곳에서 펼칠 뜻이 있으니까요.”


꼿꼿한 의사에 명현자는 설득을 관뒀다. 대신 미련이 있는지 말을 남겼다.


“아직 달포가 남았으니 조금 더 찬찬히 생각해보게나. 단신으로 이곳의 파벌 싸움을 견뎌내긴 힘들 걸세. 떠나거나 혹은 도와줄 이가 필요하겠지.”

“그 말이 맞습니다. 과연 신선의 안목이로군요. 저 소년에게는 든든한 보금자리가 필요하지요.”


불현듯 들린 낭랑하면서도 고혹적인 목소리.

느닷없는 간여에 시선이 돌아갔다. 접근은 이미 파악하긴 했다.


“반갑습니다, 명현 진인. 진인의 가르침 덕분에 그간 칼로서 태극의 뜻을 고찰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잘 못 보는군. 그새 기도가 더 안정되었어. 자네의 성취에 빈도는 항상 감탄할 뿐이네.”


묘령의 여인이 적빛 경장을 걸친 채 다가왔다. 갸름하면서도 탄탄한 몸태에, 흑단처럼 늘어진 머리칼이 고아한 미를 그려냈다.


여우 가면을 썼지만, 미려한 용모는 여전히 감출 수 없었다.


한씨세가 일공녀, 한백린이었다.


“잠시 이 소년과 이야기해도 되겠습니까.”

“···태극은 충돌이 아니라 화합에 있다네. 물줄기처럼 부드럽고 유장해야 하지. 소협에게 모질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군.”

“유념하겠습니다.”


간결한 대답은 형식적인 예의만 갖추었다. 새겨듣지 않는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명현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일공녀께서는 무슨 일로 오신 건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너,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널 가져야겠다.”


꿈틀거리는 눈썹을 가까스로 통제했다. 가소로운 발언에 한소백은 기가 찼다.


그 속내도 모르고 일공녀는 잔잔히 말했다.


“네 검재는 전부터 유심하고 있었다. 언제고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지. 그런데 저번 회의에서 아버님께 칼잡이로서 인정받았다지? 비범한 인재를 휘하에 둔다면 가문에서 내 입지가 공고해질 거다.”

“좋은 제안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거절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또렷한 눈매가 불쾌를 담았다.


“두 번은 없다. 내 제의를 거절하면 널 적으로 삼겠다. 당장 이 자리에서 결정해. 난 인내심이 없거든. 네 미래와 직결될 테니 신중히 재고해야 할 거다.”


한소백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거절하겠습니다.”

“기어이 나와 대적할 셈인가. 어리석군.”


연홍빛 입술이 비죽 내밀어졌다. 비위가 완전히 상한 듯했다.


“제게 관심이 있었다고 하셨죠? 제 조사도 마쳤을 테고요.”

“그렇지.”

“그럼 제가 사공자와 윤일성에게 시비로 곤욕을 치를 때,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셨습니까. 그걸로 호감을 살 수 있었을 텐데요.”


일공녀의 눈썹이 미묘하게 구부러졌다.


“그렇게까지 공들일 이유는 없다. 내 관심만으로도 넌 과분한 복을 누린 거다. 터무니없는 욕심이라고 생각 안 하나. 속이 좁군.”

“수하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도 가주의 자질 중 하나입니다. 진정으로 원하셨다면 먼저 다가와, 제 신뢰를 사셨어야죠.”


한소백이 따갑게 말했다. 그 지적이 불편했던 걸까. 정적이 잠시간 흐른 뒤, 일공녀가 따뜻한 날숨을 내뱉었다.


가면 뒤로 커다란 눈망울이 냉담하게 빛났다.


“건방진 발언이라고 생각 안 하나.”

“이 자리에서 제의를 거절하면 피차 적대하지 않겠습니까. 설사 주군으로 모시더라도 짧은 대화만으로 신뢰 관계가 형성될 리 없지요. 가식은 무용하니 전 그저 진심을 고할 뿐입니다.”

“과연, 경탄스러운 입담이군. 이래서 아버님의 마음에 든 건가. 허나 아니꼽군.”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며, 새하얀 목선이 두드러졌다. 시린 목소리가 나직이 경고했다.


“난 쾌검식을 연마했다. 내 출수 한 번이면 이 자리에서 네 목이 날아갈 수 있다. 건방은 여기까지다.”


한소백은 아랑곳하지 않고 맞섰다.


“공녀께서는 절 못 베십니다. 소가주 경합이 한창인데 가주에게 밉보일 이유가 없으시니까요.”

“우둔하긴, 직계를 모욕한 죄를 물면 그만이다.”


물러나기를 싫어하는 성격일까. 뚜렷한 반골 기질에 따라, 일공녀는 거침없이 행동했다.


우우웅─


복부 밑 단전에서 오른팔까지 공력이 삽시간에 질주했다. 검파에 얹힌 손이 흐릿해지고, 공기가 요란히 갈렸다.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발검의 속도.


한 줄기 빛이 명멸했다.


콰앙!


금속음이 불티와 함께 튀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 가면 아래로 일공녀의 입매가 비틀렸다.


쾌속의 출수는, 수직으로 세워진 칼날에 막혔다. 이 모든 게 부지불식간이었다. 어느새 측면에 접근한 노도사도 경악했다.


“공녀께서는.”


웃음을 눌러 담은 목소리가 평화롭게 퍼졌다.


“칼보다 입이 더 빠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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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첩정대 +1 24.08.09 941 17 14쪽
10 승단시험 24.08.08 909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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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약 24.08.06 930 21 13쪽
7 비무 24.08.05 964 17 13쪽
6 암투 24.08.04 1,022 19 12쪽
» 일공녀 24.08.03 1,123 22 11쪽
4 수료 24.08.03 1,242 21 12쪽
3 후계자 +1 24.08.02 1,452 25 16쪽
2 아버지 +2 24.08.02 1,900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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