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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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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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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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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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약

DUMMY

막 수료를 마친 소년이 중견고수에게서 승리를 거뒀다. 내공에 제한을 뒀지만 실로 놀라운 업적이었다. 부친 한대명이 몹시 기뻐하며 비무대로 다가왔다.


“망휘대의 명검주를 상대로 대단한 무위를 보여주다니.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구나.”

“···선배님께서 봐주신 덕분입니다.”


진솔한 대화는 남몰래 전음으로 나누었다.


─제가 전생에 이룩한 경지가 어디인데.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벌써 반색하지 마세요.

─아들의 활약에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어딨느냐.


두 사람 모두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소박하지만 단란한 행복이었다.


한소백은 곧 고개를 돌렸다. 임유광을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망휘대(望輝隊)라니? 성위단 소속 아닙니까. 일공녀께서 사사로이 차출할 수 있나요.”


한씨세가에는 두 무력단이 있었다. 명검주급이나 그에 준하는 인재로 구성된 최정예 무력 집단이었다.


그중 망휘대는 성위단(星位團) 소속.


후계자가 되려면 가문 내 여러 조직의 지지를 얻는 게 당연하지만, 최정예 무력단만큼은 예외다. 언제고 가문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칼로, 사병(士兵)으로 써선 안 된다.


정쟁에 참전 불가.


어느 대방파나 무림세가를 가도,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그런 입장을 취한다. 설령 성위단주가 누군가의 편을 들면 몰라도, 소속 무사가 다른 이의 명령을 개인적으로 따를 순 없다.


“천검단은 안 되지만 성위단은 가능해. 단주께서 휘하 무력대에 무관심하거든. 본인의 칼 성취에만 신경 쓰시지.”


임유광이 씁쓸한 투로 말했다. 일공녀도 거들었다. 못마땅한 표정까지 지었다.


“오만한 이야기지. 성위단주는 가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초고수. 파벌 싸움의 승자가 누구든 간에 결국 성위단주를 필요로 한다. 또한 수하가 앙큼한 생각을 품어도 그렇다. 막상 임무가 닥쳐오면, 그녀의 위엄에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지.”


파벌을 오시하는 독보적인 무력. 한소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최소한 단주급 인사. 초고수의 반열에는 들어야 하지. 그 정도는 되어야 전생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


지난 삶의 경험이 있어도 그렇다. 현 체급으로는 상승 무리(武理)를 체화하는 게 불가능하다.


“영약은 오늘 밤에 바로 먹을 건가.”

“그래야죠. 호법 잘 부탁드립니다. 공녀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불초 소신(小臣)이 안심하고 수행합니다.”


과장스러운 언변이었다. 도리어 믿음이 안 갔다. 일공녀는 시큰둥한 눈빛을 보냈다.


“···이 영약을 먹는 대가로, 너는 내 부하가 된 거다. 부탁할 때마다 성실히 임해야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 * *



어둑한 장내를 촛불이 희미하게 밝혔다. 진법으로 보호받는 연공실이었다. 바깥에는 부친 한대명을 비롯해, 일공녀가 붙인 호위 병력도 대기했다.


타인의 음흉한 암습 위험은 없을 테다. 일공녀도 이 지경까지 와서 배신할 이유가 없고.


‘아무리 강하더라도 운기조식할 때는 위험해. 덕분에 한시름 놨군. 역시 울타리의 보호가 필요해.’


가부좌를 튼 한소백은 목함을 열었다.

한씨세가의 금명단. 소환단 정도의 위상이라고 보면 됐다.


명문가 자제들은 영약을 물처럼 복용하는 법. 녹여낼 세월만 필요할 뿐이다. 금명단 하나 정도로 그들의 축기량은 당장 따라잡을 순 없다.


‘하지만 낭비 없이 전부 녹여내면 그만이야. 그러면 상승고수 수준에 걸맞은 내력을 얻겠지.’


한소백은 영단을 입에 넣었다. 식도를 지나는 순간, 신체 내부가 따스한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반 시진 정도의 운기가 끝났다. 정밀한 진기 통제에 따라, 약효를 완전히 흡수했다. 전성기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불어난 진기가 전능감을 선사했다.


폐관 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심법을 연마하며 한층 더 강해질 셈이었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네가 익힐 심법은 마공이되 마공이 아니다.


흑도제일검이라고 불리는 스승이다. 듣자마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사특한 기운이 공포스러운 자였다.


─천겁흑뢰도(天劫黑雷圖). 검은 벼락을 불러내는 마공이지. 너는 번개가 오행 중 무엇을 담당하는 줄 아느냐.

─뇌(雷)는 목(木)입니다. 왜 그러는지는 이해가 안 되지만요.


망설임 없이 답했으나, 의문이 생겼다. 스승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소거적인 분류지. 오행의 이치는 심오하나, 삼라만상을 전부 대변할 순 없다.


긴 설명이 이어졌다.


─뇌는 양(陽)의 성질을 띤다. 불, 물, 땅, 바람 등 오행을 서역의 사고방식으로 단순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실상은 현상과 변화에 주목해야 하지. 그중 양은 상승하는 힘. 이는 오행 중에서 화(火)와 목뿐이다. 허나 화는 성질이 너무 맹렬하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목이 남는군요.


그 말 따라 수와 토는 연상이 잘 안되었다. 그나마 금이 어울리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 난 뇌를 이렇게 정의하지. 음(陰)과 양(陽)의 격렬한 충돌이라고.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게 뇌기. 허나 이는 극히 불안정하며 성취가 어렵다. 그래서 강호에 뇌공을 연성한 이가 적지.

─설마 음양지기를 동시에 익혀야 하나요.


스승은 고개를 낮게 끄덕였다.


─그렇지. 극양과 극음. 본디 하나만 있어도 부조화를 초래해, 인간의 연약한 육신으로는 해롭다. 구음절맥(九陰絕脈)이나 태양절맥(太陽絕脈)을 떠올려봐라. 만성적인 고통과 함께 주화입마를 불러오지.


두 손바닥을 펼쳤다. 따스하고 시린 기운이 각기 올라왔다. 이내 손이 모여 흑빛 아지랑이가 생성되었다.


─헌데 양극단적인 힘을 동시에 수용, 그것도 강제로 부딪혀 패도적인 힘을 이끌어내면 오죽하겠느냐. 조화를 중시하는 태극과 정반대지.

─그래서 부조화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공으로 변질하는 거군요. 심마로써 타격도 입을 테니.


어린 한소백은 담담히 수긍했다.


─내 무공을 사사하려면 기초를 다져야 한다. 올곧은 마음을 바탕으로 마공에 입문. 그 뒤 마공을 극복하며 광기를 없애는 게 최종적인 극의다. 정종무공에서 마공, 그리고 다시 정종무공으로 이어지는 경로지. 전제는 차분하고 강직한 이성이다.


스승이 못마땅한 듯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넌 내면의 복수심 때문에 이미 심마를 가진 거나 다름없지. 그 상태로 입문 자격을 얻는 것만 해도 최소 십수 년은 걸린다. 마공을 극복하는 건 더 오래 걸리지. 그런데 올바른 과정을 안 거치고 바로 마공에 입문하겠다니. 정녕 괜찮겠느냐.

─정석적인 방식은 안 됩니다. 복수를 위해서 전 하루빨리 강해져야 합니다.


그때의 한소백은 흉흉한 살의를 지닌 채 말했다.


─검흑제께서 마공을 전수하지 않으신다면, 전 다른 마공을 찾겠습니다.

─······네 소원을 들어준다고 괜히 약조했군.


과연 악명대로 천겁흑뢰도는 막강한 힘을 선사해줬다. 대신 부작용으로 광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고, 그렇게 한소백은 검의 마귀로 죽었다.


‘지금은 달라. 심마는 극복했고, 마공의 부작용도 없어. 맑은 심령(心靈)에 절세고수의 정신력까지 지녔지.’


파지직.


검은 번갯불이 튀었다. 약식이지만 인위적으로 음양을 분리해 충돌, 그렇게 뇌공을 연성할 수 있었다.


‘당장 천겁흑뢰도를 쓸 순 있어. 하지만 마공의 흔적 때문에 자칫 들켰다간 마인으로 몰릴 수 있지. 정식 수련은 나중이다.’


새로운 심법이 필요했다.

일단은 임시로 한씨세가 방계 심법, 육금제련공(六金製鍊功)의 구결을 떠올렸다. 본디 단전에 품고 있던 힘이다.


‘두 구결을 분해하고 재조립한다. 운기 경로도 나만의 것으로 개량하고. 정순하면서도 성취가 빨라야 해.’


얼마나 집중한 걸까. 시간의 흐름은 잊히고, 체내 관조에 온전히 몰두했다.


천겁흑뢰도의 사특한 구결이 제거된다. 절세무학의 내공운용 요체만 빼낸다. 이후 육금제련공과 적절히 연계, 그렇게 미완의 심법이 탄생했다.


파앗─


장대하게 터지는 빛무리.


비좁았던 전신 경혈이 넓게 뚫렸다. 내공이 깃들면 내구와 탄성이 상승하고, 육신의 강도가 굳세졌다.


한소백은 압도적인 기운을 퍼트리며 연공실을 나섰다.


“드디어 끝난 것이냐. 벌써 칠주야가 지나서 걱정했단다.”


한대명이 애타는 목소리로 반겨주었다.


“이전보다 몇 곱절은 더 강해졌습니다. 이제 웬만한 적수는 저에게 무용할 겁니다.”

“과연 기도가 예사롭지 않구나. 아, 내 정신 좀 봐라. 허기지지 않니. 상을 가져오라고 할까.”

“괜찮습니다. 그보다는 몸이 근질거리네요.”

“대련이라도 할까.”

“나중에요. 마침 적당한 상대가 있거든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일공녀가 지내는 전각으로 향했다. 업무를 보고 있던 그녀는 낮게 감탄하였다.


“고강한 내공화후로군. 크나큰 성취가 있었나.”

“뭐, 덕분에요.”


한소백이 설렁거리듯 손을 펼쳤다. 불량한 태도였다. 일공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예의를 더 상실했나?”

“혹시 제 실력 좀 보여줘도 되겠습니까.”

“넌 분명 내 수하가 되기로 약조했다.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나를 대우······.”


우웅─


청명한 공력을 구름처럼 몸에 둘렀다. 은은한 떨림이 실내 공기를 압박했다.


“너, 기운이 무슨···.”

“공녀님께 불경하게 굴지 마라!”


호위 무사들이 즉각 검을 꺼냈다. 엄중하게 일공녀를 가로막은 채, 한소백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흘러나오는 공력을 회수하지 않자, 위협적으로 행동했다.


“수하답게 예의를 갖추어라!”


목에 검이 겨눠질 때,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제 충성을 증명하죠.”


파앗─


신형이 흐릿해졌다. 검날을 쳐내고, 호위의 품을 파고들기까지 삽시간이었다. 급하게 상체를 막는 주먹을 옆으로 밀치고, 찰나에 턱을 세 번 가격했다.


퍼퍼퍽!


피를 흘리며 호위가 뒤로 넘어진다. 그 광경에 나머지 무사들이 일제히 덤벼들었다. 잔뜩 얼굴을 구긴 채 노호성을 터트리며 말이다.


“무슨 짓이냐!”


쾌속하게 덤벼오는 검격. 네 방향에서 동시적이었다. 한소백의 눈매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공력으로 경화(硬化)된 손이 검을 튕겼다.


팟!


이내 좌측으로 숙이며 바닥을 박찼다. 권격이 한 놈에게 정통으로 작렬. 그때 양 측면으로 인영이 접근해온다. 허리를 휘돌리며 짓쳐오는 칼날을 떨쳤다.


손이 호위의 상체를 젖혀내고, 측면을 장렬히 강타했다. 격산타우의 수법으로 공력 파동이 대기를 후려치듯 터졌다.


파앙!


충격에 무사들이 잠시 휘청거렸다. 그 순간 짧은 도약이 검권을 뚫었다. 무자비한 타격이 한 수에 열네 번 들어갔다. 남은 호위마저 기절하기까지 조만간이었다.


“어떻습니까, 제 실력. 이자들보다는 미덥지 않나요.”


칼든 자들이 전부 쓰러졌다. 맨손 박투로 저 정도 위용을 보이다니. 실로 압도적인 무위였다.


“배은망덕한 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냐. 이게 무슨 짓거리지.”


일공녀가 사납게 노려봤다. 그러자 한소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갔다. 뒷걸음질이 함께여서 거리는 여전히 유지되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군. 영약만 먹고 도망칠 생각만 가득했어. 천하에 더 없는 쓰레기···.”

“조금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제가 언제 당신 편 안 한다고 했나요. 입은 은혜는 당연히 갚을 겁니다. 단, 제가 요구하는 건 이겁니다.”


끼이이······


의자를 끌고 와 일공녀 앞에 뒀다. 한소백은 다리까지 꼬며 삐딱하게 앉았다.


“제 가치를 다시 책정하시죠. 전 유능합니다. 고작 영약 하나로 퉁치기엔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무뢰한과도 같은 논리. 일공녀는 이를 악물며 강압감을 떨쳐냈다.


“너를 믿고 투자한 결과가 이것이냐. 부하로 와 놓고 대성하자 발톱을 드러내는 경우는 처음 봤다. 그것도 이리 짧은 시간 내에.”

“공녀님도 참. 내가 절세고수가 되면 섭섭하지 않게 챙겨드린다니까요. 당신 편 맞다니까?”

“······염치 모르는 놈을 내가 포용할 이유가 없다. 이미 신뢰를 잃었어.”


말을 마친 일공녀는 입을 다물었다.


소년의 눈웃음이 사그라들었다. 의자가 앞으로 당겨지고 양손에 깍지를 낀다. 사뭇 좁혀진 거리.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나른한 숨결은 몹시도 냉랭했다.


“난 가주직 따위 욕심 없어. 영약을 준 은혜도 잊지 않을게. 그러니까 인내하고 달콤한 과실을 누려.”


거무스름한 음영이 안면에 드리웠다. 적색 안광이 섬뜩하게 빛났다.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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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승단시험 24.08.08 909 20 12쪽
9 협상 24.08.07 882 20 13쪽
» 영약 24.08.06 931 21 13쪽
7 비무 24.08.05 964 17 13쪽
6 암투 24.08.04 1,022 19 12쪽
5 일공녀 24.08.03 1,123 22 11쪽
4 수료 24.08.03 1,242 21 12쪽
3 후계자 +1 24.08.02 1,452 25 16쪽
2 아버지 +2 24.08.02 1,900 24 14쪽
1 서장 +2 24.08.02 2,932 2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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