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마회귀(劍魔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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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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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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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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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

DUMMY

명현자 정도의 초고수가 반응하지 못할 리 없다. 극속의 쾌검일지라도 막힐 건 예상했다.

허나 열다섯 살의 소년이 해내는 건 상정 외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


일공녀는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반면 소년은 차분했다.


“주특기가 쾌검일 리는 없겠네요. 허장성세의 무공이라도 익히신 겁니까. 평범한 자들이었다면 속았겠네요.”


신랄한 조롱이었다. 우회하여 표현하는 게 괜히 더 얄미웠다. 경악스러운 실력 역시.


“건방지군.”


일공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어느새 동요가 진정되었다.


“반응 속도는 제법이나 단지 그뿐이다. 너는 한없이 약해.”

“공녀께서 수련하신 세월에 비하면 미흡할 뿐이지요.”


나이까지 운운했다. 그 말대로였다. 일공녀는 내력을 끌어올려, 손 위의 검까지 전달시켰다.


우웅-


어기충검(御氣充劍). 검신 내부에 공력이 가일층 주입되었다. 내구도가 더욱 강인해지며 위력도 상승했다.


“네 말이 맞다. 충분히 두들기지 않은 쇳덩이는 무디지.”


맞닿은 두 자루의 검. 일공녀가 서서히 힘을 주자, 반대편의 검에 압박이 가해졌다.


빠각!


검날이 허무하게 부러졌다. 강호 무인의 무상한 목숨을 대변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내공도 적은 게 함부로 설치지 마라.”


나직한 경고. 일공녀는 걸음을 사뿐히 옮겨 곁을 그대로 지나쳤다. 한소백은 제 딴에는 공손하다고 여기는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유념하겠습니다.”

“···네 부족한 축기량을 긍휼히 여겨 지원해주려 했건만, 덕분에 영약 하나를 아꼈군.”

“영약?”


솔깃한 한소백이 염치없이 말했다.


“혹시 수하가 되라는 제안. 아직도 유효합니까. 곰곰이 생각하니 마음이 동하는군요.”

“아서라. 무례를 일삼는 네게 기회를 또 내려주는 게 가능할 듯싶으냐. 얌전히 줄 때 붙잡았어야지.”


여우 가면이 비아냥거리듯 측면으로 기울었다. 앙칼진 눈매도 뚜렷했다.


“주군의 신뢰를 사고 싶다면 마음을 먼저 얻었어야지. 두 관계는 본디 쌍방향이다.”

“···뒤끝이 심하네요.”


한소백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문 너머로 사라져 가는 일공녀를 아쉽다는 듯 바라봤다. 폭풍 같은 소란은 느닷없이 끝났다.


병풍마냥 서 있던 노도사가 짧게 기침했다.


“음, 소협. 참으로 탐나는 검재를 지녔어. 말본새도 예사롭지 않았고. 노부가 한 제안이라도 재고해보는 게 어떤가. 언젠가 태청단 정도는 녹여낼 수 있을 듯한데.”


명현자가 넌지시 물었다.


그 온유한 제의는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무당의 칼질이라면 지긋지긋했다. 한소백은 완고하게 뜻을 표명했다.


“더 좋은 만남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게 태극 아니겠습니까.”

“무당의 문은 언제고 열려 있다네. 그래도 항상 조심하게나.”


명현자가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를 향한 견제는 이미 시작되었다네.”



* * *



“소가주 직위를 둔 정쟁은 매우 치열하고 복잡하다. 보통은 장남이 승계하길 마련이지만, 명문세가일수록 능력 위주로 돌아가지.”


근신 중인 한대명이 말문을 뗐다.


“대공자가 유력하다지만 언제든 바뀔 수 있어. 일공녀도 야심이 크지. 특히나 대공자와 일공녀, 이 둘은 첫째 부인의 자제. 첫째 부인 쪽에서 한쪽 편을 들며 참견하기란 곤란하지. 이런 기조가 후계자의 위계를 흐트러뜨려, 작금의 상황을 지어냈고.”


한 명의 후보로 영향력을 집중시켜도 모자랄 판에, 분열이 일자 배다른 자식들도 경합에 참전하였다.


하물며 모친과 외가까지 이때다 싶어 간섭하니, 파벌 싸움이 복잡해졌다.


“이공자가 특히 외가의 힘이 막대하죠. 무려 팔대세가의 일익이니.”

“그렇지. 남궁 씨란 지난 무림의 역사에서 명문가로서 항상 이름을 날렸으니. 한씨세가 내의 영향력도 올리고 싶어 할 거다.”


삼부인 슬하의 사공자와 이공녀는 상정할 필요도 없었다.


윗 형제들에 비해 나이가 어려 실력도 실권도 부족했다. 또한 은월상단이 호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상단일지라도, 본디 상계(商界)는 무림계보다 못했다.


“한씨가주는 너를 향한 인정도 그렇고, 능력을 중시하는 듯하지만···. 대총관 쪽은 의중도 짐작 가지 않는군.”


침음한 한대명이 말했다.


“그래도 편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면, 대공자 쪽이 무난하긴 하지.”

“어차피 상관은 없습니다. 여러 군데 동시에 접근해도 좋죠. 이용만 하다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골치 아픈 정치 싸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능력을 과시해 협박하면 될 뿐. 과연 지고의 검객에 올랐던 이인가. 하긴, 네 시선에서는 모든 게 같잖겠구나.”


전부 우물 안의 개구리는 아니다. 누군가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렇지만 소가주 후보 중에서 하나. 가장 껄끄러운 자가 있습니다. 유일한 변수라고 해야 할까요.”

“변수? 네가 그리 말할 정도라니.”

“예. 멸문하여 흩어진 한씨세가를 규합할 인물입니다. 그를 주시해야 합니다. 어쩌면 생존자인 만큼 배신과 연루됐을 수 있으니.”

“나도 짐작 가는 자가 있는데··· 누구지?”


한대명이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그자는 바로···.”


이름을 말하려던 한소백이 멈칫했다. 좌측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자가 있었다.


“밤손님을 슬슬 맞이해야겠군요.”

“어느 쪽일 것 같나.”

“일공녀는 아닐 것 같긴 합니다. 어차피 입은 곧 열립니다.”


발치 아래로 공력이 가볍게 둘러졌다. 한소백은 지면을 툭툭 두들겼다. 이내 거세게 박찼다.


파앗!


얇은 벽면이 단번에 부서졌다. 이리저리 튀는 나무 파편 사이로, 복면을 쓴 인영이 당혹해했다.


“무슨···!”


옷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묵색 암기가 예리하게 발광한다. 반사적으로 살갗에 쑤시려는 순간.


퍼헉, 꽈각.


검집이 골통을 후려쳤다. 내가중수법이 담겨, 단번에 뇌리를 뒤흔들었다. 쓰러진 살수의 손가락도 즈려밟혔다.


“끄흐으악-”

“들쥐 새끼야, 시끄러워. 오밤중에 사람들 다 깨울 셈이냐.”


우악스러운 손길에 목이 더럭 잡혔다. 살수는 숨이 멎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혈도를 짚자 조금 진정되었다.


“누가 시켰지? 바른대로 고하라.”

“···내가 입을 열 것 같나.”


목 아래로 몸이 굳었을 텐데도, 살수는 뻣뻣하게 굴었다. 한소백은 나른하게 말했다.


“어차피 나도 기대는 안 했다. 물증이 없다면 네 증언은 별 효력이 없을 거거든. 살수를 보냈는데 어설프게 일 처리를 했을까 봐.”

“잘 아는군. 죽이든지 알아서 해라.”

“아니지.”


고개가 불량하게 기울어졌다. 차가운 음성이 공포스럽게 들려왔다.


“끝까지 입 열지 마. 살수라면 그래야잖아?”

“···뭐?”


간담이 서늘해졌다. 암습을 당한 자의 태도라기엔, 일말의 분노 없이 너무 여유로웠다. 살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했다.


파지직.


진기가 번갯불마냥 튀었다. 손가락을 통해 내력이 날카롭게 주입되었다. 곧 전신 경락 곳곳에 퍼졌다.


아마 혈관을 바늘로 수백 수천 번씩 쑤시는 고통일 거다.


“으흐윽, 이공··· 이공자! 이공자가 흉수다!”

“남궁 씨족을 모친으로 둔?”


비명을 감미롭게 들으며 한소백이 물었다. 살수는 침을 질질 흘린 채 말했다.


“제발 그만둬···.”

“설마 모르나? 다시 말해주지. 네 증언만으로는 진위를 밝힐 수 없어. 네가 아는 흉수가 흉수가 아닐 수도 있거든.”

“···뭐?”


오싹한 기류가 살갗을 뱀처럼 훑었다.


“그냥 괘씸한 짓거리에 대한 분풀이다. 내 가족을 건드렸으면 각오해야지.”



* * *



한밤중의 살수는 율법당으로 끌려갔다. 무림세가에서 정쟁으로 인해 암살이 일어나는 건 비일비재했다. 허나 한씨세가에서는 극히 드문 경우였다.


이유는 알 만했다. 직계들은 삼엄한 호위를 상시 두른다. 반면, 방계인 한소백은 비교적 만만했다.


“참고 조사는 여기까지다. 간밤에 잠 설쳤을 텐데, 정오가 될 때까지 고생이 많았군.”

“조사관님도요. 수고하셨습니다.”


한소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다가, 담당 조사관인 율법당 무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흉수가 잡히진 않겠지요.”

“그건···.”


율법당 무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윗선에서 벌인 은밀한 수작질은 전말이 쉽게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무언의 의미를 안다는 듯, 한소백이 살짝 고개를 숙일 때였다.


중후하면서도 너그러운 목소리가 울렸다.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무림세가의 암투란 본디 그런 법이지요. 꼬리를 쉽게 내주진 않습니다. 단순 증언으로 신빙성을 얻기 힘들죠.”

“당주님?”


율법당주. 가규를 수호하는 율법당의 총책임자가 몸소 나타났다. 다른 사사로운 분쟁도 아니고 살수에 관한 건이니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당주가 관심을 가질 정도라.’


한소백은 유심히 기억해뒀다.


“소협께서 겪은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첫째로 증언만 있을 뿐, 물증은 없습니다. 둘째로 그 증언조차도 고의적인 기만책일 수 있지요. 살수가 의뢰인을 이공자라고 확신해도, 악의적인 누명을 씌우기 위한 거짓 정보일 수 있습니다. 애당초 의뢰인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지당하신 말입니다. 저도 조사에 성실히 임하기 위해, 그저 들은 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순순한 수긍이었다. 허나 말과 속내는 달랐다.


‘그렇지만 이공자가 흉수인 것 같은데. 증거 이전에, 절세고수로서의 직감이 그리 말해주고 있어. 진짜 멍청한 놈이었나?’


백회혈에 콕콕 찔리는 듯한 간질거림이 일었다. 하늘의 기운을 내려받기에, 예지와 다름없는 직감이 종종 오곤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심문 외에도 다방면으로 조사할 것입니다. 살수가 외부에서 영입한 무사더군요. 그것을 중점으로 어떻게 유입되었는지 경로와 대인관계, 순찰 일정 등 수상한 점을 파악하겠으나······ 송구하게도 소득은 없을 겁니다.”

“살수를 보낸다면 그렇겠지요.”

“힘내십시오, 소협. 저는 가문 내 규법을 지키는 자로서 언제나 중립입니다. 모든 것이 적법하게 흘러가길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율법당주님.”


정말로 조사에 별 소득은 없었다.


간밤에 침투했던 살수는, 뇌옥에서 목이 꺾인 채로 발견되었다.


암투는 은밀하고 교활한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적어도 잠자리 정도는 편안히 잘 환경이 필요했다.


저벅저벅.


해가 중천에 뜬 시각, 한소백은 어딘가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운 목소리가 박대하듯 싸늘하게 울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온 거지? 내 제안을 거절하면 분명 다음에는 적이라고 했을 텐데.”

“적이 아니라 우군이 되는 건 어떨까요. 일공녀께 좋은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뭐라 지껄이는 거냐?”


일공녀가 이마를 찡그렸다. 여우 가면 탓에 보이지는 않았다. 한소백은 그녀의 분노를 무시하며 조곤조곤 말했다.


“최소한 소환단 수준의 영약. 그리고 칠주야 정도 운기조식 호법을 지원해주실 것을 요구합니다. 그럼 공녀의 밑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스운 소리를 하는군. 본녀가 어째서 이로울 것 하나 없는 거래를 해야 하지? 내 눈치를 봐야 할 건 네 놈 아니던가.”


예민한 반응은 실로 당연했다. 방계가 직계에게 협상을 운운한다. 유례없는 미친 짓이었다.


“공녀께서 크나큰 착각을 하시나 봅니다. 제 가치를 잘못 평가하셨어요.”

“정신 나간 놈이 아까부터 무슨-”


헌데 검마의 잔재가 남아있는 걸까. 혹은 선천적으로 오만한 기질을 타고난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거절하면 대공자를 찾아가 똑같이 제안할 겁니다. 그러면 공녀께서 곤란하시겠죠.”

“······대공자한테?”


격노하려던 일공녀가 몸을 움츠렸다. 장내의 기류가 확 바뀌었다. 강대한 기백에 주도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당신 말고도 직계는 많아. 그들에게 뺏기기 싫으면 기회를 줄 때 잡아야 할 거야. 다음은 적으로 만날 테니.”


고압적인 음성이 소슬바람처럼 퍼졌다. 호흡을 앗아가듯 아찔한 눈빛이 전신을 옥죄었다.


이내 싱그럽게 웃는다. 그래서 더 오싹하다.


“설마 나를 적으로 삼고 싶나요?”


공대인지 하대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투.

아무리 봐도 수하가 되고 싶다는 자의 태도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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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약 24.08.06 930 21 13쪽
7 비무 24.08.05 964 17 13쪽
» 암투 24.08.04 1,022 19 12쪽
5 일공녀 24.08.03 1,122 22 11쪽
4 수료 24.08.03 1,242 21 12쪽
3 후계자 +1 24.08.02 1,451 25 16쪽
2 아버지 +2 24.08.02 1,900 24 14쪽
1 서장 +2 24.08.02 2,932 2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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