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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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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5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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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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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_2

DUMMY

가을이 기다려지는 계절이었다.

청량한 하늘의 냉기가 나의 어린 머리 위에 맴돌았다.


마름동 동사무소 옆에 있던 큰 한옥집.

어딘지 모르게 무섭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던 집이었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아직 초등학생이었고,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어릴 때의 나는 유독 신경 발작이 심했다.

그러나 병원에 가봐도 제대로 된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고열, 오한 그리고 빈혈이 오가면서 발작이 동반되는 이상한 증상을 계속 보였다.


그나마 신경 안정제를 먹어서 자동차 안에서 잠깐 사이에 곤히 잠든 나는,

겨우 일어나서 따가운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아직 주름지지 않은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바로 그 아름답고, 무섭던 곳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젊고 예쁘게 생긴 여자 무당이 무시무시한 병풍과 신상들을 뒷배로 하고 너른 방석 위에 앉아 있었다.


"우사의 운명이라는 게 뭔가요, 선생님..."


"우사라 함은 하늘에서 이 아이에게 내린 운명 같은 거야.'' 반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운명의 끈 같은 것이지.... "


"혹시 신내림 같은 건가요?"


'''

아니 그런 것과는 많이 다르지. 천지음양의 도에 어긋난 자식 이라고나 할까...

나도 워낙 희귀한 경우라서 종잡을 수 없네.

다만 사주로 보든 신명으로 보든 자네 아들은 우사가 분명하고,

내력으로 훑었을 때에도 우사의 운명은 기구하고 천박해지기 십상이야.

이 아이는 인생에 기회를 잡은 듯 해도 바람과 같고,

기회를 설령 잡는다 해도 운명의 바람에 휩쓸려 아무것도 못 할 팔자일세.

'''


아직 어린 나였지만, 무당의 젊고 아름다웠던 첫 이미지는 사라지고,

엄마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그 말투에 내게는 점점 무섭고, 이상한 여자라는 느낌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 '우사'라는 게 그렇게 나쁜 운명이라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해야 될까요?"


'''

나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타고난 것이기에 어차피 우사로 태어난 자는 우사로 살아가야만 해.

하지만 그 시기를 늦출 수는 있지.

'''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선생님.... 제발 저희 아들 좀 살려주세요...."


'''

방법은 하나야. 칠월 초하루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날,

온 동네 떡집에서 떡이란 떡은 다 들고 사오게.

그러면 내가 굿을 해서 자네 아들을 살려줄 수 있겠네.

'''


"떡이라면...."


"먹는 떡 말이야. 무지개떡, 콩떡, 꿀떡, 가래떡 다 상관없으니. 산더미처럼 쌓아서 가지고 와."


엄마는 그날 바로 내 손을 잡고 근방에 오는 모든 떡집에 들러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떡을 사서 아버지께 차에 실어달라고 하며,

아버지와 실랑이하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아버지는

노기 어린 표정으로 잠깐 교회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나와 엄마 곁을 떠나 그해 7월 초하루가 되기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그 때문에 우리 외삼촌과 할머니가 대신 떡을 옮겼고,

나는 중간중간 발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이상하게 엄마가 중간중간 내 입에 물려준 절편 떡만 먹으면

신경안정제를 먹은 보다 편안해지는 듯했다.


드디어 7월 초하루가 됐다.

저번에 왔던 한옥집과는 다른 무거운 공기가 엄습하고,

마루 앞으로 넓게 드리워진 나무 아래에는 엄마가 아빠와 다투던 그 떡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한손에 칼을 들고, 오색기를 등에 꽂은,

무당 아주머니의 분칠한 모습이 무섭다기보다는 나는 속으로,

' 저 칼이 진짜 칼일까? '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앞에 선 엄마와 할머니는,

그저 그녀 앞에 손을 비벼대는 것 말고는 딱히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무당 아주머니는 혼잣말로 무슨 주문 같은걸 중얼거리더니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그 앞에서 칼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린 나는 그 꼴이 우스워 처음에는 속으로 키득거렸지만,

잠시 후에 칼이 챙챙 거리며 북소리가 내 머릿속을 헤집어놓을 즈음,

'저 칼은 진짜구나' 라는 생각이 스치며,

정신이 아찔하고 등골에 식은땀까지 느껴지며 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아아아아아아아"


그제서야 우리 엄마가 굿판에 난입해 나를 꼭 안아주시며 같이 울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무당 아주머니가,

"에이 이년아, 결국에 지 자식 감싸다 망하겠구나..!"


라고 말하면서, 엄마를 타박하더니,


"조금 이따 다시 한 번 더 할 것인데, 이번에 마지막 기회일 줄 알아라, 준비하는 동안 애 데리고 나와 있어라."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위협적인 분위기에 나는 더욱더 무섭고 슬퍼졌음에도,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 그 온기에 힘이 쭉 빠져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작은 정자 같은 곳에 나는 누워 있었고,

내 옆에는 머리가 새하얗고 예쁘게 생긴 조그만 남자아이가 크레파스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 너 누구야? "


대뜸 나에게 질문하는 그 아이에게 내가 되물었다.


" 너야말로 누군데 "


" 나는 햇님이야. "


" 이름이 햇님이라고? "


" 아니 우리 엄마가 그랬어. 나는 햇님이래. "


" 그렇구나. 나는 태오야. 10살이고. 반가워. "


" 나는 일이야. 이일. 나이가 나랑 같네. 반가워. "


그리고 이어서 소년이 물었다.


" 혹시 너도.. 어디 아파? "


갑자기 아프냐고 묻는 말에 어이도 없었지만, 서러운 마음이 엄습해서,

나는 그 어린 나이에 눈물이 눈에 차오를 것 같았다. 그걸 눈치챘는지, 그 아이는,


" 아니 우리 집 오는 손님들은 다 아파. 너도 아픈가 해서. "


" 응 좀 아파 "


" 그렇구나. 그림 보여줄까? "


아이가 보여준 그림은 노란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와 색연필로 잔뜩 빨간 칠만 되어 있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이게 뭔데?"


그 때 아이가 말한 한 글자 대답은 나에게 왠지 모를 충격과 신비로움을 주었던 것 같다.


"부적"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 부적? 부적이 뭐야?"


"우리 엄마가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건데, 나도 요새 그리고 있어."


" 되게 특이한 선물이다. "


멀리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 으아앙 "


" 태오야. 미안. 내 여동생이 우나봐. 나중에 보자. 안녕! "


" 응.. 그래.. 안녕. "


떠나가는 일이를 그 순간 붙잡은 건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엄마에게 호통 치던 무당 아주머니였다.


" 오오...! 둘이 지금 뭐야? 벌써 친해진거야? "


" 엄마!! "


그렇게 무섭던 무당 아주머니는 온데간데 없고,

해맑고 예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 그 아주머니는,

비녀 꽂은 머리를 풀고 아름다운 생머리를 한 채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아주머니에게 가졌던 첫인상 때문에 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아랑곳 않고 우리에게 말을 건네셨다.


" 아이구 귀여워라... 일아 여기 친구랑 무슨 얘기했어? "


" 아 엄마! 얘 이름은 태오인데 나랑 나이도 똑같고 착한 것 같아! "


" 둘이 저기 방에 가서 놀고 있을래? 월이는 엄마가 보고 있을게. 엄마랑 태오 어머님이랑 대화할 게 있어서! "


" 네 엄마! "


나를 바라보는 무당 아주머니의 눈빛은 너무나도 따스하고 또 강렬했다.

긴 속눈썹 밑으로 햇빛이 화사하게 비쳤다.


소년을 따라 가보니, 너른 방에 큰 책꽂이가 있고,

오래된 한지로 된 책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최신 보드게임 판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소년과 하루 종일 보드게임을 하며 놀다가 살짝 지루해진 나는,


"너 게임기 같은 건 없어?"


" 게임기라면 여기는 없고, 우리 아빠 집에만 있어. "


" 아빠는 어디 계신데? 엄마랑 아빠랑 따로 살아? "


"응. 우리 아빠 되게 커. 저기 대문 만해. 꼭 곰 같아. "


" 엥.. 곰이라고? 너 좀 엉뚱하다. "


그렇게 일주일 동안 무당집, 아니 연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나와 이일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이일은 나에게 대부분 태오라고 불렀지만,

때때로 자기네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나를 우사라고 부르곤 했다.



무당 아주머니에 대한 인식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그 집의 분위기에도 익숙해질 즈음,

아주머니는 나와 엄마와 할머니에게 6일째 된 오늘이 마지막으로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굿이라고 했다.


그 날 나는 밤을 꼴딱 샜다.

그 때를 회상하면 아주머니가 굿을 하던 풍경보다는,

온갖 이상한 환상과 잔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용과 호랑이 같은 것들이 오락가락하고,

바람이랑 비 내리는 풍경, 같은 것들이 생각이 난다.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은데,

그 날의 일을 돌이켜보라고 하면 무언가 설명하기 어렵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마치 머리속에 조각조각난 기억들은 있는데,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추지 못하게

어떤 장치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와 그 무당집 아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해야만 했다.

나는 단짝 친구처럼 되어버린 이일 에게 아쉬운 마음을 안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집 돌아가도 또 보자"


그러나 일의 반응은 좀 달랐다.


"집 돌아가도 또 볼 수 없을걸?"


"왜....?"


"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항상 우리 엄마를 보러 오는 거지, 날 보러 오는게 아니니깐.

그리고... 엄마한테 용건이 끝나면 그냥 다들 집에 가서 어떤 이유로든 다시 오지 않아. "


" 아니야, 난 너 보러 또 오고 싶은데... "


" 그럴 일 없으니깐 됐어. 잘 가! "


나에게 해맑게 인사하는 일이의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옆에 곤히 잠든 일의 여동생 월의 숨소리가 새근새근하다.


'또 와서 같이 놀고 싶은데...진짜 아쉽다.'


그림자가 진 어두운 집. 그렇지만 소나무와 개울이 있던 아름다운 집,

연옥에서의 나날은 그렇게 끝이 날 줄 알았는데...


---


" 어..네.. 그 좀 설명을 해주시면.."


" 나야 나 일이!! 햇님! "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렴풋이 기억이 나기 시작한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일아! 이게 얼마 만이야! "


" 와 정말 어머니 말씀대로 다시 만나는구나. 사실 당연히 만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반신반의했거든. "


처음에 나를 우사라고 부르는 건 좀 어색했지만, 난 그냥 그 순간을 넘어가 주기로 했다. 일이는 말을 계속 이었다.


" 진짜 반갑네. 월이한테 너 얘기는 들었다. "


" 무슨 얘기...? "


" 여기 연옥이 그런 거 전문이니깐 알지. 월이한테 받은 라이터 줘봐 "


" 어? 어어.... "


" 그 라이터에 들어 있는 기름... 생각보다 귀한 거니깐 아껴 써라. "


"그래.... 그.... 어머니는 잘 계시니...? "


순간 일과 월의 표정이 동시에 안 좋아졌다.


1분간의 정적.


"내가 말실수 한 것 같네. 미안해. "


내가 사과를 되풀이하기도 전에, 일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반달 모양 눈을 만들어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집 주인은 이제 나야.

혹시 월이가 무례하게 초대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널 보호해줄 테니, 내 부탁 하나만 꼭 들어줘라.

'''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이 괴상망측한 상황에 대해서,

나는 그래도 대답을 듣는 편이 났다고 생각했다.


" 그 부탁이 뭔데...? "


" 스틸스타즈 라는 회사 알지...? "


대한민국 철강 & 중공업 업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

이제는 방송 연예계까지 손을 대 큰손이 된 스틸스타즈.

몇 년 전부터 꼭 투자하라던 내 친구들 얘기 들었어야 했다.


" 스틸스타즈 ? "


그때였다.


'''

쉬익

..

.

쾅!!

'''


연옥의 문 앞에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군 시절 들었던 81mm 박격포가 바로 옆에서 터진 것 같은 굉음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반 쯤 움츠리던 내 입에서는 다른 의미로 욕설이 튀어나갔다.


" 으악 이게 뭐야 "


방금 전까지 태연해 보이던 일이도 긴장한 듯 혼잣말하기 시작했다.


" 젠장. 이렇게 빨리 눈치챌 줄이야.... 월아, 빨리 우사 데리고 신당으로 들어가 있어! "


작가의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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