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K: 아포칼립스의 파밍꾼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한이량
그림/삽화
한이량 (자체 AI 병합모델)
작품등록일 :
2024.07.15 22:06
최근연재일 :
2024.09.09 16: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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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7,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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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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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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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2. 졸업

DUMMY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는 워낙 말이 없으시다.

어릴 적 기억에는 이런 분이 아니셨지만, 어머니가 3차 혁명 때 돌아가시고 천천히 말이 없어지셨다.


“저 내일 졸업식이 있어요. 아시겠지만 4급 학생의 부모님들은 참석하실 수 없어요”


통보식으로 말한 이야기에 아버지는 가볍게 끄덕이셨다.


“뭐 큰일은 없을 거예요. 내일 추첨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


짧은 정적 후에 짧은 대답.

이후 긴 정적.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먼저 잘게요.”


우리의 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다.

사이가 나쁘지는 않지만, 좋지도 않다.

아버지는 뭔가 할 말이 있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굳이 되묻지는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평소와 같이 일어난 시간이지만 아버지는 벌써 나가고 없으시다.


‘뭔가 놓친 기분인데?’


껄끄러움을 느끼면서 학교에 간다.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 에드너의 모습이 보인다.

항상 이 시간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마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지⋯


“좋은 아침!”

“졸업식인데 기분이 어때?”

“어제 먹은 콩고기가 올라오는 기분이야.”


우리는 걸어가며 가벼운 대화를 했다.

그때 갑자기 에드너가 갑작스러운 선언을 했다.


“나 사실 졸업식이 끝나면 멀린한테 고백할 거야”

“컥⋯”


진짜로 콩고기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멀린의 기분은 모르겠지만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

솔직히 넌 다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말은 해야 될 것 같아서"

“⋯응원할게”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둘과는 다르게 졸업 후 6개월의 유예기간이 없다.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둘의 관계를 응원하는 것이 전부다.

등굣길은 그 이후로 아무 말이 없었다.


***


학교는 평등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2급에서 4급까지 모든 학생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이런 환경에서도 학생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기와 같은 급수끼리 친구가 된다.

아 물론 멀린은 정말 특별한 케이스다.


“에드너 졸업식 끝나고 보자~”

“아니. 끝나고 고백하러 감. 혼자가”

“⋯”


문 앞에서 에드너와 헤어지며 둘 사이를 생각하며 피식 웃다가 문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똑바로 안 보고 다녀? 더럽게⋯”


아놀드였다.

아놀드와는 어릴 때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2급의 계급을 가진 아놀드에게 계급의 맛은 특별했나 보다.

갑작스럽게 변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낮은 급의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뭐 이런 것들은 이제 다 의미가 없었다.

서로 다른 계급이 만나는 것은 졸업 이후로 극히 드문 일이다.

그냥 무시하고 조용히 지나가려 했는데 옆에 있던 지프리가 한마디 했다.


“아 아놀드랑 부딪혀서 튕겨 나가는 꼴 좀 봐 키킥 그래가지고 하수구 청소 할 수 있겠어?”


지프리는 기회주의자다.

지프리는 아놀드와 같은 2급이지만 2급 중에서도 부유한 편인 아놀드 옆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한심하다. 그냥 꺼져줬으면 좋겠다.

그때 정적을 깨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파이스 왔네?”


플룸이다. 엄청나게 친하지는 않지만 4급이라는 동질감이 여러모로 있는 친구이다.

플룸은 체격이 상당히 크다. 아놀드도 플룸의 목소리를 듣고 내 어깨를 다시 한번 툭 치고 지나갔다.

한마디 하려던 순간에 종소리가 들렸다.

이 대형 종은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과 동시에

시계가 거의 없는 돔 전체에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도 했다.


“파이스! 졸업식 시작하나 보다.”

“그래 나가자”


졸업식은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

한겨울에 야외에서 하는 졸업식이지만 돔 안은 그렇게 춥지 않다.

그렇지만 여름에 하면 50도가 넘어가서 녹아 없어졌겠지?


‘멀린과 에드너보다 빨리 졸업해서 좋은 게 딱 하나 있었네⋯’


“에⋯ 그니까···. 우리 여러분들은⋯”


앞에서 하는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보다 졸업식은 나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지 않고 끝났다.

그런 줄 알았는데⋯

교장 선생님이 내려감과 동시에 검은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강당에 올라왔다.

마이크를 톡톡 건드리더니,


“내일 직업 추천이 있으신 분들은 오전 9시에 운동장으로 오셔야 합니다.”


현실이 다가왔다.


“정당한 이유 없이 직업추첨에 오지 않으시면 성인이 된 지금 이 시점부터 치안유지법에 의거, 강제 노역, 추방 또는 사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돔 내에서 직업추첨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돔 내 전체 인구는 8만 명이 안 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황에 신고 시 포상까지 있으니 집에 숨어도 바로 잡히고,

집 밖으로 나가도 돔 내에 도망칠 곳이라고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갓 졸업한 사람들에게 저런 의도 있는 겁을 주는 멘트는 좀 아니었다.

잠시의 정적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사람들은 떠들기 시작한다.

오로지 4급 내일 추첨자들만 우울함에 빠져있다.


‘집에 가야겠다.’


더 있어 봤자 기분만 나빠질 것 같았기에 친구들과 인사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플룸 잘 가 졸업 축하하고⋯ 내일 보자!”

“그래 너도 내일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플룸과 몇몇 친구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에드너와 멀린을 찾아 헤맸다.

보이지 않는다.

진짜 고백하러 갔나보다.


교문을 나와 언덕길을 오르면서까지도 아침부터 느껴진 찝찝함이 입안에 남은 느낌이었기에 이 감정을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지붕 위로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 '지금 잠이 들어 [다시는 깨지 않았으면]과 같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은 돔이 없는 새라는 동물이 날아다니는 세계였다.

어머니는 잡은 손을 놓더니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단순한 형상에 불과한 어머니가 아닐지도 모르는 분이 나에게 말했다.


“무엇을 찾고 있니?”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멀린이 내 옆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쳐주고 있었다.


“멀⋯멀린! 여기 어떻게?”

“왜 울어 파이스⋯ 내일이 슬퍼서 그래?”

“아니 집이 무너질까 봐 걱정돼서 울었어”


멀린이 내 어깨를 귀여운 주먹으로 가볍게 툭 치며 말했다.


“으으 기껏 걱정해 줬더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 마음속 깊이 혼자만 알고 있었으면 했다.


“그나저나 에드너는? 분명 오늘⋯”


실수를 인지했을 땐 벌써 말이 입 밖으로 나와버렸고 그것을 들은 멀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 에드너가 말했구나⋯ 그럼 다 알고 있었겠네⋯”


직감적으로 에드너가 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의 언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은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멀린은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었냐 보다.


“맞아 에드너는 오늘 나한테 고백했어. 그렇지만 거절했어”

“왜? 나는 진심으로 축복해 줘야겠다. 생각⋯”

“파이스!”


멀린이 화난 것 같은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멀린이 화내는 모습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런 모습은 나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 말 진심이야 파이스?”


멀린의 확신에 찬 말투는 귀에 꽂혔다.

멀린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눈동자에도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빠른 편이다.

멀린이 어떤 대답을 원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실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떻게 보면 나랑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잃는 거잖아?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소홀해 질까 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질까 봐⋯ 그런 부분에서 약간 불안했어.”


의미 없는 이야기를 길게 했다.

나도 알고 있다.

이건 멀린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멀린이 원하는 대답을 멀린에게 들려줄 수 없다.


“또?”


멀린이 같은 표정으로 짧게 되물었다.

어떻게든 듣고야 말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다.


“나도 멀린이 내 연인이었으면 생각한 적이 있어⋯”


멀린의 표정에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

멀린이 원하는 정답을 말했다.


“하지만 알잖아. 내 지금 처지가 어떤지⋯ 아마 멀린 너는 혼자 남게 될 거야”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다.

에드너의 처지도 나와 다를 게 없었다.


“따라갈 거야”


멀린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한다.

이 확신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솔직하게 말하면 ‘멀린이 연인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곤 했다.

하지만 나와 함께라면 그녀는 불행해질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행복은 내 1순위의 가치였다.

멀린은 이 말에 덧붙여서 말했다.


"파이스가 돔 밖으로 가면 나도 따라갈 거고!

파이스가 감염되면 나도 감염될 거고!

파이스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그녀의 고집은 꺾을 수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한번 정한 것은 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나 어릴 적부터 잊은 적이 없어. 파이스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나를 제일 먼저 생각해 준 거 잘 알아!

내가 어릴 때부터 키 작다고 놀림당했을 때 매일 나를 지켜줄 때부터, 항상 상처받지 않게 지금까지도 좋은 말만 해준 것까지 다 안단말이야!"


잠시 숨을 고르고 멀린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내가 거기에 보답할 차례야. 이건 호의가 아니라 의무야! 너가 말했잖아! 받은 건 돌려줘야 한다고! 평생 갚아나갈 거야”


멀린의 확신에 찬 말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까의 눈물 자국을 따라 그대로 흐르는 눈물을,

멀린은 아까처럼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는 척을 하다가,

나에게 입을 맞췄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왜 바로 앞에 있는 행복도 가지지 못하는 걸까?

세상이 그렇다는 것은 모두 변명이었다는 것을 잘 안다.


무엇을 찾고 있냐고요?

글쎄요? 행복은 아닐걸요?

저는 그게 행복이란 단순히 잘 때 꾸는 꿈이라고 생각해요.

눈을 뜨면 없어지는 환상이나, 눈물을 흘리고 난 후의 자국과 같은 그냥 빈 껍데기일 뿐이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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