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K: 아포칼립스의 파밍꾼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한이량
그림/삽화
한이량 (자체 AI 병합모델)
작품등록일 :
2024.07.15 22:06
최근연재일 :
2024.09.09 16:0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1,475
추천수 :
37
글자수 :
227,449

작성
24.07.16 18:00
조회
201
추천
4
글자
9쪽

1. 돔

DUMMY

언제나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

육각형의 유리하늘, 그리고 비와 바람조차 없는 세상.

어른들은 벌집 같은 곳이라고 한다. 벌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전한 곳이라고 한다.


“안전하긴 개뿔⋯”


차가운 흙으로 만들어진 지붕 위, 오늘은 뭔가 여기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음 올 때가 됐는데⋯’


마침 어디선가 총총대는 발걸음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보폭이 좁고 걸음이 빨라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참 귀여우면서도 알기 쉬운 친구다.


“파이스! 너네 아빠가 그 지붕 위에 올라가지 말랬잖아! 집 무너진다고!”

“아 멀린! 오늘 하루만 봐주라, 얼마 안 남았잖아⋯ 아니면 너도 올라올래?”

“올라갈⋯ 아 안돼 진짜 무너져버린다니까!!”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그래도 잔소리조차 감미롭게 들리다니⋯ 이건 좀 아니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지붕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으휴 파이스! 오늘은 생일이어서 봐준다.”

“아 맞네?”


돔력 33년, 18살 내 생일이고 2일 뒤면 나는 성인이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생일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었다.

오히려 생일 같은 건 없었으면 했다.


“그니까 에드너랑 셋이서 생일파티하자!”

“뭐가 좋은 일이라고 생일파티를 해⋯”

“그래도 파이스 생일이라고 나 집에서 콩고기도 훔쳐 왔는데⋯”


콩고기는 먹고 싶다.


“크흠⋯ 그거 어디서 요리할 곳이라도 있어?”

“에드너 부모님 오늘 늦게 들어오신데. 공기조화기에 문제가 생겼나 봐”

“에드너 집에서 요리하면 천장에서 흙 떨어지던데⋯ 너네 집은 안돼?”


멀린은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한다.

단순히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멀린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다시 한번 참 알기 쉬운 친구다.


“미안⋯ 알잖아 우리 부모님”

“그래그래 뭐 흙도 먹다 보면 맛있더라! 에드너 집으로 가자”


그녀는 금세 표정이 풀려서 총총 뛰어간다.

에드너와 멀린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알았던 소꿉친구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는 계급이라는 것이 이렇게 크게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멀린의 아버님이 돔의 크랙을 발견하고 용맹스럽게 수리하여 가족 전체가 3급 시민이 되었을 때,

멀린의 집에서 놀던 에드너와 나는 멀린의 부모님에게 쫓겨났다.

4급이랑 놀면 안 된다면서.


그래도 그 이후로도 멀린은 남구에서 서구까지 3킬로가 넘는 거리를 매일같이 걸어서 보러 온다.

아마 3급 내부에서도 신분 상승에 대한 보이지 않는 반감이 있는 거겠지⋯

4급은 남구에는 발도 들이지 못해서 상황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이런 차별에 상처 입지 않았으면 했다.


“파이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차!’

멀린이 갑작스럽게 뒤돌아서 질문을 하는 바람에 표정을 미처 숨기지 못했다.


“음⋯ 감성이 터졌어. 오늘 돔 밖의 태양이 조금 이쁘네?”

"그러게⋯. 노을이라고 했던가? 학교에서 매일 자서 잘 모르겠어 헤헤..

저렇게 이쁜 게 왜 사람을 못살게 구는 걸까?"

“글쎄? 그냥 사람들이 너무 잘 지내니까 심술이 난 게 아닐까?”


저학년들이 할 법한 대화를 우리는 아직까지도 한다.

멀린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나도 가능한 그녀의 그런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에 나에게 그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유치한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언덕 아래에 있는 에드너의 집에 도착했다.


“에드너 우리 왔어~”


멀린이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린다.

에드너네 집은 문을 두드리다가 무너진 이력이 있다.

그것도 멀린이 무너뜨렸지 아마?


잠시 기다리니 문이 열리고 에드너가 나왔다.


“어 생각보다 일찍 왔네? 방금 감자 삶았으니까 좀만 기다리⋯”


‘폴짝’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멀린이 집으로 들어간다.


“하하⋯ 어쨌든 파이스 생일 축하해. 축하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드너는 나와 같은 4급 시민이다.

가난에 찌들어 있는 같은 처지이고 둘이서 말이 잘 통하여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음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오늘 멀린이 콩고기를 가져왔어”


에드너의 눈이 커졌다.


“뭐? 콩고기? 너 생일이라고 너만 먹는 건 아니겠지?”

“생각보다 양이 많던데? 저 봉지가 전부 콩고기야”

“아 멀린이랑 결혼해야겠어”

“하하”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추측하건대 에드너는 한 3년 전부터 멀린을 좋아했던 것 같다.

요즘 들어서 부쩍 티를 많이 내긴 하지만⋯


우리는 테이블을 세팅하고 생일파티 준비를 했다.


“생일 축하해 파이스!!”

“고마워. 내년에도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말에 멀린이 즉각적으로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해야 돼! 다음 생일은 나잖아!”


이 말에 에드너는 빠르게 화재를 전환했다.


“아 파이스 나 너에게 줄 생일선물이 있어”

“와 기대되는걸?”

“짠!”


에드너가 테이블 아래 숨겨두었던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게 뭐야? 지금 열어봐도 돼?”


에드너는 작게 끄덕였다.


상자 안에는 시계가 있었다.

인류가 돔 안에 갇힌 후로 모든 전자기기는 상상 이상으로 귀중해졌다고 한다.

나는 놀란 눈으로 에드너를 쳐다봤다.


“하하 파이스의 그런 표정 정말 처음 보는 것 같네. 그거 심지어 작동하는 거야”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야? 이거 나 줘도 되는 거 맞아?”


시계는 에드너네 집이 한 달을 먹고 마실 수 있는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시계의 출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 훔치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얼마 전에 나랑 같이 폐처리장 청소했잖아 그때 우연히 발견했어"

“멀쩡한 게 버려져 있었다고?”

"아니아니, 내가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면서 고쳤어.

너한테 맡겼으면 하루도 안 걸렸겠지만 선물 주는 입장에서 고쳐달라 할 순 없잖아?"

“에드너⋯”

“아 감동받지 마 그거 우리 집안 사정에 팔면 훔쳤냐고 의심받기 딱 좋고, 네가 고쳐 썼다고 말하면 아무도 의심 안 할 꺼야”


진심으로 감동했다. 기화가 되면 다음에는 나도 폐처리장을 열심히 뒤져야겠다.


"맞아 파이스는 막 이것저것 잘 고치잖아.

저번 내 생일 때는 한입 베어 문 사과 모양 있는 노래 나오는 기계 줬었잖아 3곡 나오고 고장 났지만⋯"


저번 멀린의 생일때는 내가 노래 나오는 기계를 고쳐서 줬었다.

배터리가 없어서 금방 꺼져버리긴 했지만, 멀린은 고장 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고마워 얘들아. 에드너 정말 잘 쓸게”

“그래 성인식 끝나면 아마 많이 필요할 거야 파이스”


에드너조차 이 이야기를 꺼낸 걸 보면 피해 갈 수는 없나 보다.

나는 내일 학교를 졸업하고 2일 뒤 성인식을 한다.

돔의 학생들은 6개월 단위로 생일이 지난 학생들의 성인식을 진행하고 추첨으로 직업을 부여받는다.

물론 시민의 등급에 따라서 추첨되는 직업은 한정되어 있다.


내 생일이 3일만 늦었다면 친구들과 함께 성인이 되겠지만,

나는 다른 2명의 친구들보다 6개월 먼저 성인이 될 예정이고,

다른 2명의 친구들보다 6개월 먼저 죽을 확률이 올라간다는 의미였다.


“파이스는 엄청 똑똑하니까 3급 직업으로 특별채용 같은 걸 하지 않을까?”

“맞아 나도 파이스는 어떤 직업이 되더라도 분명히 두각을 드러내게 될 거라고 생각해.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야”


멀린과 에드너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다.

멀린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그런 기적 따위는 5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너희들이 이렇게 걱정해 주니까 아마 좋은 직업 걸릴 것 같아!”


나도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

4급 직업 중 절반 이상은 10년 이내에 죽는다.

우리는 죽어야 한다. 우리가 죽어야지 돔 내에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해결할 수 있고,

돔의 필수적인 기능들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작은 확률을 뚫고 10년을 살아남아 직업을 바꿀 수 있어도 정상적으로 몸을 겨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 맞다 먹을 거! 잘 먹겠습니다!”


멀린이 콩고기를 한 점 집어먹는다.

우리도 그 이후로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후아! 멀린, 다음 내 생일 땐 돼지고기 가능할까?”


돼지고기는 시장에서도 팔지 않는다. 1,2급 시민들만 먹는다고 한다.


“다음에 나도 시계 주면 어떻게 해볼게 흥!”


멀린이 시계가 탐났나 보다.


“내일 봐~”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멀린은 남쪽으로 나는 언덕 위로.

발걸음이 다시 무거워진다.


집 앞에 도착하니 불이 켜져 있다.

아버지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셨나 보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이 평범한 하루가 계속되었으면 싶었다.


큰 구덩이와 돔이 있는 도시가,


구덩이의 벽을 따라 집이 계단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시가,


중앙에 있는 혼자 밝게 빛나는 큰 탑이,


그 주위로 밤에도 빛을 내는 시장이,


북쪽에 우리 모두의 목숨을 살려내는 큰 농장이,


언제나 같은 육각형의 유리하늘,


비와 바람 따위는 없는 세상이 영원했으면 싶었다.


내일은 처음으로 바람이 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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