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K: 아포칼립스의 파밍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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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량
그림/삽화
한이량 (자체 AI 병합모델)
작품등록일 :
2024.07.15 22:06
최근연재일 :
2024.09.09 16:00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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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
추천수 :
37
글자수 :
227,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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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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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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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0쪽

7. 마지막 밤 (1)

DUMMY

바스크 본부의 문을 나왔다.

집에 가는 길이 복잡했다. 정리되지 않는 이야기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까지.

다른 직업들은 아마 집에 가서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겠지⋯

나는 왜 평범한 행복조차 누리지 못하는가.


가는 길에 에드너의 집에 들렀다. 에드너에게라도 전부 털어놓고 싶었다.

문을 두드리면서 에드너를 큰 소리로 불렀다.


“에드너!”


아무 반응이 없다.

멀린 문제로 껄끄러울 것 같긴 해도 친한 친구에게 내가 바스크가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이야기해야 한다. 사과도 해야 하고⋯ 친구의 마음을 짓밟아버렸다. 그가 간절히 원했던 걸 얻었지만 버리고 떠나야 한다.


5분 정도 기다리다 집에 가기로 했다. 에드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집으로 걸어갔다.

멀린의 고백을 받는 게 아니었다. 사실 이런 결말을 예상했지만, 나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그냥 얼굴도 안 보고 떠나버리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을까? 그래 그게 제일 낫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멀린은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파이스!”


그녀가 노을을 등지고 나를 부른다.


빛에 가려서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다.


고개를 숙였다.


두려웠기에⋯ 나는 더는 앞으로 걸어갈 수 없다.


그녀의 뒤에서 빛나는 강렬한 노을은 너무 밝은 존재인 그녀에게 가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게 바른 일이다.


결심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내게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내 품에서 말한다.


“파이..스 끄흡.. 후아아아앙. 나.. 나 파이스 보러 학교 밖에서.. 기다렸어 훌쩍.. 근데⋯ 근데⋯ 파이스 바스크가 돼버렸⋯. 후에에에엥~~! 따라갔는데 놓쳤어⋯. 후아아아앙!”


우는 것도 귀여웠다.


그렇지만 서럽게 우는 그녀를 나는 안아줄 수 없다. 더 큰 그리움은 더 큰 상처가 되는 것을 알기에⋯


그래도⋯

단 한 번만이라도⋯


내게 타인의 온기를 느낄 기회가 허락된다면⋯ 마지막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욕심 안 부리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노을에 비친 그림자는 하나였다.


행복과 불행은 함께 찾아온다.

하나를 잊을 때쯤 다른 하나가 찾아온다. 방심하지 말라는 듯이.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나는 결국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지 못했다.


멀린은 30분이 지나서야 진정되었다.


***


“훌쩍⋯ 파이스 나 결심했어!”


그녀가 단호하다.

그녀의 고집은 꺾을 수 없다.

한번 정한 것은 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바스크가 되겠다는 그런 말은 하지 마! 멀린!”

"아니야! 나는⋯ 나는 너랑 가족이 될 거야! 인연을 만들 거야! 막 결혼식, 출산 휴가 그런 거 있을 수도 있잖아!"


상상도 못 한 답변이었다. 솔직히 솔깃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이상의 상처를 줄 수는 없다.

그런 생각도 잠시. 멀린은 내 손목을 잡고 우리 집 문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한다.


“멀린 잠⋯ 잠시만!”

"왜? 겁나?


안돼. 벌써 결정된 일이야. 이름까지 정해뒀어."


“아니 그게 아니라⋯”


멀린의 뒤에는 아버지가 서 계셨다.

살면서 아버지가 이렇게 미웠던 적은 없었다.

멀린은 내 시선을 보고 뒤를 돌아보았고 바로 내 등 뒤로 가서 숨었다. 멀린은 숨으면서도 잡은 내 손목은 놓지 않았다.


잠깐의 정적⋯ 이 정적을 깬 것은 아버지였다.


“멀린이구나. 항상 파이스랑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 저녁 안 먹었으면 함께 들어와서 먹지 않으련?”

“그⋯ 그래 멀린 같이 밥 먹자.”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멀린은 내 등 뒤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끄덕였다.

테이블에 멀린과 나만이 앉아있고 아버지께서 요리를 시작하셨다.

우리는 그 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정좌로 앉아있었다.


그때 지금껏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나고, 식사가 준비되었다.

살면서 처음 보는 음식이 있었다. 이걸 요리조리 살펴보다 멀린이 물었다.


“아버님 이게 무슨 음식인가요?”


아버님이라는 말이 왜 이리 부끄러운 것인지⋯


“이건 돼지고기라는 것이란다.”

“돼지고기요? 이걸 어디서?”

“옛 친구의 제자가 주더군. 그 친구가 빚진 것이 좀 많았거든.”


아버지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기가 훨씬 중요했다.

우리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는 상상 속에서나 보았던 음식이다.


맛을 추측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정말 천지 차이였다. 점심때 먹은 닥⋯고기라는 음식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식감과 쫄깃함, 심지어 안에 기름이 있는지 씹을 때마다 풍미가 살아난다.


‘이것이 진짜 고기의 맛이구나⋯’


우리는 빠른 속도로 전부 먹어치웠다. 아쉽다. 부족하다. 멀린도 젓가락을 입에 물고 빈 접시만 쳐다보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차를 내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아휴! 아니에요. 아버님~ 제가 설거지랑 차 정도는 대접하게 해 주세요.”


아버지의 아빠 미소는 살면서 처음 본다. 저런 표정을 지을 수도 있으신 분이었다니⋯


“그래 주겠니?”


멀린은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강제로 앉힌 뒤 접시들을 가지고 갔다.

추측이지만 멀린은 돼지고기의 기름 냄새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서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한 듯했다.

멀린이 없을 때 아버지는 내게 말을 꺼냈다.


“바스크가 된 것을 보았다.”

“오셨네요. 보이지 않아서 일하러 가신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가지 않으려 했다. 투표 결과는 바스크가 될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식이 슬픔에 빠진 모습을 보고 싶은 부모는 없단다.”


순간 움찔했다.


“투표 결과를 알고 계셨다고요? 그렇다면 그것을 왜 사전에 저에게 말해주지 않으셨나요? 오늘 타커라는 조교에게 이상한 말들을 많이 들었어요. 추첨에 관한 이야기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생각했던 저조차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데. 다 알고 있으셨으면 언지라도 주실 수 있었잖아요!”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오늘의 스트레스를 아버지에게 푸는 꼴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으셨다.


“타커라⋯ 그 친구였군. 아쉽게도 아버지라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단다 아들아. 내 말로 인해 너의 행동패턴이 바뀌었다면 아마 많은 사람이 위험해졌을 것이야. 너도 아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이 얼마나 우리 가족을 주의 깊게 보고 있는지.”


아버지는 감시를 당했던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또한, 위험해졌을 것이라는 타커 조교의 말과도 같은 말을 하셨다.


“바스크가 된 것은 싫어하지 마라 아들아. 너에게 있어서는 가장 튼튼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니까. 그래, 언젠가는 그들도 찾아낼 터이니 숨기는 것보다는 확보했다고 공표하는 것이 오히려 안전한 방법이 맞겠지.”

“누구로부터 저를 숨기고 있는 거죠? 제가 열쇠라는 의미는 무엇이죠? 저에게 전부 알려주세요.”


마침 멀린이 설거지를 마치고 차를 들고 테이블로 왔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멀린은 너의 애인인 건가 파이스?”


나한테 던진 이 질문에 내가 아닌 멀린이 즉답했다.


“네! 맞아요!”


왜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질문을 하기보다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멀린의 아버지인 펠트가문과도 관계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멀린 너도 앉아 보아라.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 어디에서도 말하면 안 되는 돔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흐음⋯ 여기서부터 시작하는게 좋겠군.”


공부나 역사라면 전혀 집중하지 않는 멀린이 두 눈을 똘망하게 뜨고 아버지를 응시했다.


"1차 봉기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들었겠지. 26년 전, 돔 내에 식량 부족 문제로 반란이 일어났고 절반이 목숨을 잃은 그 사건. 역사는 그렇게 기록이 되어있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단다.”


아버지는 차를 한잔 마셨다. 향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봉기의 원인은 식량 부족문제가 원인인 것은 맞지만, 그 뒤에서는 현재의 1, 2급들의 계략이 있었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식량 부족 문제가 아니라 식량 배급량 조절이 문제였지.”

“처음 들어요.”

"그럴 수 밖에. 꼭꼭 숨기고 있는 정보니까. 당시 식량은 많았어. 통조림이라는 것들은 오래 보관할 수 있었거든. 하지만 높으신 분들의 계산에서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인구를 줄이기로 결정했지.

능력이 없고 가치가 없는 사람들만 줄이기 위해 직업을 기준으로 쓸모가 없다고 판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배급을 달리했고, 반란까지 부추김으로써 그들로부터 반란이 시작되었지."

“그리고 인구의 절반이 죽었군요.”


“그래 맞단다. 이때 1에서 4급이라는 계급체계가 생성되고 직업추첨이 생겨났지.”


“그때 아버지의 직업이 뭐였는 데요?”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당시 이 돔의 시민이 아니었단다. 내가 이 돔에 들어온 것은 1차 봉기가 끝난 후 한 달이 지나서였지. 내가 처음으로 이 [9번 돔]에 입장했을 때 한 달이 지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체 썩는 냄새랑 핏자국이 가득했지”


내용이 흥미로웠다. 학교에서는 전혀 배우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또한, 타커조교의 말이 맞았다. 아버지는 돔 밖에서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때 순간 창문 너머로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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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오리엔테이션 (1) 24.07.22 85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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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추첨 24.07.18 88 4 10쪽
2 2. 졸업 24.07.17 110 4 10쪽
1 1. 돔 24.07.16 205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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