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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행마
작품등록일 :
2024.07.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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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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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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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첫임무.

DUMMY

제드가 코웃음을 쳤다.

줄줄이 늘어선 통나무로 지어진 막사.

자신의 흉갑에 새겨진 ‘432’라는 번호가 정면의 막사 입구에 적혀 있다.

새로 쓴 것이 티가 난다.


‘좁은 곳에서 다구리 치겠다? 그래, 얼마나 까부는지 보겠다.’


제드가 성큼성큼 막사로 걸었다.

다른 십인대 소속의 병사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부하가 될 놈들에게 단단히 본때를 보여줄 생각만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기척이 가려지는 줄 아나? 귀엽게들 노는군.’


병사들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노예 검투장에서도 십 승을 올릴 때마다 신고식을 했었다.

신고식을 하는 이유?

별거 없다.


집단의 힘을 우습게 보지 마라!

나대지 마라!


와 같은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윗줄에 있던 노예 검투사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고, 밑에 놈들은 자신들도 힘을 합치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그것도 제드가 80승을 달성하고서는 감히 신고식을 하려는 놈들이 없었다.

신고식을 하자고 할 만한 노예 검투사는 그때쯤에 죄다 죽었으니까.


언제든 방패를 들 수 있게 준비하고서 막사의 출입문을 활짝 열었다.

그런데,


“충! 십인장이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병사들이 각자 지정된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방패와 검, 그리고 창을 가지런히 내려놓고서 군례를 올린다.


“······.”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에 제드가 눈을 껌뻑였다.

이들의 행동은 병기를 바친다는 의미.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다는 맹세와도 같은 거였다.


“무슨 뜻이지? 신고식이 아니었나?”


“제드 십인장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날 몇 명이나 살아남았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대표로 군례를 올렸던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옆의 막사에서도 군례 소리가 들려온다.

지담이 들어간 433 막사일 터였다.

아마도 지금 제드가 겪는 상황과 다르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었다.


“나도 잘 부탁해.”


제드가 비로소 긴장을 풀고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안쪽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십인장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을 가리켰다.

전투 때문에 아무렇게나 벗어 두었던 제드의 군장이, 깨끗하게 세탁되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안쪽 자리일수록 좋은 자리다.

출입문와 가까울수록 드나드는 병사 혹은 간부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는 거고.


“너, 이름이 켄소토라고 했지?”


“맞습니다. 십인장님.”


“기억해 두지. 모두 쉬어.”


그의 얼굴을 보고서 기억할 수 있었다.

전에 기사들의 한심한 대련을 구경하던 날에, 자신과 근무 교대했던 병사였다는 것을.

거기에 나름 군 생활 경험도 있었다는 것까지.

제드는 긴장을 풀고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병사들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내려두었던 무기와 병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의료시설에서도 누워서 보낸 시간이 많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는 것이 더 편안한 기분이었다.


‘알아서 기다니··· 재미있군. 군대도 노예 검투장과 다를 것 없겠는데?’


강한 놈이 위에 선다.

간단해서 좋다.

피식 웃은 제드가 장비를 벗어서 관물대에 정리했다.

관물대라고 해 봐야 무식하도록 튼튼하게만 설치한 몇 개의 선반이 전부였지만.

무기와 방패를 정리하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왔다.


“십인장님.”


“살아 있었구나?”


제드는 막사 안으로 들어와 처음으로 감정이라는 것을 내보였다.

다가온 병사가 톤즈였기 때문이었다.

행군하던 당시 제드가 부축해서 데리고 왔던 병사.

둘째 날엔 꿋꿋하게 혼자서 군장을 메고서 힘겹게 따라왔던 어린 녀석.


“십인장님 덕분입니다.”


톤즈가 존경심에 물든 눈으로 제드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분이셨어. 어쩌면···.’


적병이 물러나고서 등에 창을 박은 채로, 백 명에 가까운 적병의 시체를 밟고 서 있던 제드의 모습.

톤즈의 눈에는 당시 제드의 모습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Ares)’를 떠올렸었다.

아레스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한다면, 당시의 제드와 똑같지 않을까?

비록 마지막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건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왜 불렀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심각해진 얼굴로 군례를 올리고 돌아서는 톤즈였다.


“······.”


‘싱거운 녀석.’


제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 짓고는, 자리로 돌아가는 톤즈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제법 쓸 만한 눈빛을 했던 녀석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근성도 있어 보였고.


‘살아남아라.’


장비를 정리하는 톤즈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어떻게 보면 여기도 노예 검투장과 다를 것 없었다.

군대에 끌려오자마자 벌였던 치열한 전투.

노예 검투장에 끌려와 사자 앞에 던져졌던 상황과 다를 게 없다.


‘아니지. 오히려 이번이 더 쉬웠나?’


그때의 제드와 지금의 제드는 다른 존재라고 해도 될 만큼 무력 면에 있어서 차이가 컸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다니, 검투장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긴장이 풀렸어.’


팔베개를 하고서 누웠다.

챔피언을 차지하고서 자유민이 되더니, 해이해진 것인지도 몰랐다.

강해져야 할 때였다.

아니,

강해져야만 한다.

적병이 도주한다는 이유만으로 긴장이 풀어져서 쓰러지다니!

이처럼 나약한 정신 상태로는 위험하다.

홀로 각오를 다지는 그때였다.


“제드! 제드 십인장 있나! 의무대에서 치료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검은색과 노란색 깃털이 일정 간격으로 장식된 투구를 쓴 사내가 문을 열고 소리쳤다.


“접니다.”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던 제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담에게 듣기로 저런 형태로 투구를 장식하는 사람은 중대 보좌관.

실제 계급은 백인장의 아래고 십인장보다는 위다.

굳이 억지로 따지자면 오십인장쯤?

대우해 줘야 할 존재다.

군대는 계급이 깡패라고 했으니까.


“루이스 중대장님의 호출이다. 무장을 갖추고 찾아가도록. 시간은 십분 주겠다.”


“알겠습니다.”


중대 보좌관의 명령에 제드가 대답했다.

시간을 알 수 있는 마법 물품이 없으니, 뭐가 되었든 빨리 가보라는 얘기다.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입었다.

4년간 매일 해 왔던 짓이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

그때보다 장비할 것이 조금 늘었지만,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방패를 왼팔에 끼우고 창을 챙겨 막사에서 나왔을 때,


“응? 너도냐?”


제드의 막사 옆 433 막사에서 지담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만 부른 게 아닌 것 같다.”


턱짓으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제드.

지담이 고개 돌려 다른 막사를 살폈다.

과연 다른 막사에서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병사가 나오고 있었다.

제드와 지담처럼 하얀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쓴 사람들.

3백인대의 십인장이 전부 호출된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다른 십인장들을 뒤따랐다.


“아니, 이 친구들? 벌써 다 나았어?”


“고마웠다. 너희가 아니었다면 우린 죽은 목숨이었어.”


“젊음이 좋긴 좋아, 회복이 빨라. 부럽네, 부러워.”


십인장들이 둘을 알아보고는 엄지를 세우거나 알은체를 해 왔다.


“······.”


제드는 그저 가벼운 미소로 그들에게 답해주었다.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제드였다.

사람의 목숨을 끊는다는 건, 살인 경험이 상당한 그로서도 괴로운 일이다.

그러함에도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벌인 대량 학살이, 자신만 살자고 한 짓이 아니라는 게 죄책감을 덜어 준다.

자신은 물론, 저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싸웠다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느낌이라고 할까?


십인장들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친근감을 표시하겠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드의 입장에서는 느낌이 달랐다.

그가 친구라고 불렀던 존재는 단 하나, 바로 얼마 전에 죽은 군터였다.

나머지는 전부 제드의 눈치를 보았다.

물론 군터를 죽인 ‘체이크’는 제외다.

아무튼,

같은 십인장 계급이라서 그런지, 나이를 떠나 친근감이 생긴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이 녀석도 있었어.’


제드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옆에서 걷는 지담을 힐끔 쳐다보았다.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으며, 같은 노예 검투장 출신으로 2년 가까이 함께 지냈던 존재.

챔피언이 되어 자유민으로 풀려나면서 자신에게 희망을 주었던 선배.


“지담.”


“왜?”


“그냥 불러봤다.”


“···싱거운 새끼.”


지담이 ‘이 새끼 뭐냐?’라는 표정의 띠꺼운 얼굴이었지만, 제드는 기분이 좋아졌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자신에게도 ‘친구’라는 게 생긴 것 같았다.


노예가 되기 전이었던 어릴 적의 기억에 의하면,

친구라는 것은, 욕을 먹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 녀석을 의미하는 것 같았으니까.

이제는 다시 만나기 어려운 동네 친구 녀석들이었지만, 대신에 새로운 친구를 얻었다.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이곳에서 친구가 생겼다는 건 든든한 동료··· 그 이상의 무엇이다.

노예 검투장에서 단체전으로 싸울 때도, 등을 맡길 수 있는 ‘친구’ 혹은 ‘동료’라는 존재가 귀했으니까.


“개새, 발끈하기는···.”


그래도 일방적으로 욕먹는 건 별로라서 한마디 툭 던졌다.


“뭐라는 거냐.”


지담이 코웃음을 쳤다.

어쩐지 애가 된 느낌이어서다.


“······.”


“······.”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고는 싱겁게 웃었다.

그렇게 노닥거리면서 다른 십인장의 뒤를 쫓다 보니, 어느새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의 중앙이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도록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며,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사령부라고 적혀 있으며 두 명의 병사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십인장들은 사령부를 지나쳐 뒤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사령부보다 조금 규모가 작은 건물이 서 있었다.

역시나 경계를 서는 두 명의 병사가 있었고, 저드와 지담을 비롯한 십인장들이 다가오자 길을 터 주었다.

건물을 내부에는 싸구려 여관의 객실처럼 좌우로 번호가 매겨진 문들이 있었다.


430.

4천인대 소속의 3백인대장이라는 의미.

이번에 보충병들을 이끌고 온 루이스 중대장의 흉갑에 새겨진 분류 번호와 같다.

노크하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무장한 루이스 중대장이 십인장들을 맞이했다.


“충! 십인장 안토니오 외 아홉 명. 부르심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쉬어.”


루이스 중대장의 명령에 십인장들이 긴장을 풀었다.

집무실 겸 숙소로 사용하는 방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열 명의 십인장이 들어오고도 넉넉한 정도의 공간은 되었다.


“큰 전투를 치른 뒤라서 푹 쉬게 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나를 용서해라.”


““······.””


십인장들은 그의 얘기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보통 상관이 사과부터 한다는 건, 개 같은 임무를 내릴 때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오늘 우리는 미즈던 영지군의 전진기지를 파괴하는 임무를 맡았다. 놈들이 비록 큰 피해를 입었으나, 우리 아일런 영지군이 위축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놈들은 우리의 병력이 부족해진 틈을 타고 본진을 우리와 가깝게 이동시키려 계획하고 있다.”


““······.””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십인장들은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이건 너무나 밑도 끝도 없는 작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대표로 나서서 질문을 해야 했지만, 루이스 중대장의 표정이 워낙 좋지 않아서 선뜻 나서기가 찜찜했다.

하지만,


“질문이 있습니다.”


제드는 달랐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기도 하고, 무조건 하라는 대로 하는 건 질색이었다.

그런 짓은 이미, 노예 생활과 노예 검투사로 지내던 시절에 지긋지긋하게 겪어 보았던 열 받는 일이니까.


“아! 제드 십인장, 그래, 말해 보게.”


잠시 인상을 찡그렸던 루이스 중대장은 상대가 제드인 것을 깨닫고는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

이번 전투에서 엄청난 전공을 세운 것은 둘째치고, 그의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적의 규모는 어떻게 됩니까. 기본적인 정보를 알아야, 저희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의 규모는 한 개 중대이며, 다섯 명의 기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척후병의 보고일세.”


루이스 중대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십인장들의 표정이 대번에 어두워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희만 따로 부르신 것을 보면, 제3백인대 만으로 수행하는 작전이라는 뜻인 겁니까?”


지담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다른 백인대는 지난번 전투로 재정비 중이기 때문이다. 오늘, 유일하게 우리 백인대만 정비가 끝났지.”


당연히 지담의 활약도 보았던 까닭에, 이번에도 끽소리 못 하고 대답하는 루이스였다.

십인장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우리가 할 일은 단순히 적을 교란하는 것뿐이다. 아군의 정비가 끝나면 곧장 총공격을 가할 것이다. 그때까지만 놈들이 전진기지의 완성을 늦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즉, 기습과 퇴각을 병행하는 전술을 사용해 혼란을 유도하는 것뿐이다. 활을 지급할 것이니, 원거리에서 간헐적인 공격만으로도 충분하다.”


루이스 중대장이 뒤이어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십인장들의 귀에는 변명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몇 명의 기사가 함께 가는 겁니까.”


“···없다.”


“지랄···”


대답을 들은 제드는 힘이 쭉 빠졌다.

장난하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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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전면전 +2 24.08.01 4,022 83 13쪽
16 어떤 부모가···(2) +2 24.07.31 4,099 83 14쪽
15 어떤 부모가··· +2 24.07.30 4,116 77 13쪽
14 이대로는 위험하다. +2 24.07.29 4,252 89 13쪽
13 혼란스러운 전장(2) +3 24.07.28 4,310 90 14쪽
12 혼란스러운 전장 +6 24.07.27 4,461 86 13쪽
» 첫임무. +3 24.07.26 4,764 98 13쪽
10 싸워야 하는 이유 +3 24.07.25 4,933 97 14쪽
9 별로 달라진 게 없다. +5 24.07.24 5,014 109 14쪽
8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 +4 24.07.23 5,277 107 14쪽
7 우리가 더 강해. +3 24.07.22 5,250 117 12쪽
6 예상치 못한 일 +5 24.07.21 5,681 111 14쪽
5 가장 좋은 방법. +6 24.07.20 6,119 116 14쪽
4 너를 잊지 않겠다.(2) +6 24.07.19 6,053 120 13쪽
3 너를 잊지 않겠다. +5 24.07.19 6,544 115 13쪽
2 이상한 오크 군터.(2) +9 24.07.19 8,097 130 14쪽
1 이상한 오크 군터. +20 24.07.19 11,766 17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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