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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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행마
작품등록일 :
2024.07.19 11:38
최근연재일 :
2024.09.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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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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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어떤 부모가···

DUMMY

스억!


고기가 썰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병사의 목이 쩍 벌어졌다.

핏물이 와르르 쏟아지고, 병사의 눈에서 빠르게 생기가 사라져 갔다.

조심스럽게 시체를 내려놓은 제드의 고개가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병사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다른 적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시체에서 흉갑을 비롯해 보호구를 벗겼다.


‘더럽게도 촘촘히 배치해 놨어.’


적병의 눈을 피해 움직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까지 발각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라고 해야 할까?

제드가 달리는 속도로 2~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다.

지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미즈던 영지병의 눈을 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미즈던 영지병으로 위장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럴 의도로 장비를 벗어던지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흉갑에 튄 피를 닦아 내고 적병의 시체를 숨겼다.

이제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제드였다.


‘여기서부터 3~4시간 정도 빠르게만 걸어도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적군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로 이동한다면 수상하게 여길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산 밑을 바라보면서 고민했다.


“!?”


제드는 아래쪽에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미즈던 영지군이 세운 전진기지.

전진기지에는 공격받은 흔적이 아무것도 없다.

대신에,

전진기지에서 한참 떨어진 위치에 놓아둔 철제 구조물과 그 주변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철제 구조물은 화톳불을 피울 때 사용하는 물건.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제드를 비롯해 제3백인대의 병사들이 전부 속은 거다.

작전에 투입된 첫째 날 새벽에 화톳불이 피워진 곳을 노렸었다.

미즈던 놈들은 교활하게도 전진기지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엉뚱한 곳에 불을 피워둔 것이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제드가 속한 제3백인대는 공터에 불화살을 퍼붓고서 공격에 성공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빌어먹을! 얍삽한 수법에 놀아난 거였어.’


기가 막힌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제3백인대를 구출하는 것.

그러려면 어떻게든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로 복귀해야 한다.


“으음!”


전진기지에서 꼬물대는 미즈던의 병력을 어림짐작한 제드가 침음성을 흘렸다.

대충 파악한 것만으로도 500명에 이른다.

미즈던의 다른 야전 부대에는 몇 명이 더 있을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현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병력이 경계 임무에 투입되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300명 이상을 해치웠는데도 저만한 숫자가 남았다는 건··· 천인대급 이상의 병력이 투입되었다는 얘기야.’


제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지담을 비롯한 병사들에게서 기본적인 지식은 얻어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들은 얘기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구원요청을 하러 떠나오긴 전에, 지담과 루이스 중대장이 얘기했던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현재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의 병력은 500명 수준.

기존에 주둔했던 병력 중에서 200명이 영지로 복귀했다지만, 대충 500명은 넘지 않을 터다.

미즈던의 병력을 상대하기엔 터무니없는 숫자.

그러나,


‘저놈들의 규모를 아군이 파악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


제드는 점처럼 보이는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에 시선을 주면서 생각했다.

만약 증원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젓 까고··· 다 뒈지는 거지.”


욕설과 함께 제드가 고개를 흔들었다.

최악의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기로 했다.

일단 현재의 욕 나오는 상황부터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미즈던 병사의 흉갑을 입은 제드가 빠르게 산에서 내려갔다.


“경계 위치를 이탈하면 어떻게 해!”


“보고할 게 있다!”


중간에 다른 미즈던의 병사가 딴죽을 걸었으나, 제드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면서 위기를 넘겼다.

산에서 내려온 그는 무작정 전진기지를 향해 달렸다.

그의 등장에 병사들이 잠시 주목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미친 듯이 달려간 그는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기사들은 그늘에서 쉬고 있었고, 한 명의 기사는 말을 돌보고 있었다.

제드는 말을 볼보는 기사를 목표로 달려갔다.


“뭔가? 내게 할말이 있나, 병사?”


“추웅! 헉, 헉··· 자, 잠시만. 죄, 죄송합니다.”


군례를 올린 제드가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몇백 미터를 쉬지 않고 전력 질주한 탓에 숨이 거칠어졌다.


“나 이거 원···”


기사는 숨을 고르는 제드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제야 호흡을 가다듬은 제드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보고드립니다.”


“말하라!”


“넌 뒈졌습니다.”


“뭐?”


파캉!


기사가 ‘무슨 개소리야?’라는 표정을 짓는 사이, 제드는 글라디우스를 뽑아 번개처럼 기사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뭐냐!”


“저놈이?”


“잡아!”


그늘에서 쉬고 있던 기사들은, 피를 뿜으면서 쓰러지는 동료 기사의 어이없는 죽음에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제드는 이미 기사의 전투마에 올라탄 다음이었다.


“끼랴아!”


히히히힝!


전투마가 앞발을 들어 허공을 몇 번 휘젓고는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말을! 말을 꺼내 와! 빨리!”


“잡아라!”


“활! 활을 가져와!”


기사들이 아우성을 쳤으나, 제드를 태운 전투마는 벌써 손톱만 하게 보일 정도로 멀어졌다.


“윽! 으윽!”


제드가 신음을 흘렸다.

예전에 말을 타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당시의 타보았던 말은 얌전했으며, 속보로 이동하는 정도였다.

기사가 타던 전투마라서 그런지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 엉덩이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달리는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았다.

전진기지가 멀리 있다.

조금은 안심되었다.

전투마를 타고 달리는 그를 쫓아 올 병사는 없었다.

몇몇 활을 든 병사들이 화살을 쏘아대는 게 보인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리는 제드에게 위협되는 화살이 하나도 없었다.


“후우!”


뒤를 돌아보았던 제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삐를 살살 당겨서 전투마가 놀라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 주었다.

부서질 것만 같은 엉덩이를 해결하려고 전투마와 박자를 맞췄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엇박자를 터는 바람에 엉덩이와 척추가 동시에 저릿할 정도로 고통받기도 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요령이 생겼고, 그럭저럭 엉덩이에 충격을 받지 않으면서 달릴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얹어져서 가는 느낌이긴 했지만.


‘운이 좋았어.’


제드가 웃었다.

생각보다 쉽게 기사를 해치우고서 전투마를 탈취한 건 하늘이 그를 도운 것과 마찬가지다.

얼마나 달렸을까?

목책이 둘러싼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


다행이었다.

목책 뒤로 병사들이 창을 쥔 채로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퇴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를 버리고 병사들이 퇴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워, 워어!”


말고삐를 두 손에 쥐고서 조금씩 뒤로 당기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전투마를 달랬다.


“푸륵! 푸르륵!”


미친 듯이 달리던 전투마가 제드의 행동에 조금씩 속도를 늦추었다.


“그렇지, 그렇지.”


전투마의 목덜미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아기를 달래듯 다루었다.

그러자 전투마가 더욱 속도를 늦추면서 이제는 속보 정도로 달렸다.

그러는 사이,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의 목책 뒤에 서 있던 병사들 부산하게 움직였다.

목책과 50여 미터를 남기고 다가갔을 무렵에는 병사들이 활시위를 당긴 채로 제드를 겨누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검은색 깃털로 투구를 장식한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루이스 중대장과 같은 계급을 의미하는 깃털이었다.


“아일런 영지군, 제3백인대의 제2십인대 소속 제드 십인장입니다.”


제드가 투구를 벗으면서 소리쳤다.


“어?”


“맞아, 저 친구 제드 십인장이야. 지담 십인장과 둘이 미즈던 놈들을 백 명이나 해치웠던 친구.”


“어떻게 된 거지? 제3백인대는 다 죽은 거 아니었어?”


“그러게?”


목책 뒤에서 제드를 알아본 병사들이 수군거렸다.

그러자 정체를 물었던 데이비스 중대장이 금세 의심을 지웠다.

아군 병사들이 알아볼 정도로 활약했던 병사라면 정체를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데이비스 중대장 또한 제드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병력 교체 당시에 보충병으로 왔다가 치른 전투에서 단둘이 백 명의 적병을 해치운 건 엄청난 전공이었으니까.

게다가 말을 타고 왔다.

그것도 제법 균형이 잘 잡힌 몸뚱이를 지닌 근사한 말이다.


“문을 열어라!”


데이비드 중대장이 소리치자, 빗장이 풀리고 육중한 나무문이 천천히 열렸다.

제드는 전투마에서 내려 말고삐를 쥐고서 안으로 들어왔다.


“충! 제3백인대 제2십인대 소속 제드 십인장이 복귀했습니다. 제3백인대는 다섯 명의 기사를 포함해서 적병을 300명 이상 처치했습니다.”


“뭣이?”


―와아아아!


놀라는 데이비드 중대장과 놀라운 성과에 환호하는 병사들.

적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현재 미즈던 영지군은 전진기지에 주둔해 있으며, 대략 6~800명 규모로 추측됩니다.”


“그 얘기가 사실이냐? 정확한 정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데이비드 중대장이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습니다. 적진에 기사는 아홉 명입니다.”


“기사의 숫자까지?”


“적의 기사를 죽이고 빼앗은 전투마입니다.”


제드가 말고삐를 데이비드 중대장에게 두 손으로 바쳤다.


―······


얘기를 듣던 병사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드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데이비드 중대장 또한 말고삐를 받으면서 멍한 얼굴이 되었다.

예사롭지 않게 생긴 말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기사 전용의 전투마라니!

아니,

그것보다.


“네가 미즈던의 기사를 죽였다는 것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기사를 죽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온몸을 꼼꼼하게 보호하는 전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의 방어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일개 병사가 기사를 해치웠다는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증거로 가져온 전투마는 기사들이 사용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처음에도 보고드렸듯이 이틀 전 제3백인대는 다섯 명의 기사도 해치웠습니다.”


―우와아아아!


얘기를 들은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병사들로 이루어진 제3백인대가 기사를 다섯이나 해치웠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미즈던의 기사는 실전 능력이 아일런의 기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그런 전력을 다섯··· 아니, 전투마의 주인까지 여섯이나 해치웠으니, 대단한 전공을 세운 것이다.


“네가 기사를 해치웠다고? 어떻게?”


데이비드 중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눈앞의 제드가 병사 백 명을 상대로도 승리했다는 걸 보고받았지만, 솔직히 믿기가 어려웠다.

잘생긴 얼굴만 봐서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 것 같지 않았으니까.


“미즈던의 영지병으로 위장한 뒤에 기습으로 해치웠습니다.”


“그런가? 어쨌든 대단하군.”


상황을 들은 뒤에야 데이비드 중대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기사를 정면 대결로 해치웠다고 했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미즈던 놈들에게 매수되어 거짓된 정보를 전하러 왔을 거로 의심했을지 모른다.

데이비드 중대장이 의심을 푸는 그때였다.


“무슨 소란인가!”


병사들 사이를 헤치고 붉은색 깃털로 투구를 장식한 사내가 등장했다.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서 호기심에 밖으로 나온 ‘테일러 루벤트’ 대대장이었다.

원래는 녹색 깃털로 투구를 장식해야 하지만, 여기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를 책임지는 사령관이기에 붉은색 깃털을 사용한다.


“충!”


데이비스 중대장이 부동자세를 취하고는 대표로 군례를 올렸다.

나머지 병사들도 붉은색 깃털 장식을 발견한 순간, 입을 다물고 부동자세로 섰다.


“무슨 일인가.”


“사령관 각하, 여기 제드 십인장이···”


데이비드 중대장이 제드의 일을 알렸다.

얘기를 다 들은 테일러 사령관이 다가와 제드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렸다.


“자랑스럽구나. 정말 자랑스럽다 제드 십인장. 허면 제3백인대는 어찌 되었는가.”


“3일간 미즈던 영지군에게 쫓기면서 전투를 벌였고, 현재 50명이 몸을 숨기기로 했습니다. 이틀 후 오후 3시에 ‘콧날 산’ 정상에서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원해 주십시오. 사령관 각하.”


제드는 루이스 중대장의 얘기를 전하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테일러 사령관은 즉답하지 않았다.

대략 10초가량 지났을까?


“그건 곤란하다. 제드 십인장.”


고개를 가로젓는 테일러 사령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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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전면전 +2 24.08.01 4,021 83 13쪽
16 어떤 부모가···(2) +2 24.07.31 4,099 83 14쪽
» 어떤 부모가··· +2 24.07.30 4,115 77 13쪽
14 이대로는 위험하다. +2 24.07.29 4,250 89 13쪽
13 혼란스러운 전장(2) +3 24.07.28 4,310 90 14쪽
12 혼란스러운 전장 +6 24.07.27 4,461 86 13쪽
11 첫임무. +3 24.07.26 4,762 98 13쪽
10 싸워야 하는 이유 +3 24.07.25 4,931 97 14쪽
9 별로 달라진 게 없다. +5 24.07.24 5,010 109 14쪽
8 어니어스 야전 사령부 +4 24.07.23 5,272 107 14쪽
7 우리가 더 강해. +3 24.07.22 5,244 117 12쪽
6 예상치 못한 일 +5 24.07.21 5,675 111 14쪽
5 가장 좋은 방법. +6 24.07.20 6,114 116 14쪽
4 너를 잊지 않겠다.(2) +6 24.07.19 6,050 120 13쪽
3 너를 잊지 않겠다. +5 24.07.19 6,543 115 13쪽
2 이상한 오크 군터.(2) +9 24.07.19 8,096 130 14쪽
1 이상한 오크 군터. +20 24.07.19 11,765 17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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