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로맨스

새글

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2,275
추천수 :
26
글자수 :
388,676

작성
24.07.24 21:00
조회
43
추천
0
글자
11쪽

어느 부부의 이야기

DUMMY

궁궐 대문.......



“가마에서 내려라!”



형조판서 윤호산이 직접 궁궐의 출입을 통제하는 일은 없었다. 누구에게든 첩보를 들었음이 틀림없다. 아무리 막무가내인 윤서도 윤호산의 위세에 기가 눌린다.



“대감 오랜만입니다. 가내 두루 평안 하시지요?”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내리라 하였다!”


“제가 고뿔이 심하게 걸려 두통이 있고 가슴이 벌렁벌렁 거려.......”


“뭣들 하느냐 어서 끌어내지 못할까!”


윤호산의 졸개들이 윤서를 가마에서 강제로 끌어내린다. 윤서 필사적으로 가마 끄트머리를 잡고 버티지만 이내 제압당한다.



“아니....... 아니........ 이 무슨........ 대장부답지 않은 행동입니까!”



“가마 안을 샅샅이 뒤져라!”



졸개들이 들어가 가마 안을 뒤지기 시작한다. 윤호산이 번뜩이는 눈으로 가마꾼들과 윤서를 훑어본다. .......막란이 보이지 않는다. 가마꾼 한 명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려 막란을 대신한다. 인목대비와 밀담을 주고받던 사람이다.


누구도 꼽추 막란의 얼굴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사람들은 피했다. 누구든지 그의 흉내를 내도 넘어갔을 것이다.


건물 모퉁이를 돌 때 막란의 신호에 윤서가 눈치를 채고, 가마 바닥의 비밀 문을 통해 첩자가 나와 막란을 대신한 것이다. 막란은 건물의 마루 밑으로 숨어들었다.



“대비마마를 면접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뒤져라!”



졸개와 시녀들이 가마꾼들과 윤서의 몸을 뒤진다. 윤서가 몸을 배배꼬며 방해를 하지만, 시녀들이 달라붙어 그녀의 팔 다리를 잡는다. 인목대비의 교서는 막란에게 넘어갔으니 발견될 리 없다.



“김부사대감 이 무슨 난리입니까?”


“궁궐 밖으로 나가려면 누구든 예외 없으니 형판 대감의 말에 협조해야 한다.”



가마와 몸을 수색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윤호산의 얼굴이 굳어진다. 영창대군이 강화에서 죽고 인목대비가 양인으로 폐서인 된 후로 조정의 신료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칠 폐비가 아니다. 윤호산이 윤서 앞으로 바짝 다가와 위협조로 말한다.


“폐비하고 무슨 말을 주고받았느냐!”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말 못합니다.”


“역모를 꾸며 사사된 영창의 모이자 사인으로 폐비된 소성(인목)이다. 불온한 말이 오갔으면 너 역시 극형에 처해질 것이야!”


“명심보감 이야기와 어느 부부 이야기를 주로 했을 뿐입니다.”


“부부이야기라니....... 처음부터 빠짐없이 어서 고해 보거라!”


“.......그건 형판 나두 들어봤는데 별거 없었어요.”


“아닙니다. 폐비와 나눈 대화입니다.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어서 시작하지 못할까!”



윤호산의 위협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여는 윤서.......



“어느 부부가 그랬답니다. 서방님께선 요즘 왜 우물가를 찾지 않으신지요? 하니 그 서방이 임자 우물이 너무 깊다고 했다 네요.”


“끝났느냐!”


“아닙니다. 더 있습니다. 마저 할까요?”


“농으로 보이냐! 빠트림 없이 말해야 할 것이야!”



윤서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부인의 말은 목소리를 가냘프게, 서방의 이야기를 전할 때는 굵은 목소리로 실감나게 흉내 낸다.



“그 부인이 말하길 ‘어머 그게 어찌 소첩 우물 탓 인가요. 서방님 두레박 끈이 짧은 탓이지’ 하니까 서방이 ‘우물이 깊기만 한 게 아니라 물도 메말랐더이다.’했답니다.”



김초시 부사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다. 윤서도 윤호산의 눈치를 보며 하기 싫지만 애써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부인이 또 ‘그거야 서방님 두레박질이 시원찮아 그렇지요.’하니 서방이 ‘그 뭔 섭섭한 소리요. 이웃 샘에선 물만 펑펑 솟더이다. 내 두레박질에.......’ 했답니다.”



김초시의 입술에 피가 나기 시작한다. 윤호산의 얼굴은 더 심각해져 윤서가 보기에 공포스럽다.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부인이 물어봤답니다. ‘그렇담 서방님은 옆집 샘을 이용하셨단 말입니까?’ 하니 ‘어쩔 수 없잖소. 임자 샘물이 메마르니 한 번 이웃 샘을 이용했소이다.’ 서방이 이렇게 답을 했답니다.”



시집도 안간 윤서가 남정네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해야 한다. 김초시부사는 뭐가 그리 슬퍼 눈물을 흘리는지 모르겠다.



“부인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런데 서방님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이웃 두레박은 샘물이 달고 시원타고 벌써 몇 달째 애용중이니 말입니다.’ 더는 없습니다.”



부부이야기는 이게 끝인데 윤호산의 무서운 얼굴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윤서가 그의 눈치를 보며 겨우 말한다.



“명심보감 이야기도 할까요?”



김초시는 몸을 돌리고 귀를 틀어막고 있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윤호산이 이해가 안 된다. 차라리 명심보감 이야기를 먼저 물어보던가.......



“.......가라! 그냥 가!”



진작에 보내줄 것이지 남사스럽게 다 큰 처녀가 음담패설을 하다니....... 얼른 내 빼야 겠다. 막란이 이놈은 잘 숨어 있어야 할 텐데....... 그래도 한 동안 나하고 있었더니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가마의 비밀은 백부와 자기만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겉모습만 보고 가마에 숨겨진 사람을 알아낸 것이다. 얼른 백부한테 이야기해 막란을 데리고 나와야 한다.




*




자정 무렵의 궁궐 안.......

막란이 오줌도 싸지 못하고 쥐 죽은 듯 마루 밑에서 자정까지 기다린다. 계속 숨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기회를 봐서 담을 넘어야 한다. 뭔지는 몰라도 가마안 사람이 준 이 종이 뭉탱이가 중요한 것 같은데 얼른 윤서에게 전해줘야 한다.


순찰을 너무 자주 돈다. 횃불도 이십 보 거리를 두고 놓여있어 궁궐 안은 대낮처럼 밝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담을 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핀다. 그때 마루 위에서 손이 내려온다.



“교서를 넘겨라!”



언뜻 보니 나장의 정복을 차려 입었다. 궁 안의 사람이다. 그렇다고 임금 쪽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최이척 사람임이 분명하다.



“뭘 하느냐 넘기지 않고!”



막란은 쇄한 느낌이 온다. 교서를 넘기면 죽임을 당한다는 걸....... 손을 잡아 강제로 놈을 마루 밑으로 끌어당긴다. 순간 놈의 목혈을 잡고 금방이라도 숨통을 끊어낼 듯이 위협조로 묻는다.



“최이척 대감이 보냈느냐!”



막란의 물음에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막란의 눈이 살기가 돈다. 품 안에서 교서를 꺼낸다.



“이 걸 받으면 날 죽이라 하고!”



막란을 노려볼 뿐 대답하지 않는다. 막란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자객의 눈에 실핏줄이 터지며 빨갛게 물든다. 막란이 마루 밖 사정을 살핀다. 궁을 지키는 나졸들이 사방을 살피며 순찰을 돌고 있다. 막란의 손을 풀자 자객이 축 늘어진다. 자객의 옷을 벗기는 막란.......


윤서가 최이척에게 막란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주고 구해오라 부탁했지만, 그를 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교서만 빼오고 막란을 죽이려 했던 것이다.


막란이 주위를 살피며 그의 옷을 입힌 자객을 마당 한 가운데에 던져 놓는다. 순찰을 돌던 나장들이 그를 발견한다. 동시에 나장들이 들고 있던 종을 울리며 비상상황을 사방에 알린다. 수많은 나장들이 짧은 시간에 모여든다. 그 중에 횃불을 들고 허리를 굽혀 담 밑을 살피는 나장이 보인다. 누구도 그를 관심에 두지 않는다. 막란이다.


막란 대문을 살피며 밖으로 나가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




다음날 아침 궁궐 안.......

막란이 죽인 자신이 보낸 자객을 살피는 최이척. 막란을 궁 밖으로 빼 올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교서만 뺏고 암살 하려 했는데 오히려 자신의 사람만 죽었다. 너무 가벼이 생각한 것이 실수다. 꼽추라도 재주가 비상한 놈이다.


교서를 찾아야 한다. 교서가 있어야 능양군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결집시킬 수 있다. 혹시라도 교서가 임금에게 넘어간다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사변이 일어날 거다. 이번에는 인목대비의 목도 달려 있는 문제다.



“대감의 사람 아닙니까?”



어느새 윤호산과 조찬한이 최이척에게 다가왔다. 윤호산 표정이 의심으로 가득하다. 궁에서 최이척의 일을 맡아서 하던 심복이었으니까 이미 윤호산 쪽에서 파악했을 것이다. 그런 최이척의 사람이 비명횡사했으니 윤호산의 의심을 산 것이다.



“내 사람이 맞습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최이척 조카 윤서가 다녀간 다음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관복을 입지 않고 가마꾼의 옷을 입고 있다. 누군가 옷을 바꿔 입고 궐 밖으로 나갔다. 그렇다면 가마꾼 한 놈이 더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최이척의 사람을 죽인 것일까? 어떤 비밀을 갖고 몰래 나가려 했던 것일까?



“조카가 폐비를 만나고 사람 하나를 여기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 사람을 죽이고 옷을 갈아입고 나간 것이고요.”



과연 임금의 책략사 윤호산이다. 그럼 그 꼽추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먼저 찾아야 한다. 서둘러야 한다.



“증좌를 찾아오세요. 내 조카가 연관되어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좌를요!”




*




최이척의 집.......

윤서가 팔딱팔딱 뛴다. 최이척이 아무리 달래고 얼려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쉬며 최이척을 잡아 족친다.



“백부가 사람입니까 짐승입니까! 어디 한 번 입이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윤서야 지금 사람이니 짐승이니 타령할 시각이 없다.”


“몰라요 몰라! 백부 같으면 나 잡아라 하고 기다려줄 수 있어요? 벌써 내빼고 도망갔지!”


“재수 없으면 우리 가문.......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한다니까 그러네.”


“삼족이고 사족이고 족발이고 모른다니까요!”


“그럼 교서만 찾아오면 그 꼽추 내가 면천시켜주마.”



윤서가 꼽추를 남달리 생각하는 것을 아는 최이척이 협상하려 하는 것이다. 윤서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양반으로요?”


“아니........ 그건 좀 아니지 않냐.”


“그럼 양인으로요?”


“내 약조하마.”


“싫어요. 양반시켜줘요.”


“임금의 고유권한이잖아 이 철없는 것아.”


“임금 새로 옹립한다면서요.”



하는데 최이척의 뇌리에서 섬광 같은 것이 지나간다. 반정을 하는데 화적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병을 움직이는 것은 정적들의 눈에 띄기 쉽다. 화적을 용병으로 하면 그만큼 위험이 줄어든다.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찾을 수는 있는 거냐?”



사실 윤서도 가물가물하다. 자루를 뒤집어쓰고 반나절이나 막란의 등에 업혀왔지 않은가? 그런데 윤서가 누군가? 조선 제일의 여우다. 업혀 오면서 거리를 재며 방향을 기억에 남겼다. 눈을 감고 걸으면 산채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약조해 주세요. 산채 사람들 전부 죄를 묻지 않고 면천해 주신다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망나니의 아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어느 부부의 이야기 24.07.24 44 0 11쪽
13 삼월 열 이틀 24.07.24 36 0 12쪽
12 돌밭이네 어여 바라쉬! 24.07.24 39 0 12쪽
11 슬픔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다 24.07.24 40 0 14쪽
10 이틀 밤 사흘 낮 24.07.24 44 0 13쪽
9 겨울비 내리는 날에 24.07.24 42 0 13쪽
8 장독을 깨다 24.07.24 41 0 12쪽
7 간장종지와 봄동나물 24.07.24 41 0 12쪽
6 동백꽃 피어 있는 마당에 24.07.24 45 0 14쪽
5 메추리 한 마리 24.07.24 53 0 12쪽
4 눈 위에서 길을 찾다 24.07.24 62 0 13쪽
3 달 밝고 별이 많은 밤에 24.07.24 90 1 12쪽
2 아내가 죽었다 24.07.24 140 1 15쪽
1 까마귀 날아오르다 24.07.24 283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