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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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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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676

작성
24.07.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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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모닥불 피워 놓고

DUMMY

최이척의 집.......



“조건이 있어. 화적 모두 죄가 사면되고 신분을 면천 받으려면 교서를 넘기고 반정(反正)에 앞장 서야 해.”



교서를 넘기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나, 백부 최이척의 말은 화적들의 손에 반정의 피를 묻혀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위험이 수반되는 일이다. 실패하면 능지처참은 당연한 일이고 집안 삼족이 멸문을 당하는 역적이 된다. 윤서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저도 조건이 있어요. 저만 산채식구들을 만나게 해주셔야 합니다. 또 추행이니 뭐니 해서 믿지 못할 행동을 하면 저도 다 때려 치고 막 나갈 겁니다.”


“그래도 너의 안전을 위해서는 사람을 붙여야 하지 않겠니?”


“또 또.......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들으세요. 들어보세요. 두 번 다시 말 안합니다. 만약. 만약에 저 이외에 백부님 사람을 꼽추가 보잖아요. 그럼 협상이고 뭐고 다 때려 칠 거구 아마도 교서 그거 있잖아요? 엿 되라고 당장 토포사 조찬한한테 넘길걸요?”



일단 교서를 찾는 일이 시급하다. 교서를 봐야 일을 함께 도모 할 수 있다는 조정 신료들이 있다. 그들을 빼고서는 능양군을 반정(反正)에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서 때문에 수백의 목숨이 달려 있다. 윤서하고 실랑이 할 시각이 없다.



“마음대로 하거라. 교서를 노리는 놈들이 도처에 깔려 있을 것이니 조심해야 돼....... 이틀 말미를 줄 테니 교서부터 찾아와야 돼”


“교서를 찾기 전에는 나를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고요. 찾은 다음에는 저들의 추적을 능히 따돌릴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길 것입니다.”


“시각이 없다. 빨리 움직여!”




*




어느 산기슭.......

자루에서 나와 걷기 시작한 곳까지 오기는 했다. 혹시 백부 최이척이 사람을 붙여 놓았을 까봐 일부러 산을 빙빙 돌았다. 그래서 도중에 길을 잃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잘 찾아왔다. 다행히 추행은 없는 것 같다.


윤서가 눈을 감는다. 자루에 담겨 있을 때 상황을 뒤집어 보려는 것이다. 윤서가 까치발을 든다. 자루에 있었을 때는 막란에게 업혀있어서 구름 위로 꿈결처럼 떠 다녔다. 그래서 그 당시의 기분을 내려 눈을 감고 까치발로 걷는다.


눈을 감으니 자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이 상황은 예측을 못했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손바닥이 긁혀도 눈을 감고 앞으로 나아갔다. 반시진(1시간)마다 막란이 자루를 열어 숨을 쉬게 했었는데 그 장소 까지 두시진(4시간)이나 걸려 도착했다.


당시 기억한다고 기억했는데 이놈의 산은 다 거기가 거기 같아서 확실하지 않다. 울고 싶다....... 좀 있으면 어두워 질 텐데 산짐승 울음소리는 계속 나고 온 몸은 수십 번이나 넘어져 망신창이가 됐다.


눈물이 난다. 이놈의 산은 왜 이렇게 빨리 해가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어두워 산채로 가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걸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백부가 사람 붙여준다고 할 때, 못이기는 척 따를 걸 괜히 고집부리다 짐승 밥이 되려 한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막란이다. 윤서가 와락 안긴다. 죽은 부모가 살아 돌아온 것보다 더 기쁘다. 안겨 펑펑 운다. 한참 울고 나니 막란의 가슴팍이 넓고 따뜻하다. 그런데 그의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그래도 좋다. 이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것은 어릴 때 어머니의 품속 이외에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염없이 안겨 있는데.......



“아씨....... 해 넘어가요”



사실 막란은 윤서를 자루에서 꺼내준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 뭉탱이 때문에 최이척은 사람을 보내 막란을 죽이려 했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산채를 찾을 수 있는 윤서를 보낼 것이기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막란의 옷에 묻은 핏자국이다. 윤서를 추행한 두 놈을 찾아 막란이가 죽였다. 그래서 윤서를 늦게 만나게 된 것이다. 죽이기 전에 조찬한이 보낸 놈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최이척은 윤서와 약속대로 사람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아니 보낼 필요가 없었다. 윤서를 아끼는 막란의 마음을 알기에 그녀를 보호해 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교서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윤서가 알고 있으니 무사히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윤호산은 다르다. 폐비와 윤서는 무언가 주고받은 것이 있고, 그것 때문에 최이척 심복이 죽었으며, 곧 일어날 역모에 중요한 증거라 판단되어, 조찬한을 시켜 윤서를 감시한 것이다.



“멧돼지 사냥을 했습니다.”



윤서에게는 또 사람을 죽였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했지만 그때마다 윤서의 얼굴은 겁에 질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을 해칠 때마다 윤서의 얼굴이 떠오른다.



“추워.......”



막란은 자신의 옷을 벗어 윤서에게 입힌다. 보기보다 작은 체구에 막란의 저고리가 이불처럼 감싼다.



“언제부터 기다린 거야?”


“궁에서 나오고 나서 쭉~”



막란이 나장의 옷차림을 한 걸 보아 정말 궁에서 나온 뒤로 계속 산에서 윤서를 기다린 것 같다. 그럼 멧돼지 사냥을 해서 옷에 피가 묻었다는 것은 뭐지? 끈적한 핏자국으로 보아 피 본지 얼마 안 되었다. 누굴 죽였을까? 백부 사람? 조찬한 사람? 그런 게 뭔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하는 이놈이 정말 싫다. 그런데 극악무도하고 못생긴 이놈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왜 보고 싶어지는 걸까?



“여기 올지 어떻게 알았는데?”



막란이가 자신의 손바닥을 펴 윤서에게 보여준다. 부처님 손바닥이란 뜻이다.



“넌 그게 문제야. 사람 봐가면서 잘난 척하면 안 되는 거니?”



막란이 아무 말 않고 교서를 내 준다. 조건 없이 윤서에게 주는 것이다. 교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막란도 윤서도 알고 있기에 잠시 정적이 흐른다.



“너 이거 뭔지는 알아?”



막란이 대답 대신 고개를 젓는다.



“니 목숨이야 이 바보야....... 그런데 이런 걸 함부로 주니?”


“난 아씨만 있으면 돼요.”



이놈은 언제 봐도 일편단심이다.



“이건 나보다 더 중요한 거라고 등신아!”


“가져요....... 그리고 제 목숨도 아씨가 가져요.”



막란은 진심이다. 넘을 수 없는 신분이지만 죽어서는 윤서의 것이 되고 싶다. 윤서는 이해가 안됐다. 그녀가 해 준 것이 별루 없는데 민들레처럼 자기만 바라보는 막란이가 바보 같다. 교서를 다시 막란에게 쥐어준다.



“목숨은 하나야. 누구한테 가지라 마라 그러지 마. 심히 부담스러워.”



교서는 윤서보다 막란이 가지고 있는 편이 안전할 것 같다. 여차하면 막란과 산채식구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이기에.......



“업히세요.......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피곤한데 잘됐다. 못이기는 척 업혔더니 가슴도 좋지만 등은 더 넓어 편안하다. 굽어진 등에 고개를 파묻는다. 언제까지라도 이렇게 업히고 싶다.


윤서는 최이척의 제안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정변이 실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윤서 집안이야 죽고 죽이는 싸움에 휘말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산채 식구들은 다르다. 하루를 만족하며 내일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정변에 휘둘리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막란에게는 넌지시 물어봐야 겠다.



“막란아 너 양반되고 싶니?”


“난 아씨만 있으면 돼요.”



물어보는 내가 등신이다. 그런데 너무 어두워 막란도 길을 잃었다. 이러다간 집이고 뭐고 밤새 산속을 헤맬 것 같다. 배고픈 이리들의 짓는 소리도 무섭다. 춥고 배고프고....... 오줌도 마렵다.



“막란아 어디 쉬었다 갈래?”



윤서를 내려놓고 죽은 나무로 한참을 비비더니 불씨를 만들어 불을 피운다. 요상한 재주다. 있는 집은 값비싼 부싯돌이 있어 문제가 없지만, 없는 집에서는 부뚜막의 불씨를 온존하는 일이 큰일이다. 불씨를 꺼트려 소박맞는 아낙도 있을 정도니까. 이놈하고 있으면 소박맞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오줌을 참을 수 없어 가까운 곳에 일을 보는데, 조절할 수 없어 한 번에 왕창 쏟아내니 소리가 우렁차다. 윤서가 자리로 돌아오는데 다 들었는지 막란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뭐 상관없다. 똥도 마려우면 가까운데서 냄새피우며 싸 재낄 꺼다. 그때도 입이 벌어지는지 두고 볼 테다. 이 변태 같은 놈.......



“이거 드세요.”



어디서 칡뿌리를 캐와 윤서에게 넘겨준다. 마다 않고 받아 씹는다. 겨울철 잘 넘긴 칡은 알이 꽉 차있다. 몇 번 씹지 않아도 달짝지근한 맛이 그만이다. 불빛에 비추어진 윤서의 얼굴이 이쁘다.



“넌 안 먹니? 먹어. 맛있어 얘.”


“그런데 뭐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왜 저한테 존대 했다 하대 했다 그러시는 겁니까?”


“아........ 그거. 환경에 따라서 그런 거지. 집에서 교육받을 때는 존대해야 하는 거구 백부님 집에서는 남들 눈이 있으니까 하대하는 거구.”


“여기는요?”


“왜? 듣기 거북하니? 산에서는 존대해 줄까?”


“아니요........ 전 아씨가 변덕스러운 마음을 가졌을까봐.......”


“난 있잖아....... 니가 싫어!”


“.......”


“왜 싫은지 알아?”


“쌍놈이고 꼽추고....... 그리고 사람 잘 죽여서.......”


“아니야 등신아....... 니가 좋아질까봐 싫다고.”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막란은 헷갈린다. 양반은 제발 알아듣는 소리만 했으면 좋겠다.



“아씨는 가끔 무서워요.”


“난 니가 더 무서워.”


“양반이라서....... 양반들은 가끔 죄 없는 천민들을 죽이잖아요. 우리 어미처럼.”


“넌 아버지라도 있잖아?”



막란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내가 양반이라서 그렇게 무서운가? 이놈은 덩치는 산만한 게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약해 빠져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고.......



“우리 어미를 죽인 최참판 놈이 내 아버지입니다.”



그 말 많던 윤서가 말문이 막힌다. 이 무슨 기구한 운명인가? 말로만 들었던 일이 막란에게 일어난 것이다. 윤서는 쉽게 접하지 못한 일이지만 주인이 여종을 겁탈 하는 것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미가 최참판한테 겁탈당한 충격으로 꺽쇠 아비를 멀리 하셨습니다. 그런 어미가 불쌍해 아비는 평생 돌봐주셨구요....... 최참판은 내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꼽추가 되자마자 날 버리고.......”



막란은 자신의 처지가 불쌍한지 윤서에게 안겨 소리 내어 슬픔을 쏟아낸다.



“꺽쇠 아비는 그래서 날 싫어해서 멀리한 줄 알았는데....... 거두지 못해 미안해서 날 찾지 않은 거래요! 내가 더 미안한데....... 지금도 내가 태어나서....... 아비를 힘들게 해서.......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은데.......”



모닥불을 앞에 두고 윤서에게 안긴 막란이 아이처럼 울고 있다. 한 번도 누구한테 말하지 않은 막란의 비밀이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등에 지고 사는 막란이가 불쌍하고 애처롭다. 할 수만 있다면 최참판처럼 나쁜 양반과 막란 같은 착한 천민과 신분을 바꾸고 싶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막란이 윤서의 품속에서 잠들었다. 얼마간 이대로 나둬야 겠다. 그동안 산 속에서 윤서를 기다리느라 잠 한 숨 제대로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은 별이 많이 보인다. 이놈이 싫어진다. 앞으로 좋아질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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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느 부부의 이야기 24.07.24 44 0 11쪽
13 삼월 열 이틀 24.07.24 3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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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독을 깨다 24.07.24 41 0 12쪽
7 간장종지와 봄동나물 24.07.24 41 0 12쪽
6 동백꽃 피어 있는 마당에 24.07.24 45 0 14쪽
5 메추리 한 마리 24.07.24 53 0 12쪽
4 눈 위에서 길을 찾다 24.07.24 62 0 13쪽
3 달 밝고 별이 많은 밤에 24.07.24 90 1 12쪽
2 아내가 죽었다 24.07.24 140 1 15쪽
1 까마귀 날아오르다 24.07.24 28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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