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본 행성관리가 너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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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뷔
그림/삽화
AI
작품등록일 :
2024.07.25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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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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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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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관리자 좀 맡아주세요. 제발

DUMMY

그다지 긴 인생을 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준도 살아오면서 황당한 일들을 꽤 겪어왔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관리자님. 관리 업무를 보실 수 있게 관리 구역으로 전이하겠습니다. 잠시만 그 자리에 그대로 서 계시기 바랍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관리 구역으로 전이하겠다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순간 희미한 빛이 서준을 휩싸는 것 같더니 부드러운 섬광이 플래시처럼 터진다.

눈을 다시 뜨자 조금 전까지 있던 황야의 풍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주변이 온통 하얀 공간으로 바뀌어 있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홀 같은 곳이다.


- 세레스타 관리 구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새로운 관리자여. 지금부터 세레스타의 모든 관리 권한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갑자기 머릿속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이상한 목소리는 도대체 상황 판단이 안 되는 서준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기 할 말만 하고 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인 기계음에 가까운 소리다. 머릿속이 복잡한 서준은 간신히 입을 떼 누군지 모를 목소리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어딥니까? 당신은 누구시죠?”


- 여기는 행성 세레스타입니다. 저는 관리자님을 도와 행성의 관리를 하는 관리 단말입니다. 관리자님은 방금 관리 권한 이양 프로토콜에 의해 관리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레스타? 행성? 관리자?


“행성 세레스타요?”


요? 할 때 살짝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 네 그렇습니다. 행성 번호 740901. 행성 명 세레스타입니다.


서준은 순간 질 나쁜 장난에 걸려든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전의 풍경도 그렇고 지금의 전이라는 것도 그렇고 일반적인 장난의 수준은 아니다.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고요?"


서준은 목소리에 얼이 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니.


- 네, 맞습니다. 여기는 세레스타입니다.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은 우리 데이터베이스에 없습니다.


“그럼 지구로 돌아갈 방법은 없나요?”


-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행성이므로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내가 정말 이 세계에 온 것일까.


서준은 입을 살짝 벌린 채 할 말을 잃는다.


좋다. 상황이 전혀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한발 양보해 여기가 이세계고 내가 이세계로 전이했다고 치자. 근데 아까부터 자기를 부르는 저 관리자라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근데 아까부터 저를 관리자라고 부르던데,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 당신께서는 지금 시각을 기해 이 행성의 관리자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지막 관리자님이 남기신 관리 권한 이양 프로토콜에 따르면 프로토콜 발동 후 바로 다음에 도착한 지성체에 관리 권한을 무조건 이양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준은 자기 청각 기능과 언어 기능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순간 의심을 한다. 분명 한국말로 말하고 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더 궁금하신 내용이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관리 권한 이양 프로토콜을 종료하고 어서 빨리 관리자로서 업무를 시작해 주세요.


궁금한 게 없다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해서 뭐부터 물어보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그리고 서준은 아까부터 본질적으로 조금 이상한 점을 느끼는 중이다.

이 목소리 뭔가 지금 아주 급하다. 마치 아주 오래간만에 호구가 걸려들었는데 그걸 놓치기 싫어하는 판매원 같은 느낌이 든다.


- 안타깝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관리자 권한 이양을 수락하시고 관리 업무를 시작하시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것 같습니다.

이 관리 구역은 관리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관리 업무를 거절하시면 다시 아까 계신 황야로 가셔야 합니다만···.”


예전에 그런 사기성 판매법이 있지 않았나. 갑자기 ‘이벤트 당첨되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개인 정보 죄다 뜯어가고 심하면 필요 없는 물건을 강매하는 그런 것들이.

그리고 필요하지 않다고 환불해달라고 하면 갑자기 돌변해 결국 사게 만드는 그런 악질적인 판매법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관리자 안 하면 내쫓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갑자기 이 행성의 관리자는 당신입니다. 관리 업무를 수행해 주시라고 한들 어느 누가 네 알았다고 곧바로 관리자 일을 하려 들까. 처음에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잘 느끼지 못했지만 조금씩 마음이 진정이 되어가니 조금씩 지금 상황의 부조리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살짝 협박했는데도 서준이 넘어올 기색을 보이지 않자, 관리 단말은 짐짓 무겁게 목소리를 깔며 이제는 신변의 위협을 하기 시작한다.


- 시간이 그렇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도착과 함께 자동으로 가동된 관리 권한 프로토콜로 인해 현재 마나 소모가 진행 중입니다.

행성이 보유하고 있는 남은 마나가 많지 않습니다. 예상대로라면 18시간 이내 이 행성의 마나는 소진되어 이 별은 영원히 소멸합니다.


“혹시나 해서 여쭙는데, 이 행성이 소멸하면 전 어떻게 되죠?”


- 이 행성에 있는 모든 것이 같이 소멸하므로 관리자님도 같이 소멸합니다


이제는 공포 마케팅인가. 이 단말. 무언가 위기감을 조성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전반적으로 쎄하다. 뭐랄까. 이제 막 교육을 받고 투입된 신입 영업 사원이 매뉴얼대로 국어책 읽기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 ···지금부터 행성 소멸 타이머를 작동합니다. 행성 소멸까지 예상 시간은 앞으로 17시간 59분 58초···57초···56초···


그래도 서준이 전혀 넘어오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이제는 갑자기 급발진하기 시작한다. 따라가기 벅찬 전개가 이어지자 어이가 없어진 서준은 문득 관리 단말의 목소리에 이제는 다급함이 묻어 있는 것을 눈치챈다.


너무 강압적 아닌가. 서준에게 어서 빨리 관리자를 수락하라며 계속 압박을 주고 있는 관리 단말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준은 얼마 전 TV에서 본 시사 프로그램을 떠 올렸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보이스 피싱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내용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보이스 피싱에 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침착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보이스 피싱은 짧은 시간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하게 피해자를 압박하고 갑작스러운 압박에 당황한 피해자들을 계속 자극해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주요 수법이다.


아까부터 든 쎄한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분명 함정이다. 분명 이 목소리는 지금 관리자인지 뭔지를 나에게 맡기려고 안달이 나 있다. 너무 얄팍하지 않나.

관리자가 뭐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맡는다고 하는 순간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 같다. TV에서 본 내용대로 우선 침착한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그럼, 제가 이 행성의 관리자를 맡지 않으면 지금 말씀하시는 분도 같이 사라진다는 거네요.”


- 아니···. 뭐. 네. 그렇습니다. 네···. 저도 사라집니다.


목소리가 살짝 당황한다.


“관리자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겠고, 갑자기 부담스러우니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아까 그 황야로 돌아갈게요. 황야로 다시 보내주세요.”


물론 황야로 돌아가기는 싫다. 나름 배팅이다. 솔직히 확신은 있다. 목소리는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한다.


- 아니···. 그 황야로 돌아가 봐야 아무것도 없고. 그냥 여기서 관리자 하시는 게 가장 좋으실 거 같은데요.


“싫은데요.”


- 아니. 그러지 마시고.


“싫습니다.”


- 제발. 한 번만 좀 맡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소멸한다니까요.


제발이 나왔다. 서준은 이 이상한 실랑이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헛기침을 한 다음 조용히 이 얄팍한 콩트를 슬슬 정리하려 한다.


“그렇군요. 관리자가 무슨 자리고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 이 별에 온 지 한 시간도 안 된 사람에게 일을 떠맡기는 건 좀 잘못된 것 같은데 관리 단말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어···. 네.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뭐지? 의외로 솔직한데?


“그렇죠. 그럼, 그 어설픈 연기는 그만하시고 제대로 솔직히 말해주세요. 그러면 저도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 어설프···. 네,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목소리는 잠깐 멈칫하더니 갑자기 꼬리를 내린다. 그래. 이런 건 강압적으로 맡기는 게 아니라 진솔한 이야기로 푸는 게 정답이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 솔직히.


- 저희 별의 마나가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남은 시간도 17시간은 아니지만 그렇게 많지 않군요.

저희 별은 마지막 관리자가 이 별을 떠난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없는 버려진 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수만 년 만에 나타나 저와 이야기를 나눈 유일한 지성체입니다.


단말의 목소리가 조금은 떨고 있는 듯 느껴진다. 아까까지의 허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작은 소동물이 바르르 떠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럼, 아까 그 타이머는 블러핑이지만 마나가 없어지면 별이 사라진다는 말은 사실이군요.”


서준도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로 목소리의 말에 질문을 던진다.


- 맞습니다. 당신이 이 별에 온 순간 저는 당신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치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일부러 당신을 보내준 그런 느낌마저 받았습니다.


아까 어설픈 위협을 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어딘가의 만들어 놓은 대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그런 느낌이 아닌, 마음 속에서 우러난 한 마디 한 마디 같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 만약 당신께서 이 관리자 자리를 거부한다면 저희 별은 다음 관리자를 맞이할 여력도 시간도 없습니다.

사실상 당신이 저희 별의 마지막 기회입니다. 죄송합니다. 급한 마음에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관대한 여행자시여. 비록 제가 급한 마음에 무례를 범했지만, 굽어살피시어 이 별의 비어 있는 관리자의 자리를 맡아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부탁입니다.


갑자기 저 자세로 나오니 마음이 살짝 약해진다. 느낌인지는 몰라도 목소리의 톤도 초반의 억지스러운 중성적인 기계음에서 약간 가냘픈 여성의 어조로 변한 것 같다.


- 당신이 지금 우리 별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좀 마음이 흔들린다. 아까는 블러핑 친다고 황야로 보내 달라고 했지만, 그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장소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목소리의 말대로 관리자 업무를 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흠. 일단 이야기는 들어볼까.



작가의말

3화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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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마나석 24.08.27 115 3 13쪽
32 꽤나 요망하시군요. 카리나 고문 +1 24.08.26 119 4 13쪽
31 성 윤주 (4) 24.08.25 121 3 12쪽
30 성 윤주 (3) 24.08.25 121 3 13쪽
29 성 윤주 (2) 24.08.24 122 3 12쪽
28 성 윤주 (1) 24.08.23 126 3 14쪽
27 재택하며 행성 관리합니다. 24.08.22 124 3 13쪽
26 일단 창업을 할까 합니다 24.08.21 126 3 14쪽
25 지구로 24.08.20 128 3 13쪽
24 아리엘 (2) 24.08.19 130 4 13쪽
23 아리엘 (1) 24.08.18 130 4 15쪽
22 잠깐 동안의 휴식 24.08.17 133 3 13쪽
21 당신이 흑막입니까? 24.08.16 137 3 12쪽
20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24.08.15 139 3 13쪽
19 세레스타 방어전 최종 전황 보고 24.08.14 140 4 13쪽
18 세레스타 방어전 (2) 24.08.13 140 3 17쪽
17 세레스타 방어전 (1) 24.08.12 143 3 13쪽
16 침공 전야 24.08.11 142 3 13쪽
15 시작하자마자 침공 (4) 24.08.10 142 3 13쪽
14 시작하자마자 침공 (3) 24.08.09 148 4 13쪽
13 시작하자마자 침공 (2) 24.08.08 149 3 13쪽
12 시작하자마자 침공 (1) 24.08.07 149 3 12쪽
11 세레스타 리스타트 24.08.06 148 4 13쪽
10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네 +1 24.08.05 152 3 12쪽
9 기댈 건 운 밖에 없나 24.08.03 158 4 13쪽
8 기본 환경 조성에 1495년이 소요됩니다 24.08.02 164 3 12쪽
7 긴급 지원 대출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24.08.01 169 3 12쪽
6 함정 카드는 곳곳에 숨어있다 +2 24.07.31 174 3 12쪽
5 나는 고발한다. 내 전임자를 24.07.30 182 4 12쪽
4 일단 임시 계약직으로 합시다 24.07.29 19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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