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다 건 인턴
“진이사! 뭐 아는거 없어?”
“글쎄요.”
“우리 회사가 그렇게 같잖아 보이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잘 대해 준거야?”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잘 대해 줬나 봅니다.”
“사원이··· 아니지··· 아직 정식 사원도 아닌 인턴이··· 회사의 사장이랑 이사를 전날밤에 바로 봅시다! 그렇게 통지하고 다음날 아침 9시에 미팅 약속을 멋대로 잡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사장인 진성주가 미간을 찌프리며 말하자.
“그, 그게 그만큼 우리가 열려있는 경영을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사인 진형주가 조심스럽게 변명을 한다.
두 사람이 그동안 메타전자를 경영해온 경영철학이 그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소통하자.’
하지만 항상 그렇듯 그걸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직원은 20년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열린 경영으로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지만 이건 아닌거 같아. 그나저나 왜 안와? 시간 다 되어가는데.”
진성주가 시계를 보며 말하자.
“하하하, 그러게요. 사장실에서 보자고 했으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가.”
게다가 만나자고 한 시간이 다되어 가는데, 사장님과 이사님이 먼저 와 대기하고 계신데, 미리 와서 대기해도 모자를 인턴은 나타나지도 않는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빼꼼 열리고 비서 얼굴이 튀어나왔다.
“사장님··· 박민기 인턴이 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요.”
문이 활짝 열리고 박민기가 노트북 가방과 서류를 든 채 사장실 안으로 들어온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이사님! 인쇄때문에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가와 고개를 넙죽 숙이며 인사를 한다.
다행히 약속 시간은 아슬아슬하게 지킨 셈이다.
“앉아요.”
말을 하면서도 진성주 사장의 표정은 그닥 밝지 않다.
아무리 자유롭고 열린 회사라고 하지만 회사 대표가 동네 개도 아니고 전날 밤에 인턴이 ‘내일 아침 봅시다’라고 말할 만큼 너무 쉽게 보고 있는듯 해서 언잖은 것이다.
잘 대해주고 배려해주면 상대를 막대해도 되는 줄 아는 한심한 인간들이 요즘엔 너무나 많다.
“먼저 이렇게 어려운 자리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바쁜 사람들이니 보자고한 용건을 먼저 들읍시다. 왜 보자고 한 건가요?”
진성주 사장을 대신해 진형주 이사가 나섰다.
“다름 아니라 신규 사업건 때문에요.”
“신규 사업?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스킨 케어 제품에 대해섭니다.”
“그건···”
진형주가 진성주를 바라본다. 진성주의 인상이 구겨져 있다.
“박민기씨! 사회생활이 처음이라서 모르는 모양인데··· 회사에는 위계질서가 있어요··· 박민기씨의 상사분들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프로젝트가 있다면 미리 검토하고 조율한 뒤에 그 다음 임원이나 회사대표와 만남을 진행해야 하는 겁니다. 중간 관리자를 건너 뛰면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는 뒤엉키게 됩니다. 알겠습니까?”
진형주 이사의 말에 박민기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네 이사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진형주는 박민기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전 이 자리에 모든 걸 다 걸었거든요.”
“네? 걸다니? 뭘 걸어요?”
“제 인생을 포함해 메타전자에서 계속 일 할지 아니면 말지 까지요.”
말하는 박민기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박민기의 눈빛은 단호했고 이 일에 모든 걸 걸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이걸 읽어보십시오.”
박민기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진성주와 진형주에게 나눠준다.
“보고체계를 건너뛰고 사장님과 이사님을 직접 뵙자고 한 것은 사안이 너무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민기는 진성주와 진형주가 서류를 읽도록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락··· 사라락···]
두 사람의 표정이 한 장 한 장 읽어갈때마다 다이나믹하게 변한다.
인상을 쓰기도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다가 눈이 커져 놀라기도 했다가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한다.
“끝에 나와있지만 인원 대략 다섯명, 삼 개월, 투자비 30억이면 만들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류를 거의 다 본 것을 확인한 박민기가 말한다.
진성주가 눈만 치켜 떠 박민기를 노려본다.
“AI는 어떻게 확보할 거죠?”
“이미 확보해 두었습니다.”
“30억이··· 큰 돈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메타 전자에서 30억이면 작은 돈이 아닙니다.”
“그 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연구자료는? 모든게 다 있다고 해도 연구 자료가 없다면 소용이 없을텐데···”
“이미 호신대 피부과 주영신 교수와 MOU를 맺었습니다.”
“아니··· 이미 MOU를 이미 맺었다고요? 난 그런 보고 받은적 없는데. 진이사 어떻게 된거야? 진이사가 MOU체결했나?”
“아니요. 저도 금시초문입니다.”
“제가 했습니다. 제 이름으로요.”
“뭐?”
“뭐라고?”
박민기의 말에 진성주와 진형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박민기를 바라본다.
“아니 박민기씨! 이런 경우가 어딨습니까? 어떻게 회사와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계약을 맺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런데··· 전 이거 반드시 해야겠거든요. 만약 사장님과 이사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저 혼자서라도 하려고요.”
“뭐, 뭐라고?”
놀란 진성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뭐 이런 황당한 애송이가 다 있나? 아니 애송이라고 할 수 없지 일을 벌이는 맹랑함의 스케일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니 그럼 모든걸 다 준비해 둔 상태면 뭐하러 메타전자에서 만들려고 하는 건가?”
그게 당연한 의문이었다.
처음엔 일개 인턴이 벌인 일이 너무나 맹랑해서 기가 막혔고 지금은 그렇게 모든걸 다 만들어 놓았다면 굳이 메타전자 안에서 할 필요가 없어서 물어본 것이다.
“욕심만 많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했을 지도 모르죠. 메타전자 안에서라면 3개월이면 만들수 있습니다. 제가 이걸 나가서 만들면 아무리 빨라도 1년이상 걸리겠죠. 그것도 운이 좋을때 말입니다.”
이정도면 당신들이 만들게 해주지 않으면 회사 나가서 혼자 만들겠다는 협박이다.
진성주와 진형주가 박민기를 노려본다.
입사한지 두 달도 안된 젊은 인턴이 자기 멋대로 일을 벌이고선 사장과 이사를 협박하고 있었다.
분노? 격정? 명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진성주를 휘몰아치고 있었다.
진형주는 진성주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걸 지켜보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불안하다.
이제 진성주의 눈은 진형주에게로 돌아간다.
형제이자 사업동반자로 20년을 함께한 두 사람, 눈만봐도 서로의 감정을 읽을수 있다.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던 진성주와 진형주의 입가가 씰룩거리더니.
“후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오히려 박민기가 두 사람이 웃는 걸 보며 당황하고 있을 때였다.
“아주 흥미로운 친구네. 모든 기반이 다 있는데 그걸 메타전자에서 하겠다?”
“그래도 그정도면 의리를 지킨거 아니겠습니까?”
“아주 기가 막혀. 크크큭!”
“하하하하··· 그러게요. 정말 20년 넘게 메타전자 키운다고 고생했는데···”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군.”
진성주가 소파 옆에 있는 인터폰을 누르자.
[네 사장님!]
비서가 인터폰을 받았다.
“아 주비서··· 여기 차를 내오도록 해요. 손님이 왔는데··· 대접이 없었네. 아 그리고 에너지 드링크랑 에너지 바도 몇개 가져오고.”
[네 알겠습니다.]
인터폰을 끊은뒤 진성주가 박민기를 노려보더니 양복을 벗어 책상으로 던지고선 넥타이를 풀고 소매단추를 풀어 셔츠를 걷어 올렸다.
“자! 박민기씨!”
“네!?”
진성주의 말에 오히려 박민기가 깜짝 놀랐다.
진성주의 모습이 마치 한판 싸우자고 달려드는 버팔로처럼 씩씩거리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번 해 봅시다. 투자는 어떤 식으로 받을 거고 TF팀은 또 어떻게 꾸리고 업무 분배는 어떻게 하며? 마케팅 플랜은 어떻게 짤지···”
진성주의 말을 들은 진형주 또한 슈트를 벗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였다.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왜 이런 친구가 지금에서야 나타났을까요? 20년동안이나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지금에라도 나타난게 어디야?”
진성주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씨익 웃었다.
아주 오래전 그 시절처럼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것 같았다.
“자 자세히 말해봐요. 그 주영신 교수의 연구실적에 대한 것부터.”
진성주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뚜드드드득!]
소매를 걷고 깍지를 낀 진형주 이사가 목을 꺾으며 자세를 잡고 있었다.
어설프면 산채로 씹어먹어 버리겠다는 살기를 번뜩이는 눈빛이었다.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아이스바인입니다.
‘망생역전 재벌전기’로 여러분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모든 젊은 청년이 그렇듯
세상 살기 힘드시죠?
견디고 극복하고 이겨내는 건 꿈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주인공 박민기도 꽤 불운했던 사람인데요.
인생을 걸어야 하는 타이밍! ‘운명의 시간’을 겪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박민기의 흥미진진한 여정을...
그가 날아오르는 것을 함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아이스바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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