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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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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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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정말······ 사람 없네. 어쩌면 이틀 동안 아무도 못 만날지도 몰라. 위험한 일만 안 생기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로건은 북쪽으로 걸어가며 고민했다.

밤새도록 걷기는 어렵겠지만 걷기는 걸어야 한다.

불을 피우기도 여의치 않고, 불 피웠다가 이목을 끌 수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

어쩔 수 없으면 피워야겠지만 마른 잡목을 주워 모으는 것도 일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달빛이 밝고.

그 빛은 다시 쌓인 눈에 부딪혀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움직이다 보니 땀도 나서 걸을 만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지. 나무 밑이 좋아. 무슨 일 생기면 나무 위로 피하면 되니까.’

로건은 북쪽을 향해 걸으며 튼튼하고 오르기 쉬운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나무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니, 나무가 너무 미끄러워서 올라가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아, 겨울이다. 겨울이야. 이건 안 돼. 돌멩이라도 손에 쥐고 자야 하나?’

그러면 바위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바위는 많았다.

로건은 잠시 만에 적당한 바위틈을 찾고는 그 위에 올라서 봤다.

‘뭐가 보이려나? ······어!’

시야 끝에서 불빛이 보였다.

조금씩 흔들리기도 했다.

분명 야영일 것이다.

‘이 밤에 가도 될까? 가는 게 낫지. 일단 근처까지는 가보자.’

남은 체력과 현재 날씨를 고려하면 바깥에서 자도 얼어 죽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예상일 뿐 사람 일은 모른다.

‘상황 봐서 합류하든지. 아니면 혼자 자든지.’

로건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미 어제 다 예상한 일이다.

만난다고 생각하니 살짝 떨린다.

에반 레스터와의 만났었지만, 이세계의 사람과 제대로 부대끼는 건 처음이니까.

‘얼레? 되게 잘 보이네?’

로건은 멀리 있는 불빛을 향해 걸어가면서 자신의 시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은 구분하기 어려운 거리임에도 제법 잘 보인다.

마차 3대.

무장한 남자 대여섯.

평민으로 보이는 남자 셋.

여자도 1명 보인다.

대부분 모닥불을 둘러싸고서 몸을 녹이는 중이고, 한 명은 주위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이 사람들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어. 불부터 피우고 몸을 녹이는 거야. 그다음엔······ 야영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겠지.’

로건은 기억 속에 있는 지식과 현대의 경험으로 어렵지 않게 상황을 짐작했다.

‘가도 돼. 안전한 파티다.’

일단 모두 평민이고, 무장한 남자들은 용병 같았다.

“어이. 멈추시오.”

주변을 둘러보던 용병은 로건을 발견하자 손을 흔들었다.

로건도 손을 흔들어 자신을 알렸고.

용병은 야영지에서 조금 나와서 로건을 맞이했다.

로건은 남자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갈라실 영지로 가다가 늑대를 만났습니다.”

“아하.”

“쫓기다가 짐을 잃고 몸만 빠져나왔죠. 오늘 밤 함께 쉴 수 있을까요?”

용병은 로건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다.

용병 경력 5년이니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입은 차림이 멀쩡하고 얼굴에서도 잘 먹은 티가 난다. 무장하지 않았고 몸을 단련한 티도 안 난다.

가난하지 않은 평민.

길 위의 만남이란 스치는 인연.

더 물을 필요는 없었다.

“들어오시오.”

다른 사람들도 로건을 한번 본 후 선선히 모닥불 앞의 한 자리를 내어주었다.

로건은 빙긋 웃은 후 모닥불 앞에 앉았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인원을 확인했다.

남자 3명, 여자 1명.

용병 남자 6명.

총 10명이다.

자신까지는 11명이고.

‘작은 상단이군.’

몸을 녹이며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니 곧 상황이 파악됐다.

일행은 식사와 야영 준비를 동시에 하고 있다.

제법 편안한 분위기였건만 로건의 경계심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상인 일행은 2명.’

중년의 남자가 주인 같고 소년은 그의 하인 같다.

예, 예하면서 식사 준비를 한다.

‘남자 1명과 여자 1명은······ 부부.’

상단 마차의 뒤꽁무니에 붙어서 갈라실 영지로 가는 중이다.

나머지는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들.

그래서 식사 준비가 3곳으로 갈렸다.

상인, 부부, 그리고 용병들로.

‘다 따로 노네. 부부는 몰라도 상인과 용병은 함께 식사해도 될 건데. 계약이 그런 건가, 원래 그런 건가? 흥미롭군.’

부부 중 남자가 로건에게 말했다.

“늑대에게 쫓기다가 짐을 잃어버렸다면서요? 먹을 건 있으세요?”

“아. 주머니에 육포가 있습니다. 영지까지 먹을 건 돼요.”

“다행이네요.”

이미 간단한 통성명은 했다.

부부 중 남편의 이름은 페니, 아내는 쉴라.

상인 남자와는 통성명을 안 했지만, 하인의 이름은 제미니다.

용병 대장의 이름은 군터.

자신과 말을 섞었던 용병의 이름은 베스다.

로건은 서서히 경계심을 풀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별일 없겠어.’

오늘 저녁 당번은 베스인 모양이다.

모닥불에 걸어 놓은 냄비 속의 물이 팔팔 끓자 냄비를 떼어냈다.

그리고 냄비에 육포 조각과 곡물가루를 넣고 몇 번 휘젓더니 끝이었다.

그 수프를 골고루 나누어 주고 빵에 찍어서 먹는다.

상인 일행은 구운 소시지와 빵을 먹었고, 끓는 물에 찻잎을 띄워서 차도 마셨다.

제일 초라한 사람은 페니 부부.

순서를 기다렸다가 제일 마지막에 냄비에 물을 끓이고 곡물가루를 한 움큼 넣어서 수프를 만들었는데 그게 끝이었다.

농도가 희멀겋고 맛도 없어 보였다.

‘저거 먹고 되나?’

부부는 30대로 보이는데 고달픈 삶을 사는지 둘 다 피부가 거칠었다.

‘뭐, 초라하게 먹는 건 나도 똑같네.’

로건은 쓴웃음을 짓고는 육포를 꺼내어 먹었다.


모두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야영을 준비했다.

상인과 소년은 마차로 들어갔고.

용병들은 마차 위에 올려놓은 천막을 내려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부부는 그런 것도 없다.

그저 보따리에서 모포를 꺼내어 모닥불 앞에 깔았을 뿐이다.

‘어깨에 걸치고 있는 망토를 이불로 쓰겠네? 그럼 뭐야. 바깥에서 자는 노숙하고 똑같잖아? ······용병들이 야간 경계를 할 테니까 불은 안 꺼뜨리겠지만 입 돌아가겠어.’

로건은 속으로 혀를 찼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페니는 바닥에 깐 모포를 평평하게 정리하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맨바닥에 자면 큰일 나요. 용병들에게 모포를 빌려달라고 부탁해보세요.”

“돈을 내야겠죠?”

“동화 10개 정도면······.”

페니는 괜히 미안한 표정이다.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는데.

‘타고난 성격이 저런 모양이군. 아내 쉴라는 성깔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쯧, 쥐어 잡혀 살겠네.’

로건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돈이요? 조금 있어요.”

“아! 다행이다. 그럼 군터 씨에게 말해 보세요.”

“천막은 1실버요. 혼자 쓰고 싶으면 3실버.”

옆에서 같이 불을 쬐던 용병 대장 군터의 대답이다.

“혼자 쓰고 싶습니다. 부탁드릴까요?”

“그럽시다. 그런데 갈라실까지 가신다고?”

“네.”

“함께 가겠군. 이틀 거리인데 그냥 따라오는 건 돈 안 받겠소. 거리 짧으니까. 하지만 몬스터나 동물의 공격에서는 보호하지 못하오. 위험하면 알아서 피하시오.”

“그런데 동행하려면 상인 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거의 다 왔으니까 상관없소. 더구나 한 명인데 뭐.”

“이틀 동안 보호비 낼게요. 얼마죠?”

군터가 턱을 쓸다가 말했다.

“갈라실은 늦가을에 몬스터 토벌을 해서 안전한 편이지. 10실버 주시오.”

“알겠습니다.”

로건은 마법 주머니에서 13실버를 꺼내어 군터에게 주었다.

용병들이 설치한 천막은 꽤 튼튼했다.

들어가 보니 공간은 협소했지만 한 몸 누울 공간은 충분히 나왔다.

부대끼면 2명도 잘만했다.

‘그래도 돈 냈다고 모포도 2장 주네? 윽.’

로건은 손으로 코를 막았다.

바깥에서는 몰랐는데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모포는 못 덮고 자겠어.’

현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

로건은 모포 2장을 바닥에 겹쳐 깐 후 다시 모닥불로 갔다.

상인과 소년은 없는 걸 보니 잠든 것 같고.

오갈 데 없는 부부는 여전히 모포 위에서 모닥불을 쬐고 있다.

용병 대장 군터, 용병 3명도 있고.

‘모닥불이 참······ 좋구만?’

로건은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주의를 기울여 들었고 그로써 상당히 많은 정보를 취합할 수 있었다.

별것 아닌 일상이어도 로건에게는 충분히 쓸만한 지식이다.

쉴라가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응······.”

‘이 밤에 어딜 가? 아, 화장실 가나?’

로건은 페니의 우울한 얼굴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5분도 안 되어 큰 충격을 받았다.

쉴라는 쉬고 있는 용병들의 천막으로 들어갔고, 곧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게 뭐야? 실화야?’

군터는 묵묵히 모닥불을 움직여 불을 높이고, 페니는 무릎을 세워 쪼그리고 앉아서 불구경만 했다.

용병 한 명이 로건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 키득거렸다.

“궁금한가 봐요?”

“네?”

“페니 부부는 산적에게 붙잡혔었어요. 둘만 돌아다니다니, 겨울이라고 방심한 거죠. 저희 아니었으면 페니는 죽고 쉴라는 노리개가 되었다가 노예로 팔렸겠죠. 그 보상이에요.”

‘그게 보상이야? 염병하네.’

로건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구해주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그렇게 갈라실까지 함께 가는 거죠. 물론 보호는 안 해주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에요?”

“그렇군요.”

로건의 경계심은 다시 고개를 바짝 들었다.

남편 페니는 정신병자, 이 용병들은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다가 곧 생각을 바꾸었다.

적응해야 한다.

이건 현실이었다.

‘그만큼······ 환경이 안 좋은 거야. 능력을 갖춰야 해. 돈이든 힘이든.’

로건은 마음이 불편해서 천막으로 돌아갔다.

쉴라를 비난할 수 없다.

저렇게 독하지 않고는 자신과 남편을 지키지 못했을 테니까.

페니의 우울한 얼굴이 너무 눈에 밟힌다.

‘여기는 미친 세상 같은데 적응할 수 있을까? 하, 적응 안 하면 어쩌겠어.’

그는 모포 위에 앉아서 한숨을 쉬다가 어깨에 걸친 망토를 떼어냈다.

그리고 망토를 이불 삼아 덮고 잠을 청했다.


* * *


혜원 추모 공원.

천수는 영민의 유골함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울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나온다.

경환의 옆자리.

그곳에 영민의 유골함이 놓여 있다.

‘형. 형이 좋아하는 꽃이야.’

유골함 주위로 안개꽃이 가득했다.

그의 옆에는 영민의 주치의였던 내과의가 있었다.

천수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바쁘신데 또 오셨네요. 형도 고마워할 거예요.”

내과의는 울컥하는지 음성이 떨렸다.

“정말 살리고 싶었는데······. 하늘에서는 아드님과 함께 행복하실 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흘 전.

영민은 아파트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날은 오후 2시에 게임 안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천수는 2시가 넘어도 영민이 게임에 들어오지 않자 전화를 했다.

‘왜 안 받으시지? 이혼 때문에? 에이, 설마. 그런 형 아니잖아.’

바쁜 일 있나?

그렇게 3시가 되어도 소식이 없다.

통화도 안 되고.

4시에도.

4시 30분에도, 5시에도.

‘약속 칼 같이 지키는 형인데 이상하잖아? 뭔가······ 불안해.’

천수는 걱정을 거듭하다가 오후 6시에 자리를 박차고 영민의 아파트로 갔다.

영민이 예전에 준 아파트 카드 키도 있고, 비밀번호도 안다.

저녁 7시.

천수는 컴퓨터 앞에 쓰러진 영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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