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로 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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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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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나의 원한은 나의 것. 그리고 대가를 지급할 수도 없소.”

“대가가 왜 없어요? 전 지금 살아있는데요.”

“그건 로건의 대가요.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지 않소.”

“······알겠습니다.”

영민은 수긍했다.

잠시 겪어보니 에반은 죽으면 죽었지 누구에게 의지하고 기댈 사람이 아니었다.


“에반님, 저주를 건 그놈은 로건 레스터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까?”

“저주는 젊었을 때 걸렸지. 내게 아들이 있는지도 모를 거요. 날 쫓은 놈들은 신분을 감추고 살았을 때 생긴 관계에서 온 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악한 마법사가 우연히 이 육체를 보았을 때는요?”

에반 레스터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한참 뒤에야 그의 입이 열렸다.

“그럴 수도 있구려. 나보다는 약하지만 로건의 피에도 엘프의 피가 섞였으니까. 하지만 로건의 피는 워낙 옅어서 그놈이 직접 피 맛을 보기 전에는 절대 알지 못하오.”

“만에 하나가 있죠. 그래서 1년이라고 하셨잖아요?”

에반의 입술은 또 다물렸다.

영민이 조용하게 말했다.

“제가 에반님보다 더 용의주도한 모양입니다.”

“훌륭하외다. 그놈은 흑마법사요. ······왼쪽 손등에 검은 전갈의 문신이 있다오. 여기까지만 하겠소.”

“알겠습니다.”


에반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대를 믿소. 그러나 걱정이구려. 이 동굴을 막았지만, 앞으로 5일이 지나면 마법이 풀릴 것이오. 겨울의 추위를 막을 수 없지. 먹을 것도 없고. 움직여야 할 것이외다.”

“그래야죠.”

“인근의 갈라실 영지는 꽤 안전하다오.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마련한······.”

영민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하십시오. 얘기하셨잖아요.”

“후······.”

“은신처보다 군중 속이 낫습니다. 은신처는 나중에 가볼게요. 염려하지 마세요.”

에반은 감탄했다.

“현명하시오. 1년은 그대와 나의 약속이오. 절대 일을 벌이지 말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그 뒤는 자유요.”

“알겠습니다.”


에반은 씁쓸하게 말했다.

“미안하외다. 쫓기며 대부분을 잃었는지라 남은 게 없소.”

“괜찮습니다.”

“내가 마련한 은신처라면 최소한 그럭저럭 먹고는 살······ 컥!”

“에반님!”

영민은 놀라 그를 흔들었다.

그러나 급격히 기운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동을 멈추었다.

“부디 로건을······. 내가 한 말들. 지금의 인연을 봐서라도 존중해주시오.”


영민은 급하게 말했다.

“우리 친구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후후, 친구는 거절하오. 이제 정말 가야겠군.”

생기가 사라져 가는 눈동자가 짓궂게 반짝했다가 그 속의 빛이 사라졌다.

그렇게 죽기 직전.

에반은 악마에게 남은 왼쪽 눈을 주고, 고대의 마법서를 없애도록 했다.

또 입을 주고 바로 앞에 놓인 수정구를 부수었다.

마지막으로 뇌를 주고 영혼 소멸을 부탁했다.

고대의 마법서가 부스러져 먼지가 되고, 수정구가 깨져 유리 파편처럼 널브러졌다.

그리고 마법사의 몸이 수증기처럼 흩어져 버렸다.

에반이 입었던 옷만 영민의 몸 위에 남은 것이다.

“······.”


* * *


휘이잉.

바깥에서 부는 겨울바람 소리만이 들리고,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 홀로 남았다.

영민은 한참이나 망부석처럼 앉아 있다가 중얼거렸다.

“그 양반 눈치 하나는. 친구의 일이면 좀 내 맘대로 해도 되었는데.”


에반 부자의 복수.

내게 새 삶을 준 대가.

서로가 좋지 않은가.

지금의 나에게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살아갈 원동력으로 삼으면 나쁘지 않은데.

물론 나는 독불장군이 아니다.

거창하게 복수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 한다는 뜻.

에반도 그렇게 알아들었지만 거절했고.


영민은 짓궂게 웃었다.

“고인의 유지를 존중해야지. 그러나 로건의 유지는 못 들었잖아? 흑마법사는 모르니까 넘어가도 에반님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은 손을 봐야지.”

영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비로소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고 현실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대화에 심취해서 몰랐는데 막막하기 짝이 없다.

“살아야지. 에반님의 부탁이 아니라도 말이야. 일단 여기서 벗어나는 게 먼저. 그리고 1년은 에반님의 유지대로 살아야 하고.”


1년은 약속이고 거래였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다리 통증이 심했지만 동굴 벽에 기대가며 움직이니 견딜만했다.

“몸은 움직이다 보면 풀릴 테고······.”


영민은 동굴 입구를 막은 투명한 막을 살펴보았다.

바위처럼 보이는 위장막.

에반의 말로는 바깥에서는 안이 안 보인다고 했다.

5일 남았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그 후는 움직여야 했다.

재수 없으면 뭔가가 우연히라도 튀어 들어올 수 있다.

오크, 고블린 같은 몬스터도 것도 있지.

에반은 쫓기던 중 몇몇 몬스터를 만나 시간을 낭비했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마법······. 몬스터.’

동굴 앞에서 하늘을 보니 달이 2개다.

‘정신 차려!’

영민은 넋을 놓고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생존이 먼저다.

정신적 충격은 나중에.

더구나 동굴 코앞에서 감탄사를 터트리고 생각에 잠기는 건 바보짓이었다.

영민은 조심스럽게 물러나 에반의 옷만 남은 곳으로 돌아왔다.


목이 마르다.

옷 바로 뒤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는데,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서 고여 있다.

물방울은 계속 떨어지는데 수면이 넘치지 않는다.

어대론가 새겠지.

그러면 흐르는 물.

깨끗할 것이다.

영민은 두 손으로 물을 조금 떠서 반 모금만 입에 머금어 보았다.

‘차고······ 달다. 마셔도 돼.’

영민은 손에 있는 물을 다 마시고, 한 번 더 떠서 먹었다.


동굴은 상당히 어두웠지만 움직일만하다.

눈은 어둠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고 하늘에 떠 있는 2개의 달은 환하니까.

입은 옷은 겨울옷.

중세의 외출복 같은데 은밀히 움직였던 것을 고려하면 평상복일 것이다.

겨울답게 옷이 두껍고 털가죽 조끼도 입었고, 손가락장갑도 꼈다.

한편에는 후드가 달린 도톰한 망토도 놓여 있고.


영민은 자신의 옷을 세심하게 더듬었다.

‘헤진 곳은 없어. 몸도 멀쩡하고. 가진 건 이것뿐이군?’

조끼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패가 1개, 금화 1개가 나왔다.

신분 패다.

동으로 만들었고 하나는 ‘로건’이라는 이름만 적혀 있다.

평민 신분 패.

그중에서도 가장 움직이기 좋은 자유 신분 패.

‘로건이란 이름이 흔한가 보군. 흔하니까 같은 이름을 썼겠지. 더구나 쫓아올 사람도 없잖아.’


영민이 글과 신분 패의 내력을 유추한 건 로건 레스터의 기억 때문이다.

육체에 들어온 후로 로건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비록 로건이 정신 연령 5세라도 육체가 5세는 아니다.

로건은 20세.

머리는 엄청난 걸 넘어, 탁월할 정도로 좋다.

약간 신들린 두뇌 같았다.

로건은 루덴 왕국어, 대륙 공용어를 읽고 쓸 줄 알았고, 에반의 가르침으로 마법어도 익혔다.


‘대단하네.’

에반은 정말 온갖 잡다한 것을 로건에게 가르쳤다.

대륙의 상식부터, 밥 먹는 방법까지.

세수하는 방법, 물건을 사는 방법, 하인을 부리는 방법 등등.

자신이 없을 때를 걱정해서 가르치고 가르쳤을 테지.

‘그런 게 부모지.’

영민은 로건의 기억을 뒤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에반의 마음이 진하게 와닿았다.


고개를 흔들었다.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기본적인 건 다 알고, 바깥은 모르는 게 당연하고. 그런데 얘가 운동을 싫어했네.’

체력은 오랫동안 굶고 움직이지 않아서 당연히 바닥이다.

하지만 군살이 참 많았다.

굶었음에도 도톰한 볼살이 아직 남았고, 옷에 가려져서 그렇지 배도 제법 볼록했다.

로건의 정신 연령을 생각하면 에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영민은 에반의 유품을 수습했다.

정확히는 허리춤에 달렸었던 작은 마법 주머니 하나.

에반의 옷은 곳곳이 찢어졌는데 다른 특별한 점이 없었다.

‘아들이니까 된다고 했지······.’

영민은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주머니 속에 든 물건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졌다.

‘마법! 진짜네!’

영민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하나씩 꺼내 보았다.

기억만 해도 되지만 그래서야.

직접 보고 만지면 훨씬 기억이 더 잘 된다.


촛불 3개, 부싯돌 1개.

깃털 펜 2개, 잉크 1개, 빈 종이 10장, 양피지 1장.

작은 유리 공병 2개.

육포 15개가 든 주머니.

비스킷이 적당히 든 주머니.

금화 122개가 든 주머니

은화 70개가 든 주머니

마법 책 2권.

로건의 인장 반지 1개.


영민은 눈을 반짝였다.

‘줄 것이 없다고 하시더니 괜찮은데? 나 처음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기억 속의 로건은 경제 관념이 어설프다.

그러나 영민은 그것을 대부분 파악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1골드는 100실버.

금이 생각보다 귀한 세상?

아니면 은이 넘치는 세상이거나.

아마 은이 잘 나올 것이다.

금이 아무리 많아도 금은 금일 테니까.

동화도 있지만 그건 밀 한주먹, 나무 장작 몇 개.

뭐 이런 식이어서 농노, 노예들이나 쓰지 평민도 잘 안 쓰는 것 같았다.


마법책 2권은 로건이 배우던 책이고, 인장 반지는 신분이다.

쫓겼던 때의 그 신분.


에반 레스터 남작.


에반은 하급 마법사로 준남작의 작위를 받고, 전장에서 20년을 보내며 공훈을 인정받아 계승 남작 위를 받았다.

남작 위를 받았을 때의 마법 수준은 중급 마법사 초입.

나이 56세 때였다.

에반은 36세에 로건을 가진 후, 아들의 미래를 위해 바로 준 남작을 얻고 20년을 전장에서 굴러서 남작에 오른 것이었다.

아내는 로건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그는 쫓길 당시 막판에 이르러서 그들이 원하는 자신의 인장 반지를 던지고 탈출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건 절대 위조를 못 하지.”

영민은 로건 레스터의 인장 반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로건 레스터 공자.

왕실의 귀족원 명부에 올라있는 레스터 가문의 정식 후계자다.

영지는 없으나 분명한 계승 귀족.

수도에는 저택도 하나 있다.

영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에반 레스터는 말하지 않았지만, 로건의 기억만으로도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기가 막히는군. 이건 나중에. 아니,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으려나? 그렇겠지.’

영민은 생각을 떨치고 이번에는 마법 책 2권의 표지를 하나씩 읽어 보았다.

“마법······ 기초. 파이어 볼.”


영민은 귀를 만져 보았다. 로건의 상식에 엘프의 귀는 뾰족하다.

그런데 에반과 로건의 귀는 평범하다.

‘그만큼 피가 옅어진 거야. 로건은 당연히 피가 더 옅고.’

그러나 엘프의 피가 없지는 않다.

거기에 에반은 마법사.

로건 레스터는 이 2가지 재능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다만 저주로 꽃을 피우지 못했을 뿐.

‘오래 산다고? 거기에 마법 재능? 갈 길은 딱 하나. 마법사야.’

영민은 가슴이 뛰었다.

‘단순한 예상이 아니야. 이건 된다. 꼭 돼. 설령 아니어도 내가 되게 만들어. 마법? 절대 포기 못 하지.’


그는 육포 한 조각만 내놓고 나머지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 에반 레스터의 옷도 고이 접어서 주머니에 담았다.

마법 주머니를 허리춤에 달고 망토를 어깨에 부착하고 머리에 후드를 썼다.

한결 따뜻했다.


영민은 오랫동안 육포를 씹었다.

손바닥만 한 육포 한 조각을 1시간에 걸쳐서.

그러면서 정신적 충격을 소화하고,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살아야 한다.

살 것이다.

경환이 몫까지.

로건의 몫까지.

에반의 몫까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고, 잘 살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길이었다.

새로운 인생.

아저씨는 20살의 청년이 되었다.

이영민은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나는 로건 레스터다.

‘마무리는 천수가 잘했을 거야. 천수야······. 안녕.’

로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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