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가 여황제의 국서가 되는법[슬레이브 엠페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새글

장미허브
작품등록일 :
2024.08.01 23:28
최근연재일 :
2024.09.19 21:10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1,766
추천수 :
70
글자수 :
252,866

작성
24.08.03 11:00
조회
79
추천
3
글자
13쪽

무관과 노비

DUMMY

깊은 밤 황궁.


황제는 후원에서 홀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과거의 일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그때 생각을 하면 원통하고 슬퍼서 잠이 오질 않았다.


어린 아이었다.

그 아이는 아주 어렸어..



아직 황태녀였던 그녀는 황제가 되기 전 백성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살피고 싶었기에 잠행을 나섰다. 그러나, 하필 잠행을 나선 날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게..이게 무슨...''


귀족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한쪽 발목을 잃고 주저앉아있는 어린 사내아이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놀랐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저렇게 잔인하게 구타할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그 어떤 누구도 말리지 않고 그 광경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저.. 도대체 왜 저리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는 겁니까...?''

''아~! 아가씨 모르슈? 저 맞고있는 애가 저 도련님의 종이었는데 전쟁터에서 발목을 잃고 돌아왔거든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네..? 그..그런 이유로 사람을 때린다고요?''


''자기한테 도움이 안되는 존재라며 저렇게 무자비하게 때린다니까요..?! 아니 게다가 군역을 치뤘으니 엄연히 노비 신분이 아니건만..''


그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망설임없 도령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주변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도령은 분노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누구ㄴ..!!! 하..!! 허..참..!! 당돌하구나 감히 내가 누군줄 알ㄱ..''


도령은 자신을 때린 사람이 여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기가 찬다는 듯이 답했다.


-퍼억!!


황태녀는 도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거....건방진..!! 듣도 보도 못한 계집이 어딜 감히..!!! 내가 누군줄 아느냐?!!''


''니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어.

그냥 내 눈에는 인간 쓰레기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안보이니까.''


그녀는 도령의 멱살을 잡고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군인이다. 그런데 어찌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그를 때린다는것이냐? 네가 얼마나 잘난 존재라고? 네놈 같은 걸 지키기 위해 그들이 신체 일부를 잃어가며 싸운 줄 아느냐!!''

''사..살려줘 잘못했어..그..그만해... 때리지 말아줘..''


''....하 고작 내가 몇 대 때렸다고 이리 겁먹는 꼴이라니 참으로 한심하구나. 겁쟁이 주제에 누가 누굴 업신여긴다는 건지..."


더이상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껴 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황궁에서는 문관들 일부가 무관들을 은근히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지만, 밖에서도 이리 심할 줄은 몰랐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 아이는 어찌 되었을까. 그때 눈이 돌아서 후의 일이 기억나질 않았다. 심지어 그 시기는 무종황제께서 통치하시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나 황궁에서나, 황제의 눈을 피해 무관과 일반 군사들을 무시하는 자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니 이런 취급을 막기 위해서라도 무관들에 대한 차별은 무슨일이 있어도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무관이 문관보다 우월해지는것이 아닌, 두 집단이 서로의 견해를 조율하며 이 나라를 이끌어야 할것이다. 한쪽 집단에만 힘을 실어준다면 그것은 자칫 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무작정 개혁을 시행하기에는 생각해야할게 너무나도 많았다. 또한, 이러한 중대사는 황제 혼자 결정하는것이 아니니 반발을 하는 수많은 문관들을 설득시킬 방안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반박할 만한 사례가 있었다. 문관들은 전시상황에 무관직을 겸하는 경우도 많으니 이러한 경우를 예로 들면 되는 일이었다.


''폐하...?''

''ㅇ..어..?!!''

''한참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시길래..

아..아무튼 차를 내왔습니다.''

''내가 차를 내오라 했었나..? 정신이 오락가락 하네..하하...''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천천히 생각하자 급하게 밀어붙이면 반발이 심할테니 말이다.


생각을 잠시 미루고 푹신한 금침에 누운 황제는 궁인들이 올린 차를 마시고 편히 잠들었다.



* * *




황제와는 반대로 딱딱한 바닥에 지푸라기를 겹겹이 깔고 자는 이가 있었다.


하늘, 그는 신분중에서도 최하급에 속하는 노비였다. 이름과는 다르게 자신은 하늘은 커녕 항상 고개만 숙이며 윗사람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였다. 매질을 당해도 하소연 못하고 어깨가 끊어져라 지게를 지고 다녀도 힘들다고 불평하지도 못했다.


하늘의 주인은 예부상서 오준량이었다. 예부를 총괄하는 그는 황제의 최측근으로 아부의 달인이었다. 윗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아랫사람은 함부로 대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다.


하늘은 다행히 예부상서의 성품과 반대되는 막내도련님 덕분에 어느정도 글을 익혔다. 막내도령은 인자한 성품을 가졌으며, 하늘을 구박하지도 않고 험한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네가 노비인게 아깝구나.

평민이었으면 관직에 나갈 기회가 주어졌을텐데..''

''아..아닙니다 도련님.. 저같은게 어찌...''


그때였다.


예부상서가 큰 발소리를 내며 막내도령의 방으로 들어왔다. 자신의 아들에게 노비들과 친분을 쌓지말라고 그렇게 경고했건만...


''아..아버지..''

''또... 또 이놈에게 글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냐..!!''

''아..아닙니다 그저 말동무를..''


오준량은 막내아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의 머리채를 잡아채고선 마당으로 던졌다.


''으윽....''

''이놈을 곳간에다 가두고 물 한 모금 주지 말거라!!''

''(곳간에는 쌀이 많은데..생각이 짧으시네..)''


하늘은 이런 취급을 받는 와중에도 쓸데없이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예부상서는 그러한 하늘이 너무나도 얄미웠다. 다른 노비들은 자신에게 벌벌 기는데 하늘은 그에게 빌빌 기긴 커녕, 맞을걸 알면서도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날밤, 막내도령 오은은 아버지 몰래 하늘을 꺼내기 위해 곳간으로 향했다.


''하늘아!! 하늘아 나야 나!''

''도련님..?!!''

''응.. 나야.. 괜찮은거니...??''

''네 전 괜찮아요. 여기 먹을게 많은걸요?''

''하여튼... 괜히 걱정했다니까..''


하늘은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이번 생은 노비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있겠나. 좌절하기 보다는 그저 이 상황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저 다음생에는 높은 귀족가에서 태어나면 그만인것을.


하지만, 그렇게 괜찮은 척 자기합리화를 수없이 해도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은 당최 가시질 않았다.


''도련님..''

''응?''

''황제께서는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한 분이시죠?''

''그래, 그렇다.''

''헌데.. 저같은 노비는... 폐하의 백성이 아닌걸까요..''

''하늘아..''



* * *


황제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오늘은 처리해야 할 정무가 산더미라 그 어느때보다 신중해야 했다.


''오늘은 간단한 차림으로 상소를 봐야겠구나. 그리 알고 준비하거라.''

''예 폐하.''


회의는 없는 날이었지만, 상소문이 끊이질 않아 골머리를 앓는 황제였다. 하지만 이게 더 편했다. 왜냐하면, 회의 시간에는 신하들 서로의 의견이 도저히 좁혀지질 않기에 굉장히 정신이 사나웠다. 특히 중서문하성과 중추원 재상들의 자존심 싸움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차라리 민간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때가 많았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막중한 업무가 평생 따라다닐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 진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라는 이 자리가 주어진 이상 다른 생각따윈 잠시 멀리 날려 버려야했다.


상소문을 검토하던 황제는 후에 깨닫게된다. 이 많은 업무중에 천민에 관한 업무는 일절 없었다. 하지만, 그건 크나 큰 착각이었다. 황제는 자신이 너무나도 작은 황궁속에 갇혀사는 삶인 것을 차마 몰랐다. 아주 잠깐 잠행을 나간것으로 어찌 백성들의 삶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황제는 모든 정무를 마치고 잠시 숨 좀 돌릴겸 후원을 거닐며 지밀나인 해리에게 물었다.


''일정이 비는 날이 언제지?''

''열흘 후에 일정이 잠깐 빕니다. 폐하.''

''그래? 아주 좋군! 그날 잠행을 나가자!''

''..예? 잠행이요? 저도요?''

''그럼 나 혼자 다녀오라고?''

''저야 좋죠~! 와 오랜만에 바깥구경한다~''


해리는 신난듯 잔뜩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가 이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으.. 그런데 폐하 지난번처럼 대참사가 일어나는거 아니에요?''

''대참사?''

''네 그때처럼요.... 막 사람 때리고!''

''아니 그건 그 사람이 잘못을 해서..''

''어쨌든 큰일나요!! 폐하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마구잡이로 폭행하다간..''

''아..음 그렇긴 하네.. 앞으로는 신분을 밝히고 패도록 하지!!''

''폐하!!''

''농이야 농~''


황제는 웃어넘겼지만 그날 일은 아직도 생생했다.


힘없는 백성들은 정녕 그렇게 참혹하게 사는것일까. 그들이 황궁 안의 사정을 모르듯이, 나도 백성들의 삶을 모르니까 이 기회에 자세히 확인해 보고 싶구나.



* * *



한편, 하늘은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고 나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이라고 해봤자 나물뿐이고 고기반찬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하늘은 또다시 심통이 났는지, 은근히 황제 흉을 보기 시작했다.


''아니 황제폐하는 황궁 안에서 맛있는 고기반찬 드실텐데 백성인 우린 뭡니까!! 맨날 풀만 먹고 일만하니까 살이 쭉쭉 빠지기만 하고..''

''야 하늘아!! 누가 듣는다.. 제발 좀 조용히 하거라..''

''아니 아저씨는 그렇게 생각 안하세요..?''

''야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입 밖으로 꺼내면 안돼!''

''그런데 주인어른은 늦으시네요?''

''그러게 말이다. 오늘따라 더 늦으시네. 아 그리고 하늘이 너 혹시라도 이 말 주인어른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도 마!''


오준량이 늦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황제에게 독대를 청해 자신의 업무능력을 칭찬 해달라는 말 따위로 온갖 수다를 떨어대느라, 본인도 시간 가는 줄 몰랐을 뿐이다.


''폐하~ 국자감 관리는 앞으로도 계속 소신을 믿으십시오!! 저 믿지요? 그렇지요?''

''그럼요. 내가 예부상서 아니면 누굴 믿겠어요. 어릴적부터 나의 스승님과도 같으신 분인데!!''

''섭섭합니다 폐하. 신은 폐하와 완전 벗이라 생각했습니다..''

''벗?! 그것도 좋네요. 하하하!''


사실 오준량은 국자감의 국자박사를 회유해 시험의 답지를 자기 가문 사람들과 최측근의 자녀들에게 유출하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고, 심지어는 지공거를 매수할 생각까지 하고있었지만, 황제는 어릴적부터 숙부나 다름없던 오준량을 전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일말의 의심조차 하질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흠이었다.


아직 여러 면에서 미숙한 어린 황제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잡으려는 그의 행동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기 마련이지만, 오준량은 엄연히 예부의 으뜸 벼슬인 정 3품 예부상서라 어느 누구도 그에게 쉽사리 지적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상장군은 예외였다. 같은 정3품의 반열인 그는 오준량에게 조언을 서슴치 않았다.


황제에게 실컷 아부를 떨고 퇴궐하려는 오준량을 붙잡은 상장군은 이내 오준량에게 크게 한소리를 들었다.


''아니 척 상장군 지금 뭐하는겁니까!! 하.. 격식없이 남의 몸에 이리 손을 대도 되는겁니까? 무관들은 다 이렇습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 방금 제 무례는 용서해주십시오.''

''흠...''


상장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저 폐하께 보고할 것을 숨기지 말라는 이야기었으나, 예부상서는 상장군의 말을 비꼬아서 들었다.


''지금 문관인 나를 가르치는게요?! 그쪽보단 내가 훨씬 이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소이다! 그러니 그 입 다무시오! 그리고, 지금이 선황제폐하 시절인줄 아시오? 이제 그런 시절은 끝났소이다 그러니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제~발 주제를 아시오. 제발!!''

''저는 그저 폐하를 위해서...''

''아 거참! 주제넘구만 이사람!"


상장군은 또다시 무관을 업신여기는 말을 들어버렸다. 도대체 나랏일에 문관과 무관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왜 바른 말을 해도 무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리도 질타받아야 하는것인가.


상장군은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전장에서 승리를 쟁취해 돌아오면 백성들이 환호하며 맞이해주었던 그날. 잠깐의 달콤한 과거를 떠올리며 안타깝게도 현실을 외면할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노비가 여황제의 국서가 되는법[슬레이브 엠페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의외의 조합 24.08.21 36 1 11쪽
19 우연 24.08.20 31 1 11쪽
18 가족 24.08.19 35 1 11쪽
17 진정한 충심 24.08.18 39 2 13쪽
16 몰락 24.08.17 38 2 11쪽
15 이상한 첫 만남 24.08.16 39 2 12쪽
14 포로 24.08.15 40 2 11쪽
13 성과 24.08.14 43 2 11쪽
12 불씨 24.08.13 38 2 11쪽
11 품계 24.08.12 38 2 11쪽
10 사신 24.08.11 35 2 11쪽
9 권력 24.08.10 45 2 11쪽
8 역전 24.08.09 43 2 11쪽
7 평화 24.08.08 50 2 11쪽
6 혼란 24.08.07 48 2 11쪽
5 신뢰와 비극 24.08.06 57 3 11쪽
4 황제의 이면 24.08.05 57 3 11쪽
3 백성 24.08.04 57 3 13쪽
» 무관과 노비 24.08.03 80 3 13쪽
1 황제 +1 24.08.02 158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