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가 여황제의 국서가 되는법[슬레이브 엠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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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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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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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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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DUMMY

오은은 산속을 미친듯이 달렸다. 그는 비밀을 숨겨주지 않겠다는 하늘마저 벼랑 끝으로 밀어버렸다.


은은 달리는 내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둘의 숨통을 끊어버린 원망스러운 손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하지만 이대로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가만히 있어봤자 해결되는건 없기에 우선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말씀드려야 했다. 아버지라면 이를 해결해 주실 테니 말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도착하니 자신의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에 잠도 못자고 마당에서 은을 기다리는 예부상서가 보였다.


''아버지...''

''...!! 은아....''


예부상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자마자 달려가 그를 안았다. 아무리 예부상서가 인품이 좋지 않다해도 자신의 아들만큼은 소중히 여겼기에 무사히 돌아온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은아... 어디 어디 있었던게냐... 이 아비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죄송해요...''

''...꼴이 이게 뭐냐..?! 누가 이런 것이냐...??''

''아버지... 소자는 이제 어떡합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오은은 눈물을 흘리며 모든 걸 털어놓았다. 예부상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은은 자신이 한 짓이 맞다며 예부상서에게 몇번이고 얘기했다. 예부상서는 눈 앞이 캄캄해 지는 것을 느꼈다. 가뜩이나 해결해야 할 것이 산더미인데 이런 큰일이 터지다니. 아무리 노비라 해도 이 사건이 알려진다면 폐하께서 크게 노하실 테니 무조건 숨겨야 했다.


야속하게도 하늘과 그의 형이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하나도 없었다. 예부상서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안위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 * *


한편 황궁에선 야심한 시각, 해리가 홀로 누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늘따라 가족이 더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전쟁 포로로 끌려와 이곳에서 지낸지 어언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자신의 고향을 멸망시킨 나라의 관리로 산다는 것만큼 원통한것은 없었지만 그 어린 나이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칼이 무서웠으니까. 죽는 것이 두려웠으니까.


''이봐 주 나인~ 여기서 뭐 하고 계시나?''

''폐하?! 저 어떻게 찾으셨어요..??''

''에이~ 나야 다 알지? 그나저나 술마시고 있었구나.''

''이건 제 사비 털어서 산 술이에요.''

''알아 알아~ 나도 한잔 줘.''

''예 폐하.''

''아니 그런데 안주가 왜이리 부실해?''

''아니 폐하께서 절약하라고 말하셨잖아요!!''

''그..그러네... 그러면 기다려봐..''

''설마 이 시간에 사람들 시키시려는건 아니죠?''

''야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야. 다 자는 시간이잖아.''

''폐하.. 성장하셨군요!!''


둘은 이후 웃긴 말을 주고받으며 계속 술을 들이켰다. 황제는 해리의 마음을 아는지 굳이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쉬지않고 마시다보니 술이 약한 해리는 금방 취했고, 이내 황제에게 안겼다.


''너 술 왜 이렇게 약해?''

''폐하.... 어쩜... 이리도 귀여우실까..''

''뭐? 귀여워?''

''하.. 폐하 사랑해요...''

''왜이래? 아 그리고 너 설마 여기 토하는거 아니지...??''

''우웁..!!''

''와.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너 여기서 토하면 안돼!''

''으... 소..속이 안좋아요... 등 좀...''


황제는 졸지에 해리의 술주정을 받아주는 수 밖에 없었다. 해리는 몸을 돌려 자신의 등을 두들겨주는 황제의 볼을 만지며 실없이 웃어댔다.


''폐하.. 볼 말랑말랑거려.. 역시 젊은게 좋다니까? 볼 늘어나는 거 너무 좋아~''

''저기요. 나랑 한살밖에 차이 안나시는데요?''

''하... 어쩜... 말할때마다 콩떡이 움직이는 것 같아..''

''오~ 표현이 예술인데?!''

''폐하... 사랑해요.. 폐하는 내 거야..''

''그래그래 취향은 존중해줄게. 그러니까 속 다 비웠으면 이만 가자.''


누가본다면 기겁하고 쓰러질 일이었다. 황제의 용안에 손을 올리고 이상한 말을 잔뜩 늘어놓는걸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아마 처음 보는 광경에 크게 놀랄 것이다. 아니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바로 쓰러질 것이다..


황제는 해리를 부축해 침전으로 향했다. 마치 둘의 역할이 바뀐 것만 같았다. 해리는 침전으로 가는동안 자신의 고국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화목하게 살았던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말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황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해리의 행복한 삶을 망쳐놓은게 자신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털썩


''폐하...''

''야 빨리 누워! 너 왜이렇게 무겁냐? 그러게 내가 평소에 작작 먹으라 했지?''

''졸려..''

''그래.. 어서 자... 내일 일어나면 넌 진짜 큰일났다~ 야 다른 황제였어봐 넌 이미 저세상이야.''

''전 그래서 폐하가 원망스럽지 않아요.. 그 따뜻한 마음으로 절 구해주셨잖아요.''

''그래.. 그리 생각해줘서 고맙다.''

''옛날얘기 계속해도 괜찮아요..?''

''마음대로.''


해리는 자신의 고국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황제는 듣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무리 해리와 가족처럼 친밀한 사이지만, 해리의 과거 이야기를 다 들어본 적은 없었기에 조금은 씁쓸해졌다. 저번에 딱 한번 그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먼저 말을 꺼낸것이 후회되었다.


그래. 해리는 자신의 고국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겠지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 한들 나는 해리의 고향을 불바다로 만든자의 딸이니까.


해리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악몽을 꾸었다. 선황제가 해리의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고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말렸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황제는 악몽을 꾼 다음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대전회의에서 신료들과 곧 있을 과거제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특히 교육을 담당하는 예부의 일이 가장 중요했기에 예부상서에게 의견을 묻던 참이었다.


''예부상서. 예부상서!!''

''어..어..? 어..!! 예..!! 예 폐하...?!!''


예부상서는 오은이 저지른 일 때문에 온통 머릿속이 그 생각뿐이라 황제가 부르는지도 모르고 넋이 나가있었다.


''어디 아픕니까?''

''아.. 아닙니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과거제에 대해 의논중인데 예부상서가 아프다면 이 건은 지금 진행하기가 어렵겠군요. 뭐.. 후에 예부의 관료들끼리도 회의를 소집할 터이니 그때 다시 생각해도 좋고요.''

''아.. 아니옵니다 폐하..''


문하시랑평장사 강무이는 예부상서가 못마땅한지 예부상서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폐하. 신 문하시랑평장사 강무이 아뢰옵니다. 요즘 예부상서가 분란을 많이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오늘 회의에서의 태도가 제일 문제입니다. 해서 이번 과거제는 예부상서가 아닌, 예부시랑에게 맡기시지요.''

''아~ 저번 연회때 그 일을 말하는거군요. 걱정 마십시오. 그건 이미 예부상서와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거론하지 마시죠.''

''예.. 폐하의 뜻이 정 그리하시다면 신도 자중하겠습니다.''


예부상서의 원래 성격대로라면 문하시랑평장사에게 하나하나씩 따졌겠지만 지금은 은이가 벌인 일에 대한 수습이 우선이었기에 그 생각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신 공부상서 황보대희 폐하께 아뢰옵니다.''

''말해보시오.''

''음서제가 폐지되고 과거제가 시행되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귀족 중심의 과거제입니다. 평민들은 국자감조차 편히 다닐 수 없기에 이는 엄연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폐하..!''

''나도 그리 생각하지만.. 지금은 곧 과거제가 다가오기에 그 건은 과거가 끝난 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합시다.''

''예 폐하.''


황제는 오늘따라 말이 없는 예부상서가 의아했다. 보통 이럴땐 공부상서가 뭘 아냐면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문하시랑평장사에게 자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왜 예부시랑이 일을 대신하냐며 분노해야할텐데 너무나도 이상했다. 그래도 예부상서 본인의 사정이 있을거라 생각해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황제는 넋이 나간 예부상서 대신 예부의 차관인 예부시랑에게 의견을 물었다.


''예부시랑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예 폐하... 우선 이번 과거제 준비중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과거제의 시관인 지공거를 임명하는 일입니다. 지금 상서령께서 저번 과거제때 지공거를 겸하셨으니 이번 과거제도 그분께 맡기심이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다들 어찌 생각하십니까?''


예부상서는 그만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지공거를 바꾸고 자신이 직접 새로운 지공거를 등용하려 했던 그의 계획은 물건너가버렸다. 예부시랑의 말대로 신하 대부분이 지공거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의견에 동감했고, 하필 이 중요한 회의날 예부상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일들에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예부상서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저 인간이 저럴 성격이 아닌데..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 누구도 예부상서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예부상서의 표정이 매우 심각했기에 괜히 따로 뭐라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 * *


조용히 황제의 뒤를 따르던 해리는 매우 초조했다. 어젯밤 자신이 황제에게 한 짓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기에 황제에게 말도 못 건네고 있었다. 아무리 폐하와 격없이 지낸다지만 어젠 정말...


이 침묵을 깨고 황제가 먼저 해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일정이 좀 비니까. 어제 이어서 담소나 나누자~''

''예.. 예..?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하..''

''걱정마 널 질책하려는 게 아니야. 난 정말 네가 저지른 민폐에 대해 아무 생각 없거든.''

''그..그러시군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어제 그렇게 말해줄 정도면 내가 아주 밉진 않다는거지?''

''그럼요. 제가 폐하를 왜 미워하겠어요. 그땐 저희 다 어렸잖아요.''

''그래 그땐 어렸지. 하지만 이젠 나이를 먹었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그와 같은 비극은 또 일어날거야 해리야. 황제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은 다르니까. 또 너에게 간접적으로라도 상처를 주겠지만 어쩔 수 없구나.''

''이해해요. 폐하께선 황제시잖아요. 제가 뭐라고...''

''그래... 이해해줘서 고맙다. 그것보다.. 어제 나한테 한 장난 기억나?''

''자..장난이요?''

''그래~ 막 내 볼 잡아당기면서 귀엽다 그랬잖아? 그건 기억 안나나봐?''

''제..제가 그랬어요?''


황제는 심각한 이야기를 그만 꺼내고 싶었기에 대화 분위기를 바꿔 가볍고도 웃긴 이야기를 나눴다. 이것이 황제로서 할 수 있는 그나마의 배려였다. 아예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어느 정도 위로의 말을 통해 기분을 풀어주는 것이 한계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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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우연 24.08.20 31 1 11쪽
18 가족 24.08.19 35 1 11쪽
17 진정한 충심 24.08.18 3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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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성과 24.08.14 43 2 11쪽
12 불씨 24.08.13 38 2 11쪽
11 품계 24.08.12 38 2 11쪽
10 사신 24.08.11 36 2 11쪽
9 권력 24.08.10 45 2 11쪽
8 역전 24.08.09 44 2 11쪽
7 평화 24.08.08 51 2 11쪽
» 혼란 24.08.07 49 2 11쪽
5 신뢰와 비극 24.08.06 58 3 11쪽
4 황제의 이면 24.08.05 57 3 11쪽
3 백성 24.08.04 57 3 13쪽
2 무관과 노비 24.08.03 80 3 13쪽
1 황제 +1 24.08.02 15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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