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헌터들이 내 무기를 너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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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8.04 17:29
최근연재일 :
2024.08.0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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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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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개똥 밭에 굴러도(1)

DUMMY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 앞에 맹세하건데, 나는 끊임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어떠한 비유나, 관념적인 문장이 아니다.


내 온몸을 감싼 천이 펄럭이는 감촉, 무언가가 내 뒷덜미를 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는 듯한 아찔함, 몸을 가눌 수 없는 부자유와, 공기가 나를 밀어내는 답답함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공포.

공포와, 두려움, 속상함, 울분, 억울함까지···.


하지만 모든 강렬한 감정도 시간이 흐를 수록 빛을 바래는 법이었고.

나는 아무리 기다려도 끝이 오지 않는 추락 속에서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살아나기만 하면 다신 자이로드롭 안 탄다.’


그동안 신나게 탔던 온갖 ‘추락하는 기구’를 떠올리며 과거를 후회했다.

그 다음엔 내가 추락하게 된 과정을 곱씹었다.


그건 한 순간의 사고였다.


나는 새 작업실 이사 후 첫 작품을 무엇으로 할지 오래 고민했고, 석고에 직접 염색한 천이나 조개 따위를 붙여 ‘만질 수 있는 조각’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염색 천이 잘 마르고 있는지 확인하러 옥상을 오른 날이었다. 나는 옥상 문을 열자마자 건물주에게 사정사정해서 옥상을 빌려 쓴 보람이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요 며칠 날이 무척 맑았기에 하늘이 나를 돕는다고 콧대를 왕창 높여댔다.

그도 그럴 것이, 바람에 펄럭이는 푸른 천을 보자마자 꼭 바다나 하늘과 같은 드넓은 자연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 모습은 내가 의도하던 주제와 꼭 맞아떨어졌다.

기분이 째질 듯이 좋았고. 좀 더 가까이에서 천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얄궂은 바람이 불어온 것도 그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힘차게 펄럭이던 천은, 내가 살짝 천을 들어올린 순간에 힘입어 빨랫대를 벗어났다. 내 손아귀에서도.


‘내가 저 색을 어떻게 냈는데.’


단 하나의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천이 오염되면 새로 염색을 해야했다. 저 색을 만들기 위해 버린 천만 열 장이 넘었다. 그로 인해 깨진 돈은 얼마고.


‘기필코 잡는다.’


나는 달렸고, 몸을 날렸다.


지금 와 변명하는데, 분명 난간과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걸 확인하고 몸을 던진 것이었다.

내 운동신경이 이토록 잘날 줄 알았나? 이럴 줄 알았으면 멀리 뛰기 선수라도 준비해 볼 걸 그랬다.


‘아니지. 그럼 내 미술 재능이 아깝지.’


아무튼, 나는 천과 함께 난간 너머로 떨어져내렸다. 오래된 건물이라 난간이 낮은 것도 문제였다. 천에 휘감긴 손은 그 무엇도 잡아채지 못했다.

떨어지는 순간 내가 본 것은 내가 직접 색을 내어 물들인 청색 뿐이었다.


‘역작을 만들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아깝다.

나는 잠시 동안 이번에 만들려던 조각품으로 SNS 스타가 되는 상상을 해봤다.


“캬아-! 컥, 읍···.”


X발, 공기 저항 좀 꺼줘라!


상반신이 온통 천에 휘감긴 채라 입만 벌리면 천이 입 안으로 들어왔고. 숨 쉬기도 어려워서 사례가 들리는 건 예사였다.


‘그나저나 언제 다 떨어지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떨어져 내린 곳은 7층 건물 옥상에서였다. 아무리 내가 강철 멘탈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공포를 상실해서 과거회상이나 할 동안 바닥에 닿지 못한 건 말이 안 된다.


콰직!


···이상한 건 또 있었다. 이따금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암전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시야가 복구 되었을 땐 여전히 푸른 천이 보였고, 계속해서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뭘까? 아무리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지만 7층 건물을 1804층 건물로 만들만큼 특별하진 않은데.’


콰직!


···이정도면 부정하고 싶어도 내게 문제가 생겼음을 인정해야한다.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끊임없이 추락하게 만들었을까.

우선 과학이나 물리법칙 같은 건 잘 모르니까 제외. 그렇다고 비과학적인 것도 잘 모르니까 제외.


‘그럼 남는 게 뭐지?’


이래서 사람이 평생 하나만 하고 살면 안되는 건데. ···그래도 조소는 재미있으니 어쩔 수 없지. 걔가 날 먼저 꼬셨다고. 어?

바티칸에서 라오콘 군상을 보고 개쩐다고 생각했던 게 내 나이 아홉살의 일이었다. 사람이 많아서 짜증을 내던 것도 그 괴로워하는 아저씨 얼굴을 보자마자 싹 씻은 듯 내려갔었지.


콰직!


···진정하고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잘 몰라도 주변 사람들도 잘 모르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분명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유독 좋아하던 동기가 있었더랬다.

동기는 매번 제가 재밌게 읽고 온 웹소설 이야기를 주변에 떠벌렸다. 누가 “나 요즘 아포칼립스물이 좋더라”라는 말만 해도 말벌 아저씨처럼 달려들어서 ‘웹소설 아포칼립스 명작 15선’을 만들어 읊는 건 예사였다.

듣는 듯 마는 듯 해도 스스로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멈추지 않던 동기였다.


‘걔가 저번에 술마시면서 뭐라 말했었는데? 요즘 유행이···.’


-야, 요즘 유행은 회빙환이야. 회귀, 빙의, 환생. 우리가 아무리 순수 미술한다고 해도 이런 대중적인 키워드를 놓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냐? ···잔말말고 고개만 끄덕여.


기억났다. 회귀는 죽고 나서 시간을 되돌리는 거고, 빙의는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는 거고, 환생은 다시 태어나는 거랬지.


콰직!


···씁. 그럼 내 경우를 따져보자. 빙의는 아니고. 환생도 아니고. 그럼 회귀?


‘회귀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자마자 등골에 소름이 내달렸다. 의도치 않게 끔찍한 정답을 맞춰버렸다는 직감이 뇌리에 꽂혀들었다.


‘회귀가 맞다면, 나는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거지?’


···.


콰직!


한 번 더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혹시 이 소리가 내 머리통이 깨져서 죽는 소리가 아닌가하고 의심할 때 쯤. 그리하여 내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는 사실에 한 발 더 다가갈 때 쯤.


띵동!


맑은 차임벨 소리와 함께 세상이 멈췄다.

공중에 우뚝 멈춰선 나는 오랜만에 편하게 숨을 쉬었다.


“이건 또 무슨 비과학적인 일이야.”


그래도 희망이 들끓었다. 방금 알아채긴 했지만, 계속해서 추락하기만 하는 삶은 별로 원치 않았으니.


[지구의 외핵 흐름을 분석 중···]


눈 앞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마치 SF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크린 창처럼 생겼다.


[지구의 한 마디 : 찾았다.]


뭘? 그보다 지구가 말도 해? 그것도 외핵 흐름으로?


[지구의 한 마디 : 이런 곳에 낑겨있었네;;]


“낑겨? 뭘 껴? 나 지금 하늘 날고 있는데. 그보다 나 왜 이러고 있는 거냐? 죽든 살리든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지구는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일방향 통신이었던 모양이다. 혹시 날 무한 추락에서 빼내주지 않고 사라진 걸까봐 조바심이 났다.


“갔냐? 갔어? 갔습니까? ···다신 버릇없이 굴지 않겠습니다. 환경보호도 하겠습니다. 돈 많이 벌면 환경 단체에 기부도 왕창 할게요. 제발 여기서 꺼내주십쇼. 기왕이면 신체 멀쩡히 살려주시고요. 회귀가 가능하면 굳이 제가 추락하는 순간일 필욘 없지 않습니까? 예? 고작 몇 분 차인데? 제발.”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구는 돌아오지 않았다.


“···갔어? 진짜로? 야! 네가 지구면 다야?! 연민도 없는 X쓰레기 X끼 같으니라고!”


띵동!


“크흠. 죄송합니다. 실언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죽을 죄는 아니지 않을까요?”


빠르게 변명한 것이 무색하게 다시 나타난 창은 ‘지구의 한 마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세요!

살아서 지구를 위해 힘을 보태기 or 그냥 계속 죽기

*한 번 한 선택은 무를 수 없습니다.

*선택에 의한 결과는 본인 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지구가 내게 선택권을 줬다.


“환경 보호하겠다는 말이 그리 매력적이었나···?”


과학자들은 지구가 특정한 주기로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길 반복한다던데. 다 거짓말이었던 모양이다. 지구가 이렇게 환경 보호 좀 해달라고 요청하다니.


‘분리 수거 잘하고, 작업 재료도 최대한 친환경적인 걸로 골라 사용하면 되겠지.’


아래 주의사항이 조금 찝찝했지만 으레 계약서에 적히곤 하는 주의 문구 같은 것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그럼 이건 내게 이득인 계약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나는 확신했고, 그대로 우렁차게 외쳤다.


“살기!”


[정확히 말해주세요.]


까다롭구나. 몰랐는데 지구가 좀 의심이 많은 거 같다.

나는 힐끗, 선택지를 확인하곤 다시 한 번 외쳤다.


“살아서 지구를 위해 힘을 보태기!”


[···녹음 중.]


응?


[녹음 완료!]

[지구의 핵이 0.0625도 뒤로 돌아갑니다···.]


조금 기다리자 눈 앞에 완료되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동시에 눈 앞이 희게 번졌다.

갑작스런 빛에 눈이 아파와 비명을 질렀으나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공기가 하나도 없는 공간에서 입을 뻐끔거리는 것만 같았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펄럭이는 푸른 천 앞에 멀뚱히 선 상태였다.


“와우, X쳤다···.”


띵동!


[계약자의 상태를 안내드립니다. 심상으로 ‘상태창’을 불러보세요!]


···상태창?


[계약자 : 도화인

심미안: A

개성: C

실용성: F


스킬 : 피그말리온(S)

알은 깨지라고 있는 법, 그렇다면 조각은?]


위에서 부터 읽어내려가던 나는 지레 찔린 사람처럼 ‘개성’ 항목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개성이 왜 C야, 지구 네가 뭘 아는데.’


대학시절 교수님의 말씀도 머릿속을 스치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지구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 앞에서 번쩍거리기나 했다.


[미확인 퀘스트를 확인하세요! 확인하고 싶을 시, 심상으로 ‘퀘스트’를 불러보세요!]


···퀘스트? 게임 용어 아닌가?

지구는 환경 보호 활동과 지구 환경 개선 활동을 퀘스트로 강제할 생각인 걸지도 몰랐다.

어쩐지 일이 귀찮아지는 거 같다는 생각과 함께 ‘퀘스트’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곧장 푸른 창이 글자를 바꿨다.


[미확인 퀘스트 3건이 있습니다.

1.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2. 화인아, 아름답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3. (조건 불충분으로 블라인드되었습니다.)]


이번에도 2번 항목 제목부터 눈에 찔러들어왔다.


“교수 삼켰어? 아니면 내 스토커야, 뭐야? 저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할 필요가 있어? 나 울라고 이러는 거지, 지금.”


SNS의 발달로 아름답기만 해도 먹고 살만해진 것이 오늘날이라고, 꼰대 지구야.

나는 한껏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감아도 푸른 창은 내 눈꺼풀 뒤에 나타나 퀘스트로부터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했다.

잔인한 것.


“하아···.”


나는 진정하고 1번부터 확인해봤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앞으로 삼 개월! 지구는 외부 차원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회귀자 한 명 외엔 아무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죠! 회귀자는 지금까지의 회귀 경험으로 전쟁을 준비할 것입니다. 하지만 회귀자라 하더라도 초기엔 물몸! 물장비! 물동료! 물물물, 쓰리콤보입니다!

당신이 해야할 것은 각종 전쟁 물품을 조각하고 그것을 현실의 물건으로 바꾸어 동료를 지원하는 것!

물론 조각하기 전에 자료 조사는 필수겠죠?


1. 창, 검, 활의 구조 파악하기. (0/3)

2. 창, 검, 활 스케치하기. (0/3)

3. 창, 검, 활의 부여할 능력 정하기. (0/3)]


···?


“···뭔 개소리야, 이건.”


조각가에게 이런 걸 왜 시키는 건데. 환경 보호 퀘스트가 아니라고? 진짜로?


[지구의 외핵 흐름 분석 중···.]

[지구의 한 마디: 님 무기 제작자의 재능이 있음.]


“구라치지마, 임마! 무기라니! 전쟁이라니! 이런 말 없었잖아! 이거 사기야!”


[녹음본을 재생합니다.]


-살아서 지구를 위해 힘을 보태기!


귓속에서 내 목소리가 재생되었다. 너무 우렁차서 고막이 파열될 거 같았다.


“···.”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지구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지구의 한 마디: 싫으면 다시 끝없는 죽음 할거임?]

[지구의 한 마디: 결정하셈;; 나 바쁨. 님 안 한다고 하면 다른 제작자 찾아서 키워야함;;]


“하···.”


[지구의 한 마디: 10초 주겠음. 10··· 5, 4, 3, 2,]


“하, 한다고! 할게! 근데 숫자는 제대로 세자!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좀 억울, 아니지 그 회귀자란 놈이 너 숫자도 못 세는 별이라고 욕할까 봐 그래!”


지구는 대답이 없었다. 말 없이 퀘스트 창을 한 번 반짝였을 뿐이다.

다시 한 번 힘차게 다짐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 X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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