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헌터들이 내 무기를 너무 좋아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연一결
작품등록일 :
2024.08.04 17:29
최근연재일 :
2024.08.08 06:40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89
추천수 :
12
글자수 :
34,434

작성
24.08.04 17:37
조회
42
추천
2
글자
12쪽

개똥 밭에 굴러도(2)

DUMMY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창, 검, 활의 사진들을 작업대 위에 늘어놓았다.


‘오질나게 눈에 안 들어온다.’


어떻게 하나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지? 그나마 나아 보이는 것들은 모두 게임이나 판타지 영화 속에 등장한 절대검 같은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이것들과 똑같이 만들고 싶진 않았다. 예술가 자존심이 있지 타인의 작품을 표절하느니 목매달고 뒈지겠다.

···설마 사진이랑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다시 퀘스트 창을 열어서 조건이 있었는지 살폈다. 다행히 조사한 것과 똑같이 만들라는 말은 없다.


“역시 지구. 양심은 있구나. 검, 창, 활 기본 조건만 충족되면 어떤 형태든 상관 없는거?”


잠시 기다렸지만 역시 지구의 한마디 같은 건 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창, 검, 활에 필수 요소가 무엇인지, 왜 이런 형태로 만드는 것인지 따위를 살폈다.

예를 들면, 미끄러지지 않도록 검 손잡이에는 가죽이나 천을 감아야 한다던가. 검날을 만들 때 무게 중심이 중요하다던가. 날을 한쪽만 가느냐, 양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검과 도를 구분한다던가.

화살의 모양과 길이에 따라 공격력이 달라지고, 통아라는 보조도구가 필요하기도 하다던가. 활을 만들 때 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 소의 쇠심줄 같은 것들을 함께 쓰기도 한다던가. 가늠쇠를 달지 않으면 조준이 쉽지 않다던가.

창날의 형태나 자루의 길이에 따라 창법이 달라진다던가. 창의 구조는 창날, 이음쇠, 자루, 버트캡이라 불리는 창 끝 부분까지 네 가지로 구성된다던가···.


‘진짜 싫다.’


벌써 머리가 다 아파왔다.


“아니, 근데 어차피 ‘조각’하라면서? 현실적일 필요가 있어? 기본 형태만 유지하고 내 취향껏 만들어도 되는 거 아닌가?”


잠시 숨참고 기다렸지만 역시 지구는 말이 없었다. 작게 주먹을 쥐는 것도 잠시, 한 번 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여전히 조소를 하면 된다고 하더라도 주로 동물이나 사람을 조각하던 내게 무생물을, 그것도 단 한 번도 매력을 느껴본 적 없는 무기류를 조각하라는 말은 하기 싫은 숙제를 받은 기분을 들게 했다.

일단 끝 없는 추락에서 벗어났으니 긴장이 풀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라오콘 군상 보고 싶다.’


지금이라면 군상에 나타난 인물의 표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때 내 눈에 한쪽으로 치워두었던 푸르른 천이 들어왔다. 이 모든 고생의 시작점이자, 추락하는 순간 떠올린 미련.

그리고 어느덧 지구가 준 퀘스트에 밀려 뒷전이 된 작품 재료이기도 했다.


“···잠깐.”


퀘스트에 언제까지 완료하라고는 안 적혀 있었잖아?


슬쩍 눈을 굴렸다. 끼기긱···. 나무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높은 소음을 냈다. 순간 멈칫했다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일어섰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푸른 천과 그 옆에 놓인 흙 포대와 석고 포대를 보았다. 이어서 5가지의 조각칼과 조각의 뼈대를 만들 얇은 철사. 물통으로 쓰는 양동이와 대야, 받침대 등. 작품 만들기를 고대하며 준비했던 모든 재료들이 거기에 있었다.


“아. 미련을. 못. 풀어서. 그런가? 집중이. 안. 되네에?”


들으란 듯이 변명을 주절거린 후, 잽싸게 대야에 고운 흙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양동이를 집어들고 작업실에 붙은 화장실로 뛰었다.

그때까지도 지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마음을 놓았다.


‘그래, X바. 기한 없는 퀘스트인데 뭐가 급하다고? 침공까지 삼개월 남았다고 했으니 삼개월 안에만 해결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애초에 그게 진실은 맞아?

···맞긴 하겠지. 이미 내가 회귀로 인해 끝없는 추락을 겪은 시점부터 이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은 없다.

아무튼, 본래 마감이 정해진 일거리는 기한이 코앞에 닥쳤을 때 해야 더 잘 된다. 암. 그렇고 말고.


지구가 말을 건 것은 한창 철사를 꼬아가며 기본 뼈대 작업을 하고 있던 차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앞으로 삼 개월! ······.

당신이 해야할 것은 각종 전쟁 물품을 조각하고 그것을 현실의 물건으로 바꾸어 동료를 지원하는 것!

물론 조각하기 전에 자료 조사는 필수겠죠?


1. 창, 검, 활의 구조 파악하기. (1/3)

2. 창, 검, 활 스케치하기. (0/3)

3. 창, 검, 활의 부여할 능력 정하기. (0/3)]


지구는 내 눈 앞에 퀘스트 창을 띄웠다. 자체 생략된 퀘스트 설명에서 유달리 ‘삼개월’과 ‘당신이 해야할 것은 각종 전쟁 물품을 조각하고 그것을 현실의 물건으로 바꾸’가 굵고 크게 보였다.

난 지구의 재촉에 모른 척, 딴 소리나 했다.


“오! 구조 파악 1 올랐네? 이야- 빠르다 빨라. 퀘스트 받은 지 하루 만에 1/9 달성! 자, 박수!”


짝짝짝짝짝-!


홀로 경쾌히 박수 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곤 다시 뼈대를 꼬았다. 지금 만드는 뼈대를 무기 뼈대로 쓰라는 뜻일 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퀘스트에도 나오지 않은 짓을 시키다니. 도둑놈 심보다, 도둑놈 심보야. 보상이라도 주면서 퀘스트 던지면 몰라. 채찍과 당근 중에 채찍만 있으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법이다. 유구한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라고.


“강자에게 더 세게♪ 아이 러브 겜블-♬ 과감할 수록 신세계♩ 온 마이 테이블~♬ 암 쏘리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 쏘 더럽게 재미있지~!♬♩”


흥겹게 아이유 노래도 흥얼거렸다. 누구 약 오르라고 하는 짓? 맞다.

그래서 어쩔 건데? 불만이면 퀘스트마다 마감 설정을 제대로 해줬어야지. 삼 개월이라 써두면 내가 그걸 변명 삼아 최대한 미룰 거라는 것도 알았어야 하고.

하하!


그리고 뼈대에 살까지 붙이고 잠든 그날 밤.


나는 다시금 아무리 보아도 아름다운 푸른 천에 휘감긴 채 추락하고 있었다.


“이, 이이익! 말로 해, 미친 X끼야아아아아악-!”


···콰직!


내가 -어쩔 수 없이- 진정한 건 수박 깨지는 소리가 열 번은 더 난 뒤였다.

고통 없이 즉사했는데도 이상하게 뒷통수, 앞통수 할 거 없이 머리가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당연한가? 내가 진정해봤자 머리통이 깨지는 중인 건 변함이 없으니. 이정도면 아무리 고통이 없다고 해도 상상으로 고통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다.


“흐으으으···.”


X새끼, X발 X끼, X친 X끼, 전쟁에서 이겨놓고도 고독사할 X끼, 핵 흐름 꼬일 X끼······.

한 번 머리가 깨질 때마다 욕을 열 번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빌어먹을 지구놈은 내 머리통을 족히 25번은 깨트린 다음에야 내 몸을 공중에 멈춰주었다.


띵동!


처음엔 기적 같기만 하던 차임벨 소리가 이젠 악귀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처럼 들렸다.


[지구의 외핵 흐름 분석 중···.]


“허억, 허억, 흐으윽···.”


이상하게 직접 7층을 오르내린 것처럼 숨이 찼다.


[지구의 한 마디: 계속 할 거?]


“우엑···. 뭘?”


[지구의 한 마디: 지금 만드는 중인 거.]


“···야! 다른 조각 만들지 말란 소린 없었잖아!”


화가 확 솟구쳐서 내질렀다. 여전히 내 귀로 들리는 숨 소리가 거칠었다.


[지구의 한 마디: 그래서 계속 하겠다고?]


“···.”


난 입을 꾹 닫았다. 오늘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하는 동안 무척 재밌었다. 계속 하고 싶었고. 삼개월이라는 시간은 여전히 길게 느껴지기만 했다. 지구 침공이라고 해봤자 감이 잘 안 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무기를 조각한다고 해서 그게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다시금 몸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X발 지구가 대답 좀 제때 안 했다고 날 도로 추락의 굴레에 집어넣은 것이다.


나는 한 번 더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외쳤다.


“X바! 안 한다! 안 해!”


—.


“커헉···!”


한낮이었던 방금과 달리 나는 어느새 온통 어두운 곳에 앉아 있었다. 눈을 꾹 감았다 뜨며 암순응을 했다. 그러자 친숙하고도 그리웠던 내 방이 드러났다. 이제보니 난 푹신한 침대에 앉아있었다.


“···꿈?”


지구가 다시 시간을 이리저리 꼬아댔다기엔 내 몸이 온통 땀으로 절어있었다.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정말 내가 혼자 찔려서 그런 꿈을 꾼 거라고?’


띵동!


[지구의 한 마디 : 약속 지켜.]


···지긋지긋한 놈. 착각할 시간을 안 주네.


나는 그 다음 날부터 성실히 퀘스트를 수행··· 하기는 개뿔. 악에 차올라서 퀘스트를 하다가도 마저 작업하던 뼈대에 손대는 식으로 ‘퀘스트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지냈다.

오히려 못하게 하니 집중력이 올라서 살 붙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머리 끝까지 아드레날린이 치솟았고, 이게 바로 지구가 허락하지 않은 마약이라는 등 헛소리를 하며 작업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드디어 푸른 천을 사용하기 위해 손에 쥐었을 때.


“으아아악-!”


나는 다시 추락하고 있었다. 이번엔 잠에 든 것도 아니었다. 정말 푸른 천을 들고 등을 돌리자 마자 그 푸른 천에 휘감겨 추락하고 있었다.

이번엔 25번째 머리가 깨져도 지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계속해서 숨이 가팔라졌고, 푸르른 색을 담아내던 눈도 흐릿해졌다. 온 몸이 축축했다가 회귀하면서 뽀송해지길 반복했다.

더는 얼마나 머리가 깨졌는지 세길 포기할 즈음엔 기절도 했다. 그게 정말 기절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몇 번이고 기절했다가 회귀와 동시에 깨어나길 반복했다. 어디로든 도망칠 수 없었다. 시간이 감옥 같았다. 이 푸른 천은 구속구이고.

그제야 지구가 나를 찾아내기 이전에 내가 오랫동안 상황파악을 하지 못했던 것이 천운이었음을 깨달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나는 회귀하자마자 눈물콧물땀을 질질 흘릴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렇게 내가 회귀 3초만에 내 체액에 절어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야 지구가 등장했다. 이번엔 나를 공중에 멈춰주지도 않았다. 나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지구는 내 시야에 푸른 창만 띄우는 식이었다.

이것도 파랗네 X발.


[지구의 한 마디: 반성 했어?]


‘지금 반성하라고 날 이꼴로 만든 거야?’


겨우 반성을 하라고? 날 아예 포기한 것도 아니고, 말 안 듣는 내게 보복하는 것도 아니면서. 반성 좀 하라고 나를 이 꼴로 만들었다고?

이번에도 울컥, 감정이 샘솟았으나 금방 푸시식 가라앉았다. 어떤 감정을 제대로 느낄 기력 조차 없었다.

이미 내 자존심은 꺾이다 못해 가루가 난지 오래였다.


[지구의 한 마디: 반성한 거 같네.]


지구의 말을 눈에 담고 눈을 한 번 깜빡인 순간.

나는 이번에도 푸른 천을 손에 쥔 채 작업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


슬쩍 눈만 움직여 내가 손에 쥔 천을 내려다보았다.


“···.”


내 몸을 휘감고 내 시야를 가렸던 구속구가 손에 들려있었다.

이젠 도저히 이 푸른 천을 작품 재료로만 볼 수가 없었다. 천만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뒷목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갔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 땀이 내가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알려왔다.

내가 직접 만든 천을 보고 겁에 질렸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애써 머리를 굴렸다.


‘분명 처음 지구가 나를 추락에서 꺼내었을 땐 핵이 뒤로 이동한다는 문구가 떴지. 하지만 두 번째로 추락했을 땐 핵이 뒤로든 앞으로든 돌아간단 문구가 없었어. 그저 난 잠에서 깨어나는 식으로 추락에서 벗어났고. 땀에 절어 있었지. 이번에도 똑같이 지구가 시간을 조정하는 문구는 없었고···.’


내 결론은 ‘지구가 정말로 내가 추락하던 순간으로 시간을 돌린 것은 아니다’였다. 생각해보면 나 말고도 회귀를 알고 있는 인간이 한 명 더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전쟁의 주축이 될 것이라고. 나는 어디까지나 그 사람을 서포트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나 하나 길들이자고 그 사람까지 정신 없이 돌아가는 시간을 겪게 만들 생각은 없을 터였다. 회귀자 정신이라도 나가면 어쩌려고?

게다가 지구는 나 말고도 제작자 할 사람 많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었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재를 두고 회귀라는 귀찮은 일을 할 거 같진 않았다.


‘···정말 그런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S급 헌터들이 내 무기를 너무 좋아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미래의 동료(1) 24.08.08 12 2 12쪽
5 실용성(2) 24.08.06 16 2 13쪽
4 실용성(1) 24.08.05 25 2 13쪽
3 개똥 밭에 굴러도(3) 24.08.04 31 3 13쪽
» 개똥 밭에 굴러도(2) 24.08.04 43 2 12쪽
1 개똥 밭에 굴러도(1) 24.08.04 63 1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