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자경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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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읕
작품등록일 :
2024.08.04 19:31
최근연재일 :
2024.08.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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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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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DUMMY


황해남도 순천시에 있는 희류사는 940년 고려 광종, 아니 980년 성종 때 창건되었다고 알려졌다.


창건 시기에 관하여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고, 확실한 것은 한국 전쟁 이후 소실된 부분을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대강대강 재건한 뒤 보존했다는 것이다.


나는 문화재와 절 그리고 누군가의 거주지, 그 모호한 경계에 있는 바로 그 희류사에서 자랐다.


내가 희류사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절과 내가 퍽이나 닮아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희운의 아들, 버려진 아이, 훗날 대를 이어 희류사의 관리자가 될 누구, 그 모호한 경계로 자란 이자경이다.



나를 키운 ‘희운’은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자식처럼 키운 내 입에 들어갈 보급품을 선뜻 나눠주기를 마다하지 않고, 나를 향해 서슴없이 ‘버려진 녀석’이라고 할 수 있는 약간의 유머를 겸비한 희류사의 관리자이자 스님이다.



버려진 것에 대한 불만은 없다. 희운과 같은 썩 괜찮은 사람에게 버려졌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곤 했지만, 이곳에선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딘가에 버리거나 맡기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자라면서 ‘친부모는 왜 나를 버렸나’와 같은 의문은 되도록 갖지 않으려고 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보면 안다. 내 부모도 저 아이처럼 배가 고파 나를 팔아넘겼구나, 집이 없어서 버렸구나, 할 뿐이지.


가끔 희운은 친부모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없냐고 물어보곤 했다.


“자경아, 니는 니 부모가 니를 와 버렸는지 아나?”


그건 순전히 짓궂은 농담 같은 것이었다.


“와 또 뭔데요?”


“니가 그리 니 주둥이만 알고 처먹으니까 그런기다.”


장마당에서 파는 군밤 세 개를 선뜻 내어주기에 그냥 털어 넣었을 뿐인데 들은 말이다. 그럼 나는 지체하지 않고 대꾸한다.


“그래서 내 아바이한테는 얼마를 받았시오?”


그러면 희운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게 다 똥값이다. 니가 여태 싸지른 똥이 여태 얼매나 되는지 아나?” 하고 주먹을 들어 보이곤 했다.


그래도 가끔은 보위부가 다녀간 후 허탈한 마음으로 지는 노을을 함께 보고 앉아있을 때면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묻기도 했다.


“니 그래서 니 어멈이랑 아바이 보고 싶지 않나.”


그러면 내 대답은 간단했다.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어째 보고 싶어 하오. 일없습네다.”


하지만 이런 일이 닥칠 줄 알았더라면 친부모에 대해 좀 알아둘 걸 그랬다고, 빌어먹을 농담 따먹기나 하지 말고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느냐고 따져 물어볼 걸 그랬다.


어둠이 내린 민둥산을 뱀처럼 기어오르며 하기엔 너무 늦은 후회였다.



20년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순천시 희류사에서 살았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 인생에 죽을 때까지 그 절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나라에서 ‘스님’이라는 존재는 종교적 의미는 크게 가지지 않음으로, 공식적으로 희류사에 입적된 나는 희운의 뒤를 따라 희류사의 관리인이자 스님으로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갑자기 두만강을 향하고 있으며, 천적을 피해 몸을 숨겨야 하는 야생동물처럼 한껏 몸을 움츠린 채 산을 기어올라야 하는가.


몇 시간 전 희류사에 습격이 있었다.


희류사는 국가 문화재라는 그럴싸한 껍데기를 쓰고 있긴 하지만 알맹이는 하나 없는 절로, 마른빨래를 쥐어짠다고 해서 물이 나오지 않듯이 관리자들을 매질한다고 해서 뭔가 나올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가끔 배가 고파 남의 집을 터는 사람들이 있다곤 하지만, 희류사는 적선을 받았으면 받았지 누군가 도와줄 여력이 있는 절도 아니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애초에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가진 무기를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배가 고픈 자라고 보긴 좀 어려웠다.


더 놀라운 것은 희운이었다. 그 아재는 마당을 쓸면서 어설픈 택견 흉내나 낼 줄 아는 땡중이었는데, 그들의 공격을 너무도 날렵한 몸짓으로 피하고 멍청한 얼굴로 서 있는 나를 데리고 토굴로 끌고 온 것이었다.


나는 생전 그런 날쌘 몸짓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내가 알던 희운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의 손에 붙들려 토굴로 처박힐 때까지도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우리가 갑자기 사라지자 온갖 집기를 집어 던지고 부수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아무리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대강 재건한 절이라지만, 대단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여태 살아왔던 공간이 엉망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분이 났다.


“보고만 있을 겁니까?”


“···자경아. 니 내 말 잘 들어라.”


그때까지만 해도 희운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희류사가 곧 폭삭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엉덩이가 자꾸만 들썩거렸다. 그러자 희운은 내 손목을 붙들고 정신차리라는 듯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남조선으로 가라.”


“남조선? 그게 무신 뚱딴지같은 소리라요?”


남조선이라니. 어둠도 엿들어선 안 될 말이다.


“나도 아는 게 없다. 다만 남조선으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다.”


“누굴 만난다고 합니까?”


“니 어멈이랑 아바이 말이다.”


“예? 기게 무신···.”


“시간이 없다. 남조선으로 가서 조자옥과 김한평을 찾아라. 그리고 니 이름, 니 이름을 꼭 기억하라.”


“기게 대체 다 무신 말이란 말입니까? 난 어디도 안갑니다!”


“그라믄 죽을기가?”


“여 있으믄 죽는깁니까?”


“닐 찾으러 온 기다.”


“나를 와요?”


“······나도 모른다.”


“진짜 내 어멍과 아바이가 뭐 반동분자라도 됐습니까?”


사태가 흘러가는 꼴이 영 어처구니가 없고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희운의 반응은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


“아니, 아재는 그것을 와 인자 말한다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반동분자의 자식이라고? 이런 망할······.

떠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내가 반동분자의 씨앗이었다는 것을 안 이상 잡히면 죽음 뿐이다.


틈을 봐서 희운과 나를 산을 타기 시작했다. 나는 정신없이 앞으로 가기 바빴고, 희운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멀리서 우리를 쫓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결국 그들을 완전히 따돌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희운은 나를 떠밀며 말했다.


“자경아 니, 반드시 남조선으로 가야 한다. 알겠나?”


“나는 남조선 가는 길도 모르는데 우예 자꾸 남조선 타령인기요?”


“······니 내가 하늘에 별자리 보는 법 안 알려줬나. 기억하나?”


“그거는······.”


“기래, 북극성을 쫓아가라. 한기를 쫓고, 널리고 널린 거이 그루터기니 나무가 어디로 나이를 먹었는지도 잘 봐라.”


“아재, 내는 암만 생각해도-”


“죽을기가!”


“······!”


“남조선으로 가야 산다! 닌 남조선으로 가야 한다 안하나!”


“그라믄 속시원히 말 좀 해주시라요. 내 어멍과 아바이가 반동분자믄 남조선이 내를 두팔벌려 환영한다이기요? 것도 이상하지 않소!”


내가 분에 못 이겨 희운에게 따져 묻는 동안 수상한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고, 우리는 더는 시간이 없음을 알았다. 그야말로 막다른 길이었다.

답답증을 이기지 못한 희운이 내 멱살을 움켜쥐고 뭐라 말하려다가 나를 밀쳐냈다.


“가라.”


“나는-”


희운은 내게 총구를 겨누었다. 총구보다 그의 눈빛에서 나는 한기를 느꼈다. 살아 생전 본 적 없는 눈빛이었다.


“기래 용기가 없어가 되갔나. 귀때끼에 구멍 한번 나야 움직이겠나.”


“아재요······.”


“니는 원래 여기 있어선 안 되는 아였다. 그냥 니 자리를 찾아 가는 거다.”


“······.”


“잘가라, 자경 동무.”



알쏭달쏭한 그의 말에 얼이 빠져 있는 사이, 그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우리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내달리는 자들이 있는 호랑이 입 속으로 그렇게 멀어져버렸다.


나는 그가 사라진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있다가, 총성이 울린 뒤에야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뒷걸음질 쳤다.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날이 맑으면 토굴이든 동굴을 찾아 들어갔다. 날이 지면 다시 산을 탔고, 조금의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납작 엎드려 몸을 숨겼다.

여름이라 다행이었다. 가을이었으면 낙엽 밟는 소리에 제 위치가 탄로 나기 십상이었고, 겨울이었으면 발가락이 다 떨어져나가 움직이기 쉽지 않았을 터였다.


여러 날을 홀로 산에 기어오르면서 서서히 정신이 맑아졌다.


그 뒤로 희운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총성은 누가 누구를 향해 내달린 것이었을까.


게다가 남조선이라니. 아, 그래서 나한테 그리 남조선 책을 가져다준 것이었나?


희운은 종종 장마당에 나갔다하면 가슴팍에 남조선의 책이나 신문을 숨기고 와 내게 내밀곤 했다. 희운이 재빨리 읽으라고 하면 나는 밤새 그것을 읽었고, 그것들은 다음 날 불쏘시개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럴거면 왜 그 비싼 책을 가지고 오냐고, 누군가 보고 보위부에 신고라도하면 어쩌냐고 야단을 해봐도 때로 희운은 그답지 않게 단호했다.


‘기래도 알 건 알아야지.’


그럴 거면 쓸데없는 농담따먹기 할 시간에 제대로 알려주기라도 하든지. 나는 별안간 남조선으로 줄행랑치는 신세가 되었고 희운은 총알받이가 되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코훔치는 소리가 거슬려 울지 않으려 연신 눈이며 코를 쓸어댔더니 얼굴이 온통 시큰거렸다.



희운의 말대로 북극성을 쫓고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보고 걸으며 북쪽으로 향했고, 머잖아 어둠에 잠기는 두만강이 보였다. 어찌저찌 북쪽 국경까지는 왔다. 그러나 솔직히 국경을 넘을 자신은 없었다.


남이든 북이든 철책과 지뢰로 넘나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그나마 남쪽보다야 북쪽 경계가 덜하다지만 이러나저러나 자칫하다 총알받이가 되기는 남이나 북이나 매한가지였다.


두만강을 건넌다해도 문제다. 일단 중국을 넘어간 뒤 어떻게 해야 남조선으로 갈 수 있는지는 모른다. 아무리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기로서니 중국으로 가는 것은 남조선과 더 멀어지는 길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막막한 마음이 앞서자 갑자기 분한 마음이 일었다.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부모가 한 짓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 수모를 겪어야 하다니.

희운은 남조선으로 가라고 했지만 일단 그것은 중국으로 넘어간 뒤에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남조선이 공화국 사람인 내게 확실한 안전지대라는 보장도 없고, 굳이 지금까지 만난 적도 없는 부모를 만나겠다는 이유로 남조선까지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일단 중국으로 가자. 그리고 때를 기다리면서 다시 희운의 연락을 기다리든지, 내가 희운에게 연락하든지 하면 된다. 길은 있을 것이다.


강을 앞에 두고 거대한 철책이 가로막고 있었다. 언젠가 남북으로 난 철책에 대해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철책은 사람이 오고 가지 못하게 전기가 흐르는데 고압이 흐르는 경우 우웅-하고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러나 주변은 고요했다. 기이하게 생각될 만큼 인위적인 침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초소로 보이는 곳이 보였지만 불이 꺼져 있었다. 전기는 작전시간에만 흐른다고 했다. 전기 수급 사정이 좋지 않아 운이 좋으면 고압전기가 흐르지 않을 때 철책을 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던 풍문이 떠올랐다.


에라. 이판사판이다.


결국 있는 힘껏 철책을 뛰어넘었다. 몸이 풀썩 떨어지는 소리가 어쩐지 요란했다.

나는 즉시 몸을 낮추고 강변에 다가갔다. 축축한 물이 금세 가슴팍을 적셨고, 땅에 손을 짚고 헤엄을 치다 이내 발이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갔다.


도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흐르는 강물인 데다가 여름인데도 온몸을 얼려버릴 듯 찬 강물이 움직일 때마다 자꾸 입과 코로 흘러들어왔다.


안간힘을 들여 국경을 넘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멀리 초소 쪽으로 불빛이 돌았다.


아, 젠장. 들켰다.


당황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팔과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였고, 이내 초소병들이 고요한 두만강 수면 위에서 나를 찾아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잘 들리지 않았으나 멈추라는, 돌아오라는 의미의 무서운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남조선으로 가라던 희운의 말과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이 몸을 계속해서 북으로 떠밀었다. 거의 중국 쪽 강변에 닿았다고 생각했을 무렵에서야 나는 몸을 일으켰고 그 뒤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하니까.


겨우 북을 벗어났는데 죽는다면 그건 내 운이지. 별수 없다. 운명에 맡겨야지. 모든 삶은 순리대로 나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몸을 일으켜 젖 먹던 힘을 쥐어짜 앞으로 몸을 퉁기는 순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생경한 고통이 가슴팍을 뚫고 나아갔다.

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그래. 솔직히 성공할 거란 자신은 하지 않았다. 내 주제에 무슨 탈북.


자경은 눈을 감자 아득히 먼 어둠 속으로 몸이 잠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없이 떨어지다 보면 다시 윤회의 길목에 들어서겠지.


어디로 떨어지게 될까. 육도윤회에 따라 다음이 결정되겠지. 이왕이면 다시 인간도였으면 좋겠다. 살면서 그렇게 나쁜 짓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알아보지는 못해도 희운을 다시 만났으면···. 얼굴도 생각 안 나는 친부모가 아니라 희운과 연이 닿아 진짜 부모 자식으로 만나는 것이 더 좋겠다 뭐 그런 생각······.


자경은 눈을 떴다.


윤회의 길목에 들어선 것인가? 온통 새하얀 곳이었다. 어쩐지 몸이 쑤시고 아픈 것도 같았지만 여러 날을 걷고 총에 맞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죽어서도 이승의 고통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은 없으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이내 들려온 섬뜩한 목소리와 검은 신사의 등장에 저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자경. 20세. 갑진년 기사월 갑신일 02시 18분 사망. 사인은 타살.”


시커먼 옷에··· 시커먼 갓···. 허연 얼굴······.

뭐야 이건······. 저승사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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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모품 24.08.05 10 0 11쪽
3 경고 24.08.05 10 0 11쪽
2 저승사자 24.08.05 9 0 10쪽
» 탈북 24.08.05 1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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