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자경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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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읕
작품등록일 :
2024.08.0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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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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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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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DUMMY



눈앞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 저승사자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삼복더위에 저렇게 시커먼 옷과 갓을 쓰고 있지도 않겠지.


“이자경. 20세. 갑진년 기사월 갑신일 02시 18분 사망. 사인은 타살.”


“어?”


갑자기 저승사자들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차사님, 표지가······.”


“이자경······.”


나의 그의 부름에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나와 손에 든 종이를 번갈아 보며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합니다. 호명 반응은 있는데 표지가 꿈쩍도 안하잖아요. 원래대로라면 표지가 차사님 손에서 벗어나 주인을 찾아가야 하는데 말이에요.”


“흠······.”


“잘 못 가져온 거 아닐까요?”


그러자 곁에 있던 차사가 안 주머니를 뒤져 다른 표지들을 꺼냈다. 빠르게 훑어보았지만, 그곳에 그들이 찾는 다른 표지는 없는 듯 망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를 바라본들······. 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일에 큰 문제가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즉, 당장이라도 저승사자 손에 끌려가게 생긴 목숨이 시간을 좀 벌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상하다. 다른 표지가 없는데······.”


그나저나 이상한 공간이다. 아니, 너무 평범해서 기이했다. 여러 개의 침상이 있는 공간으로,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냄새로 보아 어쩌면 그곳은 ‘병원’이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그 병원과는 느낌이 매우 달랐다.


뭐랄까······. 신식이랄까. 이렇게 최첨단 기계가 있는 곳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평양인가? 그럴 리는 없다. 두만강 부근에서 총에 맞아 죽었는데 평양까지 끌고 왔을 리가. 그렇다면 중국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중국 땅에 쓰러지지 않았던가.


그러다 문득 나는 내가 두르고 있는 옷이 이 병원의 환자복임을 알았다.


‘서한병원’.


서한병원? 한글이다. 그렇다면 중국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진짜 평양인가? 부모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걸지도 모른다. 나를 아득바득 평양까지 데려와 살리려는 것을 보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눈앞에는 저승사자들이 있지만 말이다.


“다시 한 번 묻겠다. 이자경, 맞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재차 물었다.


“스무 살 맞고?”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갑진년 기사월 갑신일 02시 18분 사망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날짜를 묻는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는 알지 못했고, 시간은 얼추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역시 정확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확신 없이 갸웃거리자, 차사는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재차 물었다.


“이자경은 갑진년 기사월 갑신일에 추락했다. 응급실까지는 어찌 숨이 붙어 왔지만 끝내 견디지 못했지.”


추락사? 응급실? 이게 다 무슨 말이지?

뭔가 잘못된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아마 눈 앞의 저승사자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자신이 찾는 ‘이자경’이 내가 아니란 것을 말이다.


서로 낭패와 당혹의 표정이 오고 갔다.


“위자오 차사님,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난생처음 봅니다.”


“화랑 차사는 견습생이니 처음 본 것도 당연하지.”


“아, 종종 이런 일이 있군요······.”


화랑이 배움이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위자오는 화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처음이다.”


“예?”



“내 경력 380년 차, 그리 긴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표지가 잘못 내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군.”


“죽은 자의 마지막 운명을 담은 표지는 역할을 부여받은 차사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어 그 영혼을 저승으로 이끄는 데 쓰이는 물건이잖아요. 따라서 죽을 운명이었다 하더라도 차사가 표지를 잘못 지니고 있다면 사자를 저승으로 인도할 수 없고, 그 말은 즉.”


그들은 쓸데없는 부연 설명 끝에 나를 보았다.


“그러면 이분은 못 데려가겠네요.”


화랑의 말에 위자오는 괜한 말을 얹는다며 나무라듯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었다. 막상 저승사자를 눈앞에 두고 보니 진짜 죽음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망설여지긴 했지만, 자경은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목숨이지만 당분간 명줄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


“기뻐하긴 힘들다. 제대로 된 표지를 찾으면 저승길은 빠르니.”


위자오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리고 표지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저기······.”


위자오와 화랑이 다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던 순간 나는 황급히 그들을 붙잡았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은데.”


“도움?”


“저는 두만강을 건너다가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내 말에 위자오와 화랑은 그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냐는 듯이 안면 근육을 구겼다.


두만강? 총?


“그···두만강이 내가 아는 그 두만강인가?”


“위자오 차사님, 두만강 가본 적 있습니까?”


“처음 차사직을 할 때까지만 해도 분담 구역이 넓어서 거기까지 가긴 했지.”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이승에서 영토를 남북으로 나눈 뒤에도 차사들도 일종의 파벌이 생겨서 남북으로 일을 처리한다구요. 그래서 차사가 고향 땅도 못 밟고 산다고 하소연하는 차사님들도 여럿 봤습니다.”


“그래도 못 갈 건 없지. 이승은 분단이 되었어도 저승은 하나이니. 가고 싶으면 신청해서 구역을 바꾸면 된다. 그들이 받아주지 않아서 문제지.”


“그래서 가본 적 있습니까?”


“최근에 간 건 100년 전쯤인가. 기억도 안 난다. 근데 나도 너도 갈 수 있어도······.”


“이······자경씨는 갈 수 없죠?”


그들의 대화가 대체 어떤 맥락을 가지고 흘러가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있었다.


“그러니까 너는 스무 살 이자경이 맞는데, 이북의 두만강 부근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예.”


“왜?”


“왜는······. 도강하다 걸린 거죠. 다 넘어갔던 것 같은데 재수 없게 초소병한테 걸린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두만강에서 죽은 이자경이 왜 여기 있냐는 거지.”


“여기가···어딘데요? 병원 같은데······.”


병원은 병원 같은데 시설이 지나치게 훌륭했고, 그들의 대화를 두고 추정컨대······.


“여긴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병원이다.”


잠깐, 대···한민국? 서울?


“에? 대한···대한민국?”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남쪽에 있는 나랍니다.”


“한반도의 남쪽······. 남조선 말입니까?”


위자오와 화랑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역시, 저승에서 표지를 잘못 내리는 실수를 할 리가 없다는 듯, 잘못된 것은 표지가 아니라 이쪽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대한민국 청년 이자경의 몸에 들어가 버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년 이자경.


“차사님.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건 진짜 나도 처음이라. 올라가서 다른 차사들을 만나 사례를 들어봐야겠는데.”


“이건 영혼이 뒤바뀐 문제 같은데······. 어쩌다 두만강에서 죽은 혼이 대한민국에 넘어왔답니까?”


그러니까, 두만강에서 죽은 것은 맞는데 내가 남조선에 이름이 같은 사내의 몸속에 들어왔다, 그 말인 건가?


“근데 말투가 영 그쪽 말투가 아닌데. 혹시 차사님. 떨어지다가 머리를 다쳐서 착각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연기를 하고 있거나요.”


화랑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가능성을 넓혀보았다.


“말투 같은 건 뭐 몸에 밴 습관을 따르게 될 수도 있지. 머리가 어떻게 됐더라고 해도 저승사자를 마주한 순간 이미 죽은 목숨인데 뻔뻔하게 연기를 할 수 있는 배포가 있지 않는 이상은 어렵겠지. 무엇보다도 표지를 속일 수 있는 영혼은 없어.”


“그렇네요. 우리를 보는 걸 보면 죽을 운명인 자는 확실한데, 표지가 잘못되어서 데려갈 수가 없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쪽도 난리가 났을 텐데요.”


“뭐 영혼을 뒤바꾸든가 표지를 뒤바꾸든가. 근데 문제는······.”


위자오는 찝찝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화랑은 그가 말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그가 하려던 말을 짐작할 수 있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이 분단이 된 후 차사들 사이에서도 분쟁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죽은 영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요. 그들이 협조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한국 전쟁 직후에 대단히 바빴지. 이승에서 정한 영토에 따라 사자를 인도하자는 조약을 만들게 되었고, 서로의 영역은 철저히 존중하며 일을 해온 통에 아무리 저승사자래도 1953년 분단 이후 휴전선을 넘어가 본 적이 없어.”



이런 것까지 듣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으로 그들을 살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으로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랑은 말 섞기도 싫은데······.”


“저도 그 무성한 소문 들어 압니다. 그래도 연락은 해야겠지요?”


화랑이 곤란하다는 듯 자경을 보았다. 위자오는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운이 좋네. 어쨌든 시간은 걸릴 것 같으니 죽기 전에 대한민국의 이자경으로 살아봐.”


“예?”


“결국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넌 것은 이곳에 오기 위함이 아녔나?”


“아······.”


“그 간절함이 저승에 닿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위자오는 그렇게 말한 후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화랑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위자오와 화랑이 사라지자마자 갑자기 눈치채지 못했던 응급실의 소리가 거대한 파도가 부서지듯 쏟아졌고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의 곁에 있던 모니터의 파동이 크게 흔들렸다.


“어? 정신이 드세요? 저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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