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자경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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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읕
작품등록일 :
2024.08.04 19:31
최근연재일 :
2024.08.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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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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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DUMMY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많은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응급실에서 벗어나 일반 병실로 옮겨진 후였다. 침대는 모두 4개가 들어차 있는 병실이었지만 환자는 나뿐이었다.


정리해 보자면 대한민국 청년 이자경은 3층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했다. 나무에 걸려 떨어지기는 했지만, 뇌부종이 심해 당장 수술도 불가했고, 결국 의료진들은 무명(無名)으로 들어온 그가 결국 뇌사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깨어난 후 더 이상 수술도 필요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호전되었고, 부러진 갈비뼈 하나와 다리를 제외하면 생명을 위협할 만한 그 어떤 징후도 없다고 했다.


그래, ‘그’ 대한민국 이자경 말이다.


때론 이론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들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무명(無名)’이 되었는가. 저승사자들의 말에 의하면 나는 대한민국에 사는 ‘이자경’이거늘.


그러고보면 내 처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두만강을 건너다 총살 당하지 않았던가. 두만강을 건넌다 해도 어떻게 남조선으로 갈지 막막했었는데, 이것도 탈북이라면 탈북인가?


그럼 내 몸에는 대한민국 이자경이 들어가 있는 건가?


그 순간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상당히 말쑥한 차림새의 남자로 생전 그렇게 깔끔하고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감탄도 잠시. 그가 서서히 다가올수록 표현하기 어려운 중압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몸이 그와 멀어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물에 빠지면 빠지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맹수가 뒤쫓아 오면 사력을 다해 뛰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의 시선이 잠시 내 발치에 머물렀다. 그곳에 있는 이름표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명이라······. 재밌군.”


“······.”


“이자경.”


그가 내 이름을 부르자 심장이 쿵, 하고 한 번 떨어졌다. 그는 나를 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이자경을 안다.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이쯤 되면 누군가 사고가 나 병원에 무명으로 실려온 이자경을 찾아올 법도 하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한 거지?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 하더군. 일시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


“기억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다시 상기시켜 주기 위해 온 것뿐.”


“······.”


그가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는 어쩐지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목 부근이 옥죄어 오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지만, 그에게 그것을 내색하고 싶지 않아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대로 살아. 기억을 잃은 채로. 기억이 나도 나지 않은 채로. 네 부모와 함께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쳐박혀서, 그렇게 살아.”


“······.”


“너는 쓸모를 다한 인형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살고 싶으면.”


“······.”


“두번다시 그런 천운은 없을테니.”



그가 나가고 나서야 나는 그동안 쉬지 않은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오랜 잠수를 마치고 겨우 물 밖으로 나온 것처럼 숨이 가빴다.


“헉···허억······헉, 헉······.”


무심결에 돌아본 창문으로 비친 목에는 누군가 목을 조른 듯 붉은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대체 이건······.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또 다시 벌컥 열리더니 이번엔 낯선 남자 둘이 들어왔다. 그들은 곧장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놀란 듯 나를 구석구석 살피다 내 옆에 앉았다.


“괜찮은가?”


그는 조심스레 내 표정을 살폈지만 나는 달리 해줄 말은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당연히 알던 사람은 아니다. 어떻게 알겠는가? 대한민국 이자경이라면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 현재 그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서 들어왔다 나간 남자와 달리 이들에게는 그 어떤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대한민국 이자경’을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어쩌면 내게 좋은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일 날 뻔한 것 치고는 영 얼굴이 괜찮네.”


그는 다행이라는 듯 곁에 말없이 앉아있던 젊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이자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자네 시방 나를 알아보것는가?”


“예?”


“아 그거시, 나를 알아 보겄냐, 이 말이제. 머리를 씨게 부닥쳐부러가꼬 혹시나 하고 말이여.”


“아······.”


아는 것을 모르는 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들은 깜짝 놀란 듯 서로 마주 보며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나여, 동석이.”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자, 그는 사단이 나도 아주 제대로 났다는 듯 뒤로 넘어가는 시늉을 했다.


“워매, 기억을 못헌갑네. 나는 참말로 일이 이라고 될 줄 알았제. 진작에 알아부럿어!”


“아니, 뭔 소리-”


동석이 곁에 앉아 있던 남자를 툭 쳤다.


“아니, 그랑께 내가 그거슬 말리라고 했냐 안했나아.”


“아재가 언제-”


“나는! 참말로 이라고 될 줄 알았당게. 그란께 거기를 머더로 올라가가꼬는.”


“내가······어딜 올라갔습니까?”



내가 간신히 꺼낸 말에 동석은 내 안색을 찬찬히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갔제, 신풍빌딩을.”


“신풍······빌딩?”


“갑자기 만날 사람이 있다고 했제. 멜갑시 그······폐건물을······.”


만날 사람이 있다. 저승사자는 대한민국 이자경이 타살이라고 했다. 건물에서 추락한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했으니, 그 말은 즉 살의를 가진 누군가에 의해 떠밀렸다는 것이다.


“나는 가지 말라고, 말라고 말렸는디······.”


동석이 팔꿈치로 잠자코 있는 남자를 툭 쳤다. 그러자 남자는 탐탁지 않은 듯 나를 보다가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신풍 빌딩으로 안내해달라고 했었어.”


“내가?”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들은 이 사건에 크게 관련된 자이자 목격자이기도 한 셈이다.


“근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너가 추락한 거야.”


“그것도 의림이 야가 빨리 발견해서 망정이지, 안 그라믄 진짜 큰일 치를 뻔했어야.”


“······.”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무명으로 왔는가? 의료진들은 나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신원을 알 수 있는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근데 왜 내가 무명으로 누워있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그들은 깜짝 놀라며 침대 발치에 붙은 이름표를 살폈다. 알면서도 일부러 그런다는 인상이 풍기는 행동이었다.


“어, 어? 그라고본께······. 그라네! 무명이네!”


그러면서도 속 시원한 답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옆에 앉은 의림이란 자에게 눈을 돌렸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말하는 남자보다는 이쪽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을 말할 것 같다는 기대에서였지만, 그는 내게 원하는 답을 내어주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와 그랬을까? 무명이 뭐대, 뭐명이 사람 이름이 있는디······.”


“내가 누굽니까?”


“어?”


“내가··· 누구······.”


그리고 나는 확신했다. 덜떨어진 표정으로 의림을 보며 자꾸 뭔가 도와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내는 그를 보면서.


나를, 대한민국 이자경을 모르는구나.


그들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일 같이 병문안을 왔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대한민국 이자경을 알 수 있는 실마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주로 내 병실에 와서 시덥잖은 농담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켜고 티비 방송을 보았다.


이북에서도 텔레비전이 있기는 했지만 매번 전기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서 즐겨 보지 못했는데, 남조선에서는 리모콘이라는 것을 누르면 밤이고 낮이고 쉬지 않고 전파 방송이 나왔다.


“왐마 오늘도 망해부럿네······. 아따 참말로 와 쟈들은 저것들만 만나면 죽을 쑤는지 모르것어야. 아야, 의림아 안그냐?”


나는 동석이 보는 운동 경기가 ‘야구’라는 경기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룰도 제대로 모르지만 텔레비전 안에서 움직이고 그 결과에 따라 동석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며 영화, 뉴스 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물건을 파는 방송도 있었는데, 잘차려진 갈비나 생선구이 같은 것들을 얼마나 맛깔나게 방송하는지 볼 때마다 배가 고파 혼이 났다.


사실 내가 대한민국 이자경의 몸속에 들어왔다는 것보다 놀란 것이 있는데, 바로 끼니때마다 내 앞으로 오는 식판이었다.


흰쌀밥과 국, 4가지 반찬이 달려 나오는 병원식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티 없이 깨끗한 침대보나 환자복을 보고 어림짐작은 했지만, 매번 내 앞으로 나오는 끼니에 입이 다물어질 줄 몰랐다.


태어나서 쌀밥으로 채운 밥그릇을 받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이렇게 질 좋은 쌀로 한 밥을. 밥이란 것이 이토록 찰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국물에 이토록 알찬 건더기가 많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


“아따······. 체하것네. 뭔 쌀밥을 처음 본 사람 맹키로······.”


곁에 있던 동석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은 애써 모른 척했다. 저자가 어떻게 알겠는가. 쌀 한 줌을 넣어 끓인 물로 두 식구가 연명하는 이북의 삶을. 언젠가 남조선은 어느 집이든 집에 쌀을 쟁여놓고 산다던 희운의 말이 떠올랐다. 입만 열면 반이 구라였던 양반이기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우라며 주린 배를 잡고 뒹굴거리던 보릿고개 시절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반찬은 다······. 계란인 것 같은데 돌돌 말려 있고, 달큰한 양념에 절인 고기 튀김 또한 일품이다. 이북에서 먹었던 말간 김치와는 차원이 다른 김치에, 그저 소화되기 쉽게 삶아 내기에 급급했던 나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간이 적당한 산나물 반찬!



“저, 저기!”


나는 쌀한톨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운 식판을 가져가는 배식원을 불러 세웠다.


“더 먹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쌀쌀맞은 목소리였다.


“1인당 한 번이에요.”


“야야, 배 속에 거지가 있는 거 아니냐······.”


곁에서 동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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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모품 24.08.05 9 0 11쪽
» 경고 24.08.05 10 0 11쪽
2 저승사자 24.08.05 9 0 10쪽
1 탈북 24.08.05 1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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