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자경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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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읕
작품등록일 :
2024.08.04 19:31
최근연재일 :
2024.08.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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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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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품

DUMMY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가 병실 안에서 누렸던 모든 호사는 요금이 뒤따르는 것이었다.

나는 그사이에도 몇 번이나 뇌에 이상이 없는지 머릿속의 사진을 찍었고, 갈비뼈와 다리뼈가 서서히 잘 아물어 가고 있다는 확인을 받았는데 그 역시 돈이었다. 그리고 매번 내가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긁어먹었던 삼시세끼의 밥값도 상당히 만만찮았다.


어떻게 요금을 내야할지 막막하던 차에, 동석과 의림은 이미 내 병원비가 모두 완납되었다고 했다.


“병원비가요? 왜요?”


“왜긴 왜여. 어떤 선량한 시민이 무명씨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신거제.”


“아니, 남의 병원비와 밥값을 왜 내줍니까?”


나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가려던 그를 붙잡았다.


“이라고 큰 병원은 다 그런 사비스가 있다드만. 연고도 없고 이름 없이 실려온 사람을 살려주고 먹여주고 보내는 거제.”


“그러니까 왜요. 왜 이름도 없고 연고도 없는 남에게 그런 호의를 베풉니까?”


솔직히 무서웠다. 그런 호의를 처음 받아봤다고 할 수는 없다. 희운도 부모가 버린 나를 키우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건 전혀 결이 다른 문제였다. 어쩌면 대한민국 이자경과 관련이 있는 건가?


“원래 그런당께, 그것이 기부여, 기부!”


“기부요?”


“암튼 나는 속이 시원해부네. 자네가 이라고 멀쩡하게 나왔응게 묵은 체증이 내려가부러. 혹시라도 잘못 될까봐 얼매나······.”


“예?”


“아니, 아니 됐고. 그래도 몇 주는 목발 짚고 다녀야 한다니께 나와서도 요양을 잘 해야쓰것는디······. 가만있어보자. 집은?”


동석은 혹시나 묻는 다는 듯 거북이처럼 목을 쑥 빼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몰라요. 대한민국 이자경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울을 보고서야 겨우 알았는데, 집을 무슨 수로 알아요.


“집을 모른다는 것은 참말로 곤란하제······.”


“······갈 곳이 없습니다.”


“경찰서를 가보까?”


동석이 불쑥 생각났다는 듯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대한민국 성인이믄 기필코, 요, 요것을 찍어두니께.”


그때 나선 것이 의림이었다.


“일단 우리 방으로 데려가죠.”


“엥? 뭔 말이여. 야를 우리 고시원으로 데리고 가자고? 뭐땀시? 니 고시원 아줌마 성깔을 몰라서 그라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요.”


펄쩍 뛰는 동석을 가로막은 의림의 표정이 단단했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나를?


나는 그들과 함께 택시를 탔다. 원하는 목적지까지 자동차로 실어 날라주는 운송 수단이라고 했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차는 처음 타봤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긴장이 되는데, 병원 밖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남조선의 문물이 정신을 못차리게 했다.


일단 기절할 뻔했던 것은 거리에 너무나 많은 차가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 보던 전파방송 속 평양도 이렇게까지 차가 많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가 하면 차가 너무 많아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길에서 보낸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었다.


“하이고, 그랑께 서강대교를 타는 것이 아니라 쭉 가다가 원효대교까지는 왔어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말고 좀 조용히 좀 있어요.”


동석은 꽉 막힌 도로에서 짜증섞인 한마디를 던졌다 본 전도 찾지 못했다.

나는 창밖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빈 땅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꽉 들어찬 고층 빌딩하며, 민둥산 하나 없이 산에도 나무가 빽빽이 푸르렀다. 공화국 인민들을 다 모아놔도 여기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이게 남조선이라니······. 공화국보다 한참이나 뒤쳐져서 우리를 부러워한다는 말은 거짓말인 줄 알고 있었다. 희운이 장마당에서 가져다주던 책이나 신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이 누가 부러워하고 그럴 것이 못되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우리보다 잘 산다의 차원을 넘어서서,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누구나 차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곳, 이름도 없고 연고도 없는 자에게 선뜻 베푼 선의, 매끼니 넘치게 먹을 수 있는 쌀밥, 밤이고 낮이고 원할 때마다 쓸 수 있는 전기와 수돗물······. 내가 매번 놀라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동석과 의림은 내게 머리 검사를 권유했다.


“요것을 누르믄 당연히 물이 내려가제, 넘치믄 그게 변기여?!”


“아따, 참말로. 이 밤중에 신문을 볼라믄 딱 불을 켜고 봐야제.”


“나 놀려? 놀리는 거제? 이짝으로 틀믄 찬물, 이짝으로 틀믄 따순물. 오케이?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여, 저 정도믄. 맛탱이가 가부렀어.”



우리는 차를 타고 1시간을 넘게 달렸다. 동석은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투덜거렸는데, 택시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계기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아 시간이 많이 걸려 택시비도 많이 나온 모양이었다.


“다리도 다쳤는데 그럼 지하철을 어떻게 타요.”


“알제, 아는디 니가 뭔 돈이 있어서.”


“······용돈 아직 남았어요.”


택시는 골목의 어떤 건물 앞에서 멈췄다. 빨간색 벽돌 건물이었는데, 입구에 ‘유락고시원’이라는 간판 글자가 보였다.


오래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다던 그 건물은 4층 짜리였는데, 덕분에 나는 동석의 등을 빌려야 했다. 내가 한사코 혼자 올라가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찝찝한 마음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싶다는 의미모를 말로 기꺼이 등을 내주었다.


그래서 4층에 다다랐을 때 그는 완전히 땀에 젖어 널부러졌다.


“여기, 여기로.”


문을 열자 긴 복도가 나왔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작은 주방이 나왔고 왼쪽으로는 줄지어 문이 있었는데, 의림은 그 중 403호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바닥에 앉아있던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보고 튕겨 나오는 통에 나는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했다.


“자경아!”


“?”



여자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탱탱 부어 있었고, 남자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의림의 도움으로 방 안으로 들어가 앉았는데, 여자는 내 손을 잡고 잠시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혹시 몰라 말을 아껴야해서 제대로 말을 못했어.”


어리둥절한 나를 두고 의림이 말했다.


“가고 싶었는데 못갔어. 의림이 하도 오지 말라고 해서. 내 눈으로 봐야 좀 안심이 될 것 같은데, 그랬다간······.”


나는 의림을 보았다. 이게 다 무슨 말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늘 의림에게는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능구렁이처럼 말을 피하거나 내가 원하든 답을 해주지 않던 그였다.


“기억 안나나. 기래 많이 다쳤으니 천천히 하자.”


남자의 말이었다. 나는 그의 말, 아니 그의 억양에 놀라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틀림없다. 이북의 말투다. 아무리 요 몇 주간 남한 말을 들어오고 나 역시 체화된 남한말을 쓰고 있다 한들, 어떻게 저 고향 말을 잊겠는가.


“무슨······.”


말꼬리가 어떤 억양을 가지고 튀어나갈지 고민하다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여자와 남자는 나를 그저 나를 안쓰럽고 안타깝게만 쳐다보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멍, 아바이 아이가, 자경아.”


“목소리 낮추고 남조선말 쓰세요.”


의림이 주의를 주자 여자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경이 네가 어떻게 이북 말을 알겠니. 평생 들어본 적도 없을 텐데······. 그래도 고향 말이니 너를 보면 항상 이북 말로 다정히 말하고 싶어서······.”


이게 무슨······. 대한민국 이자경의 어멍과 아바이 고향이 북한이라고? 그럴 수가 있나? 어떻게?


“저기···혹시 존함이 어떻게······.”


나는 조심스레 남자와 여자를 향해 물었다. 그들은 잠시 서로 눈빛을 주고 받다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나는 조자옥, 아바이는 김한평이디.”




*



“퇴원했다고 합니다.”


블라인드를 내린 창으로 어스름한 빛이 줄지어 누웠다. 문을 등을 지고 앉은 건일은 의자 위에 놓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마동석, 여의림과 함께 택시를 타고 여의림의 고시원에 내려 함께 올라가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고시원이라······. 이자경이 그들과 접점이 없는 것은 확실한가.”


무게감 있는 목소리에 문 앞에 선 남자는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안다. 목소리에 자신감을 잃는 순간 그의 신뢰도 잃을 것이라고.


“없습니다. 마동석과 여의림은 그 사건 당시 최초 신고자로 경찰 조사에 의하면 폐지를 줍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근방을 배회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건일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알겠다는 듯 의자 걸이에 둔 팔을 세웠고, 남자는 그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방을 나섰다.


건일은 자신을 찾아온 자경을 떠올렸다. 기세 좋게 자신을 찾아왔으면서 파리한 안색으로 바들바들 떨며 진실을 요구하던 자경은 건일이 툭 치면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자경아.”


“예······, 숙부님.”


“내가 어렸을 때부터 뭘 주의하라고 했는지 기억 못하나?”


“······.”


“그렇게 얼굴에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 너는 그저 먹기 좋은 먹잇감처럼 보일 뿐이라고 표정을 잘 감추라, 명심하라 했지.”


“그, 그래서······. 그게 진실이란 말입니까?”


“······알아야겠다면 그게 진실이라 대답해주겠다.”


“······내가 내 부모님의······친아들이 아니라고요?”


“맞다.”


“제가 할아버지의 손자가 아니라는 것도요?”


“맞다.”


“제가···제가······탈북자의 아들이라는 것도요?”


“······반은 맞다.”



왜냐면 탈북자가 아니라 그때는 남파간첩이었으니까. 하지만 건일은 이미 충분한 충격에 정신줄을 놓으려는 그를 위해 그 사실만은 숨겨주었다.


애초에 소모품처럼, 제 아들의 들러리처럼 쓰다 버릴 생각이었다. 멍청한 제 부모가 일을 쳐줬으니, 일원에서의 명줄이 더 짧아진 것 뿐. 적당한 시기에 쳐낼 생각이었다.


이번엔 다른 기세로 저를 찾아와 모든 사실을 이르겠다 협박하기 전까진 말이다.


“다 말할 겁니다.”


표정을 숨기라 했더니 흉내만 낸 얼굴이었다. 건일은 자경을 썩 마음에 들어 했다. 어리숙하고 총명하지 못했으며, 다른 사람 말에 쉽게 현혹되었다. 때마다 제 아들 유경을 빛내는데 적당히 쓸모 있게 다루기 좋았다는 말이다. 근데 총명하지 못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너무 멍청하다는 것이었다.

자경은 너무 멍청했다. 겁도 없이 건일에게 그런 협박을 시도 했으니 말이다.


“이 집의 진짜 손자가 북한에 살아있고, 나는 그 대타로 들어온 인형이었다, 그렇게 말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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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모품 24.08.05 10 0 11쪽
3 경고 24.08.05 10 0 11쪽
2 저승사자 24.08.05 9 0 10쪽
1 탈북 24.08.05 11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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