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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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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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4:32
최근연재일 :
2024.09.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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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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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장, 시작

DUMMY

혐오가 지배하는 시대.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과 다름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속보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대한민국의 갈등지수가 82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자살률, 출산율, 갈등지수에서 모두 1위를 압도적으로 차지하며 ‘소멸하는 국가’라는 어두운 이명을 차지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법대의 알렉스 명예교수의 ‘한국은 이미 끝났다’라는 인터뷰는 유튜브 조회 수 1000만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며···]


스스로 옳다는 믿음은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되었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악으로 규정하며 혐오하게 만들었다.


[정부에 개혁에 따라 각 계층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연금개혁에 찬성하는 청년들은 서울특별시 시청에 모였으며, 이에 반대하는 노인 세대는 청년들의 이기심을 비난하며 맞불 시위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두 시위대 간의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황금만능주의에 따라 이타심과 도덕은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인문학은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외면당했다.


적자생존과 무한경쟁이 당연시되는 사회. 사람들은 공존이 아닌 적대를 선택하며 타인의 파멸에 기뻐하고, 환호했다.


[정부는 고생한 노인들에 대한 예우라며 기초연금을 60만 원으로 인상하는 연금 개혁안과 세금 완화 정책을 발표했고, 복지당은 민생 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50만 원의 지역 화폐를 지급하겠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포퓰리즘적 돈 뿌리기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복지당은 부자감세를 위해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맞비난을···]


부패한 정치인은 스스로의 탐욕을 위해 군중을 선동했고, 언론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퍼뜨려 혐오를 부추겼다.


[정부는 오랜 논의 끝에 대한민국은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화문을 가득 메우며 이는 촛불 집회 이후로 헌정사상 가장 많은 시위 인원을 기록하며···]


국민건강보험 붕괴, 국민연금 고갈, 저출산, 가계대출 등. 방치했던 대한민국의 종기는 연쇄적으로 터져 재정을 무너뜨렸다.


[이와 관련해 김요한 의원의 새로운 소설에 대한 대 국민적 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그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는 길거리를 걸었다. 하늘은 모든 색을 거부하듯 짙은 회색으로 덮여있었다. 색이 사라진 세상은 차갑고도 적막했다. 시위대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클래식 음악처럼 거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


두 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젊은 청년이 작은 방에서 목을 매었다. 몸이 불편한 중년이 다리를 움켜쥐며 절규하며 눈물을 흘렸고, 노인이 길거리에 나앉아 죽은 눈으로 하늘을 응시했다.


회색 세상에 노을이 번졌다. 짙은 황혼이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그들을 조명했다. 그리고는 무엇도 없었다. 마치 그들의 삶이 관람을 위한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터벅-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평소와 다름없는 걸음걸이였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발끝에 단단한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하나하나 느끼며 걸음을 이어갔다.


“김요한 의원.”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의도의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그 앞에는 거대 정당의 유력 대권 주자 두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는 당내 최고의원들이 줄지어 서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 사이를 지나쳤다.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가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행렬을 이어갔다.


찰랑-


내 목에 있던 십자가 목걸이가 찰랑거렸다. 국회의사당 위로 석양이 나를 비추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주홍빛을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다.


이 땅에 존재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지기를.


***


어릴 적, 어머니에게는 괴상한 취미가 있었다. 매주 월요일 나를 쓰레기장에 데려가는 일이었다.


쓰레기장은 더럽고 악취가 났다. 그러나 어머니는 개의치 않으셨다. 오물이 묻은 쓰레기를 헤치며 쓰레기장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셨다.


그러면 그곳에는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인부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추레하다 못해 흉즉한 몰골이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가리키며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사는 거라고-


그 당시에는 어머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다. 솔직히 말해서 쓰레기를 줍고 다니는 것이 재밌어 보이기도 했으니까.


지금 와서 해석하자면, 무언의 경고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신분이 결정된다. 너는 평생을 타인에게 무시당하면서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 것이다.


어머니도 참. 투니버스도 졸업 못 한 어린애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그런 말을 듣고 자라니까 우리 세대가 젊은 시절에 중소기업 갈 바에 방구석에서 살았던 것이 아닌가.


뭐, 이해는 갔다. 무명 소설가인 아버지를 남편으로 두고 사느라 고생 좀 하다 보니 어머니는 좀 염세적이었다. 신분 상승의 기회가 나밖에 없었을 테니까.


지금 다시 어머니를 뵙는다면, 나는 그 소리를 하고 싶었다.


왜 더 강하게 경고하지 않았냐고.


촤아악-


작업반장이 오렌지 주스를 내 얼굴에 뿌렸다. 차가운 액체가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야 하더라. 생각났다.


“죄송합니다.”


숙인 고개 사이로 주홍색 물이 뚝뚝 떨어졌다. 작업반장이 검지를 치켜세워 내 머리를 툭 하고 쳤다.


“병신같은 새끼야. 너 내가 일할 때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지. 왜 사람 신경을 긁어!”


나는 작업반장의 신경을 긁으려고 한 적이 없다. 단지 몸이 아파 야간 근무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뿐. 참고로 나는 현재 한 달째 야간 근무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야이 병신같은 새끼야. 너만 힘들어? 능력도 좆도 없어서 이런 곳에 기어온 새끼가 대접받으면서 사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그가 내 머리를 계속해서 툭툭 쳤다. 머리가 스프링처럼 반동했다. 주홍색 물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하기 싫으면 그냥 꺼져! 너 같은 새끼들 차고 넘쳤어. 정 안되면 우리는 외노자 새끼들 쓰면 되니까.”


음, 이건 내가 생각해도 맞는 말이다.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한 이민정책으로 초인급 체력을 가진 외노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나같은 놈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졌다.


작업반장이 주위 작업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도 똑바로 들어. 일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둬!”


작업반장은 나를 고립시키려고 일부로 다른 작업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주위에 있던 작업자들은 투덜거렸다.


“에휴, 또 저러네.”


“시끄러워 죽겠네. 저 양반은 나이 먹고 쪽팔리지도 않나.”


“자존심도 없나 봐. 하긴 저 나이에 갈 곳이 어디 있겠어.”


그들의 분노는 작업반장이 아닌 나를 향했다. 고함이 귓가를 울리고, 경멸의 눈동자들이 나를 향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스스로의 감정이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일까.


수치심?


모멸감?


아니,


내가 고개를 더욱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상 밖으로 쫓겨난다는 두려움. 실직에 대한 공포. 생존에 대한 갈망. 단지 그것뿐이었다.


“병신같은 새끼.”


주르륵. 머리 위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작업반장이 남은 주스를 붓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 시선이 머무른 곳은 주스가 아니었다. 작업반장의 얼굴이었다.


종이처럼 구겨진 얼굴과 찡그린 눈. 사람이 아닌, 벌레를 보는듯한 표정. 저 얼굴이 무엇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혐오.


그는 나를 혐오하고 있었다.


*


작업장 입구에서 사람들이 터져나온다. 그들의 얼굴에는 노동 해방의 기쁨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들과 다르게 나의 얼굴은 편안하지 못했다. 결국, 야간 근무까지 해버렸기 떄문이다.


작업반장은 내가 아니꼬왔는지 빡센 파트로 보냈다. 덕분에 내 몸은 녹초를 넘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굴렀다.


병원이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의료보험의 붕괴 이후로 의료비는 말 그대로 천장을 찍었다. 나같은 거지들은 우스갯소리로 병원비 낼 돈으로 장례비 치르는 게 더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때였다.


“흐읍.”


온몸에 힘이 빠지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근처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콜록. 기침이 나왔다. 손을 펼치니 붉은색 액체가 흥건하게 있었다. 좋지 않은 몸으로 야간 근무까지 했던 여파가 나타난 것이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던 도중 바깥으로 나가는 작업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바라본 듯. 혀를 차더니 바닥에 침을 뱉고, 제 갈 길을 갔다.


“푸흐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들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타인을 배려하기에는 너무나도 살기 힘든 시대 아닌가. 그래 단지 그것뿐이었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들에게 내 목숨은 어느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망상이 떠올랐다. 신이 나타나 밸런스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저 남자를 살리겠는가. 혹은 다른 선택을 하겠는가. 먼저, 여자와 하룻밤이다. 당연히 여자를 택하겠지. 너무나도 쉬운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5만 원짜리 지폐는 어떤가. 이런, 이 또한 너무나도 쉬운 답변이었다. 나 같아도 5만 원을 선택했다. 만약 수능을 출제하는 평가원에서 이런 문제를 낸다면 학생들이 단체로 평가원장의 대가리에 체어샷을 갈겼을 것이다.


길바닥에서 파는 이천 원어치 붕어빵은 어떤가. 이런 금액이 너무 많은가. 그렇다면, 천 원은 할만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안 된다면 500원짜리 불량식품은···


“...”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답지 않은 망상으로 여유 부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버스비도 아껴야 한다. 집까지 걸어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바깥으로 나가자 시내가 모습이 보였다. 화려하게 치장한 젊은 남녀와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보인다. 그들의 복장과 내 후줄근한 작업복이 대비돼 부끄러웠다.


“좋겠네.”


나는 길거리를 걸었다. 간판의 네온사인이 밤을 비추었다. 술집의 시끄러운 소리와 술에 취한 자들의 넋두리가 울렸다. 새벽을 배경으로 그 모든 것들이 거리에 스며들어 녹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길을 걷던 도중 지나가던 사람들은 나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거나 코를 막았다. 고된 노동에 추레했던 모습 탓이었다. 심지어 내 머리를 뒤에서 후려치며 조롱하는 젊은 남성들도 있었다.


익숙한 무시였지만, 오늘따라 더욱 따가웠고, 차가웠다. 모두 참아주길 바란다. 오늘의 나는 조금 지쳤으니까. 나는 더욱 발걸음을 빠르게 걸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피는 담배 연기가 걸린 듯 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사람들의 괄시를 시선을 받아내며 한 걸음씩, 또다시 한걸음 발걸음을 이어갔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연기가 내 발목에 걸린 듯 걸음이 무거웠다. 나는 온갖 시선들을 견뎌내며 한 걸음씩, 또다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이어갔다.


“...?”


무언가에 부딪히는 감각과 함께 정신이 일깨워졌다. 고개를 내리니 체리 모양 머리핀을 한 여자아이가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부딪힌 탓에 넘어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가!”


애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급하게 달려왔다. 아이를 감싸고 상태를 살폈다.


“앞에 잘 보고 조심해야지!”


그녀는 아이를 향해 호통을 질렀다. 그러고서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저기요 제대로 앞을 보고 걸어···”


여자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서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하, 됐어요.”


또 저 눈이었다.


길가에 싸지른 토사물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눈빛.


당신들은 어째서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가.


여자는 아이의 몸에 마치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오물이라도 뭍은 듯 강하게 털어냈다.


“더러워...”


그녀가 작게 중얼거린 소리가 공기를 타고 내 귓가에 들려왔다. 모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떠나갔다.


“...”


술집에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고함과 타령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애환이 음악과 뒤섞여 울려 퍼졌다. 오늘따라 그 소리가 내 귓가에 더욱 크게 들렸다. 나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서 있다가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이어갔다.


*


현관에 도착하자 우편함에 각종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가스비, 전기세, 등등 어찌 본다면 터져 나오는 내장 같았다. 매우 기괴했다.


나는 그것들을 무시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내 집이 있었다. 그래, 반지하였다.


국가에서 지어준 임대주택이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살기 힘든 시대다 보니 선착순에 밀려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참고로 그런 집에 들어가려면 기초생활 수급자는 물론이요, 장애 정도는 달고 살아야 가능했다.


누군가는 명품 매장에서 선착순을 선다던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임대주택을 살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 삶이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텁텁한 공기가 가득했다. 살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석양이 작은 반지하를 비추었다. 바닥에는 쓰레기와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을 가로질러 방문을 열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 가운데 놓여있는 컴퓨터 한대. 나의 작업실이었다.


터벅터벅 걸어가 책상에 앉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오늘 써야 하는 분량이 적혀져 있었다. 집까지 걸어온 탓에 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끝내지 못하면 잠을 줄여야 할 테니까.


나는 키보드를 두들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간의 어지러움이 동반되며 빨간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피였다.


“아.”


작은 탄식과 함께 옆에 있는 휴지를 들어 피를 닦았다. 그럼에도 붉은 액체가 멈출 새 없이 터져 나와 책상을 가득 적셨다. 그것들을 간신히 막던 도중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동작이 멈췄다.


“알고 있잖아.”


투욱, 코피가 일정한 리듬으로 책상에 떨어졌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


“전부 끝났다는 걸.”


나는 실패했다. 완전히.


어릴 적 무명 소설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천재라고 칭송받는 것도 좋았고, 특별해진 느낌도 전부.


시간이 지나며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엄청나게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글을 썼다. 시간과 돈을 줄이기 위해 대학을 그만뒀고. 그 이후로 여섯 시간 이상 잔적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어른이 된 뒤에는 직업을 구하는 시간마저 아끼기 위해 일용직을 병행하며 글을 썼고, 업계에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존심까지 버리며 나보다 경력이 짧은 작가의 대필마저 마다하지 않았다.


20년.


20년 동안 발버둥 친 결과가 이것이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원고는 쓰레기더미에 불과했고, 나의 종착지는 이 어두컴컴한 것 반지하였다. 40살의 나이에 나는 아무것도 쌓지 못한 어른이 되었다.


직업을 구했어야 했을까.


다른 길도 생각했어야 했을까.


더 많이 노력해야 했을까.


후회의 겁화가 마음 가득히 피어오른다. 도대체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노쇠한 육체는 병치레를 반복하며 서서히 썩어갔다. 말라비틀어진 영혼은 감정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두렵고, 증오스럽다. 한심한 나의 재능이.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나의 삶이. 그리고 평생을 해온 이 소설이.


삶의 모든 것들이 혐오스럽고, 환멸이 난다.


지옥(地獄)이다.


비루한 재능을 가진 주제에 소설가라는 꿈을 꾼 죄로 나는 지옥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다시 동반되는 어지러움과 함께 몸이 기운다.


쿵-


차가운 바닥의 감각과 함께 광대의 아릿한 느낌이 들었다.


매스꺼움과 함께 눈앞에 아지랑이가 돌았다. 뻗은 왼손에 힘을 주어도 달싹 흔들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드디어 죽는 건가...’


기구한 사연팔이는 여기까지 하겠다. 나같은 놈의 찡찡거림까지 들어주기에는 세상에는 사연 있는 놈들은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들어주어서 감사했다.


그래. 단순한 이야기다. 주인공이 있다면, 엑스트라가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쓰레기 같은 삶이 존재했고, 그것이 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죽음을 목도에 둔 나는 여러 가지 잡생각이 들었다. 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인가.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나는 어디에 갈까. 아무리 생각해도 천국은 무리였다. 그것보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는 어떻게 되는거지.


다행인 점은 내가 월세가 석 달이나 밀렸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찾아올 테니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시체가 몇 달이나 썩지는 않겠지. 유튜브에서 고독사에 관한 영상을 본 이후로 아무리 나라도 그런 말로는 최대한 사양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집주인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돈 받으러 왔는데 시체가 떡하니 있다니. 그날은 아마도 최악의 날이 되리라. 지갑에 삼천 원이 있으니 그거라도 가져가길 바란다.


장례는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날 버리고 한의사와 재혼한 어머니가 나를 위해 돈을 써줄까? 음··· 나를 버린 그녀가 해줄 거라곤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조의금 정도는 주지 않을까. 모르겠다.


내가 죽는다면 슬퍼해 줄 사람이 있을까. 글쎄. 내 생각에는 없었다. 다행히도 내 죽음은 알려질 것이다. 비참한 방의 모습과 함께 고독사의 심각성을 알리는 뉴스로 말이다. 안타깝게도 늙어버린 탓에 청년 고독사로는 출현하지 못하겠군.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동안 라면 이외에 다른 음식은 먹어본 게 없었다. 고기가 먹고 싶었다. 이왕이면 소고기로. 아니, 캐나다산 삼겹살 정도도 만족할 수 있다. 피로감도 느껴졌다. 최근에 다섯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으니까.


이럴 거면 집에 올 때 버스를 탈 걸 그랬다. 저번 주에 반값 에누리하던 앞다리살을 구매할 걸 그랬다. 작업반장의 면상에 싸거킥이라도 날려볼 걸 그랬다. 축구화를 신고 말이다. 아아··· 나의 삶은 죽는 순간마저 후회가 가득하구나.


“...”


흐릿한 시야 사이로 무언가 보였다. 십자가였다. 그래. 한때는 저런 걸 믿은 적이 있었지. 솔직히 말하면 인생이 너무 안 풀려서 뭐라도 해보려고 달아놓은 것이었다.


지금 당신은 내 인생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하찮은 삶이라고 비웃고 있을까. 아니면 평소처럼 당신답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는가.


시야가 아까보다 더욱 어두워졌다. 아늑해진 정신은 잠들기 직전처럼 조금씩 고요해졌다. 마치 끝나기 직전의 연극처럼. 나는 꺼져가는 시야 속에서 십자가를 향해 손을 포갰다.


이제 와서 당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파렴치하다고 느끼겠지만, 인간의 알량함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당신에게 한가지 기도를 올리겠다. 정말로 당신이 존재한다면...


꺼져가는 시야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전부, 지옥에나 떨어지게 해주세요.”


십자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문 바깥의 주홍빛이 내 시야를 에워쌀 뿐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막을 내리듯. 모든 것이 천천히 검해졌다.


“...”


새소리와 함께 정신이 일깨워진다. 빌어먹을 신은 역시 내 소원 따위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현대사회의 노예답게 출근 걱정부터 들었다. 여기서 작업반장한테 더 찍히면 그때는 콜라로 샤워를 할지도 모르니까. 빨리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


묘하게 몸이 가벼웠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비틀거리던 무릎도, 한 대 치면 반으로 쪼개질 거 같은 척추도 온전했다. 눈가를 짓누르던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장소가 이상했다. 이곳은 내 작업실이 아니었다. 어디서 본듯한···


그 순간,


창문 사이로 새하얀 빛이 시야를 들어왔다. 나는 눈을 찡그리고 손을 뻗어 빛을 막았다.


“...?”


눈에 총이라도 퍼붓는 빛의 감각에도 나는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고된 노동으로 썩은 시체 같았던 손등이 어린아이의 손처럼 하얗고 매끄럽게 보였기 때문이다.


“...”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이미 내 행동은 좀비처럼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무언가 걸려 내 몸이 넘어졌다. 코에서 울컥한 감각과 함께 피가 흘렀다. 나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걸었다.


누구나 하는 상상, 그것도 소설가이기에 품었던 공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화장실의 문을 열고 반사되는 거울을 쳐다보았을 때.


너무나도 젊은 청년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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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45살 박수영(8) 24.09.07 7 0 17쪽
8 1장, 45살 박수영(7) 24.09.06 6 0 14쪽
7 1장, 45살 박수영(6) 24.09.05 7 0 18쪽
6 1장, 45살 박수영(5) 24.09.04 10 0 14쪽
5 1장, 45살 박수영(4) 24.08.31 14 0 20쪽
4 1장, 45살 박수영(3) 24.08.30 15 0 17쪽
3 1장, 45살 박수영(2) 24.08.29 13 0 19쪽
2 1장, 45살 박수영(1) 24.08.29 15 0 18쪽
» 0장, 시작 24.08.29 18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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