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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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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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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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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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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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45살 박수영(4)

DUMMY

평일 오후의 대학가 근처의 커피숍.


“맛있게 드세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 카페 알바생이 방긋 웃으며 내 앞에 카라멜 마끼아또를 내려놓았다.


‘이쁘게 생겼군.’


카페 알바생이 이쁜 건, 종업원의 외모가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도 보아라.


“저기...”


한 남자가 몸을 쭈뼛거리며 알바생 앞에 섯다. 뒤에 있던 남자들은 그 광경이 재밌다는 듯 기생들처럼 모여 히죽거렸다.


“번호 좀 주실 수···”


“죄송해요. 제가 잘생긴 사람을 좋아해서.”


알바생이 도도하게 고개를 휙 돌렸다. 번호를 따려던 남자는 돌처럼 굳었다. 뒤에 있던 남성무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남자의 실패를 비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한가지 상상에 빠졌다.


남자는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런 능력도 외모도 없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우울함에 빠진다. 평소처럼 인터넷에 한국 여성에 대한 불만을 품은 글을 올리던 도중 어플 광고 하나를 보게 된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클릭하는 순간, 상대를 최면시킬 수 있는 어플이 깔리고, 남자는 그대로 카페를 향해···


‘또 지랄이군.‘


나는 정신이 불안정해지면 이러한 불건강한 공상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내 상태가 이 모양인 이유가 있으니까.


나는 유튜브 창을 틀어 ‘천화 문고는 쪽바리 집단’이라는 자극적인 썸네일을 클릭했다. 그러자 어디 퇴물 피디가 편집한듯한 자막이 흘러나왔고,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천화 문고가 주도하는 문학은 일제강점기···


댓글 창은 나에 대한 욕설로 가득했다. 철이 없다. 글도 못 쓰는데 주제 파악을 못 한다. 군대를 다녀오지 못해서 그렇다. 한국 남성이 원래 그렇다. MZ세대라 싸가지가 없다. 부모가 없어서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그렇다. 자기밖에 모르는 소시오패스다. 그들은 자기 입맛대로 추정하며 나를 향해 칼질을 하고 있었다.


물론 사이다라는 글과 내 말이 맞다고 옹호하는 자들도 일부 존재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후우...”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했지만, 사람들의 적나라한 반응을 맞이하는 것은 꽤나 심장이 시큰했다.


“어쨌든 성공했네.”


내가 세트장에서 그 난리를 피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작품을 홍보하기 위한 어그로 때문이다.


우주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거나 인간의 선조가 원숭이라고 떠드는 둥. 시대를 막론하고 분탕충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 몇천 개가 넘어가는 유튜브 댓글이 그 증거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방송이 짤 형식으로 커뮤니티로 퍼져 ‘문학계에 일침 날리는 소설가’라는 제목으로 올라가고는 했다.


나의 비루한 배경도 한몫했다. 극단적 선택을 한 무명소설가의 자식이 천재 소설가? 라는 소재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도 팝콘을 들게 했으니까.


나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예고한 신작에도 이어졌다. 관심이 돈이 되는 시대. 나는 천원 한 장 쓰지 않고, 신작을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생은 어찌 편한 길만 있는가. 당연하게도 그에 합당하는 출혈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을 올려놓는다. 천화 문고가 보낸 내용증명이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네가 나를 배신해? 어디 인생 한번 X 돼봐라. 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백희산 팀장이 보낸 거겠지. 그는 자기 품을 떠난 작가들을 이렇게 대우했다.


아마도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불공정 계약일 것이다. 백희산도 그걸 알지만 스무 살 애새끼 겁이라도 먹으라고 보낸 거겠지.


백희산 팀장은 나와 악연이 깊다. 재능이 없던 나를 대필작가로 수년 동안 굴리게 한 것도 그였다.


아아··· 다시 생각해도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백희산. 묘지에 처박아주지.


대충 미래의 복수를 다짐하고 메일창을 틀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출판사로부터 온 메일이 보였다.


천화 문고와 이별을 선언한 것을 안 다른 출판사들이 나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김요한 작가님과 계약을 하고 싶다거나. 작가님의 재능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싶다거나. 너를 내가 키워줄 게 나만 따라와라. 같은 어쩌구저쩌구.


나는 피식웃으며 중얼거렸다.


“지랄하네.”


나의 재능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우스웠다. 글밥 먹는 새끼들이 내 글이 프로레벨에서 안 먹힌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이들은 이러는 이유는 단순했다.


매니지는 작가와 계약하면 무조건 돈을 번다. 온라인으로 책을 출간하는 데는 돈이 별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작품이 악취가 날 정도의 쓰레기라 교정하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이미 어그로가 쏠린 내 글은 아니었다.


유튜브에 ‘김요한이 새끼 소설 보는 진짜 저능아 같음’이라고 댓글을 단 사람도 내 신작은 읽어볼 터. 한마디로 수익이 보장된 사업이었다.


그렇기에 매니지들은 내 똥구멍에 집이라도 차린 것처럼. 나를 빨아대기 시작했다. 파격적인 제안조건과 기프티콘 공세 심지어 집까지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지금 먹고 있는 카라멜 마끼아또도 이름 모를 출판사가 준 커피였다. 저녁은 또 이름 모를 출판사가 준 치킨을 먹고, 내일 아침은 편의점으로 만찬을 차릴 것이다.


내가 양아치가 아니다. 나를 이렇게 만든 세상이 잘못된 거다. 어차피 출판사들도 나와의 계약을 길게 이어갈 생각이 없다. 적당히 단물 빠지면 버렸을 테니까. 저번생에 내가 그들에게 원고를 거절당한 횟수를 생각한다면···슬프니까 여기까지 하겠다.


애초에 내가 원한 것은 기프티콘 따위로 나를 유혹하는 출판사들이 아니다.


띠링-


카페 문에 걸린 종이 울렸다. 여자 한 명이 들어온다. 왕눈이 안경을 낀 그녀는 양복이 어색한 듯 쭈뼛거리며 카페를 기웃거렸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몰골에도 카페에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모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얀 와이셔츠 사이로 윤곽을 드러내는 거대한 바스트 덕분이었다.


나는 여자 경험은 많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할 수 있었다. 저 크기는 어찌 본다면 하나에 ‘폭력’에 가까웠다.


주변을 기웃거리던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김요한 작가님이신가아아악···”


걸어오던 그녀가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넘어지며 내 카라멜 마끼아또를 툭 쳤다. 갈색 물이 주르륵 바닥에 흘러내린다.


그대로 바닥에 얼굴은 박힌 그녀가 커피가 묻은 얼굴로 나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커피가···”


“괜찮으니까. 일단 일어나시죠.”


“으아··· 작가님 정말로 죄송해요.”


그녀의 엉성한 행동과 별개로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커피 물에 젖은 와이셔츠가 그녀의 몸을 더욱 부곽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깝다. 이는 폭력을 넘어선 학교폭력에 가까웠다.


거기다 울먹거리는 얼굴과 엉성하기 짝이 없는 모습은 카페 안에 있는 남성들의 호르몬을 자극했다. 백치미는 시대를 막론하고 수컷에 내재한 무언가를 끓어오르게 했으니까.


하지만 여자를 본 순간 나는 의아함에 빠졌다. 내가 알던 그녀와 매우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실수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장님...?


그렇다는 말은...


띠링-


카페 문이 열리며 여자가 들어온다. 날 선 눈매에 정돈되고 깔끔한 오피스룩. 풋풋하면서도 날카로운듯한 분위기를 가진 그녀가 조금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걸음걸이였다.


“김요한 작가님...? 그리고···”


그녀가 바닥에 커피와 헤엄을 치는 여자를 보고는 세상 못 볼 쓰레기를 봤다는 듯 경멸하듯 표정을 구겼다.


“백보람 편집자. 분명 먼저 가서 작가님에게 양해 구하라고 했을 텐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요.”


그녀의 말에 백보람이 여자가 귀신을 본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히익··· 그, 그게 아니라 제가 오다가 노인분이 리어카를 끌길래 그거 도와드리고. 카페 근처에서 어떤 할머니가 길을 헤매시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이해되었다. 아마도 개인 사정으로 먼저 사람을 보냈지만, 눈앞에 여자가 이상한 짓거리를 하느라 사정이 꼬인 거였다.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음흉한 시선으로 백보람을 보는 카페의 사람들. 대걸레를 들고 어찌할지 모르는 알바생.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듣고 일단 상황 정리부터 하시죠. 죄송합니다. 김요한 작가님 미팅은 다른 카페에서 해도 될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테이블에 휴지를 뽑아 들어 묵묵히 바닥을 닦았다. 내가 도와주려고 하자 이건 자기들의 실수라며 거절했다.


상황이 정리되고 그녀들과 나는 다른 카페에 왔다. 그녀가 옷매무새를 한번 정리하고는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저는 글로리 매니지먼트 사장이자 편집자 강미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글로리 매니지먼트 편집자 백보람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김요한 작가님. 헤헤. 한 번쯤은 보고 싶었어요.”


헤실헤실 웃는 편집자와 그걸 보고 한숨을 내쉬는 강미연 뭔가 내가 봤던 이미지랑 달랐다.


천재 편집자 강미연과 백보람.


미래에서 좋소의 기적이라는 말을 실현한 출판계의 전설처럼 불리는 인물들.


어디서 작가들을 주워와 큐레이터 능력으로 엄청난 수익을 내던 그녀들의 능력을 업계에 자자한 전설이었다.


천화 문고가 지배하는 출판시장에서 야금야금 몸집을 키워나가더니 시가총액 2천억에 달하는 중견기업을 키워내기까지 했다.


대기업의 자본과 인프라를 지원받은 자회사들이 날뛰는 시장에 일개 좋소가 이 정도 성과를 이룬 건 가히 엄청난 업적이었다.


’근데...‘


지금 눈앞의 있는 두 여자는 뭐라고 해야 할까. 무언가 엉성한 사회초년생 같았다. 어찌 본다면, 당연했다. 현재의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는 설립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신생회사니까.


나는 한가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의 백보람과 강미연이 내가 알던 그녀들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


글로리 매니지먼트가 성공 기로를 밟기 시작한 것은 내 기억상으로 약 3년 뒤.


나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시가총액 2천억에 버금가는 출판사를 만든 완성된 백보람과 강미연을 원하지. 그녀들의 청춘 성장드라마에 탑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단언했다.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 낭비는 좋아하지 않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왜 글로리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으십니까?”


내 말에 강미연의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백보람은 충격을 받은 듯 울상으로 번진다. 여자가 눈물을 글썽거리까 마음이 약해졌다. 조금 친절하게 말해야겠군.


“글로리 매니지먼트는 이제 막 생겨난 신생회사에다가 저는 나이는 어리지만, 어엿한 기성작가입니다. 제가 왜 저에게 이미 온 수많은 오퍼를 외면하고 경력도 자본도 아무것도 없는 글로리 매니지먼트와 계약을 해야 해야 하는지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강미연이 사준 녹차 프라푸치노를 한잔 마시며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어디 한번 대답해봐라. 당신들이 내가 원하던 그녀들이 맞는지.


강미연이 내 말을 듣고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작가님 말씀대로 저희에게는 경력도 자본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김요한 작가님 정도 되는 사람이 굳이 계약할 이유가 없는 회사죠···”


강미연이 서류가방에서 종이 더미를 꺼냈다.


“작가님이 출판하신 모든 작품을 분석과 더불어 매출, 독자 연령층 등을 조사한 분석표입니다. 기본적으로 편집자의 업무는 작가님의 재능을 다듬어 시장에 계속 살아남게 하는 것이지만,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강미연이 내 눈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제 편집자 생활을 걸고 단언하건데. 김요한 작가님에게는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을 만한 재능이 없습니다.”


강미연의 말에 백보람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만류했다.


“자, 잠깐만요 사장님 이건 계획과 어긋난···”


다리 붙잡고 계약해주세요. 엉엉해도 모자랄 판에. 그녀의 저돌적인 행동에 놀란 것이다.


내가 백보람을 손을 뻗어 저지했다. 강미연에게 계속 말하라는 추임새를 취했다.


“이 자료들을 보여준 이유는 작가님의 작품을 가볍게 보고 판단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나는 자료를 눈짓으로 보았다. 나의 문체와 더불어 독자층과 연독 서사의 줄기 인물의 구성 다양한 정보가 분석되어있었다.


“물론, 번쩍 스타가 빈번한 출판시장에서 개인의 성공을 함부로 예단하는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성과를 본다면 단언할 수 있습니다.”


강미연이 잠깐의 침묵 뒤에 입을 열었다.


“작가님의 지금 가진 재능으로는 절대로 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침묵이 돌았다. 백보람은 다리까지 떨기 시작했다. 강미연은 깊게 한숨을 내쉰 뒤에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렇기에 글로리 매니지먼트는 작가님이 시장에서 계속 생존할 수 있도록 그 방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강미연이 서류가방에서 종이 더미 하나를 더 꺼냈다.


“작가님과 가장 근접한 스타일에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른 작가님의 글을 분석한 것입니다. 이에 더해 작가님의 스타일을 조정을 위한 훈련방법과 더불어 앞으로 노리게 될 독자층의 성향과 취향을 기재했습니다.”


“물론, 불쾌한 감정이 드실 수 있는 건 충분히 압니다. 신생 출판사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이 드실 수 있죠. 하지만 저희는 잠깐의 이익을 얻자고 작가님에게 허울 좋은 소리를 하며 계약을 유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말했다.


“김요한 작가님의 말대로 저희는 신생회사입니다.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았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있습니다. 저희를 선택해주신다면, 김요한 작가님이 시장에서 계속 생존을 물론이요, 저희들을 모든 것을 걸고 김요한 작가님을 케어하겠···”


“그만.”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나의 말에 강미연과 백보람이 고른 숨을 내쉬었다. 계약이 불발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듯 보였다.


“계약하겠습니다.”


“정말로 아쉽···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강미연의 얼굴에 살짝 당황이 스며들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을 거 같은 미래의 얼굴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글로리 매니지먼트와 계약하겠습니다. 될 수 있다면 전속으로.”


“저, 정말인가요...?”


백보람이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찍으며 말했다. 강미연이 저지하지 않는 걸 보니 그녀도 꽤나 놀란 듯 보였다.


충분히 알았다. 아직 덜 익었지만, 그녀들은 내가 알던 글로리 엔터테이먼트가 맞았다.


만약 강미연이 내 글을 무지성으로 빨아 재꼈다면, 나는 고민도 없이 협상테이블을 반으로 쪼개버렸을 것이다.


내 스타일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20년 동안 삽질을 통해서 이미 충분히 깨달았으니까.


자존심? 그딴 게 남아있을 리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만큼의 돈. 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바꿀 돈 말이다.


그리고 내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 건, 단순히 그녀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춰서가 아니다.


미래의 그녀들은 소속 작가들과 단 한 번도 계약해지를 한 적이 없다. 수익이 적든, 많든 절대로 작가와의 유대를 끊지 않는다. 그녀들의 신조였다. 나는 그 점이 맘에 들었다.


“계약에 앞서, 딱 한 가지만, 확인하겠습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는 정말로 저와 계약하실 생각입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반대로 묻는 겁니다. 지금부터 제가 걸어갈 길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


두 번의 생(生)을 살아도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한가지 느낀 것은 확실한 것이 있다. 빼앗는 자는 끝없이 착취하고, 빼앗기는 자는 끝없이 착취당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열등감, 피해망상, 자기파괴를 거쳐 가며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쓴 물을 삼켜가는 것이 전부였다. 같잖은 핑계나 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전부인 삶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삶을 거부한다.


“저는 나의 부상을 위해, 성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두 분께 묻겠습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내가 유일하게 성경에서 기억하는 구절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착하게 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야기다.


참으로 재밌는 개소리였다. 세상을 보아라. 악한 자들이 득세하여 호의호식을 누리고, 건실히 살아가는 자들이 비웃음당하는 시대다. 가난이 죄가 되는 시대이며, 심판받는 것은 오로지 약자이다.


세상이 원래 이 모양이라고?


그러니 그만 찡찡거리라고?


그렇다면 더욱 좋다.


나는 강미연과 백보람에게 한 손을 건넸다.


“저와 함께 지옥(地獄)으로 가실 수 있겠습니까?”


지옥에 가겠다. 나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그 수라의 길을 걸어가겠다. 심판받아도 상관없다. 나는 당신의 얼굴에 당당하게 침을 뱉을 테니까.


두 여자는 조용히 검은 눈동자를 빛냈다. 나의 기세가 변한 것은 눈치챈 것이다. 잠깐의 침묵 뒤에 강미연이 조용히 내 손을 맞잡았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는 작가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같은 길을 갈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백보람도 뒤늦게 우리들의 손을 포개며 어루만졌다.


“저도요. 작가님!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강미연, 백보람, 내가 마주 잡은 손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나도 그들에게 똑같이 미소로 화답했다. 허나 강미연, 이건 확실히 하고 가자.


“하지만, 다른 작가의 스타일을 베끼거나 강미연 편집자님이 원하시는 대로 글을 쓰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테이블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원고를 올려놓았다.


“이게 제가 추구할 문학입니다.”


강미연이 천천히 내 원고를 읽었다.


10분, 20분...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점의 변화도 없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비틀리기 시작한다.


“이건...”


그녀의 평소와 다른 반응에 백보람 편집자도 살짝 놀란 듯 강미연을 바라보았다. 자기도 보고 싶다는 듯 다리를 배배 꼬며 애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항상 원고를 두 개 들고 다니니까. 내가 백보람 편집자를 향해 복사된 원고를 내려놓자 그녀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드라마 여주가 할만한 리액션을 내뱉고 심각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원고를 탐닉했다.


원고를 전부 읽은 강미연 편집자가 내 얼굴을 경악과 놀람이 반반 섞인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해는 간다. 나도 이 소설을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굶어 죽을 수 없지 않은가.


“어떻습니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질문. 하지만, 원고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강미연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최악이로군요. 문학적으로는.”


나는 그녀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했다는 것이 바른 판단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상업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제 편집자 생활을 걸고 말씀드리자면···”


나의 말에 그녀는 처음으로 얕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 소설은 대한민국에서 이례적인 성공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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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장, 45살 박수영(5) 24.09.04 9 0 14쪽
» 1장, 45살 박수영(4) 24.08.31 14 0 20쪽
4 1장, 45살 박수영(3) 24.08.30 14 0 17쪽
3 1장, 45살 박수영(2) 24.08.29 12 0 19쪽
2 1장, 45살 박수영(1) 24.08.29 14 0 18쪽
1 0장, 시작 24.08.29 16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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