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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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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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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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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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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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45살 박수영(2)

DUMMY

천화예대 대중소설창작과의 합평 수업은 문학에 관심이 없는 이들도 알 정도로 위상이 자자하다.


그 시작은 안데르센 상을 받은 정희찬 교수가 개인 유튜브 채널에 합평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시작되었다.


합평을 위해 단상 위에 오른 여성동아리 ‘걸스두잇’ 단원 한서은이 말했다.


“제가 쓴 단편 소설의 제목은 ‘한국 남자 더 서바이벌’이라는 소설로 456명의 한국 남성들이 서로를 죽이는 데스게임을 벌이는 장르 소설입니다.”


소설을 쭉 읽던 대중소설창작과 남학생 한 명이 답했다.


“너 페미냐?”


*


인간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 차이는 유전적 기질과 살아온 환경에 따라 더욱 커진다.


누군가는 부자 증세와 기업의 규제 노조의 과도한 파업을 줄여 개별적 권리와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부자 증세와 기업의 규제 노조의 권리 보장을 통해 사회적 평등과 서민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같은 이념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생각을 공유한다. 끼리끼리 논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념을 가진 집단이 충돌하는 것은 어떻게 본다면 당연할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빡치는 일이 뭣도 모르는 놈이 지 말이 맞다고 우기는 것이 아닌가.


눈앞의 현상도 그렇다.


“질문자님께서 기초적인 지식과 젠더감수성이 부족하고 커뮤니티를 많이 접하며 거짓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사상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것은 이해하나. 그러한 측면에서 제 소설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는 건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보이네요. 더군다나 소설가를 꿈꾼다는 학생이 창작의 자유와 이념의 차이를 제한하려는 모습은 더욱 모순이라고 느껴지고요. (ㅋㅋ 커뮤니티에 뇌 절여진거봐 너 일베 하지?)”


“발표자님 소설에 기반이 되는 사상이 사회 전반적인 집단 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이념으로서 이를 어떻게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에 따라 이 소설에 기반이 되는 것을 이념과 더불어 이 소설을 지적하는 행동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ㅋㅋ 줫까 페미년아)


두 학생이 치열하게 논증과 반박을 이어갔다.


어느새 각자 자리까지 나눠 앉은 남녀 학생들은 두 남녀가 말할 때 옳소! 그거지! 같은 추임새까지 더했다.


단상 옆에 있던 정희찬 교수는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뒷자리에 있던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자퇴할까.’


이런 놈들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니. 차라리 고독사가 올바른 생각이 들었다.


“화가 나는군.”


옆에 있던 김진석이 이를 아득거렸다. 녀석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건가.


“옆에 있는 돼지년때매 하얀 치마의 허벅지가 보이지 않아.”


“...”


나는 고개를 내저어 이성을 유지했다. 인생은 본디 참는 것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거기다 이런 놈들에게 페이스가 말려 자퇴를 하는 건, 40살의 정신연령이 허락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집중할 것이 필요했던 나는 한서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은 이러했다.


456명의 한국 남성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한 공간에 모인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1인에게는 456억이 주어지고 그곳에 모인 이들은 상금을 얻기 위해 생존게임을 시작한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 설정이었지만, 저작권 개념 제대로 있지 않은 학부생이니 이해할 수 있다.


그것과 별개로 나는 한서은에게 시선이 갈 수 없었다.


페미니즘 소설가, 한서은


여성 사회 운동을 추구하며 그녀가 집필했던 소설들은 자주 베스트셀러에 보이곤 했으니까.


더불어 영화화나 드라마화 같은 미디어믹스까지 성공했던 그녀는 명백히 성공한 소설가였다.


“자자, 그만.”


정희찬 교수의 박수 소리에 시선이 모인다. 그는 단상 위로 올라와 미소를 짓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창작물과 더불어 창작자에 대한 자유로운 인격 발현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정희찬 교수가 남학생을 힐끗 쳐다보았다.


“한 이념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본인이 가진 사상과 다르다고 한들, 그것을 제한하고 비난을 던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직면함으로써 두 집단이 상호작용하여 갈등이 해소될 수 있으니.”


이번엔 한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나 그 이념에 취해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집단에 대한 배척하고 혐오를 드러내는 것도 옳지 않아.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다 보니 항상 스스로 믿고 있는 것들이 거짓인지 의심하는 것이 좋다. 세상의 이해를 원한다면, 너 또한 그들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추거라.”


정희찬 교수가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문학에 대해서 동료 작가들마저도 의견이 다르다. 누군가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콘텐츠로 생각하고 누군가는 쓰레기 같은 거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초월적인 매체라고 말하지.”


그가 대중소설창작과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되었든 나는 문학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쟁취를 위한 투쟁이 되었든. 갈등을 야기하든 흔해 빠진 이야기를 풀어내든. 언제나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떠들어야 해. 나는 그것이 소설가라고 생각한단다.”


정희찬 교수의 말을 끝으로 대중소설창작과에 침묵이 돌았다. 그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다음 소설 합평을 시작해볼까?”


정희찬 교수의 말에 남학생 한 명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평범한 외모의 남자였다. 그는 설렘과 긴장이 섞인 얼굴로 헛기침을 내뱉더니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대중소설창작과 1학년 김가빈이라고 합니다. 제 소설은···”


김가빈이 소설을 설명을 시작하고. 페이지를 넘기던 김진석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야단났군.”


말 걸기 싫었지만,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에 호기심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뭐가.”


김진석이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마치 진리를 알아버린 수도승처럼 고개를 까닥거렸다.


“합평이란, 일종의 야생이다. 항상 사자였던 네놈은 모르겠지만, 약자에게 야생은 잔혹하기 그지없는 법이지.”


김진석이 주위를 훑었다.


“보이지 않는 것이냐. 약자를 발견한 이 맹수들의 눈빛이.”


김진석의 말에 따라 주위를 둘러본다. 그들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김가빈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진석이 소설을 책상에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좆같이도 못 썼군.”


김가빈의 소개를 끝으로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들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네요. 주인공이 지적 장애를 가진 설정인가요 혹시? 인물의 지능은 작가의 지능을 따라간다는···”


“비문 덩어리에 묘사와 서술도 엉성해요. 가독성도 쓰레기에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설가를 지망하는 학생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네요. 자퇴하고 상하차나 하는 게 어때요?”


“지금 합평 시간이라고 들었는데 왜 소설이 없죠? 이 활자 쓰레기는 뭔가요? 이런 걸 쓰고도 즐거우세요? 아 즐거우시냐고요.”


대중소설창작과 학생들은 김가빈의 소설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김가빈은 땀을 쩔쩔 흘리며 가까스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러한 비판 속에서 나는 김가빈이 쓴 소설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인간이 쓴다.


그러므로 소설에는 그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소설은...”


내가 내뱉은 말에 대중소설창작과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페이지를 넘겼다.


확실히 소설은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였다.


김가빈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주제나 문제의식을 다루기보다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자기감정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군요.”


인물에 대해 고민하고 표현에 관해 연구하고.


“인물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서사의 중심내용을 내면적인 서술로 주로 표현했고.”


부족한 재능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여기 있는 문체는 김수로 작가님의 묘사를 참고했고. 이건 유상 작가님의 인물조항작법을 참고한 모양이군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 같습니다. 발표자님은 정말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는 김가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좋아하나 보군요.”


그는 소설을 사랑하고 있다.


과거의 나만큼이나.


나는 김가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대중소설창작과 대부분 학생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허나 김가빈은 내 기억속에 없었다. 그가 소설을 접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다. 그는 나와 닮았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소설을 사랑했던 김가빈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과거의 나처럼.


나와 시선이 마주친 김가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눈물을 글썽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중소설창작과에 침묵이 돌았다. 그걸 깬 것은 정희찬 교수였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래. 가빈이의 소설은 너희들이 말한 대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족함이 존재한다.”


정희찬이 툭 하고 단상에 김가빈의 원고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문학이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설명 짓는 것이 가능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문학에는 사람의 영혼이 깃들기 마련이야. 그것은 울림을 주기 마련이고. 가빈이의 소설에는 울림이 있다. 더욱 노력한다면, 훌륭한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거다.”


정희찬 교수가 나를 흡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훌륭한 안목을 가졌구나. 나도 보자마자 알아채지는 못했는데 말이야.”


정희찬 교수의 칭찬에 다시 한번 아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들 중에는 시샘하며 째려보는 이들도 있었다. 역시나 익숙해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훌륭한 안목이 아니었다. 김가빈의 소설은 나를 닮아있었으니까. 부족한 재능으로 발버둥을 치던 나의 소설을.


“그럼 마지막으로 요한이 네 소설을 읽어볼 차례구나.”


정희찬 교수의 호명과 함께 나는 단상에 올랐다. 아이들은 먹이를 탐색하는 하이에나처럼 눈빛이 변해있었다. 단점을 찾아서 어떻게든 꼽을 먹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아이들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적막과 함께, 긴 시간이 지나고. 정희찬 교수가 손목시계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질문할 사람은 해도 좋다.”


정희찬 교수의 말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어지는 침묵과 간간이 들리는 한숨 소리가 전부였다.


정희찬 교수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원고를 탁자에 턱 하니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문장이며 서술이며 구조나 주제의식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훌륭한 소설이야. 프로와 비교해도 부족한 면이 없다고 말할 정도야. 허나, 다르게 말하자면 아직 요한이 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색채가 부족하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 말할 수 있겠구나.”


정희찬 교수의 칭찬에 몇몇 아이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같은 나이에 내가 이미 프로레벨에 올랐다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뒤에 있는 단점도 사실상 미미한 지적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정희찬 교수의 말소리와 아이들의 이목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원고는 고독사 직전의 집필했던 소설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즉, 지금 이 소설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의 한계였다.


멍한 정신에서 깨어나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하나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내가 이들보다 뛰어난 것은 단순히 많은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한계가 드러날 것이고, 이들은 전부 내 위에 올라가겠지. 나는 과거처럼 무기력하게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겠지.


“...”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나의 형편없는 재능으로는...


소설가로서 성공할 수 없다.


*


“자, 여러분. 오늘 제가 온 곳은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대학이라고 평가받는 천화예대에 왔습니다.”


MC의 능숙한 소개와 함께 방청석에 앉은 이들이 요란하게 손뼉을 쳤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방송사가 학교 내부에 미리 준비해둔 세트장이었다.


나는 세트장 중앙에 가까운 좌석에 앉아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방청석 부근에 자리해있었다. 맞다. 나를 제외한 모든 대중소설창작과 학생들은 병풍 취급을 받았다.


“자, 여러분들이 궁금한 것은 이분들이겠죠. 소개합니다. 아동문학의 공주 하유진 작가님과 무협의 대가 김문석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MC의 손이 뻗은 곳에서 두 남녀가 걸어온다. 새하얀 피부와 붉은 머릿결을 휘날리며 나오는 여자. 무협지 속에 나올듯한 도복을 입은 남성. 둘 다 알고있는 얼굴이었다.


인기 아동문학 작가 하유진.


무협 소설의 대가 김문석.


천화 문고가 가장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작가들.


“두 분 잘 지내셨나요. 최근 새로운 작품을 쓰셨던데 집필 활동은 잘 되시나요?”


MC의 인사에 의복을 입은 남자가 준비해둔 부채를 처억 펼치며 말했다.


"글을 쓰는 것은 세상에 진기를 담는 것보다 더 어려운 법이오. 신검 합일조차 쩔쩔매는 우매한 자들이 어찌 무림을 이해할 수 있겠소


“글 그거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


“갈(喝)! 무림 초졸 주제에 감히 말대꾸하다니! 비무를 신청한다. 내가 너의 썩어빠진 정신을 똑바로 고쳐주마


김문석이 부채로 MC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MC는 세트장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하유진의 발목을 붙잡고 애원했다.


“도, 도와주세요. 하유진씨.”


하유진이 세상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이를 먹은 어른이라면,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너, 너무해...!”


그들의 상황극에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천화 문고가 출판시장을 키우기 위한 마케팅 전략은 작가들의 캐릭터화였다.


한국인이 일본인 호스트인 척 울프컷과 옷을 입고 어눌한 말투를 따라 하거나. 한 개그맨이 퉁퉁한 몸매와 문신을 그리고 99년생 양아치 컨셉을 잡는 것처럼.


작가가 집필하는 특정 장르에 걸맞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다. 천화라는 대기업이 만든 매력적인 캐릭터는 단번에 대중들에게 녹아들었다.


천화는 더 나아가 캐릭터를 활용한 영화, 웹툰, 방송, 애니와 같이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하며 인지도를 늘렸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팬덤이 늘어났다.


영향력이 돈이 되는 세상. 커져가는 팬덤에 따라 자연스럽게 책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업계에는 이런 말이 존재했다.


천화 문고는 책을 팔지 않는다. 그들의 스타성을 판매한다.


물론, 이런 시장에 흐름을 거부하는 몇몇 문단의 원로들이 있었고, 그들은 거침없이 천화 문고를 비판했다. 허나 언제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들은 도태될 뿐.


그들은 유일한 소통창구인 카카오 스토리에 틀딱들 노인정에 처박히쇼 나. 딸피 새끼들 빨리 뒤지는 거 원하면 개추같은 악플을 만개 가량 받고, 폐사했다.


문단의 원로들마저 단두대 당한 지금 천화 문고는 출판시장을 주도한다고 말해도 무방했다. 지금 이 자리도 하유진과 김문석의 신작 홍보를 위한 자리였으니까.


MC의 능숙한 진행과 더불어 그들의 적절한 리액션에 따라 방송은 매끄럽게 흘러갔다.


그 사이에서 나의 상념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인생은 불공평하다.


중앙에 배치된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하유진과 하문석.


방청석에 앉아서 방송에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비치기 위해 과한 리액션을 펼치는 학생들.


그리고 무대에도 들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촬영을 이어가는 스태프.


사람의 삶에는 두 가지가 있다. 주연의 삶과 조연의 삶이다.


외모나 돈, 재능 등 빛나는 무언가를 가진 자들은 김문석과 하유진처럼 주인공의 삶을 산다.


“하유진씨는 최근에 일상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글쎄요. 얼마 전에 보라카이를 갔어요. 영감도 받고, 힐링도 하고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네요.”


“보라카이라··· 설마 차기작에 대한 예고라고 볼 수 있나요...?”


“그건 비밀인걸요.”


나는 전생에 주말에 무엇을 했는가. 작업반장에게 떠밀려 주말 근무를 하거나 돈이 없어 집에만 있던 기억밖에 없었다. 휴식이라. 나같은 하루살이에겐 어려운 단어였다.


“자, 그럼 우리 대중소설창작과 학생들의 생각도 들어봐야겠죠. 이번 소설 어떠셨나요.”


MC가 관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내민다. 학생 한 명이 표정이 밝아지며 미리 준비된듯한 멘트를 다급하게 말했다.


“하유진 작가님 신작은 정말로 최고라고 생각해요. 몽환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특유의 문체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카메라를 꼬옥 붙잡았다. 몇몇 스태프들은 학생을 비웃었다. 다른 방청석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자신에게 오지 않은 기회를 아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금 방청석에 있는 아이들 중에 몇 명이나 작가로 데뷔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기억에는 한 명도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일용직을 병행하다 사고를 당하는 이도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며 꿈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는 이도 있었다.


조연에게는 두 가지 배역을 강요받는다. 자신의 운명에 수긍하여 고개를 떨구거나, 그들의 찬란함을 바라보며 끝없는 동굴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거나.


그렇다면 끝없는 여정을 이어가는 자들의 말로는 어떠한가. 단순했다. 소수는 승자는 찬양받으며, 다수의 패자는 단말마도 내뱉지 못하고 지하 밑바닥에 파묻힌다.


“자, 그럼 이제 천화 문고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분이죠?”


어두컴컴한 반지하에서 수십 년 동안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는 성공을 갈망하며 글을 썼던 것처럼.


처절하게 엉겨 붙고 애원하고 갈망한다고 한들, 재능이 없는 나의 삶은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무명 소설가에게서 태어난 천재 소설가, 김요한 작가!”


무대 뒤편에서 그들의 빛나는 삶을 동경하고 끝없는 열등감을 애써 삼켜가며.


세상의 순리에 수긍하고 비루하기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슬픔을 잠재우며 살아갈 것이다.


“김문석 작가님의 이번 작품 어떻게 보셨나요.”


MC와 더불어 관객석과 스태프.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여기서 내가 할 반응은 정해져 있다. 천화 문고가 키우는 개답게 그들이 원하는 리액션을 하면 된다.


최고의 작품이다. 정말 재미있었다. 이번 건 정말로 대박이다. 그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혀를 내밀고 고개를 조아리고 개새끼처럼 재롱을 부려 사료를 받아 처먹으면 된다.


그것이 조연의 삶,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들의 삶이니까.


“김문석 작가님이 쓴 이번 작품은···”


하지만 나는···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딴 인생을 다시 살아갈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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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45살 박수영(8) 24.09.07 7 0 17쪽
8 1장, 45살 박수영(7) 24.09.06 6 0 14쪽
7 1장, 45살 박수영(6) 24.09.05 7 0 18쪽
6 1장, 45살 박수영(5) 24.09.04 9 0 14쪽
5 1장, 45살 박수영(4) 24.08.31 14 0 20쪽
4 1장, 45살 박수영(3) 24.08.30 14 0 17쪽
» 1장, 45살 박수영(2) 24.08.29 12 0 19쪽
2 1장, 45살 박수영(1) 24.08.29 15 0 18쪽
1 0장, 시작 24.08.29 17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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