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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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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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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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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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45살 박수영(1)

DUMMY

창문 틈새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참새들의 노랫소리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나는 좀비처럼 주방으로 걸어갔다. 식탁을 열자 라면이 쌓여있었다. 가격이 싸다는 거 외에는 아무런 장점도 없는 라면이었다.


“후우, 인생...”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라면을 끓여 접이식 식탁에 내려놓았다. 후루루 짭짭. 인스턴트 특유의 기름과 짠맛이 입에 감돌았다. 나는 벽면에 붙은 2024 달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회귀했다. 그것도 22살이라는 나이로.


처음에는 고단한 삶에 드디어 정신병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웹소설을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잠깐 미친 것이라고.


허나 총명한 정신과 반복되는 생리현상을 통해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회귀했다. 정말로.


동시에 의문이 품어졌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신이 에휴 불쌍한 새끼라며 새로운 삶을 선물해준 걸까. 인생이란 수없이 반복되는 매트릭스에 불과한 것인가.


수많은 의문 사이에서도 분명한 것은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언제나 삶이 불가항력에 나는 바들바들 떨며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두번째는···


“요한 총각!”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빠르게 닌자처럼 창문 밑으로 숨었다.


“안에 있는 거 알어. 월세가 석 달이나 밀렸어! 이번 달도 안 주면 진짜 내쫓길 줄 알아! 어휴, 무슨 티비에서 천재 소설가라 더니 월세 낼 돈도 없어서···”


아주머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다시 말하겠다. 두번째는 과거의 나도 존나게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좁디좁은 집에 먼지가 휘날리고 가구들은 녹슬어있다. 창문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래, 반지하였다. 2024년에 반지하라니. 노예제가 있던 시대에도 이건 좀 아닌데 라는 말이 나올 정도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고아니까.


정확히는 어머니가 살아있지만, 무명소설가인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 한의사 재혼하고 나를 버렸다.


이해는 간다. 직장인도 아니고 한의사니까. 대한민국에서 전문직은 무적이었다. 이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의치한약수(의대 같은 6년제 의료계열과) 하나만 걸려라 라는 마음으로 수능을 보는 사람들이 대변한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벽을 등을 기대 스르륵 미끄러졌다.


사회초년생은 힘들다.


고아는 서럽다.


고아+사회초년생은 힘들고 서럽다.


나는 다시 한번 방구석을 훑었다.


쓰레기 같은 집이 마음에 드는 듯 제멋대로 비행하는 파리와 창문 바깥에서 시끄럽게 들리는 직장인의 발소리. 얼마 남지 않은 싸구려 라면.


저번 삶에서 가난 끝에 고독사했던 나의 생존 본능이 적신호를 보냈다.


가난부터 벗어나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무리 고결한 철학이나 통찰도 배고픔과 추위 앞에서는 한낱 잡생각에 불과하다. 나에게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현상을 해석하기 전에 일단 가난부터 해소해야 했다.


창문 바깥을 슬쩍 바라보았다. 좋다. 아주머니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주방에 라면 냄비를 내려놓고는 방바닥에 털썩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가난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나는 과거로 회귀를 고려하여 로또 번호를 외우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코인이라도 사려고 봤는데 지금도 1억이다. 미래의 코인 가격은···음, 나중에 알려주겠다.


미래에 일어날 연예계 비밀들을 X스패치에 팔아버릴까 고민도 했지만, 안타깝게 그들은 스타가 되기 이전이거나 데뷔하지도 않은 이들이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가.


“소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들썩였다. 고개가 푸욱 내려갔다.


“···한심한 새끼.”


한번 인생 말아먹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 나에겐 소설로 성공할 재능이 없다는 건 충분히 알았을 텐데.


다시 시작한다고 한들, 성공 따위는 못 할 것이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


아니, 있었다.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는 나에게도 소설로 돈을 벌 방법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펜과 근처 교회에서 주는 전단지를 꺼냈다.


재능 없는 내가 오로지 ‘소설’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


타인의 소설을 훔쳐 오는 것이다.


나는 미래의 세상사는 잘 몰랐지만, 소설에 관한 것은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물론, 타인의 문체나 스토리텔링 능력에 따라 소설의 질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용’ 만으로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는 소설들이 있고, 나는 그것을 전부 알고 있다.


“특히, 이 소설...”


내 손가락이 한 문구를 가리켰다. 소설의 등장만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 이것을 내가 먼저 집필한다면...


글씨를 끄적거리던 내 손이 멈췄다.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나의 가난을 벗어나자고 타인의 창작물을 훔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평생을 소설에 헌신하며 살았기에 알 수 있다. 소설을 훔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훔치는 행위이며, 동시에 내가 살아왔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는 과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


발바닥에 감촉이 느껴졌다. 들어 올리니 무언가 보였다. 바퀴벌레였다. 벌레는 몸통이 으스러져 살겠다고 다리를 휘적이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돌아갔다.


반지하 창문 틈새 사이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녹슨 가구에서 흘러나오는 먼지, 방 구석구석을 비행하는 파리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영화를 재생하듯 펼쳐졌고, 그것은 나의 집이었다.


변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변하지 않을...


“···병신.”


나는 우울한 기분에 두 팔뚝을 부여잡아 몸을 웅크렸다. 눕고 싶었지만, 바닥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가 있을까 두려웠다. 파리가 내 주위를 앵앵거렸다. 빌어먹을 녀석아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으니 꺼지지 않는다면 몸통을 찌부시켜버릴...


그때였다.


띠링-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리더니 한 문구가 눈에 띄었다.


[천화예대 대중소설창작과 공지]


나 대학생이었나...?


기억났다.


나는 무명소설가인 아버지가 속했던 천화 문고의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진학할 수 있었다. 천화 문고는 어릴 적부터 소설을 쓴 나를 통해서 일명 ‘어린 천재’ 마케팅을 이행했다.


어린 천재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미디어에 나를 이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린 천재에 주목했고, 천화 문고는 나를 통해 수익을 올렸다.


물론, 나는 돈을 벌지 못했다. 왜 돈을 못벌었냐고 말한다면, 고개를 들어 아이돌 기획사를 보게하라.


“학교라...”


학교에 간다고 막상 달라지는 것도 없을 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


하늘에서 벚꽃이 휘날리고 기분 좋은 들새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여대생 한 명이 낭만에 젖은 표정으로 입구를 바라본다. 풋풋한 얼굴을 보니 이제 스무 살 같았다.


그때였다.


바람이 불며 여대생의 치마를 스쳤다. 마치 영화장면처럼 치마가 펄럭 휘청거렸다. 고딩 티도 벗지 못한 귀여운 곰돌이 모양 팬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앗!”


여대생이 붉은 홍조를 띠며 치마를 급하게 내려 주위를 노려보았다. 근처에 있던 남학생들이 급하게 시선을 피했다. 나 또한 고개를 돌려 학교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결국, 왔네.”


고민 끝에 대학에 다니기로 했다.


이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정할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산다는 행위는 불가촉천민으로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 80% 시대에 고졸로 산다는 건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죽음을 면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며 나치독일에서 유대인으로 살아남는 것과 동일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


그래. 솔직한 마음으로는 후회였다. 청춘을 쓸데없이 낭비했다는 깊은 후회가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소설에 재능이 없던 탓에 버려졌지만, 그때 이후로 20년 이상 글을 썼기도 했고. 뭐 정 안되면 전과라도 해버려서 학사라도 따면 되니까.


대졸로 산다면, 적어도 회사에 취직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전화예고는 나름 명문대니까. 심지어 나는 과거의 경험까지 풍부했다. 기업에 들어가도 신입 사원들 사이에서 엄청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웹소설처럼!


말단 사원이 대기업에서 씹캐리함.


대기업 신입이 일을 미친 듯이 잘함


신입 사원 미쳐 날뜀.


“...”


시답지 않은 망상을 뒤로하고 나는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학교의 풍경이 드리웠다.


휘날리는 벚꽃과 동아리 모집을 위해 거리에 나온 학생들과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신입생들.


“···엄청 오랜만이네.”


나는 과거의 사진첩을 바라보는 노인처럼 학교의 거리를 천천히 음미했다.


어릴 적에는 학교란 곳이 싫었다.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인생은 원래 지옥이야 라며 센치해진 것도 있었고. 너넨 놀아라. 난 성공해서 네놈들을 비웃겠다. 같은 멍청한 생각도 있었으니까.


나이가 들고나서는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던 것을 알게 되고 아쉬움만 들었지.


시간은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고 거침없이 흘러간다.


농담이 아니다. 어른들이 내가 벌써 30살이라니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때 그럴 걸이라며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개탄한다고 한들 그때의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대부분 흘러가 버린 시간을 아쉬워하며 후회 속에 살 뿐이었지만, 나는 달랐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가...”


이 기적과도 같은 현상의 이유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21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껴지는 감정의 파도를 음미할 때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걸쳤다.


“오랜만이네, 김요한.”


고개를 돌린 곳에는 남자 한 명이 나를 보며 작위적으로 입가를 쭈욱 찢으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에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순간 녀석이 손가락으로 입구의 여대생들을 가리켰다.


“김요한, 보여...? 새로온 신입생들.”


녀석은 흡족스럽다는듯 입가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과연, 나는 얼마나 많은 신입생을 따먹을 수 있을까.”


뭐지 이 좆같은 새끼는?


개소리를 듣자마자 이 녀석이 누군지 떠올랐다.


천화예대 1학년, 김진석


고등학교 시절에 백일장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녀석.


이 녀석이 이렇게 병신같이 웃는 이유는 단순하다.


소설 ‘인간 실격’에 주인공 ‘고죠’라는 인물이 존재한다. 김진석은 그러한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고는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주인공이 여자를 존나 따먹고 다녔으니까.


“되도록, 전부 처녀였으면 좋겠네. 뭐든지 처음이 좋은 법이니까.”


내가 대학을 싫어한 두번째 이유가 생각났다.


글쟁이들은 대부분 이놈처럼 뇌에 구멍 난 정신병자들이 대다수였으니까.


“너도 나를 잘 따라온다면 여인 한두 명쯤은 양보해줄 생각이··· 김요한 같이 가!”


나는 떠드는 녀석을 무시하고 나는 제 갈 길을 갔다.


*


대중소설창작과 교실에 앉은 나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내 옆자리라니. 운이 좋은 걸 김요한.”


이 시끄러운 녀석이 옆자리인 이유도 있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혐오는 우리들 같은 선진적인 사상을 가진 문학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학이라는 건, 일종의 패러다임 파괴다. 새로운 믿음을 창조함으로써 시대를 개척하는···”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을 입고 자아를 마구 뿜어대는 대중소설창작과 학생들.


소설가는 정신병자다.


원래 예술을 하는 인간이 뇌에 구멍 난 거야 어떤 분야든 있는 일이지만, 소설가에게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뭐? 내가 틀렸다고? 그건 니가 남성 우월주의에 속하고 커뮤니티에 뇌가 녹아버린 평균적인 한국 남성이라 그래.”


“내 문학이 부정하다니. 역시가 고등학교 때 백일상 금상도 못 타본 천민이랑은 대화가 안 되는군. 예고도 못 나온 하류층 쓰레기 답네.”


그들의 거칠고 진한 자아와 낮은 사회성은 타인을 묘하게 빡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자신은 특별한 존재고 나의 예술은 오로지 나만이 소유할 수 있다. 타인은 대부분 미개하다!


젊은 청춘이란 한 번쯤은 가지는 사고방식이라 또래 아이들은 거부감이 덜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40대의 정신 나이를 가진 나에게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뇌가 불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러던 도중 김진석과 눈이 마주쳤다.


내 시선을 받은 김진석이 씨익 웃는다.


“김요한,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구나.”


김진석이 앞자리에 앉은 여자를 가리켰다.


“미안하지만. 저 하얀 치마는 내가 먼저다. 두번째는 양보할 수 있어.”


“...”


이런 놈들하고 4년을 같이 다녀야 한다니.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부여잡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남자 한 명이 들어온다.


후덕한 얼굴과 풍선 같은 몸매. 안경 사이로 비치는 눈빛은 묘한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가 들어오는 순간 나는 그에게 시선이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스승이었으니까.


‘너에게는 훌륭한 재능이 있다. 아직 세상이 너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거야. 등록금이라면 내가 해결해줄 테니 학교에 다시 오는 게 어떠니.’


형편없는 재능 탓에 천화 문고에 버림받고. 그는 나에게 장학금을 대신 내주겠다며 학교에 다니는 걸 제안했다.


나는 당시에 추락하는 자신을 견딜 수 없어 거부했다. 어릴 때는 내가 진짜 천재인 줄 알았으니까.


학교에서 쫓겨난 뒤에 독거 생활을 하던 그는 나에게 자주 연락을 했다.


밥은 먹었냐.


돈이 부족하지는 않냐.


요즘 무슨 일은 없냐.


그는 원룸, 반지하, 고시원이었던 내 집에 꾸준히 찾아와서 문학에 대한 가르침을 이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교수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그가 나같은 떨거지를 챙겨준다는 것이.


‘언제든 학교에 돌아오고 싶으면 말해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죽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유가족이 전해준 물품에는 내가 썼던 소설들이 있었다. 원고들은 하나같이 손때가 가득 묻어 헤져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아는 놈들도 있겠지만, 일단 내 소개를 하마. 반갑다. 나는 대중소설창작과 학과장 정희찬이다.”


정희찬 교수의 한마디에 아이들의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가를 지망한다면, 그를 모를 수 없었다.


동양인 신분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으니까.


소설은 물론, 애니메이션화를 통한 상업적 성과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업적이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다.


“간단하게 학과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하마.”


정희찬 교수는 그대로 학과와 관련된 커리큘럼이나 간단한 소개를 이어갔다.


“천화 문고 출판매니지먼트부에서 천화예대 신입생 중 몇몇 학생들을 섭외하고 싶은 명단이 있다는데. 호명하는 학생은 참석 여부를 나에게 말하면 된다.”


정희찬 교수의 말에 몇몇 학생들이 눈빛을 반짝거렸다.


천화 문고는 가끔 이렇게 미디어에 나갈 학생들을 모집하고는 했다.


대중소설창작과에 재능이 있는 보석들을 미리 미디어에 내보내서 키워놓겠다는 뜻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지금 호명되는 학생들은 천화 문고라는 대기업이 밀어주는 아이들이라는 뜻이었다.


“장이수, 이백화···”


정희찬 교수가 아이들을 호명했다.


그리고,


“김요한.”


내 이름을 불린 순간 공간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나를 향해 감정이 묻어있는 시선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김진석이 질린다는 듯 턱을 포개며 중얼거렸다.


“천재도 피곤하겠구먼.”


“천재...?”


내가 의문이라는 듯 중얼거리자 김진석은 왜 이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너도 알잖아. 재들이 지금 무슨 감정으로 너를 쳐다봤는지. 소설가를 지망하는 애 중에 널 모르는 애가 어딨어. 천화 문고가 밀어주는 천재 소설가 김요한을.”


이해했다. 천화 문고의 ‘천재’ 마케팅 덕에 나는 각종 미디어에 나오며 대중에게 보여졌다.


이들에게 나는 자신이 선망하는 분야에 독보적인 천재로 비치는 것이었다.


“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다시 한번 시선을 훑었다. 어린애들답게 시기, 질투 같은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본 김진석이 떨떠름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천재 소설가 김요한은 이런 시선마저 즐기는 거냐...? 못본 사이에 재수가 없어졌군.”


내가 헛웃음을 지은 건 이 새끼의 오글거리는 말투나 그들의 관심에 희열이나 만족을 느낀 게 아니다.


‘이런 눈빛이었군.’


그들의 눈이, 과거의 나와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찬란한 재능을 마주하며 그저 열등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시절.


“본래 강의는 이미지와 스토리창작 기초에 대한 수업을 다루는 거지만··· 처음부터 따분한 수업을 다루는 건 질색이라. 어차피 다들 입시 때 학원 다니면서 질리도록 했을 테고···”


정희찬 교수가 주위를 훑으며 씨익 웃었다.


“간단하게 합평을 진행하려고 한다.”


정희찬 교수의 말에 대중소설창작과 아이들의 침을 꿀떡 삼켰다.


합평이란, 서로가 쓴 글에 대하여 품평하여 피드백을 남기는 시간이다.


말이 좋아서 피드백이지 인간은 타인을 평가할때 누구나 공자와 니체가 되기 마련이다.


사회성 따위 없는 대중소설창작과 학생들은 거침없이 서로의 글에 대한 비평을 해왔고.


대중소설창작과의 합평은 항상 선혈이 낭자하고 시체가 나뒹구기 마련이었다.


“원고는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게 없어. 실기 당시 원고중에 재밌을 거 같은 놈들로 가져왔다.”


정희찬 교수가 서류가방에서 종이더미를 꺼내 조교들에게 턱짓했다. 조교들은 학생들의 앞에 복사된 원고를 내려놓았다. 나는 종이 한 장을 넘겼고 거기에는···


내 이름이 적힌 원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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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장, 45살 박수영(3) 24.08.30 14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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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장, 시작 24.08.29 16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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