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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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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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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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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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45살 박수영(5)

DUMMY

서울 서대문구 앞 천화 문고의 본사.


그곳에는 이제 막 새로 맞춘듯한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설렘 가득한 눈동자로 건물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남자의 목에는 신입 사원을 상징하는 사원증이 걸려있었다.


“드디어...”


신입 사원 장철우.


그의 인생을 요약하자면, 한탕주의자였다.


“씨발! 인생 뭐 있어!?”


초등학교 때는 딱지를 사느라 엄마가 아끼던 오븐을 고물상에 팔았고, 중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불법 토토에 전부 때려 박았다.


인생을 날로 먹으려던 그는 천성이 날먹충이라 대출까지 받아 코인에 몰방했지만, 전부 말아먹었다.


오늘도 청년 실업률에 보탬이 되며 인터넷에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삶을 이어가던 도중. 한 정책이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고졸 할당제 시행’


취업 취약계층을 위해 발의한 ‘고졸 할당제’ 덕분에 천화라는 대기업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아아···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이었다.”


장철우는 과거의 시간을 회고했다.


겨우 인서울 끝자락 해놓고, 자신보고 철 좀 들라며 매년 추석에 조리돌림을 하던 친척 형.


좋소 기업 다니면서 그래도 너 같은 백수보다는 내가 낫다고 꺼드럭거리던 고등학교 동창들.


“낄낄. 병신들.”


명문대 다니는 놈 제끼고. 공공근로 자리 대결하는 노인 놈들 보내고. 방구석 백수 새끼들 다 재겼다.


대학 가겠다고 고등학교 내네 공부하고. 학부 때도 열심히 살면 뭐하는가. 자랑스러운 우리 행정부가 나같은 사람도 대기업 보내주겠다는데.


시작하는 것이다...!


고졸 신화의 역사가...!


고졸 신입 사원이 미쳐 날뜀.


고졸 사원이 여사원을 전부 꼬심.


망상을 마친 그가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쉰 뒤에 천화 문고의 사옥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출판 매니지먼트 부서에 돌아온 장철우가 허리를 가득 숙이며 크게 외쳤다.


“안녕하십니까...! 신입 사원 장철우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출판 매니지먼트 부, 서예지 대리는 답했다.


“응? 개 못생겼네.”


그렇게 신입 사원 장철우는 또다시 거대한 권력에 의해 교정교열부로 이동되었다.


출판 매니저먼트 부서에 아메리카노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백희산이 들어온다. 그가 주위를 기웃거렸다.


“뭐야, 이번에 신입 사원 오기로 했는데 어디 있어.”


“제가 교정교열부로 보냈는데요?”


“뭐라고...?”


백희산이 경악했다. 교정교열부는 앉은자리에서 퇴근 시간까지 교정만 반복하는 부서다. 그곳에 들어간 자들은 전신의 혈맥이 뒤틀리며 주화입마에 빠져, 정신이 붕괴하고는 했다.


악명으로만 비교하자면, 세계 최악의 교도소인 알카트라즈 교도소와 비슷한 수준. 그렇기에 나라에서 억지로 일자리 체험하라고 시키는 청년들에게 짬을 때리는 부서였는데.


“신입을 그곳에 보내면 어떡하라고! 아니, 애초에 인사팀에서 그걸 허락해줬어?”


서예지 대리가 요구르트를 쭈압 거리며 답했다.


“부탁하니까 해주던데요? 앞으로 그런 부탁 있으면, 걱정 없이 말해달라는데.”


“그럴 리가···”


이제 막 온 신입 사원의 부서를 일개 대리가 어떻게 변경을 한다는 말인가. 부정하려던 백희산 팀장이 눈앞의 존재가 무엇인지 상기했다.


‘빌어먹을 금수저...’


고도로 발달한 핏줄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는 없다. 거대한 권력앞에서 백희산은 크게 절망했다. 가만히 있던 서예지 대리는 발끈하며 항변했다.


“아니, 애초에 사기를 먹은 건 제 쪽이라고요. 잘생겨서 뽑았더니 갑자기 차르 봄바가 있었다니까요.”


서예지 대리가 내민 이력서에는 젊은이들에게 유행한다는 ai 프로필 같은 사진이 있었다.


“지금 신입 사원을 얼굴 보고 뽑았다는 거야?”


“그럼 뭘 보고 뽑는데요.”


서예지 대리의 초월적인 뻔뻔함에 인생 좀 살아본 백희산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고졸에 스펙도 없어서 실무경험도 없어서 일도 못할 테고. 영어도 못 하고 사회성도 없어서 영업 맡기기에도 무리가 있고. 대충 탕비실이나 프린터나 채우는 일만 시킬 텐데. 그걸 가만히 하겠어요? 자기가 남자로 태어나서 이런 일이나 해야하나며 쓸데없이 자존심이나 부릴 테고. 자기를 고졸이라고 차별한다고 인터넷에 글이나 쓸 테고. 그게 특정 당해서 우리 부서가 학력으로 차별한다고 언론에서 떠벌려지고. 우리 부서는 와해하고. 저야 집이 좀 살아서 괜찮지만, 백희산 팀장님은 회사에서 해고당하면 나이도 있어서 어디 이력서 넣지도 못하고. 또 사람이 힘든 일은 못 해서 방구석에서 백수 생활이나 하다가 아내한테 무시당하고. 자식한테는 다른 아빠들은 아무리 못해도 200, 300층인데 아빠는 뭐야! 같은 무시나 당하고. 나중에 아내한테도 버림받고, 너무 외로워서 동남아 결혼 알아보다 작업당해서 인천 앞바다에 버려질 수도 있는 걸 제가 예방해드린 거라고요!”


가만히 경청하던 백희산은 생각했다.


‘일리 있는데?’


백희산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 미친년이랑 대화하면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그가 질려버린다는 얼굴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됐고! 이번에 김요한 작가 신작 나왔지.”


“예.”


“출판사가 어디인데.”


서대리가 구비되어있던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음,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라는 신생 회사네요.”


“로리?”


“좀, 글로리요.”


“풉. 글로오리이이?”


백희산이 웃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이름부터 나는 개좋소라는 티가 나는 회사였다. 이름있는 출판사를 가도 모자랄 판에 저런 회사를 고르다니.


서대리가 구비되어있던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전자책과 오프라인을 동시에 출간했어요. 이미 각종 플랫폼에는 등록이 완료되었고. 오프라인도 아마 어제저녁쯤에 서점들에 입고 되었을 거예요. 초판 발행 부수는···”


서대리가 서류에 눈을 부라렸다.


“···초판 발행 부수가 3만 권가량이네요.”


“뭐라고...?”


백희산이 화들짝 놀라 서대리가 준비한 서류를 읽었다. 확실했다. 제본소를 통해 3만 권의 책을 찍어냈고, 지금 보관 창고에 쌓아있다는 정보였다. 웬만한 제본소에 인맥이 닿아있는 천화였기에 확실한 정보였다.


보통 신입 작가나 김요한처럼 퇴물작가의 초판 발행 권수는 5000~10000권이 정석이다. 책을 출간하는 데는 대단히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의 교정 교열과 디자인에 대한 인건비부터 제본소를 통해서 돈을 주고, 책을 찍어내는 비용까지. 그것뿐이겠는가. 보관부터 유통까지 막대한 돈이 지속적으로 지출된다.


그렇기에 나름 잘나가는 기성작가도 초판 발행 부수는 보수적으로 가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김요한은 3만 권이라는 파괴적인 권수를 찍어냈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였다. 작가가 병신이거나, 출판사가 등신이거나


출판사가 등신일 가능성은 적었다. 원래 중간에서 수수료 챙겨 먹는 이들이 호구 짓을 안 한다. 인생의 교훈이니 참고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가능한 수는 하나였다.


‘김요한이 이런 짓을 했다고...?’


백희산이 의아했다. 김요한이 아무리 뇌에 똥만 찬 MZ세대라 해도 이 바닥에서 나름 해 먹었던 작가다. 그런데 이런 가벼운 실수를 하다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자신 있다는 건가.”


하나의 생각으로 귀결되었다. 나는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이 정도 권수를 팔 수 있다는 자신감.


“지금 우리 서점에도 김요한 작가 신작 들어왔지?”


“예, 미리 시키실 줄 알고 조과장님한테 사 오라고 시켜놨어요.”


“좋아.”


백희산이 씨익 웃었다. 대리가 과장한테 심부름을 시키는 점이 조금 걸리지만. 뭐 나름 MZ하고 괜찮지 않은가. 수평적인 구조. 음, 나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과장이 책을 가져왔다.


“뭐야, 10권이나 사 왔어?”


“예. 아무래도 김요한 작가다 보니까 우리 부서에서도, 신작을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아서요.”


조과장이 나 잘했죠. 하는 헤헤 웃었다.


이 멍청한 놈! 우리 욕하고 나간 놈의 책을 열권이나 사주다니. 백희산은 조과장을 평소처럼 갈구려다 말았다. 얼마 전에 그의 딸이 회사 입구에서 아빠- 하며 안겼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래 고생했어.”


“고생했어요. 조과장님.”


자리에서 돌아가는 그를 뒤로하고, 백희산이 책의 표지를 읽었다.


“45살 박수영?”


“디자인은 나쁘지 않네요.”


책의 제목이었다. 디자인은 단순했다. 해변가에서 한 여인의 뒷모습을 비추며 쓸쓸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 수채화를 사용한 덕에 나쁘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백희산이 천천히 책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개저씨 같았던 그의 눈빛이 프로 편집자로 변해있었다. 서예지 대리도 집중하는 그를 따라 읽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책을 덮었다.


“오묘하군.”


그것이 김요한의 신작에 대한 프로 편집자 백희산의 한 줄 평이었다. 평소와 같이 나쁘지 않은 필력과 스토리텔링 능력. 하지만, 이번 소설에 다른 점이 존재했다.


“이건, 사회고발물이군.”


45살 박수영의 내용은 이러했다. 80년대생 박수영의 삶을 조명한다. 일련의 사건을 전개하며 한국 사회에서 그가 여성으로 겪는 사회적인 억압과 불평들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이제야 김요한이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알 거 같아.”


소프트 파워(Soft power).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힘이 아닌, 문화가 가질 수 있는 고유의 힘. 사회고발물은 창작물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소프트 파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고발물은 언제나 시대의 변화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켰다. 김요한이 선택한 돌풍은 페미니즘(Feminism)이었다. 여성에 대한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하지 말아야 하는 사상.


“서대리는 이 책 어떻게 생각해.”


“흥행 여부를 묻는 건가요.”


“응.”


서대리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답했다.


“모르겠네요.”


“그렇지.”


그것이 천화 문고의 편집자라는 엘리트들의 답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떠나서 출판계의 주 소비층은 여성이다. 45살 박수영은 여성들에게 친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상업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다.


그렇다고 흥행을 장담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었다. 45살 박수영 이전에도 페미니즘 소설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이너 장르로 분류되어 상업적인 성과를 이루는 것에 실패했다.


백희산이 책의 표지를 검지로 두들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이 책은 실패할 거다.”


그것이 전문가인 백희산의 결론이었다.


첫번째 이유는 너무나도 편파적이다. 김요한의 소설을 읽던 주 소비층은 남자다. 하지만, 45살 박수영이 담고 있는 내용은 도저히 중립적으로 서술되었다고 볼 수 없다.


두번째 이유는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김요한의 주 소설과 다르게 이 소설은 누가 봐도 여자들 똥꼬 한번 시원하게 빨아서 크게 해 먹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가.


‘김요한 씹새끼야. 우리나라 여성 독자들이 만만하냐?’


생각을 마친 백희산이 휴대폰을 들었다.


“어, 강팀장. 나야. 이번에 김요한 작가한테 올라올 프로모션 전부 쳐내. 이달에 신작 칸에도 올리지 마.”


프로모션(Promotion)


마케팅의 일종으로 제품의 광고나 이벤트 기획 등을 통해 고객이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행위.


플랫폼에 대문짝만하게 뭐 이달에 최고의 작품이니 안 보면 인생손해라니 광고를 때리는 것들도 프로모션의 일종이다.


하루에 플랫폼에 업로드되는 글만 해도 수천 개가 넘어간다. 사람들은 굳이 누렁이처럼 심해에 있는 소설을 탐닉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프로모션이 없는 작품은 자연스럽게 폐사한다.


백희산은 천화 문고 내부의 플랫폼에서 45살 박수영에 대한 프로모션을 쳐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어, 시원아 오랜만이네. 이번에 니네 어플에 김요한 작가 신작 올라왔잖아. 그거 말인데···”


백희산은 본인이 가진 인맥을 동원해 각종 플랫폼에 김요한의 신작에 대한 프로모션을 전부 지워내기 시작했다. 모든 일과를 마친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낄낄. 김요한 씹련아. 감히 천화에 개긴 대가다.”


그 악랄한 과정을 지켜보던 서예지 대리가 한심하다는 눈빛과 보내고, 45살 박수영으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그녀도 45살 박수영이 실패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이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비슷한 모델의 글이 단 한 번도 상업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이터와 프로모션이 없는 작품은 폐사한다는 ‘당연한 상식’에 의거한 결론이다. 이는 전적으로 이성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서예지 대리는 이번 작품에서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아지랑이를 느꼈다. 이는 도저히 언어로서 서술될 수 없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이는 백희산과 서예지 대리의 성별에 따른 차이였다. 서로가 다른 삶을 살아왔기에 정보를 해석하는 것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백희산 팀장은 서예지 대리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지금의 행동이 어떤 여파를 불러오게 될지.


*


어두운 새벽.


8평 남짓한 사무실에 두 여자가 앉아있었다.


중앙에는 어디 쓰레기 판매장에서 주어온 듯한 탁자가 있었으며, 컵라면의 탑이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앞에서 떡진 머리의 여자가 졸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고 있었다. 그때 모니터에서 띠링 소리가 울린다.


“헉!”


여자는 동글이 안경을 쓰고 모니터를 부라렸다. 확인한 그녀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모, 모든 플랫폼에서 45살 박수영에 대한 프로모션이 내려갔어요.”


그 소리를 들은 양복을 입은 여인은 날카로운 눈빛을 뽐내며 씨익 웃었다.


“예상대로군요. 작전 실행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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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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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45살 박수영(8) 24.09.07 7 0 17쪽
8 1장, 45살 박수영(7) 24.09.06 6 0 14쪽
7 1장, 45살 박수영(6) 24.09.05 7 0 18쪽
» 1장, 45살 박수영(5) 24.09.04 10 0 14쪽
5 1장, 45살 박수영(4) 24.08.31 14 0 20쪽
4 1장, 45살 박수영(3) 24.08.30 14 0 17쪽
3 1장, 45살 박수영(2) 24.08.29 13 0 19쪽
2 1장, 45살 박수영(1) 24.08.29 15 0 18쪽
1 0장, 시작 24.08.29 17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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