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작가가 천재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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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싫어
작품등록일 :
2024.08.05 04:32
최근연재일 :
2024.09.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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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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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45살 박수영(7)

DUMMY

“오늘 회의에 다룰 안건은···”


정부서울청사 고층에 위치한 회의실. 평등부 차관 이미래는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지겹네 정말로.’


매일 같이 반복되는 국장 회의 업무에 평등부 차관 이미애가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애 차관은 전직 평등부 장관이 사직서를 제출함에 따라 장관 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래, 허수아비라는 뜻이다.


세간의 인식과 다르게 평등부는 하는 일이 많았다.


다문화가족 지원, 아동·청소년 성 보호, 이주 여성, 장애 여성 권익 보호 등등.


하지만, 우리 사랑스러운 국민들은 그딴 걸 알려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알빠가 아니었다.


밖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세금 빨아먹는 쓰레기 부서라고 욕먹고, 안에서는 매일같이 중노동이 반복된다.


정책 하나 내놓으면 여당 국회의원들은 툭하면 시어머니처럼 시비를 걸고, 언론은 세금으로 지랄한다는 기사를 도배했다. 심지어 요즘은 국무회의에서조차 은따를 시킨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모두가 나를 알고, 돈도 쥐꼬리만큼 받는다. 일도 많이 한다.


‘때려치우고 싶다.’


이미애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회의실 안쪽 유리가 자신을 비추었다. 화장으로 가리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푸석한 피부와 갈라진 주름에 그녀가 쓴웃음을 지었다.


‘완전 할머니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인간은 변화한다.


외적으로는, 피부가 처지고 주름이 생긴다. 근육이 감소하고 지방이 늘어나 볼품없는 몸매가 된다.


내적으로는, 나이를 먹는다고 뭔가 성숙해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애도 마찬가지였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이었던 그녀는 자신에게 비범한 운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나 변호사가 아닌 세탁소를 운영하는 아버지조차 자신에게 내려진 시련에 불과하다고 믿고있었다.


위대한 인물들 자서전에도 나는 어릴 적에 가난했고,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정되었다.


세상에는 똑똑하거나 운이 좋거나 재능이 넘치는 인간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놈들이 대통령하고, 국무총리하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자신도 운이 좋은 편에 속해 평등부 장관 대행 자리에 올랐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정부는 평등부의 폐지를 주장했다. 야당의 반대에 목숨은 건졌으나, 아무런 힘도 못쓰는 식물부처로 전락해버렸다.


전직 장관은 평등부 해체해체 거리다가 행사 하나 말아먹고, 불명예 퇴직을 했다. 정부는 이제 평등부가 용산으로 기침만 해도 싸커킥을 갈길 기세였다.


그냥 적당히 사고 치지 말고 찌그러져 있다가 정년퇴임 하는 것이 이미애의 운명이었다.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정책 확대 건은 보류하는 거로···”


회의를 진행하는 공무원의 목소리에 이미애의 상념이 깨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미애의 말에 옆에 있던 차관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실은 그게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지원이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는 평가가 많아서 확대 건은 보류하라는 게 정부의 의사라···”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성매매 피해자는 개인의 자발적 의사가 아닌 사회가 만든 피해자다!


이 나라! 이 사회! 이 유리천장이! 여성을 가난하게 만들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것이란 말이다!


코인 하는 MZ세대 빚 갚아줄 돈은 있고, 미래세대의 어머니가 될 여성에게 쓸 돈은 없는 것인가!


젠더 감수성이 없으니 이 나라가 출산율이 바닥인 것이다.


“아니 그래도···”


말을 하려던 이미애가 자신에게 쏠린 공무원들의 시선을 파악했다. 제발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말고 대충대충 흘러가자는 눈빛이었다.


꾸짖을 갈(喝)이라도 외치고 싶었지만, 무리였다. 자신은 이제 막 장관 대행을 맡은 터라 내부 장악력이 약했다.


“···30분 뒤에 다시 회의하죠.”


이미애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관실에 도착한 그녀는 철퍼덕 의자에 몸을 던졌다.


이 나라는 쓰레기다! 전부 썩어버렸다! 누구도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야당에 폐지반대에 따라 목숨만 겨우 보존하는 파리 새끼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미애는 우울한 감정을 느꼈다. 의사가 말한 갱년기가 이건가. 누군가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우웅.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평등정책국 국장이었다.


“장관님. 잠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무슨 일이시죠?”


국장이 헤실헤실 웃으며 쟁반 하나를 내밀었다.


“장관님 기분이 좋지 않으신 거 같아서 말입니다. 기분 좀 풀어드리러 왔죠.”


그녀가 책상에 약과와 수정차가 가지런히 놓인 쟁반을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출장 가는 길에 비싸게 주고 산 약과입니다. 유명한 장인이 만든 건데 쫀득하니 맛있더라고요. 장관님 생각나서 하나 사 왔습니다.”


“...”


웃는 얼굴에 거절할 수도 없으니 이미애가 약과를 집에 입안으로 넣었다. 푸석한 식감과 정제되지 않은 은은한 단맛이 입안에 퍼져 나쁘지 않았다.


“으음, 엄청 맛있네요. 꽤나 비쌀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온나라에 출장 시작 버튼 미리 올려놔서 거진 공짜로 먹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렇군요.”


으음, 왜인지 맛있다 했더니 설탕 코팅보다 더 달았던 혈세 코팅이었다. 원래 돈 주고 사 먹는 것보다 공짜가 맛있는 건 상식 아닌가.


“그리고 장관님 최근에 유행하는 책인데 이거 읽어보셨습니까?”


국장이 책 하나를 내밀었다.


“갑자기 무슨 책입니까.”


이미애가 미약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바빠 뒤지겠는데. 책은 무슨. 책이란, 너무 멍청하게 사는 거 아닌가 싶을 때 죄책감에 가끔 한 시간 정도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장관님과 제가 세대가 겹치다 보니 장관님도 재밌게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가 책을 이미애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혹시 모르죠. 장관님의 고민이나 그런 것들이 책이 해소해줄지. 저는 그랬거든요.”


국장이 그 말을 끝으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애 장관 대행이 책상에 놓인 책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엄청 오래됐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책을 읽은 지가 언제인지도 까먹었다. 옛날에 공부할 때는 아주 달고 살았는데.


이미애가 책을 바라보았다. 표지에는 수채화로 그려진 여인이 쓸쓸한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나름 나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한번 읽어볼까?’


흥미에 이끌려 이미애 장관 대행이 책을 펼쳤다.


10분...20분 시간이 흐르고.


평등부 장관실에는 책을 넘기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린다. 그때 누군가 들어온다. 회의를 진행하던 과장급 공무원이었다.


“장관님 회의에 참석해야···”


“오늘 회의는 취소입니다. 각 부서에 전달하세요.”


이미애 장관 대행은 책에 눈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공무원이 곤란하다는 듯 몸을 움츠리고는 항변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아가리 닥치세요오오옷!!!”


이미애 장관 대행이 격노했다.


“그딴 국정 운영이 한 여성의 감성보다 중요합니까?”


“그게 무슨···”


“젠더감수성좀 기르세요! 그러니까 세상이, 출산율이, 대한민국이...! 이 모양 이 꼴 아닙니까!”


이미애 장관 대행이 혐오스럽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직원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젠더 감수성이 없는 당신은 평등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일부터 교정본부로 출근하세요.”


순식간에 9급 교도관으로 강등당한 그녀가 절규했다.


“자, 잠시만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미애가 장관실 책상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거구의 여성 두 명이 들어온다. 그녀들이 직원의 양쪽에 서서 팔짱을 끼운다.


“자, 장관님 잠시만···”


그대로 바깥으로 끌려나가는 직원. 뭐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일개 공무원의 해명을 들을 정도로 장관은 자비롭지 않았다.


물론, 이는 심신 미약 상태에 이미애의 망상일 뿐. 현실은 그저 회의를 30분만 더 밀어달라는 요청밖에 할 수 없었다.


직원이 장관실 바깥으로 나가고. 이미애의 눈가에 무언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참고 있던,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감정의 응어리가 터져 나와 버린 것이다.


“으흐흑...”


이 책은 나의 이야기 아니, 7080년도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이미애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랐다.


집안 남자 어른들과 같은 밥상에 앉았다고, 간장 종지로 대가리를 후리던 할아버지.


책을 찢으며, 무슨 여자가 공부냐며 애나 낳고 주방일이나 하라던 아버지.


자신을 보며 남자아이를 낳았어야 한다며 혀를 차며 못마땅해하던 할머니.


어릴 적 이미애는 궁금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걸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다. 그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태어난 그 자체가 잘못이었던 것인가.


저들은 왜 남자라고 공부를 할 수 있고, 같은 밥상에 오를 수 있고, 저토록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왜 육아와 집안일은 여자의 것인가. 왜 여자는 대학을 가면 안 되는가. 왜 여자라는 이유로 꿈과 욕망을 버리고 누군가의 남편으로 평생을 헌신해야 한단 말인가.


어째서 이리 가혹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합리한다는 말인가.


가정의 책임을 지는 것에 따른 권리라면, 왜 우리에게는 그러한 권리조차 취득할 기회를 주지 않는가.


‘인정 못 해.’


이미애는 결심했다. 언젠간 자신이 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뒤바꾸기로.


아버지에게 걸려 몰래 산 책이 찢겨도 교복을 팔아서라도 다시 구매했다. 잠을 줄이고 무릎을 연필로 찍어가면서까지 공부를 했다.


대학에 가서도 연애 한번 하지 않고, 고시를 준비했다. 임용된 이후로도 승진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몸을 갈아가며 일을 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가부장제는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과 취업률이 남성과 엇비슷해졌고, 여성의 인권신장을 위해 사회는 수없이 많은 정책을 내놓는다.


이제는 모두가 말한다.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다고.


허나, 이미애가 바라는 세상이 도래했을 때는.


그녀는 너무나도 늙어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오래된 동물의 가죽처럼 갈라지고 쳐졌고, 윤기가 나던 머리카락은 모든 생기를 잃은 듯 하얗게 물들었다.


과거의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으며, 이제는 변해가는 자신을 보는 것이 설레기보다는 끔찍했다.


이제는 그녀에게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 책은 조용히 속삭였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자신조차 잊고 살았던 상흔을 어루만지며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이미애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침묵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한(恨)이었다.


수십 년간, 그녀조차 외면해왔던 한이 조금씩 그녀의 몸을 씹고 뜯고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숨결로서 입 바깥으로 빠져나와 그녀의 전신에 들러붙는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눈을 떴을 때. 세상을 집어삼킬 악이 태어났다.


과거의 자신은 힘이 없기에 이불속에 파묻혀 그저 삶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신에게는 힘이 존재한다. 평등부 장관 대행이라는 거대한 힘이...!


‘평등부 장관 대행이 힘을 쓰면 대한민국에 아이를 생기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게 해, 남녀 갈등을 고조 시켜 출산율을 떨어트리고. 남녀 유리천장 개선이라는 목적을 이유로 여성에게만 특혜를 주어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면···


이미애의 머릿속에서 세계를 집어삼킬 사악한 음모들이 마구 피어난다.


대한민국 여성에게 고통의 해방을...!


남성들에게 복수를...!


이 세계는 지옥(地獄)으로...!


-라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차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그녀의 고도의 지성이 이성을 되돌렸다.


별개로 이 소설은 좋은 책이었다.


인간 이미애가 아닌, 행정전문가로서 말이다.


콘텐츠에는 대중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콘텐츠는 정책과 항상 연관이 있었다.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실리를 가져오는 것보다는 이슈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힘들게 뭐 해도 국민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애는 사회복지사가 아니었다.


이 소설은 여성 관련 사회문제들을 대부분 내포하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많은 여성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젠더적 차이로 인해, 남성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소설이긴 하지만 이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을 터.


’이걸 정책으로 이용한다면 어떨까.‘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회의실에 돌아갈 때였다.


회의실을 향해 걷는 그녀가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저 책을 콘텐츠로만 놔두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이어서 회의 진행하겠습니다. 먼저···”


회의가 계속됨에도 이미애는 집중할 수 없었다. 45살 박수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기 때문이었다.


그때, 한가지 생각이 뇌리에 번뜩였다.


“잠깐.”


장관 대행의 말에 회의가 중단되고 모두가 이목을 집중했다.


“지금 밑에 기획 조정 실장님 계신가요?”


“예, 아마도 있을 거예요.”


“지금 당장 회의에 참석하라 하세요. 논의할 게 있으니까. 그리고 홍보담당관님. 이번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한 홍보계획 전면 철회하세요.”


이미애가 미소를 지으며 한 권의 책을 들어올린다.


“지금부터 우리 부처는 이 책의 홍보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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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45살 박수영(8) 24.09.07 7 0 17쪽
» 1장, 45살 박수영(7) 24.09.06 5 0 14쪽
7 1장, 45살 박수영(6) 24.09.05 6 0 18쪽
6 1장, 45살 박수영(5) 24.09.04 9 0 14쪽
5 1장, 45살 박수영(4) 24.08.31 14 0 20쪽
4 1장, 45살 박수영(3) 24.08.30 14 0 17쪽
3 1장, 45살 박수영(2) 24.08.29 12 0 19쪽
2 1장, 45살 박수영(1) 24.08.29 14 0 18쪽
1 0장, 시작 24.08.29 16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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