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이 좋은 사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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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w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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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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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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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창에 찔린 채 창대가 걸려 버둥거리는 늑대.


나는 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하지만 바로 내리칠 생각은 아니었다.


바로 머리를 노려 즉사시키면 좋겠지만, 다친 맹수를 상대로 정면으로 다가가는 건 물리기 딱 좋다. 마지막 발악을 하니까.


그럴 바에는 살짝 몸을 틀어서, 이렇게.


“크헝!”


거 봐라.

앞으로 다가가는 척을 하니까 바로 달려들어서 꽉 물려고 하잖아. 거의 모든 늑대가 이랬거든.


나는 딱 다물어지는 아가리를 피하고는 풀쩍 뛰어올라 체중을 실어 척추 중간을 장작 패듯 내리쳤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처절함이 가득한 깨갱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곰 같이 큰 동물이 아니라 늑대나 들개 같이 좀 날렵한 놈들은 이렇게 해서 움직임부터 봉쇄하는 게 더 낫다.


‘잘 가라.’


나는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재차 도끼를 휘둘러 뒤통수를 가격했다.


묵직한 도끼머리가 늑대의 털가죽 깊숙이 경추까지 파고들었다.


풀썩 쓰러지는 늑대.

심장소리와 숨소리가 잠잠해진 게 느껴졌다.


“사냥 성공.”


산을 타고 흐르는 산바람이 내 사냥을 축하하는 박수소리처럼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팔을 번쩍 들며 환호에 화답하고는 뒤처리를 시작했다.


“엇차.”


밧줄을 꺼내 나무에 늑대를 매달았다.

품에 넣고 다니는 사냥용 단검으로 목을 갈라 피를 빼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냈다.


좋아. 가죽 벗기는 거랑 고기 떼는 건 집에 가서 하면 되겠지.


동물이란 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쓸데가 많다.


이런 큰 짐승이라면 가죽과 고기에 뼈까지 쓸모가 있다.

당장 막대기 대용으로 쓸 수도 있고 잘 갈아서 도구로 탈바꿈할 수도 있거든. 망치도 만들고 괭이도 만들고 칼도 만들고.


뼈와 돌을 실생활에 주로 써먹을 정도로 이곳은 낙후된 마을이었다.


왜냐면 떠돌이 상인들은 하나같이 철 값을 너무 비싸게 불렀으니까. 보나마나 대재앙이 만들어낸 물류 붕괴와 원자재 생산지 파괴 때문이겠지.


금속 도구를 가지고 있는 집은 촌장네랑 우리 집을 포함해 고작 한 손가락에 든다.


사실상 촌장의 혈연이라 금속 도구 소지를 허가받은 것에 가까웠다. 그게 아닌 집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른 집들이랑 돌려쓰니까.


그렇다고 풍족한 건 또 아니다. 우리 집의 금속 도구는 솥, 부엌칼, 벌목도끼 셋 넷뿐이었다. 내가 괜히 나무창을 깎아서 쓰겠어? 아, 사냥용 단검은 내가 사냥을 배운 할아버지한테 받았다.


정착 초기에는 다른 사람들도 금속 도구를 많이 가졌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망가지거나 닳아 소실되었다. 대장장이가 없었거든.


그런 면에서 금속 도구를 무려 15년 넘게 흠 없이 관리해온 부모님도 대단하네.


전생에서는 어디든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금속이 이 마을에선 귀한 물질이라니, 정말로 다른 세상에 왔다는 실감이 드는 요소였다.


사람들에게 듣기론 이곳 평균 문명 수준이 근세 언저리쯤은 되는 거 같던데. 그게 이 정도로 몰락했다면 대체 대재앙은 어떤 대사건이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피 빠지는 동안 나무나 베어 볼까?’


이내 뚝딱거리는 거친 소리가 조용한 산자락 여기저기로 퍼졌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등허리에까지 불끈 힘이 들어가고 폐와 심장이 요동치는 격한 노동.


살아있다는 느낌과 함께 옆에서 전해져 오는 짙은 피비린내를 맡으며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늑대를 잡다니 운이 좋았다.

요새는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져 나오는 것들도 별로 없어서 아쉬웠는데 말이야.


살이 없긴 해도 사나흘은 먹을 수 있겠지?

여우 잡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보다 더 따뜻한 늑대 가죽이 생기다니.


아, 이거 망토처럼 걸치고 다녀볼까?

이제 추워지는데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지만, 이젠 내 사냥실력을 드러내도 되겠지. 키도 많이 컸으니까.’


예전이었다면 촌장에게 시체 처리를 맡겼을 테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등과 양손은 참 묵직했다.




***




마빈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서서히 내려앉을 무렵이었다.


“다녀왔어요.”

“그래, 다녀왔, 아니 그건 또 뭐야?”


마을의 누군가를 위해 가구를 조립하고 있던 조셉은 너무 놀라 나무망치를 발등에 떨어뜨릴 뻔했다.


“아. 늑대에요. 제가 나무 베던 데에 있었는데, 늙어서 무리에서 쫓겨났나 봐요.”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응?”

“그럼요. 제가 곰도 잡았는데 겨우 늑대로 다치겠어요?”

“넌 정말...... 됐다.”


조셉은 안도와 걱정이 반씩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떡한다...... 만삭인 사람을 데리고 떠날 수는 없는데......’


마빈은 고민 많은 눈빛이 자신을 스치는 걸 알았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해체나 해야지.’


피와 내장을 빼는 건 산에서 하고 왔으니까 가죽과 살을 떼 내고 무두질만 하면 된다. 아, 육포 건조 준비도 하고.


마빈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헛간으로 향했다.


메에에!


유유히 평화를 즐기고 있던 염소들이 늑대 냄새를 맡고 깜짝 놀라 안으로 우당탕 들어가는 소동이 일었다. 닭과 병아리들도 염소들의 갑작스러운 난동에 놀라 뺙뺙거리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잇, 진정해 이 녀석들아!”


결국 마빈이 본격적으로 가죽을 벗기는 건 가축들을 진정시키고 난 뒤였다.


놀란 가축들을 보듬느라 마빈은 자신을 누군가가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




“그놈이 또 늑대를 잡아와?”

“네. 큼직한 늑대를 잡아온 걸 똑똑히 봤습죠. 근데 또라니요? 마빈 그 녀석이 언제 늑대를 잡은 적이 있었습니까?”

“아니 곰 다음으로 맹수를 잡았다 그 말이지. 알았다.”


촌장은 조셉의 집을 염탐하던 이에게 빵 한 덩이를 주어 돌려보냈다.


‘으음, 역시 무서운 놈이야.’


촌장이 ‘또’라는 헛말을 내뱉은 이유가 있었다.


마빈이 늑대를 잡은 적은 처음이 아니었다.


5년 전, 마빈이 열 살일 때.

덩치가 또래보다 족히 머리 하나쯤은 더 크던 마빈이 밤중에 느닷없이 촌장을 찾아와서 말했다.


-늑대를 잡았는데요, 처리해주실 수 있나요?


사냥꾼 노인에게서 사냥법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꼬마애가 늑대를 잡아왔단 말에 촌장은 어이가 없었다.


-조셉이나 그 사냥꾼 영감한테 말 안하고?


-아...... 아빠는 걱정된다고 속앓이할 거 같고, 사냥꾼 할아버지는 혼낼 거 같아서요. 그리고 마을 어르신한테 부탁해야 가죽이랑 고기도 원활하게 상인들한테 팔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제가 해체하기엔 아직 솜씨가 그렇잖아요? 헤헤.


열 살에게 어울리지 않는 옅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순수하게 웃던 녀석.


촌장은 수수료를 뗀 만큼의 식량을 마빈에게 전해주었다. 조셉에게는 그냥 혈연으로서 도와준다는 변명을 붙여 가며.


‘키도 조막만한 녀석이 설마하니 직접 정면에서 짐승을 상대했겠어? 어쩌다가 함정에 빠진 죽은 늑대나 주워온 거겠지.’


하지만 그 이후로도 이 순진한 어린아이는 낙엽이 져서 배고픈 맹수가 마을 주변을 기웃거릴 시기가 될 때마다 늑대를 잡아와 촌장에게 해체와 판매를 맡겼다.


-뭐지 이놈?


그러고 보니 늑대 시체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명백히 직접 사냥했다는 증거였다.


대재앙 시기 죽은 시체들을 보면서 키운 촌장의 눈썰미는, 늑대 시체에 남은 자국이 점점 간결해져 간다는 것도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이놈 봐라......?


그때까지만 해도 촌장이 마빈에게 가지는 감정은 호의에 가까웠다.


-이놈이 내 친척이니까, 잘하면 내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다만 그 이유는 다소 음침했다.


촌장은 이 마을을 자신의 손아귀에 완전히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친척 패거리를 자경단 삼아 무력을 독점하고, 밖으로 나가 교역을 트겠다는 이를 몰래 살해하여 자원 유입과 상인과의 접점을 통제했다.


그런 입장에서 혈연으로 연결된 든든한 전투인원이 새로 생긴다면 반가운 일.


더구나 다른 이들도 아니고 자신에게 제일 먼저 시체를 보였다. 이는 자신을 우두머리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지금은 아니지만.’


촌장의 생각이 송두리째 바뀐 건 작년 봄부터.


그때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 전년도 겨울에 산에서 실종된 사냥꾼 영감이 죽어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그 사건을 덮을 더 큰 사건이 마을을 강타했다.


열네 살에 불과한 마빈이 곰을 죽여서 밤중에 끌고 온 것이다. 이 곰이 사냥꾼 노인을 죽인 놈이라며 그 증거로 시신에서 잘려나간 팔까지 되찾아왔다.


열세 살쯤부터 부쩍 자라기 시작해 어지간한 어른에 육박하는 덩치가 되었다곤 하지만, 고작 열넷에 곰을 홀로 잡다니?


-이놈 위험한 새끼다.


음험한 계획을 꾸미던 촌장의 촉이 알려줬다. 이놈은 너무 강하다. 순순히 자신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답이 없어.


양날의 검도 아니고 손잡이에도 칼날이 달려있는 놈.


‘늑대를 잡은 걸 이제 숨기지도 않는 걸 보면...... 이제는 다 컸으니까 거리낄 게 없다 이거 같은데.’


촌장은 조셉에게 닷새 안에 쫓아내란 말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놈이 더 성장하면 독보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마을을 휘어잡을 거고, 자신이 애써 구축한 세력도 위협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의 계획을 따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 할지도 모르지. 그러면 그가 누려온 권력과 안전도 끝장이다.


‘순순히 나갈 것 같진 않단 말이지. 안 되겠어. 반항하면 골치 아프니까 조만간 애들 좀 준비시켜야겠다.’


서서히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곡물 몇 줌 정도면 사람 하나 찌를 놈들은 많겠지.




***




‘아. 오늘도 알찬 하루였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헛간에 들어온 건장한 소년의 입가에 평온한 웃음이 맴돌았다.


전생의 불우한 삶 속에서 용케 싹을 틔운 태평한 성격이다. 낮에 있었던 심각한 얘기에서 생겨난 불쾌감 정도는 강물에 손을 씻은 것처럼 금방 사라졌다.


어차피 언젠가는 마을을 떠났을 텐데, 그게 좀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그만.


‘떠나면 떠나는 거고 아니면 말고.’


낮 동안 염소와 닭들이 어지럽힌 짚단을 적당히 정리한 마빈이 그 위에 누웠다. 하루 동안 압축해서 노동을 하느라 노곤해진 몸에 졸음이 덮쳐왔다.


휘익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기 염소를 불렀지만 웬일로 반응이 없었다.


킁킁.


마빈은 옷을 들추고 냄새를 맡았다.


‘아직도 늑대 냄새가 남았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염소 대신 온기를 유지하려고 짚을 몇 움큼 떼어와 몸 위에 올려놓았다.


밀짚에 숨어드는 벌레가 싫어서 연기를 쐬고 넓게 펴 햇볕에 바짝 말린 것들이라 습기 없이 훈훈한 냄새가 풍겼다.


그렇게 가물가물하게 정신이 흐려졌고.


“으응......?”


문득 주위가 따뜻해진 게 느껴졌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봄날 햇볕 같은 은은한 따스함은 겨울을 향해 침잠해 가는 쌀쌀한 밤공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애써 눈을 떠보니.


“......?”


눈앞에 웬 빛이 나는 여인이 서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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